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대기근 】
1670년 음력 1월 1일,새해 벽두부터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다. 낮에는 알록달록한 햇무리가,밤에는 창백한 달무리가 나타나더니 이것이 한 달 내내 이어졌다.또한 저녁 어스름할 때나 잠시 보이는 금성이 낮에도 보이기 시작했다.한 하늘에 빛을 잃은 태양과 달,그리고 금성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천계의 혼란 탓에 공포는 갈수록 심해졌다.
곧이어 꼬리가 1미터나 되는 붉은 색 유성이 하늘을 침범했고,일주일 간격으로 백색 유성이 뒤따라왔다.
갈수록 큰 유성이 나타나더니,2월에는 호리병 모양에 붉은 빛과 굉음을 내는 유성이 나타났는데 그 크기가 하늘을 반으로 가를 만큼 거대했다.
태양계를 관통하는 유성뿐만 아니라 땅에 떨어지는 운석도 급증했다. 새해 초,평안도에 큰 불덩어리가 날아와 떨어졌다.불덩어리가 떨어진 부근은 대포가 터진 것같이 집과 담이 들썩거릴 정도였으며,사방 수천 리까지 그 빛과 굉음이 찢어진 듯 진동했다.
사람들은 다들 놀라 집을 뛰쳐나와 하늘을 쳐다보며 공포에 떨었다.
아울러 이때 한양에서도 천둥과 번개가 요란했다. 추운 겨울,눈이 오는 가운데 벼락이 여기저기 무섭게 떨어지며 높은 나무와 집에 불을 내고 사람과 가축이 벼락에 맞아 쓰러졌다. 혜성을 '살별'이란 부르던 조상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이것들이 대재난을 암시하는 불길한 징조라며 수근거렸다.
태양이 빛을 잃은 것과 햇무리와 달무리,낮에 나타난 금성은 운석의 영향이 크다. 운석이 지구에 낙하하면서 발생한 대량의 먼지와 연기 미립자가 햇빛을 차단하고 전리층을 교란시켜 겨울 천둥과 번개를 유발한 것이다. 이런 요란하고 흉칙한 현상에 이어 치명적인 재난이 뒤를 따른다.
이미 태양의 활동이 약해진 상황에서 잦은 운석 낙하는 기온이 하락하는 속도를 높였다.
태양이 약해진 것은 흑점 감소 등 태양 자체의 문제 때문도 있다.
하지만 십수 년에 걸쳐 유성군이 태양계를 요란하게 관통하며 뿜어 놓은 엄청난 가스와 먼지가 지구로 오는 태양열을 더욱더 차단한 듯하다.이 시기는 소빙기의 절정이었다. 자연의 노여움은 하늘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새해 초,전라도에서 집과 대문이 흔들릴 정도의 지진이 나더니 3월에는 경기도와 경상도에서도 연이어 발생했다.지진은 6월에는 황해도까지 올라갔고, 이 해 내내 전국에서 크고 작은 작은 지진이 연달아 발생했다.
신년초부터의 흉측한 징조들은 봄이 되자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극심한 가뭄과 냉해가 전국을 휩쓴 것이다. 한랭대가 한반도를 덮으면서 봄이 되어도 기온은 여전히 서늘하고 비는 오랫동안 내리지 않았다.
5월은 보리를 수확하고 벼의 씨를 파종하는 때로 1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산지가 많은 한반도는 물을 끌어오는 관개시설이나 저수지가 열악하므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봄 내내 이어진 가뭄은 벼의 파종은 물론 콩이나 조,수수 같은 기껏 심어놓은 대체 작물의 씨앗까지 말려버렸다. 1년 농사가 끝장난 것이다.
겨우 살아난 것들도 6~7월에 우박과 서리는 물론 눈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전부 죽어버렸다.
심지어 한여름인 8월에 우박,서리는 물론 눈이 전국에 내렸다는 믿기 힘든 기록까지 있다.
가뭄은 7월에 태풍이 한반도로 올라오며 겨우 해갈됐지만 이미 모든 것이 끝장난 상태였다.
여전히 냉해가 강력해 쏟아지는 비도 섬뜩할 만치 차가운 냉우였다. 태풍도 기상 이변 탓인지 전에는 보지 못한 가공할 만한 크기의 위력이었다.
8월,제주도에 닥친 초대형 태풍은 바닷물을 해안 마을까지 밀어올리고 섬 깊숙한 곳까지 물을 날려서 온 섬이 바닷물로 흥건했다.계곡과 냇가는 민물 대신 짠 바닷물이 흘렀고,가뭄을 피해 겨우 심어놓은 푸성귀도 소금물에 모두 말라죽었다.이 때문에 한반도에서 제주도가 제일 먼저 대기근이 시작됐다.
태풍은 이미 오랫동안 만성적인 가뭄과 기근에 시달리던 섬주민들에게는 결정타였다.
사람들은 농사에 꼭 필요한 소와 진상품인 말까지 잡아먹고도 쓰러져갔으며,조정에 구호미를 요청했지반 섬 전체 주민이 모두 굷주리는 통에 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 제주 목사는 "겨우 도착한 진휼곡도 금세 바닥나 이젠 백성들이 서로를 잡아먹을 판입니다"라고 급박하게 보고를 올렸다. 이후 그는 백성들과 함께 매일 포구에 나가 식량을 실은 배가 들어오는지 먼 바다만 보며 눈이 빠지게 기다렸고,기다리던 배가 오지 않으면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는 가운데 겨울이 되자 이번에는 폭설이 연이었고 눈이 3미터나 쌓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굶어죽으면서도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어 피해는 더욱 커졌다. 이때 제주도민(공식 43,000명)의 20~30%가 굶어 죽은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병충해까지 나타나 상태를 최악으로 이끌었다. 메뚜기 떼 수천만 마리가 나락은 물론 초목 자체를 초토화시켰다. 메뚜기들은 벼와 보리,밀 같은 곡물은 물론 풀,나무도 가리지 않고 다 갉아먹었다.
심지어 중요 구황먹거리인 솔잎까지 먹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젖은 볏집과 밤나무 장작을 태워 매운 연기를 내고 화승총에 쇳가루와 모래를 넣어 쏘는 등 필사적으로 메뚜기 떼를 막아보려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메뚜기 떼가 하늘을 덮었을 때,굷주린 사람과 가축에게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무섭게 번지기 시작했다. 소가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황해도에서만 2만 2천 마리가 넘게 죽었다.
소 한 마리가 사람 8~9명분의 일을 하는데 이런 소가 거의 전멸되다시피 하자 논갈이와 밭갈이 같은 기본 농사일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이미 굶주려 기력이 떨어진 사람들에게는 소를 대체할 것이 마땅치 않았고,이는 1671년까지 대흉년이 이어지는 이유가 된다.
소의 전염병은 다른 가축에게도 번져 개와 돼지도 비슷한 증세를 보이며 죽어나갔다.오랫동안 굶주린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어 파묻은 소를 파먹다 죽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어 사람에게도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전염병은 연초부터 돌기 시작했지만 가을이 되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다.
오랫동안 굶어 체력이 약해진 사람들이 열악하고 불결한 위생 환경 때문에 병에 더 많이 걸린 것이다.
전염병은 온 조선을 휩쓸었고,아이,어른 평민,양반을 가리지 않고 쓰러뜨렸다.
이제 전염병은 지방을 넘어 한양까지 확산되었다.
4대문 안에 사는 일반 백성,양반,노비들은 물론 궁궐에 출입하는 고위 관리와 왕족,궁녀,경비병까지 감염되기 시작했다.
EBS 역사채널 e-경신대기근
5분 36초의 길이입니다.
https://youtu.be/uctKv2dMS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