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맞선 ‘NO Japan’(일본여행 안 가고 일본제품 안사기) 운동이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
다.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경제계는 물론 민간단체와 일선 학교까지 일본 제품 불매와 여행 취소는 물론 일제
잔재를 지우고 전범기업과의 수의계약을 제한하자는 조례 제정까지 추진되고 있다.
특히 부산지역 3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부산항을 사랑하는 시민 모임’은 내일(8월 1일)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에서 ‘규슈·대마도 여행 안 가기 운동’과 관련, 기자회견과 캠페인을 진행한다.“후쿠오카, 벳푸 등 규슈지역과 대
마도는 관광산업이 활성화돼 있는데 대마도는 외국인 관광객의 99%가 한국인으로 인구가 3만여 명에 불과한 대
마도 경제에 한국 관광객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일본 정부에 큰 압박이 될 것”이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50㎞, 후쿠오카에서 138㎞다. 대마도는 가깝기도 하거니와 우리와의 인연도 깊고 오래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의 왕인 박사가 375년 천자문과 논어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 처음 닿은 곳이 대마도다. 이곳에 ‘백제 왕인박사 현창비가 있고 우리와 관련된 유적이 많다. 그래서 대마도가 본래 우리 땅이고
반환받아야 마땅하다는 주장도 거세다.
“對馬島本是我國之地(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이다)”라는 말은 '세종실록'의 기록에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징벌을
떠나기 전, 태종대왕이 전국에 발표한 담화문 중에 나온다. 또 세종은 '대마도는 우리나라의 말을 기르던 땅(我國
牧馬之地)'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종대왕은 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對馬島)의 왜구를 토벌하고 확실하게 한국
령으로 예속시켰다.
1750년대 제작된 ‘해동지도’에는 “以白山爲頭 大嶺爲脊 嶺南之對馬 湖南之耽羅 爲兩趾(백두산은 머리고, 대관령
은 척추며, 영남의 대마(대마도)와 호남의 탐라(제주도)를 양발로 삼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지금도 대마도
에는 백제식 산성, 경상도 송씨 이야기, 신라 충신 박제상, 외교관 이예, 이종무 장군, 최익현 선생, 덕혜옹주 등
수많은 우리 조상들의 유적과 얼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서양 열강 제국주의 약탈시기인 1871년 일방적으로 이스하라현으로 그후 1876년에는 나가시키현
에 슬그머니 편입시켜 버렸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하고, 불과 사흘 후에 대마도는 우리 땅이므로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고 천명했다.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으로 점령한 영토는 모두 반환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무조건 돌려줘야 한다"고 일본에 반환 요구를 했다. 6·25 직전(3년 동안)까지 60여 차례나 줄기차게 요구
했다. 그러나 1951년 7월 9일 미국은 "대마도는 일본이 오랫동안 통제하고 있고 이번 평화조약은 대마도의 현재
지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며 한국의 요구를 거부했고, 이후 한국 정부도 더 이상 대마도 반환 이야기를 꺼내
지않았다.
* 대마도는 우리띵 이라는 관련 글을 게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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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한기자
- 등록일 2016.08.18 02:01
역사소설가 신용우 씨, `대마도의 영토권` 펴내
박사학위 논문 재구성
【울릉】 그동안 소설을 통해 대마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주장해오던 역사소설가인 신용우 작가가 `대마도의 영토권-영토문화론에 의한 영토권Ⅰ`(사진·글로벌콘텐츠· 정가 1만5천원)을 펴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로 대마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천명하는 `문화영토론에 의한 대마도의 영토권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작가가 자신의 주장을 학문화시킨 것을 읽기 쉽고 재미있게 재구성한 인문교양서다. 책은 대마도가 지난 1869년 일본의 판적봉환 당시 일본에 귀속됐다고하지만, 조선의 일개 관리에 지나지 않는 대마도주의 매국적인 행위일 뿐 국가 대 국가의 조약이 아니므로 원천적인 무효임을 기술하고 있다. 또 일본이 대마도에 관한 역사자료 10만여점을 분서한 사실을 폭로, 대마도에 관한 영토권은 일본에 의해 왜곡된 역사로만 평가할 수 없는 문제로, 대마도에 살아 숨쉬는 영토문화에 의해 규명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대마도의 대표적인 영토문화인 매장문화, 지명문화, 지적문화, 지도와 종교 및 기타 잔존하는 문화들에 대한 실태도 분석, 그에 대한 특성에 따라 한·일 양국의 주장에 대한 모순성과 당위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대마도의 영토문화에 대한 문화주권은 대한민국에 귀속되며, 영토문화의 문화주권자가 영토권자가 된다는 영토문화론에 따라 대마도의 영토권자가 대한민국이라는 것도 규명하고 있다.
작가는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가 우리의 대마도 반환요구에 선대응하는 것임을 강조, 대마도는 반드시 수복해야 할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은 대마도의 영토문화에 대해 학술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그에 대한 실체와 특성을 분석해 영토권자를 규명하는 과정에 소설가인 작가의 특유한 필법이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 작 가 신용우
1957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했다.
제21회 외대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장편소설 ≪천추태후≫, ≪명성황후는 시해 당하지 않았다≫, ≪혁명, 율도국-광해와 허균, 홍길동과 대마도-≫, 대마도의 눈물, ≪환단고기를 찾아서 1: 고조선과 대마도의 진실≫, ≪환단고기를 찾아서 2: 일본왕실의 만행과 음모≫, ≪환단고기를 찾아서 3: 중국이 날조한 동북공정을 깨라≫, ≪요동묵시록≫(상, 하), ≪요동별곡≫, ≪도라산 역≫(1, 2) 등을 출간했다. 그중 ≪요동별곡≫은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었다.
영토문화를 기반으로 한 영토문화론에 의해 문화에 의한 영토권을 규명함으로써 잃어버린 북방영토와 대마도를 수복해야 한다는 것과 역사바로세우기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그것은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영토문제로 인해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국제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울러 역사를 연구하고 배우는 목적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서 올바른 역사를 거울삼아 인류의 평화로운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방송, 기업, 관공서, 연수원, 학생 등 각종 매체와 단체 등에서 우리나라 역사와 영토론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신문과 잡지 등에 칼럼을 쓰고 있다.
지적학 전공 행정학박사이며 학위논문 제목은 <문화영토론에 의한 대마도의 영토권 연구>로 대한민국 최초로 대마도가 우리 영토임을 천명한 박사학위논문이다. 이 논문은 ≪대마도의 영토권≫이라는 학술서로 재편집하여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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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와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근거
현재 일본의 대마도는 우리대한민국의 영토다!
이형표 박사(철학) | 기사입력 2019/03/28 [11:14]
대마도가 한국 영토이며 한국이 반환 받는데 국제법상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일본인 구기라는 사람이 제작한 조선팔도 총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그려져 있고 대마도(대마도(對馬島-부속섬 포함 708제곱킬로미터))가 경상도에 속한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1830년 일본에서 만든 조선 국도에도 울릉도,독도,대마도가 조선 영토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스페인, 영국 등 서구 근대 세력들의 해양 영토 약탈시기인 임진년과 식민지 시기에 연이어 한국의 불행한 소용돌이를 이용해서 대마도를 슬그머니 도둑질한 후 1871년에 일방적으로 이스하라현으로 그 후 1876년에는 나가사키현에 편입후 아예 자기들 영토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신라 때 이사부장군이 점령하여 접수했고 일본 메이지(明治)때 태정관지령 (太政官指令)에서도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님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일본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왜 이렇듯 독도 시비를 멈추지 않고 있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대마도가 한국영토로 거론이 불거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도의 작전인 것입니다. 대마도가 한국영토라는 사실이 거론되는 것이 두려운 일본은 이것을 막기 위해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죠. 對馬島本是我國之地(대마도는 본시 우리땅이다) 라고 세종대왕이 선언한 것을 실록에서 기록하고 있는 글귀이며 대마도란 지명은 마한(馬韓)과 마주 보는 땅이라 하여 우리 선조는 대마도라 명명하였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조선 조정(한국)은 어떤 형태로든 일본에 대마도를 넘겨준 일이 없습니다. 도둑질한 대마도를 두고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한국인 뿐만 아니라 그들 후손이나 자신에게도 세뇌(洗腦)를 당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세뇌 작전과 특히 조작된 일제 식민사관에 젖어 지금까지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여기고 살았던 것입니다. 미치고 팔딱 뛰고 통탄할 일이 아닙니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불과 사흘후 8월 18일, 역사의 진실은 어쩔 수 없다. 대마도는 우리 땅이므로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고 천명 했습니다. 6.25직전까지 3년여 동안 60여 차례나 (54회) 요구 했으나 일본은 역사학회, 고고학회 등으로 하여금 대마도에 관하여 왜곡된 논문들을 발표케 하면서 변명을 했습니다. 쓰시마의 역사적 위치(1949) 대마문제(1951) 논문 등이 그 예입니다.
1950년 6,25가 발발하고 미,소가 대립하자, 일본은 이때다하고 미국에 읍소 하고 로비를 했고, 1951년, 미국은 한국을 배제한 채 일본과 같이 전후 (戰後)처리 협정인 샌프란시스코 협정을 이렇게 체결해 버렸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도서는 한국에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합니다. 이 샌프란시스코협정에서 미국은 독도와 대마도에 대해 영토 속국을 명백히 하지 않고 빼버린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에 불복하고 우선 평화선 선포를 통해 우선 독도 라도 어족(魚族)보호 명분을 들어 독도를 실효 지배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지난 2005년에 확인된 미국 국무부 외교문서에 따르면 1951년 4월 27일 한국 이승만 대통령은 대마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에 소재하는 조말생의 묘지. 한강 좌쪽은 덕소. 세종대왕 때, 조말생 병조판서가 대마도를 징벌, 우리나라 땅으로 관리했다. © |
한국은 일본이 대마도에 대한 모든 권리, 호치, 청구를 분명히 포기하고 그것을 한국에 돌려줄 것을 요청한다. (In view of this fact the Republic of Korea request that Japan specifically renounce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the Island of Tsushima and return it to the Republic of Korea) 여기에서 specifically renounce 구절을 주시해야 합니다. 이는 외교문서로서는 최고로 강력한 의사표시였습니다. 대마도 반환 문제는 남북통일과 마찬가지로 우리 8,000만 민족의 숙원입니다. 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회복하는 문제에 있어 국제관례의 관점에서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1862년에 미국의 영토가 된 일본 남부 오가사와라 (小笠原) 군도를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일본 영토로서 인정받고 반환 받았던 이러한 국제적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마도 반환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때 일본이 내놓은 지도 삼국 접양 지도 하야시 시헤이 (林子平)제작, 프랑스어 판이 그 근거입니다. 미국이 오가사와라 군도가 일본 영토임이 맞다고 판단하게 한 그 지도에 오가사와라가 일본 영토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영토인 일본 남부 오가사와라 군도가 이 지도에 일본 영토라고 표기되어 있었기에 미국은 아무소리 못하고 미국 영토를 일본에 반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도에 독도와 대마도가 분명히 한국 영토로 표기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까? 최근에 이에 준하는 증거가 또 하나 발굴 되었습니다. 지리학자로 영국에서 활동하였던 이태리인 J.H.Kernot 씨가 1790년에 작성한 일본과 한국이라는 지도에서 울릉도와 독도뿐만 아니고 대마도 도 한국 영토로 그려져 있는 사실이 발굴(견)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지도에는 대마도가 STRAIT OF COREA 로 표시되어 있고 특히 독도와 울릉도 대마도의 관할 국가를 표시하는 지도 바탕 색깔을 한국 본토와 같은 황색으로 나타내 있으므로 이들 섬이 한국령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이종무 장군으로 하여금 대마도에서 해적질하며 살고있는 왜구를 토벌하고 확실하게 한국령 경상도에 예속 시켰습니다. 以白山爲頭 大嶺爲脊 嶺南之對馬 湖南之耽羅 爲兩趾 (백두산은 머리고 대관령은 척추며/ 영남의 대마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
이 글귀는 1750년대 제작된 해동지도에 있는 글귀 입니다. 이렇게 대마도는 우리의 땅이고 우리 민족의 한쪽 다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그 대마도를 자기들 멋대로 자기영토로 편입시켜 버렸습니다. 우리는 일본이 잘라간 그 한쪽발 (嶺南之趾)을 되찾아야 합니다. 일본은 이러한 일련의 사실이 부각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독도 시비를 계속하며 분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마도는 명백한 한국영토입니다. 부산에서 대마도 까지는 49km이고 일본에서 대마도가 가까운 후쿠오카에서는 139km입니다. 이 대마도에는 고대로부터 백제인들도 신라인들도 고려인들도 조선인들도 한국인들이 건너가 살았습니다. 일본의 속셈이 가증스럽지 않습니까? 대마도는 본시 ‘우리땅이다’라고 세종대왕이 선언한 이 확실한 증거를 두고도 우리는 독도 시비에 말려 들고 대마도를 일본 땅으로 여기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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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진리 ・ 2018. 4. 19. 0:38
일본 후쿠오카 까지는 138Km이지만 부산까지는 49.5Km의 거리에 있어 맑은 날은 쓰시마의 서해안에서 한국의 산과 거리를 볼 수 있다.
대마도 우리 땅. 독도가지고 버티는 것은 대마도를 빼앗길가 봐 전전긍긍하는 일본의 수작.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 지 사흘 뒤인 8월 18일 성명에서 '대마도는 우리 땅'이니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고 했다. 일본이 항의하자 이승만은 외무부를 시켜 그해 9월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1948년 8월 18일 대한민국 건국 사흘 만에 이승만 대통령은 대마도 반환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이승만의 연두 기자회견 직후인 1949년 1월 18일 제헌의원 31명이 '대마도 반환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얼마 후 있게 될 샌프란시스코 미일 강화회의에서 대마도 반환을 관철시킬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무식한 미국 실무자들 때문에 대마도가 일본 지배로 들어갔다. 이래저래 한국은 미국 때문에 피해가 많다.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했다. 친일파 정군들이 일본에게 침묵한 결과가 대마도를 내 준 것이다.
대마도(對馬島)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친 우리 땅이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그 땅을 무력 강점했지만 결사 항전한 (대마도) 의병들이 이를 격퇴했고 의병 전적비(戰蹟碑)가 대마도 도처에 있다.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삼킨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줘야 한다.
대마도, 독도 모두 우리 영토로 기술된 국제법상 공인지도인 <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판.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가 1832년 제작한 지도를 Klaproth가 번역 제작한 것
지도 한가운데 한일 사이에 노랗게 떠 있는 섬이 대마도인데, 조선땅으로 표기돼 있다.
대마도를 한국령으로 표기한 1734년 프랑스제작 지도
왜구의 침략이 계속되자 세종 원년(1419년) 상왕 태종은 대마도 정벌을 결심한다. 그때 밝힌 교유문의 서두다.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대마도는 섬으로 본래 우리나라의 땅이다.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들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부터 뛰놀기 시작했다.
미국의 한 고미술·지도 전시회에서 1864년 발행된 아시아 지도를 사게 됐다.
지도 하단에 '미국 페리 함대의 일본 현지 정찰과 측량으로 작성했다. 일본과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미 의회의 지시로 미국 정부에서 제작했다'고 나온다.
이 지도에는 대한해협이 현재의 위치가 아닌 대마도 남단에 있었다. 일본 영토에는 채색이 되어있었지만 대마도는 우리 땅과 똑같이 무색이었다. 그게 첫 단서였다."
―당시 미국으로서는 동양의 어느 나라에 어떤 섬이 소속됐는지 몰랐을 수도 있지 않은가?
"페리 함대는 앞서 말한 '오가사와라'를 놓고 일본과 영토 분쟁을 했던 당사자다. 그때 일본이 하야시의 프랑스어판 지도를 제시해 협상에서 이겼다. 이를 근거로 미국 정부에서 제작한 지도였다. 그러니 대마도가 어느 영토에 속하는 지를 알았을 것이다."
―지도 하나로 너무 많은 것을 유추하고 있지 않나?
"1855년 영국에서 제작된 지도에는 일본 각 지방을 구역별로 번호를 매겨놓았다. 그 지도의 하단에 '대마도와 이끼섬은 일본 왕국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나온다. 1945년 국내에서 발행된 '조선해방기념판 최신 조선전도'에도 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표기해놓았다."
―하지만 2차대전 패전국 일본과 미국 등 전승국 간에 전후 처리를 위해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샌프란시스코 조약(1951년)을 체결했다. 이 문안에 '독도'와 '대마도'는 명시되지 않았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도 날아갔던 셈이다.
"우리는 '전승국' 신분이 아니어서 협상에 참여할 수 없었다. 또 6·25전쟁 중이었다. 외교적 제약이 많았다. 이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독도를 포함하는 '평화선'을 설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마도를 염두에 두고서 '이 경계선은 장래에 규명될 새로운 발견·연구 또는 권익의 출현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신정세에 맞추어 수정할 수 있음을 선언한다'고 했다."
우리는 조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영토의 상당 부분을 200년도 안되는 사이에 빼았겼다.
일본 에도시대 대학자 하야시 시헤이(1738~93)이 1785년에 지은 삼국통람도설은 조선, 오키나와, 북해도 3국에 대한 정치지리서이다. 이 책에 수록된 지도중 주목할 부분은, 삼국접양지도와 조선팔도지도이다.
김일성 때문에 찾지 못한 대마도. 멍청한 김일성.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8월 15일) 사흘 뒤 첫 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다.
이듬해 연두 회견과 연말 회견에서도 "대마도는 우리의 실지(失地)를 회복하는 것이다. 일본인이 아무리 주장해도 역사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압박에 일본 총리가 일왕(日王)에게 '한국인이 실제 2000명쯤 거주하고 있다'는 대마도 상황까지 보고했다. 하지만 여섯 달 뒤 6·25가 발발했다.
일단 이번에 발견된 고지도부터 살펴보자. 2018년 8월 24일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한일관계사 전문가인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부산외대 명예교수)은 2월11일 일본의 지도 학자 구보이 노리오 교수를 통해 고지도를 입수했다.
이 지도는 영국에서 활동하던 이태리인 지리학자 J.H.Kernot이 1790년 탐험에 나서면서 작성했다. 지도의 크기는 가로 32, 세로 24센치로 소형 판본이며, 채식인쇄 기법을 사용했다. 지도 상단 중앙에 일본 수도 YEDO, 좌측 하단에 조선의 관리로 보이는 3명이 COREANS, 우측 하단에 거북선으로 보이는 STATE BARGE 라고 적힌 3장 삽화를 첨삭한 것이 특징이다.
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 뿐만 아니라 대마도가 한국 영토로 그려져 있다. 위 지도의 빨간색 원안에 표시된 곳이 대마도인데, 한국 해협 안에 포함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독도와 울릉도, 대마도는 관할 국가를 표시하는 색깔로 분류했는데, 모두 한국 본토와 같은 황색이었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이 이 지도에는 독도를 일본식 발음인 ‘Dagelet(다제레트)’, 울릉도는 ‘Argonaut(아르고노우트)’로 표기했다는 것이다.
즉 J.H.Kernot가 이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참고한 것이 일본 자료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소장은 “당시 일본인들도 대마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하고 있었던 사실을 반증하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대마도를 한국 영토로 표기한 지도는 적잖이 발견됐다. 대마도는 일본 고지도나 고문서에 우리말과 한글을 사용했던 것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에 발견된 지도는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에 의미가 있다. 또 세계인들도 오래전부터 대마도는 한국 땅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대마도 고지도에 숨겨진 비밀, 그것은 바로 ‘대마도는 반드시 찾아와야 할 대한민국 영토’라는 것이다.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의 정치가.)이 조선침략에 대비하여 무장에게 명령해서 만든 지도인 '팔도전도' 에는 독도와 대마도를 조선의 땅으로 표기하여 '일본 영토' 가 아닌 '침략 대상' 으로 명시하고 있다.
현재 일본 나가사키 현에 소속된 대마도(일본명 쓰시마). 그런데 대마도가 우리나라의 땅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내용의, 일본인이 작성한 고지도가 21년 전인 1996년 발견됐습니다.
이 지도는 임진왜란이 나던 1592년 우리나라를 침략한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이 신하들에게 명령해 만든 것으로 독도와 함께 대마도가 우리 영토로 명기돼 있습니다.
신라 때부터 우리 영토였던 것으로 알려진 대마도. 하지만 언제 어떻게 일본에 편입됐는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인데요. 독도와 관련해 계속되는 일본의 망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가려진 역사를 밝히는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지적대로 1870년대 완전히 일본화됐다. 지금 대마도는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그 근거는 우리가 독도를 실효 지배하는 것보다 훨씬 근거가 약하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에 비하면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고 근거도 있다. 무엇이 두려운지, 한국 사람들을 경계한다. 양심이 두려운거지,
대마도가 옛날 우리 고려의 땅 이었다는 사실은 우리 문헌뿐 아니라 일본의 문헌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일본 불교의 천태종 승려 현진(懸眞, 겡싱)의 저서 《사가묘략기》에 ‘대마도는 고려의 목(牧)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세종 원년(1419년) 대마도를 정벌할 때 병조판서 조 말생이 ‘대마도는 본래 경상도 계림(현 경주)에 예속되었으며 우리 땅이라는 문적(기록)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대마도는 고려에서 만호(萬戶)라는 지방관을 파견, 다스렸다는 기록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사부 영정
일본은 독도문제를 거론할 때 ‘대동여지도’를 들먹이지 않는다. 왜냐면 독도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다가는 도리어 대마도가 한국 땅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우산국(우산도와 울릉도)은 신라 장군 이사부가 계획을 세워 편입한 영토이다. 기록에 의하면 원주민은 여진족이며 우해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나무 상자를 싣고 가 위협으로 굴복시켜 편입시키고 동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일대 사건이었다.
말하자면 주인이 나타나면 돌려주어야 할 땅이다. 실효적 지배보다는 역사적인 지배 상태다. 이에 비해 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이지만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태다. 당연히 돌려받아야 한다.
부산에서 49.5㎞, 히타카쓰항까지 배 타는 시간은 1시간10분이다. 남북으로 비스듬히 누운, 길이 약 82㎞, 폭 약 18㎞에 면적은 거
제도 1.7배 크기인 섬이다.

제주보다 가까운 섬 대마도
1) 통일신라 때부터 고려와 조선말까지 대마도는 한국의 경상도 계림(신라)의 부속 도서로서 경상도 관찰사의 관할이었다.
2) 대마도 원주민들의 혈액 DNA가 한국인과는 100% 동일하여도 일본인들과는 30%가 같지 않다.
3) 대마도를 지배 했던 소씨(蘇)는 진주가 본관인 한국 성씨이다.
4) 삼국시대에는 진도라는 우리의 영토로 불리었다.
5) 신라 때 볼모로 잡혀갔던 신라의 왕자를 구출하고 자신은 일본에서 처형된 신라 국사 박제상 공의 순국비가 있다.
6) 고려 창왕(1389년) 때 박위 장군의 지휘로 왜구의 소굴로 변한 대마도를 완전히 소탕하고 대마도의 관사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고려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7) 그 후 조선 태조(1396년) 2차 정벌, 세종(1419년) 이종무 장군의 3차 정벌 후 대마도 도주가 신하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서약서도 있다.
8) 풍신수길이 조선 침략에 대비해 만든 지도(팔도전도, 1592년이전)에도 대마도가 조선 땅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9) 태종이 세종 때 대마도 정벌에 나선 군사들에게 내린 하교문, 성종 때의 청백리 황희 정승과 조선과 대마도를 부자관계로 비유한 퇴계 이황 선생, 순암 안정복 선생의 동사외전, 동사강목, 정약용의 비어고에도 한국 땅으로 기록되어 있다.
10) 조선 왕조 500년간 대마도주는 대대로 조선의 관직을 받았다.
11) 1750년 영조 때 해동지도의 대동총도의 설명문, “백두산이 머리가 되고 태백산맥이 척추가 되며 영남의 대마도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는 문구나 1830년 일본에서 만든 조선국도에도 울릉도, 독도, 대마도가 조선 영토로 표기되어 있고 1855년 영국지도, 1865년 미국 지도 등 국내의 많은 역사 기록문에 명백히 표기되어 있다.
1948년 8월 18일 대한민국 건국 사흘 만에 이승만 대통령은 대마도 반환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은 대마도를 한국에 즉각 반환하라! 대마도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를 섬긴 우리 땅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무력 강점했지만 의병들이 격퇴한 전적비가 남아 있다. 구한말에 대마도를 강점한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했다. 지체 없이 한국에 돌려줄 것을 촉구한다.” 이는 대통령으로서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한 것이다.
우리는 조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영토의 상당 부분을 200년도 안되는 사이에 빼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