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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과 명상

기와 음양

작성자오비이락|작성시간19.03.02|조회수42 목록 댓글 0

[氣와 태극 그리고 음양]

음양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형태가 태극이다.
태극은 음과 양이 반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그 구분을 원의 중앙을 직선으로 구분하지 않고 곡선으로 구분하고 있다.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태극의 형태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두가지 개념이다. 하나는 균형이고 하나는 운동이다.
태극의 음양은 크기나 형태가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누어져 표현되어 있지만 조금만 유심히 보고 사고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태극에서 나누어진 음과 양은 원의 중앙을 직선으로 나누지 않고 있다. 원의 중앙을 곡선으로 표현하고 있다.양이 음의 영역에 있고 음 또한 양의 영역에 있다.

음과 양은 그 크기나 형태가 변한다는 것의 표현이다. 크기나 형태가 변한다는 것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즉 음양은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고 그 운동으로 인해 늘 변하고 있다는거다. 정적인 그림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운동한다.
우리는 흔히 운동이라고 하면 물리적인 운동만을 생각하지만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운동도 있다.

운동하고 변하는 것. 운동과 변화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부여해서 유지하고 발전하게 한다. 그래서 음양은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이치인 것이다.

세상의 존재 이유와는 다르다.
세상의 존재 이유는 불변일거다. 적어도 우리가 있는 이 우주 안에서는. 따라서 氣는 세상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는 힘이 氣이다.

존재는 나아가고 발전하는 근원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생명은 움직이는 것이고 변하는 것이다. 멈추면 변화도 없고 생명도 없다.
그 움직임의 근원이 때로 협력하고 때로는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음과 양이다.

상생과 상극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음양의 협력과 충돌을 말한다. 그 충돌과 협력이 방향을 결정짓고 움직임의 강도를 좌우한다.
상생과 상극의 작용이 있기때문에 세상은 극단으로 향하지 않는다. 즉 멸망이라는 사라짐이 있을 수 없고 지상 천국이라는 환상도 없다. 음양이 멀쩡히 유지되는 한 그런 일은 없다.
그것이 이치에 맞다. 바로 세상의 이치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

어떠한 충격을 주더라도 음이 전부가되고, 양이 전부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세상은 내일 당장 사라질 것 같은 혼란이 있더라고 없어지지는 않고 혼란을 극복해 나간다. 즉 음양은 늘 균형을 맞추는 쪽으로 운동을 한다.

그것이 있음의 근원의 의지이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이치라고 부른다.
음양을 움직이는 힘 그리고 균형을 맞추려면 어떤 동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에너지 즉 氣이다.

태극의 나누어진 음양의 형태에는 氣 즉 에너지가 숨어있다. 氣는 세상을 지탱하고 움직이고 생존하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할 수 있는 실체이다. 음과 양은 실체가 아니다.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될 수도 있다.
음과 양은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의 기운이 강하다, 양의 기운이 강하다고 표현하지 음이다 양이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음과 양은 氣를 통해서 구현되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음양을 알고 싶은가? 그러면 氣를 체험하라.
왜냐고? 氣는 체험할 수 있는 경험적인 것이고 음양은 기에 의해서 움직이고 표현되기 때문이다.

태극이 나타나있는 표현물들은 아주 많고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이다.
태극은 세상 만물이 돌아가게 하는 움직임과 극단으로 벗어나지 않게 하는 균형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태극을 유지하고 운영하는 것이 氣이다.
즉 세상만사라고 표현되는 모든 존재는 氣로 인해 유지된다. 기는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경험적인 것이고 그 경험은 누구에게나 동등하다.氣를 경험하는 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을 체험하는 것이다.

있음의 근원적인 의지는 氣에 의해 구현된다.
그리고 氣는 누구나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실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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