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설야 - 「과도기」 (1929)|
(중략) 창선이는 한심스러운 생각이 더쳐 왔다. 제 고장이라고 그리워하였고 제 친족이라고 찾아는 왔으나 생각던 바와는 아주 천양지판이다. 조선 가면 아무 일이라도 해먹으려니 했으나 막상 와보니 그 '아무 일'이란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일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고 힘을 쓸래도 쓸 곳이 없고 고기도 잡아먹을 수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다. 대대로 전하여 오던 손익은 일 맛들인 일은 이리하여 얻어 만날 수 없고 눈이 멀개서 산 송장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든 옛 일이나 그네가 같이 밀려간 자리에는 낯선 새노릅(고장 기계)이 주인같이 타리개를 틀었다. 검은 굴뚝이 새 소리를 외치고 눈 서투른 무서운 공장이 새 일꾼을 찾으나 그것은 너무도 자기 몸과 거리가 먼 것 같았다. 그만치 할 일이 있고 할 뜻이 있는 옛 일에 대한 애착이 아직까지 뿌리 깊이 가슴을 부여잡고 있다. 그런데 그 일은 어디 가고 꿈도 안 꾸던 뚱딴지 같은 일터가 제맘대로 벌어져 있다. 게트림을 하면서 턱으로 사람을 부른다. 없는 사람을――그러나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천하없어도 후려 넣는 절대명령이요 울며불며라도 가잖을 수 없는 그곳이언만――이리하여 망설이는 과도기의 공포와 설움이 그의 가슴을 쑤시었다. (후략)
작품해설
1929년 4월 『조선지광』에 발표된 한설야의 단편소설.
한국문학사에서 1920년대 신경향파문학을 한 단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조선에서의 궁핍한 생활을 청산하고 만주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의 생활 역시 더욱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형제와 친지들이 사는 고향으로 다시 귀향한다는 간단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첫째 당시 최서해로 대표되는 신경향파소설이 주로 전망이 없는 폐쇄된 만주체험만을 다루고 있다면, 이 작품은 그 생활을 포기하고 귀향을 감행한다는 점, 둘째 귀향한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노동자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미 조선의 농촌사회가 붕괴되어 가는 한편 노동자계층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소설사에서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당대 소설사의 두 흐름을 이 작품이 통합했다는 데 있다.
당대 신경향파 소설은 최서해적 경향과 박영희적 경향으로 분화되어 있었다. 전자가 주로 사실이나 체험에 근거를 둔 창작경향이라면 후자는 주로 지식인 작가의 관념의 표출을 창작의 주요 방법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는 주인공들이 극도의 궁핍 속에 놓여 있어서 미래에의 가능성에 대한 사려 깊은 고려가 없는 상태였고, 후자의 경우는 관념에만 의존하여 근거없는 낙관주의만을 강조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 두 한계를 일정한 수준에서 모두 극복하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데 이 작품의 의의가 있다.
이 작품을 계기로 하여 작가 한설야는 노동자들이 밝은 미래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을 자신의 소설 세계에 끌어들인 「씨름」(1929), 「황혼」(1936) 등을 발표하고, 마침내 「설봉산」을 통해 그 성취를 보게 된다.
작품해설 출처 :
네이버 용어사전 . http://terms.naver.com/item.nhn?dirId=1604&docId=2676
한설야 - 「씨름」 (1929)|
(중략) 그 뿐이 아니다. - 회로서 노동자를 모조리 끌어 넣어 가지고 그리를 거쳐서만 일자리를 붙게 하자는 것이며 그리해야 삵전이고 시간이고 드나가는 것이고 모두 조절하는 세력을 짓자는 이것이 회에 들지 않고는 앞으로 벌이가 맘대로 안되리라는 것과 벌이한대도 맨 헐값으로 헐궂게 지내지 않으면 안되리라는 것을 들으매 화춘이도 심사가 편할 수는 없었다. 차차 되어가는 품을 보아도 그럼 소문이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또 그 회는 다만 혼자가 아니라 여러 곳 위의 단체는 물론 다른 여러 단체며 신문지국 같은 것과도 서로 기맥을 통하여 두루두루 버틸 배경이 풍부한 것을 들으매 제가 설 곳이 점점 쪼그라드는 것 같았고 제게 생길 부분이 시시로 말라가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술을 양껏 먹고 주정질을 해보아도 그렇다고 시원한 금세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노동회에 가까워 볼 생각이 가끔 나지 않는 것이 아니나 일곱 살부터 심십의 고개가 넘도록 대판 신포 등 노동판에서 불리운 강직한 마음은 훌훌히 남에게 머리를 숙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더욱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한 것은 전과 같이 그 부하를 비교적 쉽게 삯이 많은 일터에 척척 붙여줄 수도 없고 그만치 부하의 믿음과 바람도 엷어져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제일 괴로웠다. 발 붙이는 곳이 무너질 것 같았고 올라선 배의 밑에 물이 괴는 것 같았다. 이십 년 동안 쌓이고 쌓인 죽음도 끔찍치 않다는 굳은 노동자의 배짱도 이 불안의 칼날에는 한 점씩 도려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만치 그 반면에서 회의 명령에 오지오지 신종하는 패들을 볼 때에 자기도 그런 회의 간부가 되어보았으면 하는 욕심이 났다. 우습게 생각던 회가 이렇게 자기를 누르고 자기의 마음을 끌어당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던 그는 홧김에 술이 얼근해가지고 씨름판에 뛰어들었다가 명호의 쇠 같은 몸이 비호같이 날솟는 것을 보고는 배 밑에서부터 감격이 끓어올랐던 것이다. 웅변보다는 글보다도 미인보다는 재간보다도 노동자의 마음을 끓게 하는 데에도 힘이 으뜸이었다. 백마디 말보다도 씨름 한 판이 대번에 화춘의 마음을 끓게 하였던 것이다. 백장군이 꽝 하고 나자빠지자 화춘은 부지중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그날 밤 그들은 간담을 헤치고 새로운 출발 - 동행의 길을 찾아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게 한 원인은 물론 씨름에만 있지 않았지만 그들의 숨은 감정의 두께를 열어재킨 것은 씨름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버티어서 안될 한 개의 이단적 세력은 바른 줄기를 찾아 합류하게 되었다.
김광균 - 「와사등」 (1939)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델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냐.
긴-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크러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여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느린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김광균 - 「외인촌」 (1939)
하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馬車)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룻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電信柱) 우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의 벤치 우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외인 묘지(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란 별빛이 내리고,
공백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村落)의 시계(時計)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우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우에선
분수(噴水)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 소리.
김광균 - 「설야」 (1939)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밑에 호롱불 야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벋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追憶)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작품 해설
「외인촌」, 「와사등」, 「설야」 는 주지주의적 서정시의 흐름을 형성한 작품으로 김광균의 초기 모더니즘적 특징을 뚜렷이 보여준다. 「외인촌」 은 현란한 색채어와 공감각 이미지로 채색되어 시인의 고독한 시선을 느끼게 해주며, 「와사등」 은 현대 물질문명의 현란한 무질서에 대한 고민을 그린 것으로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한국 지성인의 정치적 방황을 느끼게 한다. 「설야」 는 비유나 이미지보다 서정적 분위기를 느끼게 하며 그 서정성은 현대성과 조화를 이루어 주지적 서정시의 흐름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작품 해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716745
김동리 - 「무녀도」 (1936)
(중략) 모화는 소복 단장에 쾌자까지 두르고 온갖 몸짓, 갖은 교태를 다 부려가며 손을 비비다, 절을 하다, 덩싯거리며 춤을 추다 하고 있다. 부뚜막 위에는 깨끗한 접시불(들기름불)이 켜져 있고, 그 아래 차려진 소반 위에는 냉수 한 그릇과 흰 소금 한 접시가 놓여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지금 막 그 마지막 불꽃이 나불거리고 난 새빨간 불에서 파란 연기 한 오리가 오르는 〈신약전서〉의 두꺼운 표지는 한머리 이미 파리한 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모화는 무엇에 도전이나 하는 것처럼 입가에 야릇한 냉소까지 띠며, 소반에 얹힌 접시의 소금을 집어 인제 연기마저 사라진 새까만 재 위에 뿌렸다.
“서역, 십만 리 예수 귀신이 돌아간다.
당산에 가 노자 얻고, 관묘에 가 신발 신고,
두 귀에 방울 달고 방울 소리 발 맞추어
재 넘고 개 건너 잘도 간다.
인제 가면 언제 볼꼬, 발이 아파 못 오겠다.
춘삼월에 다시 오랴, 배가 고파 못 오겠다······.”
모화의 음성은 마주(魔酒) 같은 향기를 풍기며 온 피부에 스며들었다. 그 보석 같은 두 눈의 교태와 쾌잣자락과 함께 나부끼는 손짓은 이제 차마 더 엿볼 수 없게 욱이의 심장을 쥐어짜는 것이었다. 욱이는 가위눌린 사람처럼 간신히 긴 숨을 내쉬며 뛰어 일어났다.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방문을 뛰어나온 그는, 부엌문을 박차고 들어가 소반 위에 차려놓은 냉수 그릇을 집어들려 하였다. 그러나 그가 냉수 그릇을 집어들기 전에 모화의 손에는 식칼이 번득이고 있었고, 모화는 욱이와 물그릇 사이에 식칼을 두르며 조용히 춤을 추는 것이었다.
“엇쇠, 귀신아, 물러서라.
너 이제 보아하니 서역 십만 리 굶주리던 잡귀신하,
여기는 영주 비루봉 상상봉헤
깎아질린 돌벼랑헤, 쉰 길 청수헤, 엄나무 발에
너희 올 곳이 아니다.
바른손헤 칼을 들고 왼손헤 불을 들고
엇쇠, 서역 잡귀신하, 썩 물러가라.”
이때, 모화는 분명히 식칼로 욱이의 면상을 겨누어 치려 하였다. 순간, 욱이는 모화의 칼날을 왼쪽 귓전에 느끼며 그의 겨드랑이 밑을 돌아 소반 위에 차려 놓은 냉수 그릇을 들어 모화의 낯에다 그릇째 끼얹었다. 이 서슬에 접시의 불이 기울어져 봉창에 불이 붙었다. 욱이는 봉창에서 방 안으로 붙어 들어가는 불길을 잡으려고 부뚜막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물그릇을 뒤집어쓰고 분노에 타는 모화는 욱이의 뒤를 쫓아 칼을 두르며 부뚜막으로 뛰어올랐다. 봉창에서 방 안으로 붙어 들어가는 불길을 덮쳐 끄는 순간 뒷등어리가 찌르르 하여 휙 몸을 돌이키려 할 때 이미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몸은 허옇게 이를 악물고 웃음 웃는 모화의 품속에 안겨져 있었다. (후략)
작품 해설
1936년 5월 『중앙』에 발표된 김동리의 단편소설.
발표 후 여러 차례 개작된 바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개작은, 1947년에 작가가 바로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하여 을유문화사에서 창작집을 발간할 때 행한 것이다. 이 개작에서 그는 여주인공 모화의 아들을 기독교도로 설정하고 그가 어머니의 무속 신앙과 맞서다가 죽게 함으로써, 개작본이 최초의 판본보다 훨씬 강렬한 긴장미와 깊은 비극성을 갖도록 만든 것이다. 오늘날 「무녀도」를 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작된 텍스트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최초의 「무녀도」를 무시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중요한 문학사적 의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개작된 「무녀도」를 보면, 모화라는 무당과 기독교도인 아들 욱이의 대립이 작품 전개의 축을 이룬다. 모화와 욱이는 서로 상대방이 사귀(邪鬼)에 씌었다고 생각하며, 상대를 구원해 주려 한다. 그러한 두 사람의 대립은, 엑스타시 상태에서 모화가 휘두른 칼에 욱이가 찔리는 사태로까지 발전한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욱이는 결국 몇 달 뒤에 죽고, 얼마 후 모화도 굿을 하다가 죽게 된다. 이 모든 일을 옆에서 겪은 욱이의 씨다른 여동생 낭이는, 찾아온 자기 아버지를 따라 길을 떠난다. 이상과 같은 줄거리를 갖고 있는 개작본 「무녀도」는, 비극적 주인공으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여주인공 모화의 매력, 한국의 종교적 전통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관심이 주는 감명, 탁월한 구성과 문체의 힘 등으로 해서 일찍부터 높은 문학성을 인정받아 왔다.
작가 자신도 이 작품에 대하여 남다른 애착을 나타내어, 1978년에는 이 작품을 다시 「을화」라는 장편으로 확대 개작까지 한 바 있다.
작품 해설 출처 :
네이버 용어사전. http://terms.naver.com/item.nhn?dirId=1604&docId=2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