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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과 명상

신의 편지

작성자오비최이락|작성시간20.05.19|조회수46 목록 댓글 0

신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어휘에서 잘 놓칠 수 있는 말이 ‘왜(why)’라는 단어다. 물론 그 말이 그 개념이라는 것은 아니다. 왜 이렇고, 왜 저렇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저것이 아니었을까? 왜 나한테? 네가 확인하고 재빨리 차버려야 하는 명분이 있는 것처럼?

왜는 중요하지 않다. 너는 평생 동안 인과관계를 찾고, 삶을 알아내고 거기서 자신을 구하려고 노력해왔다. 왜가 그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오직 존재함(Is-ness)만이 있다.

항상 이유를 찾는 것은 전혀 이유 없이 숫자를 세는 것과 같다. 그것은 일종의 기계적 암기다. 얼마나 많은 대용품의 이유를 셀 수 있는가? 그리고 너는 현재로부터 자신을 진정시킨다. 그리고 너는 끈으로 자신을 감아줄 뿐이다. 너는 풀지 못한다. 너는 더 엉켜 있다.

원인과 결과를 찾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분명하지 않으면 잊어버려라. 너는 이미 너에게 분명한 문제에 연연하지 않는다. 너는 이미 성냥을 치면 불이 켜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너는 그 순서를 알아낼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네가 따라야 할 직선이 없다. 더구나 원인이 없다고 하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원인은 없고, 오직 일어남만 있을 뿐이다.

만약 오늘 너의 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너는 차에 기름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게 네가 알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너는 탱크에 누출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기름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 외에도, 왜 어제 탱크를 채우지 않았는지, 왜 부주의했는지, 왜 잊어버렸는지, 왜 위험을 무릅썼는지, 왜 더 잘 알지 못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은 모두 헛된 일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왜를 묻는 것이 또한 무익하다. 이유 중 최선을 고른다 해도, 그것이 여전히 너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한다.

지금 이 한 가지를 시도해 보아라. 그것은 ‘너는 하지 말지어다(Thou shalt not)’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거나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알아내려고 하지 말라.

‘왜(why)’를 대신할 단어는 ‘지금(now)’이다.

지금은 더 유용한 단어다. 아니면, 무슨 일이 생기면, 단지 ‘오(Oh)’를 말해라, 그런 다음 계속 가라. 이것은 왜 네가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네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도 발생하는지에 적용된다. 아니면 ‘흠(Hmm)’이라고 말하고 계속 가라.

왜라는 이유를 찾는 것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다.
왜라는 이유를 찾는 것은 그 문제를 피해 가는 것이다.

이제, 다른 한편으로, 너에게 어디에 네가 있는지, 무엇이 있는지를 상기시켜라. 지금은 네가 수영하는 그 수영장이다. 지금이 네 재산이다. 지금이 너의 지혜이고, 지금이 너의 은총이다.

내가 왜 너한테 이런 말을 하는가? 왜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는 말과 네가 들은 말은 중요하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내 말을 명심해라. 너는 이유를 찾는 것이 현재로부터 자신을 피하는 한 형태라는 것을 이제 알겠느냐?

알아내는 것을 포기하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이미 파악되었다. 그런 일이 있었지?

네가 이유를 찾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따라야 할 레시피가 아니라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 네가 굽는 케이크에 재료를 빠뜨릴 수 있고, 다음번에는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오븐의 온도가 너무 높았거나 너무 낮을 수도 있으며, 다음번에는 더 잘 할 것이다. 하지만 삶은 지금이고, 너는 이미 더 좋아졌다. 네게 다가오는 삶을 만나고, 계속 나아가라. 과거의 모든 흔적을 간직하려고 하지 마라. 현재와 함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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