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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답사

제 2차 갑오개혁

작성자오비최이락|작성시간20.06.27|조회수827 목록 댓글 0

김옥균을 내세운 2차 갑오개혁(1895)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를 통해 대리 개혁을 하고 있던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시작하자, 군국기무처를 폐지하고 박영효와 김홍집의 연립 내각을 구성했다.

일본에서 생활하고 돌아온 친일성향을 지닌 박영효(朴泳孝)에게 무게중심을 둔 일본은 자신들이 직접 개혁을 단행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그래서 2차 갑오개혁은 친일적 색채가 더욱 더 강하게 나타났고, 그들이 정치면에서 행한 개혁은 고종(高宗)을 내세워 홍범 14조를 반포하게 하는 것이었다.

또한 지방에 재판소를 설치해 행정권과 사법권을 분리시켜 지방관의 힘을 약화시키고, 교육입국조서를 반포했다.
이 교육입국조서로 근대적 학제가 등장했다.

초등, 중등, 고등교육과 같은 학제의 틀이 형성되기 시작해 선생님들을 배출하기 위한 한성사범학교, 외국어학교 등이 생겨났다.

또한 1차 갑오개혁때에 왕권 약화 작업으로 정부를 궁내부와 의정부로 분리했었는데, 박영효(朴泳孝)를 내세운 일본은 2차 갑오개혁에서 그 의정부를 내각으로 바꾸어 버렸다.

자, 갑오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명성황후는 무얼 하면서 지내고 있었을까?

민씨정권은 의정부(議政府)의 폐지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조선왕조 500여년 동안 거의 모든 정책들을 심의하고 의결했던 의정부가 폐지된다니, 집권세력으로선 어안이 벙벙한 일이었다. 특히 명성황후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이제 명성황후(明成皇后)는 일본으로부터의 탈출구를 모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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