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변화되지 않는가 (1)
오랜 기간 동안 예수를 믿으며 교회생활을 했고 주일마다 참회기도를 하면서도
왜 도대체 변화되지 않는 것일까요? 이 주제는 너무너무 중요함으로 그 원인들을
냉철하게 분석해 보고 싶습니다.
. 에덴동산에서 영적인 사람 아담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선악과 사건) 육적인
사람 아담으로 변질되면서 자신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판단할 수 있다는
육의 본능성인 욕심과 욕구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고후 5:1) 즉 하나님의
보호를 거부하고 내 스스로 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성과 감정과 의지에서
전 인격적인 변화를 수반하게 되었습니다. 육적으로 바뀐 아담은 모든 것을 내
중심적으로, 내 편안한 쪽으로, 내 유익이 되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본능처럼
되었고, 사탄 루시퍼에게 세뇌 당한 자아로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짓누르고 내
이기적인 생각으로 나의 유익을 좇는 가치관이 습관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그 습관에 끌려서 마귀의 종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마귀의 종이 된
나의 자아는 항상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나의 생각
저변에는 항상 교만과 내 유익을 구하는 욕심이 깔려 있어 내 생각이 관철되지
않으면 혈기와 분이 일어나고 더 나아가 이웃을 비방, 비난하는 죄성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곧 인간의 혈과 육은 욕심을 낳게 되고 욕심은 죄를
낳게 됩니다(약 1:15 ). 이것이 육적 몸을 가진 인간의 한계입니다.
“ …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라 ” (잠 26:25)
“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비방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악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롬 1:29-32)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렘 17:10)
세상에서는 범죄행위로 취급 받지 않는 여러 가지 죄성들 중에 시기, 질투,
분쟁, 미움, 교만, 욕심, 거짓 등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사형 죄에 해당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육적 몸을 가진 인간들은 이 죄성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됩니다.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녔어도, 이 죄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듭남,
곧 세상에서 돌이킴에 대해 강력히 외치지 않고, 성도들의 귀에 솔깃하게 들려
지는 인본주의적 설교만으로는 절대로 변화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볼
때에도 우리의 변화 없는 삶, 열매 없는 삶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
( 롬 8:5-8)
단지 입으로만 예수를 믿는 그 믿음만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가
없습니다.“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롬 5:5) 될 때에만 욕심이 사라지며 우리가 죄에서 이길 힘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 만이 죄로 오염된 우리의 본성을 바꾸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 이는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딛 3:5-8)
우리가 '사람의 정욕을 품지 않고 남은 때를 살기 위해서는'(벧전 4:1-2)
우리 모두는 중생의 씻음으로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다. 즉 옛사람을
개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본성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야만 지금까지 탐심으로 살아온 옛사람을 버리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 (엡 4:22-24)
“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이 세상에서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 (벧전 2:11)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으로 사는 '나',‘나의 지체, 나의 행실’곧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고 교활한 옛사람의 '나' 곧 세상으로 향하던 내가 죽어야만
다시 태어난 내가 삽니다. 나의 세상적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살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1 3:6-9)
위 말씀을 보면 얼마나 부담되는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별로 들어보지 못한
말씀이라 이상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러나 본문을 차근하게 읽어보면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씨'(벧전 1:23) 곧 성령(말씀)이 거듭난 자를 세상적으로
살지 못하게 인도한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모든 씨앗 속에는 생명력이
있어 사과 씨는 사과를, 감 씨는 감을 열매로 맺게 됩니다. 이처럼 '생명나무의
씨'인 성령을 받은 성도는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게 됩니다.(갈 5:22-24)
우리가 죄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사실 주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함으로 못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보다 주님이 더 좋아야만 죄를 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그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고 끊는 것도
기쁘게 감당 하지 않습니까? 세상보다 주님이 더 좋아지는 변화는 다시
태어남으로 나의 본질이 바뀌어야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다시 태어나도 내
자아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나에게는 없는 능력(성령)을 위로부터 받아 나의
의지가 협력하면서 지속적으로 싸우는 노력과 훈련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품성의 계발은 평생의 과업이며 시간, 인내, 희생, 노력 등이 요구됩니다.
“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자아)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롬 7:23-25)
사도 바울도 날마다 자신을 죽이며 끊임없이 자기 자아와 투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탄이 심어놓은 죄의 법인 자아가 얼마나 끈질기고 지독한지 이
자아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 줄 것인가'라고
절규하다가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법인 자아를 이길 수 있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노라'는 감사와 찬양이 먼저 튀어 나오고,
이어서 우리 육신이 죄의 법인 자아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25절이
끝납니다.여러분! 사도 바울도 이토록 싸운다면 우리야 말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송전서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