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난 음식 (2)
성경에는 혀에 재갈을 먹이라, 파숫군을 세우라는 등 입술을 조심할 것을
아주 많이 강조합니다. 우리 모두는 여기에서 하나 같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그 내면 깊숙이 내 욕심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내 중심
내 잣대로 이웃의 허물을 들쳐내게 되고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곧바로 분과 혈기를 내어 죄를 짓게 만듭니다. 화를 잘 내고 참을성이 없는 것은
성령을 받지 못한 증거이기 쉽습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그리스도의
품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비판하기에도 바쁨으로 다른 형제를 비난,
비판하는 일이 점점 싫어지게 됩니다. 성령은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벧후 1:3-9) 우리의 잘못된 품성들을
고쳐주십니다.
이제 우리 입술로 더 이상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혹자는 비판은 집비둘기 같아서 내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롬14:10-12)
남의 좋은 점, 장점보다는 항상 남의 약점만을 기억하며 다툼이 생기면
그것들을 다 들춰내어 큰 싸움으로 끌고 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인이나 죄인이나 다 심판대 앞에 서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 네 말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 12:36-37)
형제들 간에 자신도 똑 같은 잘못을 행하면서 서로 상대를 비방, 비판 하는
것은 위선자가 될 수 있으며 상대방을 비판할 정도로 잘 아는 사람이 자기는
행치 아니하면 하나님께 더 큰 징계를 받을 것은 명료합니다. 특히 성도들이
모인 신앙공동체 안에서 누구를 헐뜯게 되면 동조하는 세력이 생기고
수군수군 하게 되어 당을 지으며 분열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일들은 사형죄에
해당한다고 알려 줍니다.(롬 1:29-32, 갈 5:19-22).
또한 우리는 심판관이 되어 이웃을 정죄하고 낙인 찍지 말아야 합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뇨”
(약 4:11-12)
어떤 이들은 가정에서 교우들과 함께 목사의 설교나 인품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어린 자녀들이 멀리 있어도 다 듣고 있습니다. 이는 어린 자녀에게 하나님의
종에 대한 존경심을 없애고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까지 소홀이 여기게 가르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자녀들이 커서는 불신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만 부모님들은 자신들이 보여준 모본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의아해 합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히13:17)고 말씀하신 것처럼
목회자나 중직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순종하는 게 옳습니다. 반면 목회자들
이나 직분자 그리고 우리는 건전한 비판을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서 더 많은 것을 찾겠다고 합니다.
(눅 12:48)
거듭나지 못한 목회자나 신자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향한 비난과 멸시 그리고
핍박을 도저히 못 견디고 심지어 화를 낸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그저 '잘한다 잘한다' 라는 칭찬만을 좋아합니다.
거듭난 자는 자신이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자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임으로 마찰이 생기고 상처를 주고받고
실족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근본 문제는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세상과
벗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에만 순복 하는 거듭남이 없고, 십자가의 사랑에
기인한 이웃사랑이 실천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지라도 형제간에
마찰로 생기는 어떤 일을 당하든지 조급해 하지 말고 형제를 나쁘게 말하는데
앞장서지 말고 사랑, 이해, 용서를 갖고 대해야 합니다.“저 인간 꼴 보기 싫어
교회 가기 싫다!”라는 생각이 들어도, 또 그들이 아무리 원수 같고 악해 보여도
같은 길을 가는 형제들이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지체들이라는 것을 인지하여야
합니다. 손이 흙 묻은 발보고 '너는 더러우니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오히려 손이 발을 씻어 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고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요 13:15) 행하라는 섬김의 모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에 어떤 종교에서 어떤 문헌에서 이런 본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까?
목회자들이“하나님을 열심히 섬겨야 한다”라고 설교하면 그 섬김을 오해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 섬김을 교회생활에 열심을 내라는 의미로 받아드립니다만,
그 섬김은 바로 자비와 긍휼로 부족해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저 인간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절대 아냐!”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는
절대로 심판관이 될 수가 없습니다. 심판관은 주님 한 분 이십니다. 예수님은
저주 아래 있는 자(갈 3:10), 흑암의 권세에 있는 자(골 1:13) 사망에 거하는
자(요1 3:14) 등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마 9:13) 종종“ 장로가? 권사가?
안수집사가? 그럴 수 있느냐“ 며 힐난하는 것을 봅니다. 사실 선출된
직분자들이 어떤 경우 성경에서 말하는 자격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주님께서 이루시려는 섭리와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잠잠해야
하고, 직분을 들먹이며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멈추고 오히려 직분자들에게
아량을 베풀어야 합니다. 강한 자의 미덕은 베푸는 아량이 아니겠습니까?
아주 가끔 직분이 신분인 줄 알고 목에 힘을 주는 직분자들도 봅니다. 또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직무나 봉사 등으로 섬김을 실행하다가 형제들과 마찰이
생기면“ 나 안 해!“ 하고 화가 나서 직무나 섬김을 포기하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됩니다. 직무나 봉사의 섬김은 내 의로 하는 것이 아니며 내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섬김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써 이웃사랑으로 표출되는 행위들입니다. 즉 주님과 나 사이에 이루어지는
관계이지 내 능력이나 내 자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각종 직무와 봉사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지 그 외에 어떤 것도 개입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송전서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