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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과 명상

원네스 딕사

작성자오비최이락|작성시간20.08.06|조회수112 목록 댓글 0

딕샤(diksa) : 고대 인도에서 베다 희생제(犧牲祭)에 앞서 행하는 신성화 의식. 후기와 근대 힌두교에서는 정신적 지도자인 구루에 의해 진행되는 특정 종파의 평신도가 되는 입문식(入門式)을 말한다.

이때 생겨난 열(tapas : 모든 인도 고행 수련의 기초인 신비적인 상태)은 세속의 영역에서 신성한 세계로 나아가는 신호이며 수단으로 여겨진다. 전세계의 여느 의식에서처럼 딕샤 또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이를 묘사하는 경전에서는 오두막을 '자궁'으로 표현하는 등 직접적이고 명백한 상징주의를 사용한다.

딕샤는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축복 (blessing)을 뜻한다. 고차원의 에너지를 전달 받아 몸의 생명 에너지인 쿤달리니를 활성화시켜 준다. 30초의 딕샤로 뇌파가 알파파로 전환되며, 뇌의 신경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나고, 이런 변화가 지속되면 변형 (transformation, 각성, 해탈)을 가져오게 된다.

원네스(Oneness, 통합)는 우리 내면의 의식의 하나됨을 말합니다. 우리의 내면에 하나됨이 부족할 때 우리는 건강, 재정, 관계 등에서 갈등을 경험하며 고통을 겪습니다. 원네스 유니버스티는 인류에 하나됨을 가져오는 것을 비전으로 암마바가반의 두 분(암마와 바가만 칼키가 근대 창시자)이 설립한 명상의 단체다.

원네스 유니버스티의 입문(Initiation)을 받은 '딕샤기버'(giver, 전달자)로부터 '딕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딕샤는 우주에 있는 보편적인 에너지이며, 우리의 의식이 갈등에서 하나됨으로 상승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명상과 함께 딕샤를 받게 되면 내면의 갈등들, 관계, 재정, 건강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깊은 명상과 깊은 평화, 그리고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질문 : 딕샤는 이전부터 존재하였나요?

바가반 : 딕샤는 고대의 샷띠팟(sakthipath/샤크티파타 : 구루가 입문자에게 쿤달리니를 깨어나게 또는 향상하도록 신성한 에너지를 전달해주는 의식, 왕관, 천목, 심장 차크라에 접촉을 통해서 하거나, 시선이나 말을 통해서 전달하기도 하는데, 티벳에서는 방쿨, 밀교에서는 관정, 기독교에서는 안수를 통해서 알려져 있다)이란 시스템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상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이런 저런 형태로 존재해 왔습니다.

에너지란 한 인간의 몸에서 다른 인간의 몸으로, 한 마인드에서 다른 마인드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대륙을 거쳐 모든 문명을 통해 수천년간 이러한 시스템은 존재하였습니다.

최소한 힌두교에서는 몇 세기동안 이것이 잘 보존되었습니다. 구루(스승)는 이러한 상태를 남에게 잘 전달하는 자여야 합니다. 구루는 말만 하며 가르침을 주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한 가르침은 깨어남의 상태를 잘 준비해주기 위한 과정으로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구루는 이러한 상태를 잘 전달해주어야 하고 받은자는 깨어남의 상태에서 그 가르침을 활용하여 명료함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구루들은 딕샤를 줄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사람들에게 가르침만 주며 계속 말만 하고 끊임없이 분석하는데 더 집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분석은 궁극적인 마비상태를 일으킵니다. 따라서 그것이 오늘날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한 번 딕샤를 줄 수 있는 능력이 발달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이것은 간단한 딕샤가 아니라 강력한 딕샤입니다. 또한 단지 구루들이 아닌 일반인들도 남들에게 딕샤를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딕샤는 간단히 말하자면 에너지의 전달입니다. 이 에너지는 자체적 진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 에너지는 육체의 다양한 부분들 즉 챠크라로 들어가고 챠크라로부터 뇌에 작업을 합니다. 활성화시켜야 하는 뇌의 특정부위가 있는 반면 다른 부위의 활동은 중지되어야 합니다.

뇌에 변화가 일어나고 이러한 변화들로 인해 당신은 신의 깨달음을 얻거나 가슴이 피어나기도 혹은 깨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어떠한 상태가 얻어지는지는 당신의 배경과 사고에 따라서 다릅니다.

당신의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교육적 배경 등을 포함한 수많은 요소들에 의해 당신이 얻는 상태는 좌우됩니다.

소위 (위와 아래의) "하나됨"(하늘과 땅, 속과 겉, 남과 여)을 일컫는 "원네스"는 뉴에이지를 대표하는 용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원네스 블레싱이 어떤 것일지는 이름만으로도 감이 잡히는 바이다. 이 글에서는 "원네스 블레싱"Oneness Blessing 또는 "딕샤"Deeksha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어떤 면에서, 그리고 얼마나 토론토 블레싱과 유사한지 한번 간단하게 살펴 보도록 한다.

자고로 모든 에소테릭 종교에는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입문과정이 따랐으며, (부활을 몸으로 표현하는) 입문의식은 에소테릭 종교에서 큰 의미를 가져 왔다. 그런데 뉴에이저들은, 시대가 그들의 소위 (진화가 완성되는) 뉴에이지로 접어들면서 손쉬운 대량 입문이 일어날 것을 예견해 왔다. 그 한 예로, 뉴에이지 구루 스팽글러는 "우리가 뉴에이지에 들어가려면 루시퍼 입문을 치뤄야 한다. 우리는 거대한 지구적 입문, 사람들의 집단 입문을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무섭게도.. 어쩌면 그것이 지금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함으로써 수많은 대중을 입문시키는 듯한 현상들이 배교적 기독교에서도, 뉴에이지에서도 공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 전세계적으로 1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딕샤"라는 신비적 현상을 체험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 들어서 "딕샤" 붐이 장난이 아닌 듯하다. 딕샤는 원래 "입문"을 의미하는 말로서, 각성된 마스터로부터 전이되는 에너지라고 그들은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뉴에이지 "각성"은 일반적으로는 (스스로가 神임을 깨닫는) "변형된 의식 상태(변성의식)"를 말하는 것이지만, 힌두교적으로는 "쿤달리니 각성"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미 토론토 블레싱과 쿤달리니 각성과의 유사성을 많이 보았다.) 토론토 블레싱과 원네스 블레싱의 현상적인 유사성은 아래 "입문의 권능"이라는 제목의 원네스 블레싱 비디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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