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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답사

정조의 탕평책

작성자오비|작성시간20.03.07|조회수478 목록 댓글 0

조선의 중흥을 꽃피운 정조의 탕평책(蕩平策)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정치세력은 두 세력으로 나뉘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당연하게 여겼던 벽파(僻派)와 그 죽음을 안타깝게 여겼던 시파(時派)였다.

노론(老論)은 대부분 벽파였고, 남인(南人)세력은 시파였다. 그렇다면 정조는 어느 입장에 우호적이었을까? 당연히 남인세력에게 우호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조는 남인세력뿐만 아니라 노론세력들까지도 고루 등용했다.
할아버지 영조와 마찬가지로 당파와 관계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자 하는 탕평책(蕩平策)을 지향했다.

즉, 붕당자체를 인정하되 각 붕당(朋黨)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를 명백히 가려내어 반영하고, 각 붕당의 입장을 떠나 의리와 명분에 합치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중용하는 준론탕평(峻論蕩平)의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다.

준론탕평(峻論蕩平 - 강경론을 앞세운 탕평정책)은 영조가 아예 싸우지 말고 무채색으로 가자는 완론탕평(緩論蕩平)과는 다르다.

정조는 오히려 색깔을 명확히 하고 왜 자신의 색깔이 옳은지 논쟁 속에서 끄집어내자고 한 것이었다.

정조는 정적(政敵)이었던 노론세력과도 가까이 지냈다. 예전에는 노론세력이 정조를 미워해 '정조를 독살했다!'라는 이야기가 일부 전해지고 있었는데,
사실 정조는 노론세력의 수장인 심환지(沈煥之)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정치적인 조력관계를 맺고 있었다.

2009년 2월 9일, 정조의 통치 후반기 4년 동안 심환지에게 보낸 290여 통의 어찰(御札), 비밀편지가 공개되면서 심환지가 정적(政敵)이 아니라 국정파트너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심환지(沈煥之)가 정조를 독살한 배후라는 가설도 일단락되었다.

편지내용을 살펴보면, 정조는 각 현안이 있을 때마다 심환지(沈煥之)에게 비밀리에 편지를 보내 미리 상의했다. 이른바 미리 써놓은 '대본'대로 정책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편지내용에는 심지어 심환지(沈煥之)와의 비밀 계약도 있었는데, 정조(正祖)는 심환지의 큰 아들이 과거시험에서 떨어진 것에 대해 이렇게 위로하기까지 했다."300등 안에 들면 합격시키려고 했는데,
네 아들이 300등 안에 들지 못해서 안타깝구나."

(정조신한(正祖宸翰)의 내용 - 낮동안 평안한가? 들으니, 내일 청좌하여 상소한다고 하는데, 내용의 개략을 보여 주는 것이 어떠한가? 각별히 들추어낸다는 비방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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