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종연횡 合從連衡
중국 전국시대 제자백가의 한 갈래였던
합종가와 연횡가들에 의해 주장된 외교술.
대표적으로 연나라에게 합종설을 주장한 소진이 있으며, 진나라에게 연횡설을 주장한 장의가 있다.
오늘날에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 이익단체를 망라한)
각종 세력들이 행하는 이합집산을 뜻하는
표현으로도 쓰이고 있다.
ㅡ 작은 국가끼리 뭉쳐 거대한 국가에 대항해야 한다
라는 것이고 연횡은 거대한 국가에 대응하기 위해
뭉친 동맹을 하나하나 꼬드겨 무너뜨리는 방법이다.
현대 외교용어로 말하면
다자주의multilateralism VS 일방주의unilateralism.
전국 시대가 열린 직후, 전국칠웅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던 것은 위와 제였지만,
점차 중원의 주도권은 진나라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진의 국경이었던 하수와 진령산맥은 천혜의 요새였고, 두 자연 요소가 만나는 함곡관만 틀어막아버리면 외부 세력이 진나라 영토 안으로 진격하는 것은 당시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한 진나라는 영토 안에 관중 평야가 존재해서
협소한 영토 탓에 자급자족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자급자족 및 물자 축적이 가능했던 점도
진나라의 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
상술한 유리함을 지닌 진은 시간이 흐르면서
세력을 팽창하고자 시도했고, 6국 가운데
진과 국력으로 맞불을 놓을 수 있는 나라는
없었기 때문에 외교적인 술책을 고안해내야 했다.
그리고 이 고민 속에서 종횡가가 등장한다.
기원전 4세기 후반 위(魏)의 공손연(公孫衍)은
처음으로 합종책을 제안하면서 연·조·위·한·제·초
6국이 연합하여 진에 대항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6국 간에도 서로에 대한 반감이 컸을 뿐만 아니라, 진나라의 방해 공작까지 겹치면서이는 실패로 돌아간다. 한편 진은 합종책에 대한 대항책으로 위의 장의(張儀)가 제안한 연횡책을
자국의 외교 노선으로 채택하는데, 연횡책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진이 6국 중 상대적인 약국을 도와 그 나라가 세력을 확대시키게끔 도와주자는 전략이다.
그리고 초나라가 진의 연횡책에 낚여
제나라와의 동맹을 파기하면서 진의 국력은
한층 더 커지게 됐다. 근데 뭐 이게 이상하지 않은 게
이후에도 초나라는 국력은 큰데 외교적으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여 타국의 신뢰를 사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아차싶었던 6국들은
소진(蘇秦)의 주장에 따라 다시 합종책을 취하였다.
6국이 연합하여 진을 공격하게 되자 진도 할 수 없이
점령하였던 땅에서 후퇴했다.
이후로도 합종과 연횡은 반복되었는데, 전국칠웅들은 손익계산에 따라 합종과 연횡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를 비꼬아서 조진모초이라는 고사성어도 등장한다.
合 : 합할 합
縱 : 세로 종(從을 쓰기도 합니다)
連 : 이을 련(연)
衡 : 가로 횡
결국 합종연횡은 남북으로 합류하고 동서로 연합한다는 뜻으로, 강적에 대항하기 위한 권모술수
합종설은 소진(蘇秦)이라는 사람이 주장한 것이고,
연횡설은 장의(張儀)라는 사람이 주장한 것이었답니다.
소진과 장의 두사람은 기원전 4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전국 시대 중엽에 살았던 유명한 책사(策士)입니다.
이 두 사람은 <<귀곡자>>라는 책을 남긴
귀곡 선생을 함께 스승으로 섬긴 동문이기도 했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