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계몽기설
최원식은 1905년에서 1910년 사이를 애국계몽기로 보고 이 시기를 근대문학의 기점으로 보았다. 반식민지로 전락한 1905년에서 국치의 1910년을 고비로 이전과 이후 시기가 날카로운 단층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때의 문학은 모든 장르에 걸쳐서, 의병전쟁이든 애국계몽운동이든 심지어 친일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노선에 가로질러서 애국계몽에 집중되고 있었기 때문에 임화나 조연현처럼 개화기문학으로 명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문학이 반청친일과 친청반일의 이항대립을 넘어서 한국사의 진로를 하나의 주체적 실존으로 감지했다는 것이다. 국민국가 또는 민족국가의 건설 속에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진정한 근대의식의 단초가 마련된 것은 애국계몽기문학에 와서야 비로소 가능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1894년부터 1905년까지는 갑오경장의 획기성을 평가한다 해도 그에 걸맞은 문학적 업적을 찾기 어렵고, 1894년에 주어진 계기를 성공적인 근대 진입의 축으로 만드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를 바탕으로 애국계몽기와 그 문학의 근대성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기존의 1894년 갑오경장 기점론은 근대문학 형성을 위한 외재적 계기라는 성격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1866년설
북한의 ⌜해방 전 조선 문학⌟에는 1876년 강화조약부터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난 19세기말을 근대문학기점으로 보았다. 이때부터 계몽적인 문학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나 근대문학의 기점을 역사학계의 근대와는 달리 문학 내적인 변화에 중심을 두었다. 그러나⌜조선문학사⌟ 1~5에는 근대문학의 기점을 1866으로 설정하였다. 여기에는 북한 사학계의 근대사 시기구분 논쟁의 결과가 반영되었다. 1차 논쟁에서 근대를 1866년에서 1945년까지로 규정하였는데, 다시 주체사상이 유일사상 체계로 확립되는 과정 속에서 근대사의 시·종점도 1860년대 반침략투쟁의 시작으로부터 1926년 김일성에 의해 새로운 성격의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기로 결정되었다. 근대의 기점은 동일하지만 종점은 1945년에서 1925년으로 앞당겨진 것이다. ⌜조선문학사⌟ 제2권이 19세기말~1925년을 구획하여 근대문학으로, 제3권이 1926년에서 1945년으로 구획하여 현대문학으로 기술하고 있어 북한 사학계의 통설을 충실히 적용하고 있다.
1866년은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병인양요가 잇따라 일어나고 조선왕조에 제국주의의 포화가 집중되기 시작하는 해이다. 두 사건에서 침략자들을 격퇴한 조선의 투쟁을 높이 평가하여 근대의 기점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제시하는 근대사의 기점은 근대국가 형성과 일치하기 어렵다. 반침략투쟁이 근대국가 형성을 유도한 것이라기보다는 왕조를 보위하고 민족국가 보존을 위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또 근대문학의 기점도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근대문학의 기점을 삼으려면 작가의 근대의식과 작품과의 관련이 일정하게 성립되어야 하는데 북한에서 내세우는 근대문학은 문학사의 실상에 따라 설정되기보다는 주체사상의 획기적인 강조라는 정치적 요구에 의해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즉 근대문학의 기점이 주체사상의 요구에 의해 반 중세보다는 반침략이 더욱 부각된 것이다.
출처 : 한국근대문학사 기술방법비교연구 /이혜우/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