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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과 명상

아문 말하다

작성자오비최이락|작성시간20.05.17|조회수46 목록 댓글 1

왜 삶은 불평등해 보이는가?

누구는 잘살고 누구는 못산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평등하다고 말한다. 직업이나 지위나 빈부 따위를 제쳐두고 사람은 원래 평등하다고 말한다. 적어도 그대는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때로 너무나 불평등해 보이는 삶의 모습들은 그대를 고뇌에 빠트린다. 왜? 왜 그럴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의지가 있다. 그대는 그대의 의지로 삶을 선택하였다. 이 말은 그대에게 심한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 누구도 가난과 아픔과 소외와 장애와 실패를 선택할 리는 없지 않은가? 그대의 의문은 속 시원히 해결되지 못했다. 깊은 신앙의 품안에서 감사와 용서와 화해를 배웠지만 여전히 그대의 아픔은 그대를 아프게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대가 미리 선택하는 것은 삶의 상황들이 아니다. 그대가 선택한 것은 그 상황들에서 주어지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과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가?

그대의 삶은 그대의 위대함을 증명하려고 선택된 연극이다. 아무런 곡절 없이 마냥 행복한 연극을 보며 갈채를 보낼 사람은 없다. 그대의 삶이라는 연극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마냥 행복한 연극만으로는 그대 영혼의 갈증을 채울 수가 없는 것이다.

눈보라치는 저 히말라야의 정상에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산소마저 부족한 곳에서 한 호흡 한 호흡의 의미를 새기며 목숨을 건 채 등반하는 방법도 있으며 맑은 날을 골라 안전한 방법으로 정상에 서는 방법도 있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 자유지만 그대가 느낄 수 있는 보람과 기쁨은 오로지 그대의 몫이다. 어떤 방법에서 더 기쁨이 클 지는 그대만이 아는 비밀인 것이다.

상황은 언제나 불평등하다. 하지만 그대가, 그대가 누려야 할 즐거움을 선택한다는 것은 언제나 평등한 것이다. 방법이나 그 상황까지도 평등하기를 바란다면 그대는 독재자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음에 틀림없다.

왜? 현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가?

과거를 살 방법은 없다. 미래를 살 방법도 없다. 모든 것은 언제나 그대의 현재 위에서만 펼쳐진다. 그러니 현재를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그대의 분노를 모른 척 할 만큼 바보는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말해보자.

현재를 열심히 살아야만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오지 않은 미래에 마음을 빼앗겨 정작 현재를 충실히 채우지 못한다면 바라는 미래 역시 오지 않는다.많은 철인들이 말한 것이지만 아직도 그대의 속은 불편하다. 뭔가 그대의 머리를 가볍게 해 줄 것이 필요하다.

우스개 이야기가 필요한 때다.
5분 늦은 시계와 아예 멈추어버린 시계 둘 중에서 어느 시계가 더 정확한가? 그래도 5분 늦은 시계가 더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대의 대답은 어느 부분에서는 맞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더 새겨본다면 그대의 대답은 새로운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5분 늦은 시계는 한 번도 정확한 시각을 가리킨 적이 없다. 하지만 아예 멈추어버린 시계는 적어도 하루 두 번은 정확한 시각을 가리킨다. 그 정확도는 최고의 정밀도를 자랑하는 전자시계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이 철지난 난센스를 다시 불러들인 까닭이 뭘까?

그대의 육체와 마음은 같은 시간을 살아갈 때 최고의 효율을 발휘한다. 육체의 시간은 언제나 현재를 살아가지만 정작 마음은 과거나 미래를 꿈꾸고 있다면 그대라는 시스템은 망가지고 만다. 돋보기를 예로 들어보자.

초점이 맞을 때 돋보기는 태양의 열을 한 점에 모아 종이를 태울 수 있다. 거리가 너무 멀어 초점을 벗어나거나 아니면 초점이 잡힐 충분한 거리를 주지 않고 바싹 갖다 대면 종이는 잘 타지 않는다. 초점에 가까워지면 어느 정도 종이의 온도를 올리는 데는 성공할 수가 있지만 역시 잘 타지는 않는다.

너무 먼 거리의 돋보기는 미래를 향한 그대의 마음이라 할 수 있으며 너무 가까운 거리의 돋보기는 과거를 향한 그대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돋보기는 태양의 빛과 열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그대는 창조주로부터(이해하기 어렵거나 싫은 사람은 자연이나 우주라는 말로 대신해도 된다.) 실시간으로 에너지를 공급받아서 산다. 공급자는 공급받는 자의 자세까지 책임지지는 않는다. 이른바 소를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말인 것이다.

그대는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잠시 현재를 스쳐지나간다. 돋보기의 초점을 맞추려 돋보기를 종이로부터 멀리 가까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 그 잠시 동안의 현재와의 만남 덕택으로 그나마 그대의 육체와 마음의 시스템이 최소한 꺼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오랜 시간 현재에 머물 수 있다면 그대의 에너지는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 그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나 오랜 시간 과거나 미래의 환상을 쫒느라 정작 현재를 사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집중하라. 그때 그대가 외면했던 현재가 기쁜 얼굴로 그대에게 돌아온다. 어떤 것이든 좋다. 집중하라. 하지만 그것이 그대에게 혐오와 후회를 안겨줄 것이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집중하는 시간 동안 현재를 살 수 있었던 그대가 그 상황이 끝난 후 더 많은 시간을 혐오와 후회라는 두 괴물에게 그대의 현재를 내주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집중해야 하는가?

천천히 하라.
바쁘게 살아도 부족한 판에 천천히 하라고?
제대로 못할 바에는 천천히 하는 것이 낫다. 게다가 이 ‘천천히’라는 것은 대단히 주관적인 것이다. 객관적 시간과는 별 상관이 없다.

천천히 하는 연습을 해보자.
아주 천천히 그대의 오른 손을 들었다 내렸다 해보자. 몇 번 반복 후에 왼 손으로 바꾸어도 된다. 아주 천천히 해야 된다. 지금 바로 해보자.
그 다음 천천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좀 더 빠르게 움직여보자. 무엇이 다른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을 때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어야 한다. 하나 더, 천천히 움직일 때 그대에게 뭔가 새로운 에너지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느껴야 한다.이 두 가지를 알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불과 몇 분의 훈련으로 누구나 느낄 수가 있다. 몇 번 반복하는 중 그대가 느낄 수 있는 반응들이다.

1. 저절로 호흡이 길어진다.
2. 길어질 뿐만 아니라 대단히 호흡이 부드럽다.
3. 좀 더 반복하는 사이 그대의 입 속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4. 뭔가 전기 같은 것이 그대의 머리로부터 온몸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이러한 반응들이 그대에게 다가온다. 이것을 반복해서 훈련하면 그대는 어느덧 그대의 과거가 그대의 현재를 위협할 수 없으며 그대의 미래가 그대의 현재를 가로챌 수 없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현재의 위대한 힘을 쓸 수 있는 첫걸음이다. 짬날 때마다 몇 분씩이라도 좋으니 시도해 보라.

그 다음, 다른 행동들까지 비디오의 느린 재생화면처럼 천천히 해보라. 그 전에 느꼈던 것과 전혀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된다.
빠르게, 빠르게만 강조하는 세상에 길들여진 그대에게 안식과 평화와 자유를 주는 방법이다. 이 느림의 미학은 현재에 집중하게 해주며 그 안에 담겨진 무한의 에너지를 쓸 수 있게 해주는 너무나 간편한 방법이다.

애연가들에게…

느리게 피우는 담배는 그대가 그 전에 피우던 담배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습관적으로 꺼내 무는 담배는 그대에게 별 기쁨을 주지 못하면서 그대의 몸을 황폐하게 만든다. 하지만 느리게 피우는 담배는 그대에게 담배 이상의 것을 전해준다. 게다가 그대의 흡연 욕구를 현저히 줄여준다.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담배가 아니라 담배가 주는 여유가 아니었던가?

연인과 부부들에게…

느리게 서로를 바라보아라. 천천히 어루만져라. 손가락이든 뺨이든 천천히 어루만져라. 그대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된다. 상대를 사랑하느라 지쳐있던 그대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곧 그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신앙이 두터운 사람들에게…

좀 더 천천히 기도하라. 그대의 말을 그대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또박또박 천천히 말하라. 한 음절 한 음절 정성껏 천천히 말하라. 신이 그대와 함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신은 오로지 그대의 현재를 바라볼 뿐이므로 그대가 현재를 강하게 바라볼 때만이 신과 교통할 수 있는 것이다.

깨달음을 원한다면...

느린 동작 가운데에서 현재를 느껴라. 그대의 호흡이 자연스레 길어질 것이다. 의식이 명료해지면서 세상의 모든 이치를 저절로 알게 되리니…

자, 이제 기쁨을 느껴볼 때다. 느린 가운데에서 기쁨을 느껴라. 그대의 몸은 생명력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며 그대의 마음은 모든 번뇌로부터 떠나게 될 것이다.

천천히 걸어라. 빨리 걷는 것은 그대의 육체를 단련시켜 주지만 천천히 걷는 것은 그대의 영혼을 깨어나게 한다. 그대가 충분히 현재를 느끼는 것에 익숙해지고 나서 필요에 따라 차츰 빨리 해도 된다. 그대는 여전히 그 안에서도 생명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개의 숫자까지 일치된 로또 용지를 들고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추첨을 바라본다. 이 순간 그대는 현재를 바라보고 있다. 입안에 침이 고일 것이다. 어떤 생각도 그대를 이끌지 못한다. 그대는 숨을 죽이고 바라본다. 그대가 천천히 행할 때와 비슷하지 않은가?

카레이서가 스피드에 열광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0.1초도 한눈을 팔 수 없는 상황에서 카레이서가 느끼는 것은 현재에 대한 집중이다.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속도감에서 오는 스릴과 경쟁에서 느끼는 짜릿함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그대가 천천히 움직일 때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방식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예술가들은 완전한 순간을 빚고자 한다. 과거와 미래를 초월한 기쁨의 순간을 맛보려 한다. 결국 예술가들이 원하는 것은 ‘현재’일 뿐인 것이다.

같음은 사랑이며 다름은 아름다움이며 함께함은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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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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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손공 | 작성시간 20.05.22 참으로 진주 보다 더더더 좋은 말씀 감명 깊습니다 . 감사합니다.
    이런 말씀이 진정 活句 眞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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