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오늘의 전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 24)

작성자베닐도|작성시간26.06.23|조회수38 목록 댓글 0

  요한 세례자(요한네스 세례자)는 서기 1년경 유다 임금 헤로데(헤롯)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유대교 사제 ‘즈카르야’와, ‘아론’의 자손이며 성모 ‘마리아’의 친척인 성녀 ‘엘리사벳’의 아들로 예루살렘 남서쪽에 있는 ‘아인 카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는 루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아버지 ‘즈카르야’는 결혼한 지 오래되었으나 나이도 많은 데다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을 수도 없는 몸이라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즈카르야가 속한 조가 사제의 직무를 수행할 순서가 되어 제비를 뽑았는데 마침 즈카르야가 선발되었고, 그렇게 홀로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던 중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그이로부터 메시아의 선도자를 낳게 되리라는 예언을 전해 듣게 됩니다.

  하지만 엘리사벳의 임신과 자식이 생긴다는 예언에 대해 의심을 품은 즈카르야는 그 대가로 예언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 하게 되는데, 이후 예언대로 엘리사벳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되고, 그 아들의 이름을 천사의 계시대로 ‘요한’으로 지으려 하였으나, 조상의 이름 중에서 하나를 따서 이름을 짓던 당시 유대인의 관습에 맞지 않는다며 친척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결국 친척들은 아이 아버지인 즈카르야에게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지 물었고, 이에 즈카르야는 글을 쓰는 판을 가져오게 하여 아이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쓰게 됩니다. 그 순간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감격에 차 하느님을 찬미하게 됩니다.

  한편, 요한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예수님을 축복했는데, 엘리사벳이 임신 중이던 시기에 성모 마리아가 그녀의 집을 방문하자, 엘리사벳의 태 중에 있던 아기(요한)가 뛰놀았고 이에 놀란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성모 마리아에게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루카 1, 39~42). 이후 성장하여 소년기가 된 그는 일찌감치 광야로 나가 낙타 가죽옷을 입고 메뚜기와 꿀을 먹으며 고된 생활을 이어갔으며, 티베리우스 황제(재위: 서기 14~37년)의 치세 15년이던 서른쯤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들어 요르단 부근의 여러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게 됩니다. 그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 2)라고 외치며 요르단강에서 백성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는 사제의 아들로, 아버지의 직분을 이어받아 얼마든지 유대인 사회에서 특권층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 길을 마다하고 ‘광야에서 울부짖는 소리’로서 기꺼이 메시아의 등장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입니다. 얼마 후 예수님께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오셨을 때 그분이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리던 구세주이심을 단박에 알아보고는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고(마태 3, 14) ,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는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여 세례를 드렸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을 목격한 그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로 떠나신 뒤에도 요르단 계곡에 남아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와 세례를 계속하였습니다.

  한편,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는 평소 그의 언행과 군중들에 대한 예언자적 권위를 내심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헤로데’가 자신의 동생인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행위는 옳지 않다며 요한이 공개적으로 비난하자 이를 구실로 그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그러자 요한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던 ‘헤로디아’는 간계를 꾸며 헤로데의 생일잔치 때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한 딸 ‘살로메’에게 요한의 머리를 청하도록 꼬드겼고, 딸의 청을 들은 헤로데는 자신이 손님들 앞에서 한 맹세를 번복할 수 없어 결국 경비병을 감방으로 보내 그를 참수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마르코 복음서는 그의 죽음을 갈릴래아의 연회장에서 헤로디아의 계략으로 참수당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마르 6, 17~29).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그는 사해 동쪽 7km 지점의 오늘날 요르단에 속한 ‘마케루스’ 요새로 압송되어 그곳에서 처형됐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는 유다의 지도자들에게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 23)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이처럼 그는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이자 신약의 첫 예언자로서 겸손하게 선구자로서 자신의 소명을 다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를 어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로 평가하시며,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1, 11). 한편 그가 감옥에 갇혔을 때 잠시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는 그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배 속에서 태어난 한 인간으로, 끔찍한 처벌 앞에서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성 요한 세례자의 축일을 탄생과 수난 기념일로 구분하여 두 번 기념해 왔으며, 로마 보편 전례력은 6월 24일을 성 요한 세례자의 탄생 대축일로, 8월 29일을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로 각각 기록하고 있습니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24일 목록에서, 우리 주님의 선구자요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아들인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념하며, 그는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했다고 전하고 있으며, 8월 29일 목록에서는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참수된 세례자 ‘요한’의 머리가 두 번째로 발견된 오늘 장엄한 예식으로 그를 기념했고, 그 후에 그의 머리를 엄숙히 로마로 이장하여 ‘캄포 마르치오’ 인근 ‘산 실베스트로’ 성당에 안치한 후 신자들의 큰 공경을 받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2001년에 개정 발행되어 2004년에 일부 내용이 수정⦁보완된 「로마 순교록」은 6월 24일 목록에서, 이날은 주님의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그는 이미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하여 인류 구원의 도래를 기뻐했고, 그의 탄생 자체가 주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였다고 적고 있으며, 그에게서 너무나 많은 은혜가 빛났기에 주님께서는 그에 대해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8월 29일 목록에서는 ‘헤로데 안티파스’ 왕이 오늘날 요르단에 있는 ‘마케루스’ 요새에 가두었던 ‘세례자 요한’ 수난과 그의 천상 탄일을 기념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헤로디아’의 간계로 참수 명령을 받음으로써 주님의 선구자로서 타오르며 빛나는 등불처럼 살아서나 죽어서나 진리를 증언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