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빈 김씨 & 계양군 이증 桂陽君 李璔
이때 세조는 이것은 모두 계양군(桂陽君)의 허물이다.동생 의창군(義昌君)이 술로써 죽었는데,
익현군(翼峴君)도 또한 술로써 죽으니 매우 슬프다. 하였다.1464년 4월부터 병석에 누웠다가
그해 8월 16일에 사망하였다
당시 세종이 도승지 김돈에게 "김씨의 출신이 천하지만 13세부터 궁중에 들어와 행실이 바르기에
빈이나 귀인으로 삼고자 하는데 어떠하냐" 고 묻자
김돈이 신개 등과 의논해 귀인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정1품 신빈(愼嬪)에 책봉되었다.
그녀는 천성이 부드럽고 매사에 조심스러워
소헌왕후에게도 사랑을 받았으며,
소헌왕후는 그녀에게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기기도 하였다.
또한 그녀는 평소에 불교를 신봉했었는데,
세종이 죽고나서는 아예 여승이 되어 살았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사망한 막내아들
담양군을 위한 경문 인쇄 비용으로 조정에서 쌀 500석을 하사받았으며,1452년(단종 즉위년)에는
단종이 그녀의 아들 의창군의 청원에 의해
그녀에게 머리를 기르도록 명령하였지만
이를 거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내자시의 여종이었으나 세종 즉위년(1418)에
13살 나이로 소헌왕후의 궁인이 되었으며,
승은을 입어 세종 9년(1427)에 21살 나이로
첫 아이로 세종대왕의 둘째 서자 계양군(桂陽君)을 낳았다.
세종에게 후궁이 여럿 있었으나 신빈 김씨를
가장 총애한 듯, 신빈 김씨만 6남 2녀를 낳았다.
다른 후궁이 아이들을 1명, 아니면 3명 낳았으므로
후궁 중에서는 압도적이다.
신빈 김씨는 성품이 부드럽고 조심스러워서
소헌왕후에게도 사랑받아 수양대군을 돌보기도 했고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기도 했다.
신빈 김씨는 평소에 불교를 신봉했었는데,
세종이 승하한 뒤에는 아예 여승(비구니)이 되어 살았다.
아들 셋을 낳은 또 다른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가
세조에 의해 사형당하고 친정도 풍비박산난 반면,
신빈 김씨의 아들들은 수양대군과 가까웠으므로
계유정난의 정난공신으로 책봉받았다.
또한 신빈 김씨가 죽었을 때에도 세조가 쌀, 콩 등 70석(石)을 부의로 내리는 등 배려하였다.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이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배우는 이정현. 어머니의 약값을 구하기 위해 아무나 붙잡고 막무가내로 자신을 팔아보려던 와중에 충녕대군을 만나 궁녀가 된다.
원래는 비중이 큰 역할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배우의 성대결절로 본격적인 역할이 나오기도
전에 중도 하차한다.
ㅡ 계양군 이증(桂陽君 李璔)
학문을 좋아하고 글씨도 잘 썼다.
남을 대접함이 겸손하여 권세를 부리지 않았으나,
주색에 빠져 일찍 죽었다.
1437년 12월 9일 한확의 딸 청주한씨와 결혼하였다.
청주한씨는 후일 의경세자빈이 되는 소혜왕후 인수대비의 친 언니였다. 단종 말엽 그는 이복 형들 중 수양대군을 지지하였다.
1454년에는 수춘군 현(壽春君 玹)과
익현군 연(翼峴君 璭)에게 들은 일로
영천위 윤사로와 함께 금성대군 유를 탄핵하였고,
같은 해 파평위(坡平尉) 윤암(尹巖)과 함께 금성대군, 혜빈 양씨 등을 공격하기도 했다.
1455년 세조 즉위 후, 수충위사동덕좌익공신 1등
(輸忠衛社同德佐翼功臣)에 녹훈되고 계양군에 다시 봉작되었다. 세조 즉위 직후 측근에서 서무의 출납을 맡으면서 세조의 신뢰를 얻었다.
1460년(세조 6) 의경세자가 혼인할 때
가례도감 제조를 겸하여, 혼인을 주관하였다.
친동생 익현군 련(翼峴君 璉) 등과 자주 술을 마시다가 1463년 5월 4일 동생 익현군이 술병으로 사망하였다.
계양군 이증(桂陽君 李璔, 1427년 - 1464년 8월 16일)은 조선 전기의 왕족이다. 수양대군의 편에 서서 세조 반정에 참여 이후 좌익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시호는 충소(忠昭)이며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현지(顯之)이다.의경세자에게는 이복 삼촌이자 손윗 동서가 된다. 정인지, 김질 등과 사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