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
우리는 '흥선대원군' 하면 쇄국정책(鎖國政策)을 떠올린다.조선 말기에 고종의 아버지로서 섭정을 하면서 한 일은 쥐뿔도 없이 나라의 문을 굳게 닫은 쇄국정책(鎖國政策)을 펴는 바람에 조선이 낙후되고 일제에 멸망당함으로써 조선의 멸망에 대원군의 책임이 적지 않다고 알고 있다.
조선 말기에 조선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처넣은 주범은 대원군이 아닌, 부패한 세도가들과 마누라의 치마폭에 쌓여 있던 멍청한 고종(高宗), 그리고 그 마누라의 후원을 받아 권력을 향해 더러운 욕심과 재물에 대한 끝없는 탐욕을 부린 민씨 척족들이 조선을 망친 것은 아닌지?
물론 그전에 조선은 정조(正祖)가 승하한 후 정순왕후와 안동 김씨 가문이 이미 치유하기 힘든 골병을 들여놓았지만 말이다.
대원군의 쇄국정책(鎖國政策)은 분명히 잘못되었다.그러나 당시 조선에서 국제정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대원군이 쇄국정책(鎖國政策)을 편 기간도 그가 정권을 유지했던 10년중 7~8년 정도였다. 더구나 조선에서 사대했던 청나라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다가 아편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모습을 본 흥선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조선의 국력이 약해져 있으니 지금 서양을 향해 문을 열어 보았자 침략밖에 더 당하겠어? 아직은 문호개방을 할 때가 아니야. 힘을 키운 후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자' 그런 속셈은 아니었는지?
요즘은 학교 교과서에서는 쇄국정책이란 말 대신 통상수교 거부정책(通商修交 拒否政策)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통상수교 거부정책'이란 다른 나라와의 통상 및 교역을 허용하지 않는 외교정책을 말한다. 통상수교거부정책(通商修交 拒否政策)의 목적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막아 정치, 경제적인 내부의 위기를 극복하고 그 사회가 안고 있는 취약성을 더 확대하지 않으려는데에 있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서 생산하는 물건은 쌀이나 면처럼 국가 경제에 중요한 필수품이 대부분이라 서양의 것들이 들어와 교역을 하게되면 백성들의 삶이 망가질 우려가 있었던것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염려하지 않았을런지?
쇄국정책(鎖國政策)이란 말 대신 통상수교 거부정책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오늘날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게 부여되고 있는 점수가 높아짐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과오는 쇄국정책 말고도 또 하나 있다.일찌감치 산업혁명 등을 통해 제국주의화 되어가던 서양국가들이 거침없이 동양으로 진출해 오고 있었던 19세기 후반 근대사회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왕권강화에 대한 집착은 시대를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면이 없지는 않다.
그래서 역사속에서 개혁이 가는 방향은 아주 중요하다.서세동점(西勢東漸, 서양이 동양을 지배한다)이라는 새로운 세계사적 흐름과 세도정치로 피폐한 국가의 재건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했던 흥선대원군!
한편에서는 개혁정치가로, 다른 한편에서는 보수적인 국수주의자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는 흥선대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