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난 음식 (1)
제가 어렸을 적인 60년대에는 먹거리가 별로 없었습니다.
고작해야 강냉이 튀긴 것, 군고구마, 군밤 정도가 군것질이었고 호떡이나
붕어빵 등이 별미였습니다. 어쩌다가 간혹 천안 명물 호두과자를 먹는 날엔
얼마나 맛있었는지 입 속에서 살살 녹는 게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과자도
있구나’하고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맛이 없는데도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제인지 아십니까? 남의 것을 훔쳐 먹을
때입니다. 친구들과 모여 밤중에 몰래 참외 서리를 해서 참외를 따오다
보면 아직 덜 익은 것들도 있었지만 그런 것도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두들 훔쳐
먹는 재미에 싱글벙글하며 잘도 먹었습니다. 성경을 보니 먹거리가 아닌데도
그런 것 못지않게 맛있는 별식이 있습니다.
“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 가느니라 “ (잠 18:8)
이 별식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들 좋아합니다.
남자들도 술안주 중에 제일 맛있는 안주 중 하나는 남을 흉보고 헐뜯고 비판하는
말을 하거나 듣는 것이랍니다. 그러면 오래 묵은 체중이 쓰윽 다 내려 간다고들
합니다. 특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유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변명하는 데도
일등이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구를 흉볼 일이나 비방해야 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전화기로 달려가야 직성이 풀립니다. 별식을 나누기 위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참 떠들다가 마지막에는“ 우리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자고 전화한
거야!“ 라며 부드럽게 마무리 합니다. 이 정도면 약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상력을 동원해 있는 말, 없는 말을 더 보태 곱빼기 별식을 만들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런 그릇된 품성은 어디서 오는 것 일까요 ?
남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사탄의 품성이 인간에게 옮겨진 것은 아닐까요?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바 같은 일을
행함 이니라…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롬 2:1-6)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모르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모르고,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자신이 똑 같은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롬 2:1) 오직
성경말씀에 비추어 자기 자신을 점검해 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거듭남이 없이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자기보다 종교생활을 잘하지 못하는 형제를 책잡고
비하하는 것은 오히려 진노를 쌓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신의 생각은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판단이 앞서기 때문에 긍휼, 관용, 이해,
용서의 사랑 보다는 형제의 약점이나 잘못을 들먹이며‘나는 너 보다 낫다’
라는 식으로 형제를 업신여기며 정죄하는 말을 계속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교만한 죄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형 죄에 해당한다고 성경은 말해줍니다
(롬 1:29-32). 이 교만한 자부심은 모든 죄 중에서 가장 끔찍하고 버리기
어려운 죄성 입니다, 또 하나님께 아주 가증스러운 것이고, 이웃사랑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치명적인 죄성 입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그 입술로 이웃 형제의
허물과 약점을 비판하며 즐기는 것을 주님은 매우 싫어하십니다. 어찌 거룩한
기도와 찬양을 하는 한 입술로 비판과 저주가 나온단 말입니까?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성경에서 알려 줍니다.(약 3:9-10) 주님이“저 얄미운 입술을 가진
성도가 내 자녀 맞아?“ 라며 민망해서 얼굴을 돌리실지도 모릅니다.
우리 이웃 형제들은 부족해 보이건, 한심해 보이건, 사나워 보이건, 까다롭게
보이건 모두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들입니다. 교회는 부족한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형제를 비판, 비방하는 것은 곧 지체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에게 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권하듯“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옙 2-3)는 말씀을 따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 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7-8)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의 허물을 덮어주고 오래 참고 기다려 주는
자입니다.(고전 13장) 이웃이 미워지고 원망과 불평이 생기고 헐뜯어서 말하고
싶어질 때 지금 내 자아가 나를 멸망의 길로 가게 만들려 한다는 것을 재빨리
깨닫고 그런 미움의 마음을 바로 떨쳐 내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더
죄악의 수렁에 빠져들게 되어 본인 스스로도 헤어나기 힘들어 집니다. 미움은
그 즉시 쫓아내야 합니다. 이웃을 미워하는 대신 불쌍해하는 마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웃을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또 여러 가지로
아프고, 걱정 근심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외로운 사람들끼리
서로 부족한 점을 부정적으로 지적하는 것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
함으로써 이웃에게 힘이 되는 소중한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 서로 인자하게 하여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
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26-32)
송전서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