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 성심을 특별히 공경하여 주님의 무한한 사랑에 참된 사랑으로 보답하고 주님께 가해진 모욕을 보상하며 마침내 완전히 주님과 일치하도록 제정한 교회의 축일로,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후의 첫 금요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 축일은 심장으로 상징화된,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특별한 관점하에 신인이신 예수님을 공경하는 날로, 어떤 특정한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가 대상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그 분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신심 축일인 것입니다. 성심 공경은 예수님의 육체인 심장이 인간적인 사랑과 감각적이고 영성적인 사랑, 그리고 육화한 말씀의 신적인 사랑의 순수한 상징으로서 표현되며, 이 세 가지 사랑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말씀이 되신 성자 예수의 인격을 흠숭하게 됩니다.
이러한 공경의 발단은 특별히 요한복음의 내용을 근거로 내세웠던 교부들로부터 찾을 수 있는데, 이후 ‘안셀모’와 ‘베르나르도’, ‘알베르토’와 ‘보나벤투라’ 같은 교부들이 중심이 되어 예수 성심의 공경이 본격화되었습니다. 특히 13~14세기의 신비가들이 예수 성심 공경에 강한 자극을 불러일으켰는데, 대표적 인물로는 ‘마그데부르크의 마틸다’(1207~1282년?), ‘헬프타의 제르트루다’(1256~1302년) 그리고 도미니코회의 복자 ‘하인리히 주조’(1295?~1366년) 등이 있습니다. 14세기에는 예수 성심 공경이 ‘새 신심 운동’이라 불리는 신심 운동과 관련하여 퍼져 나갔으며, 16세기에는 예수회가 예수 성심 공경에 자극을 주기도 했습니다. 17세기에 이르러 프랑스의 오라토리오회 회원 ‘베륄’(1575~1629년)과 ‘에우데스’(1601~1680년)에 의해서 전성기를 맞게 되고 교회 안에 성심 축일이 자리 잡게 됩니다.
1672년 10월 20일 ‘에우데스’는 프랑스의 많은 주교들의 인준을 받아 교회에서 최초로 예수 성심 축일 미사를 봉헌하였으나 이 신심의 보급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파레이 르 모니알’의 성 마리아 방문 수녀회 수녀인 ‘마리아 알라코크’(1647~1690년)였습니다. 이 성녀는 1673년부터 1675년까지 여러 차례 예수 성심에 대한 신비 체험을 했는데, 그 환시에서 예수님께서 성녀에게 예수 성심 축일을 제정하고, 예수 성심 금요일과 성시간을 장려하라는 임무를 주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신비가들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은 거의 100년 동안 축일 제정을 미루다가 교황 ‘글레멘스 13세’(재위: 1758~1769년)가 1765년에 폴란드 주교들과 로마의 ‘성심 대 형제회’에 이 축일을 지내도록 허락하게 됩니다.
이후 1856년에 교황 ‘비오 9세’(재위: 1846~1878년)는 이 축일을 전 세계 교회로 확대하였으며, 교황 ‘레오 13세’(재위: 1878~1903년)는 1899년 이 축일의 등급을 승격시키고, 지극히 거룩한 예수 성심께 전 세계를 봉헌했습니다. 또한 교황 ‘비오 11세’(재위: 1922~1939년)는 1929년에 이 축일을 ‘팔일 축제’(1960년에 폐지됨)로 하고 새로운 전례, 새로운 시간 전례를 통해 속죄의 의미를 더 심화시켰습니다. 뒤이어 교황 ‘비오 12세’(재위: 1939~1958년)는 1956년에 발표한 ‘예수 성심 공경에 관한 회칙’ “물을 길으리라”에서 그리스도의 육체적 심장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징하는 지표이며 형상임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예수 성심 공경을 더욱 구체화하였습니다. 1969년 이후 이 축일은 ‘대축일’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당일에 행해지는 미사 경본의 축일 미사는 대부분 교황 ‘비오 11세’의 지시로 만들어진 1928년의 본문을 계승하고 있는데, 초기에 만들어진 미사 전례문들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아가’(솔로몬이 쓴 것으로 알려진 구약의 26번째 시가)의 신비주의를 우선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속죄의 사상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그 전례문은 더 이상 보속의 정신이 아니라 성부께서 인류에게 보여 주신 놀라운 사랑에 대한 감사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입당송은 시편(33, 11. 19)으로, “주님의 의지”와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주님 마음의 계획”을 노래하게 됩니다. 본 기도는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첫째 본문은 예수 성심을 거룩한 자비의 샘으로 부르면서, 우리가 이 샘에서 충만한 은총과 생명을 받게 되기를 간청하며, 둘째 본문은 예물 기도와 비슷한 내용으로 보속의 사상을 나타냅니다.
영성체 후 기도는 우리가 이웃 형제들 가운데서 주님을 알아보고 그분께 봉사하기 위한, 주님 사랑의 불을 간청하며. 감사송은 교회가 상처로 열린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나왔다는 교부 시대 이래의 전통과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온 것을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의 상징으로 보는 전통을 언급하게 됩니다. ‘가해’의 복음(마태 11, 25~30)은 고통받는 모든 자들이 주님 안에서 안식을 찾고, 그분의 마음에서 배우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초대를 전해 주며, 1 독서(신명 7, 6~11)는 하느님의 사랑이 이스라엘의 선택과 구원을 통하여 이미 드러났음을 보고하고, 이어 2 독서(1 요한 4, 7~16)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당신 외아들까지 보내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명백하게 드러내게 됩니다.
‘나해’의 복음(요한 19, 31~37)은 병사의 창에 찔려 예수님의 옆구리(심장)가 열려진 내용을 보고하게 되는데, 1 독서(호세 11, 1, 3~4, 8~9)는 야훼 하느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아버지다운 애정을 이야기하며, 2 독서(에페 3, 8~12. 14~19)는 그리스도의 가없는 부요하심과 모든 인식을 뛰어넘는 그분의 사랑을 기리게 됩니다. ‘다해’의 복음(루카 15, 3~7)과 1 독서(에페 34, 11~16)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 집으로 데려오는 착한 목자의 모습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묘사하며, 2 독서(로마 5, 5~11)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대한 하나의 찬양 노래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복음 말씀에도 불구하고 본문들은 모두 똑같은 주제를 갖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전 인격의 표현이며 동시에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셨던 최고 사랑의 표현인 우리 인간들을 위한 마음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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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1995년 ‘성목요일 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예수 성심 대축일이나 적당한 날을 선택해 사제 성화의 날로 지낼 것”을 권고하였고, 이에 따라 한국 교회는 1996년부터 예수 성심 대축일에 교구별로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오게 되었습니다. 사제 성화는 교회 안에서 새로운 세기 복음화의 우선적인 주체이자 대상이 바로 사제들이기 때문(현대의 사제 양성 82항)입니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복음화의 사명을 최우선으로 수행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사제 자신이 먼저 복음의 빛으로 쇄신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럼에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제는 피곤과 고독, 고립화 등에 직면해 있으며(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 37항), 실제로 일선 사목자들은 과중한 사목 업무와 책임, 그에 따른 영성의 빈곤 등을 사제 성화의 걸림돌로 꼽고 있습니다.
사제 성화는 ‘복음화’와 ‘교회의 성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제 성화를 위한 교회 공동체 전체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데, 사제들 역시 사제단의 친교와 일치, 협력안에서 자신의 사제직을 전 생애를 통해 완성해 가야 합니다. 이와 함께 평신도들에게도 사제 성화를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사제의 성화가 평신도들의 성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기도와 희생을 통해 사제 성화에 적극 동참해야 하며, 특히 평신도 자신이 사제들의 성화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들이 ‘예수 성심’을 본받아 ‘완전한 성덕’을 지닐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필요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데, 예수 성심이 사제 성화의 궁극적 지향점이기 때문으로, 이는 사제 성화의 날을 예수 성심 대축일에 지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제 성화의 날은, 교구 공동체 전체가 사제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해 기도와 희생을 봉헌하며, 모든 사제가 자신의 신원과 사명에 합당한 성덕의 중요성을 재발견하도록 하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이에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년) 교황은 “교회는 거룩한 사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증거하고 사람들이 이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사제를 필요로 한다”라면서 “그리스도의 본질이자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예수 성심에 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2009년 사제의 해 개막 예식 강론). 그러면서 교황은 예수 성심에 충실하며 이를 따르려 부단히 노력했던 사제가 바로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였다며 “사제들이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며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