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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전례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6. 11)

작성자베닐도|작성시간26.06.10|조회수29 목록 댓글 0

  바르나바 사도는 키프로스 출신의 헬레니즘계 유대인으로 훗날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 지도자로도 활동한 성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직후에 예루살렘 교회 신자가 되었고, 자기 재산을 팔아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내놓았으며, 바오로의 제1차 전도 여행 때는 그와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그의 본명은 ‘요셉’으로 ‘바르나바’라는 이름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붙여 준 별명인데, 이는 아람어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사도들은 그가 교우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사도 4, 36 : 사도 11, 23). 사울이 개종한 지 3년 만인 서기 35년경에 예루살렘에 왔을 때 다른 제자들은 그를 두려워하기도 했는데, 이때 바르나바는 사울을 먼저 받아들여 자초지종과 함께 그를 사도들에게 소개했으며(사도 9, 26~27), 예루살렘 사도들에 의해 파견되어 혼자 안티오키아 교회 일을 돌보던 중 타르수스에 있던 사울을 그곳으로 데려오기도 했습니다(사도 11. 25~26).

  또한, 그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모은 헌금을 사울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서 유대 지방의 굶주린 교우들에게 전달하였고(사도 11, 29~30), 서기 49년경에는 바오로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열린 사도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갈라 2, 1~10). 사도 회의에서는 세 가지를 의결하고 약속했는데, “첫째,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다. 둘째,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고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 전도한다. 셋째,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돕고자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모금하기로 약속한다”라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사도 회의 후 베드로가 안티오키아 교회를 방문하였을 때 처음엔 이방인 교우들과 같이 회식하다가 나중에는 유대인 교우들하고만 회식을 했는데, 이때 그도 베드로처럼 행동하였습니다(갈라 2, 11-14).

  서기 50~52년경에 실시한 제2차 전도 여행 때는 바오로와 의견이 갈리며 그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과 함께 키프로스로 가서 전도 활동을 하게 됩니다(사도 15, 36~39). 이처럼 1세기경의 사도 중에서 교우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고 스스로 일을 하여 생계비와 전도 비용을 마련한 사도는 바르나바와 바오로 뿐(1코린 9, 6)이었던 것입니다. 이후 그의 행적과 관련하여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에우세비오’는 그가 루카 복음서 10장에 언급된 72명의 제자 중 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그밖에 그가 언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정확한 정보는 남아있지 않으나 단지 키프로스 섬에서 순교하여 묻혔다는 주장이 5세기의 위경 《바르나바의 전도 여행과 순교》에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그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머물며 그곳에서 《바르나바 편지》를 썼다고도 하며, 서기 488년에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그와 바오로가 세운 살라미스 키프로스시에 있는 성 바르나바 수도원 근처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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