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변화되지 않는가 (3)
우리 스스로도 우리를 유혹하는 죄들에서 피하고 도망가야 합니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피하는(잠 22:3) 자들 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죄) 옆에 계속 머무르면서“ 주님! 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제발 도와
주십시오! 저는 이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라며 죄에서 떠나지 않은 채
아무리 기도해도, 우리의 죄성 때문에 사탄의 유혹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누구를 미워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도하면서 본인 스스로 미움을 떨쳐
내야 합니다. 미움을 떨쳐버리지 않은 채“주님! 아무개를 용서해야 합니다.
이 미운 마음을 제거해 주십시오!“라고 아무리 기도해도 죄성을 가진 내 자아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고 과감히 떨쳐내야 합니다. 오늘 누구하고 언성을
높여야 할 일이 있을 때에도“주님! 예수 믿는 자로서 덕이 되지 않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선하게 해결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또 나하고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분쟁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감정의 동물이라고 무슨
말을 들으면 그에 반응하려는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애당초 그런 분쟁에 끼어
들지 않고 피하는 것이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길에는 우리의 인내와 절제와 노력이 요구 됩니다.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3-14)
내 죄성에서 나오는 세상적 기준들을 하나님의 기준, 곧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22-23)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로 바꾸어야 합니다. 하지만 육적 인간으로서는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능력만이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시고, 우리의 모든
생각이나 가치관을 주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롬 1:16)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론이나 교리)에 있지 아니 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곧
복음은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켜주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
(고전 6:17) 되어 변화 있는 삶을 사는 거룩한 성도가 됩니다.“성도”라는
뜻은 거룩한 자, 구별된 자라는 뜻이고, 성경에서 '거룩'이라는 말은 무슨 윤리
도덕적으로 수준이 높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다’는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들어간 자 곧 세상과 구별된 자이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뜻합니다.
”내 자아를 죽여야지”또“내 돌밭 같은 마음을 옥토로 만들어야지”하며
뭔가 종교적 열심을 내려 하는 내 의가 죽어야 합니다. 땅이 자기 스스로 돌을
치우고 옥토로 만드는 것을 보셨습니까?
돌을 거두어 내고 땅을 갈아엎어 옥토로 만드는 것은 땅 주인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을 살아가면 주님(성령)
께서 우리 마음을 옥토로 만들어 주시고, 또 싹이 나와 자라가게 해주시어 많은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
(골 1:13)시고 “우리를 양육하시고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딛 2:12) 살게 하시며
“우리를 깨끗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딛 2:14)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하지 아니 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다”(요1 3:6) 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 하는 줄은 우리가 아노라“(요1 5:18)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우리의 욕심 때문에 생겨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욕심을 품지
않기 때문에 죄가 점점 사라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수준은 '하나님의 자녀는 의도적으로 죄를 반복해서 짓지 않는다' 까지 입니다.
우리 모두는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항상 실패하고 좌절하면서 그 때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자백하며, 눈물지으며 울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 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 12:4)
우리가 세상을 따르는 반복되는 죄를 끊어버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처절하고
끈질긴 싸움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혹자는 행함은 필요 없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다 된다고 하지만 사실
아무 것도 행하지 않으려는 것 또한 노력이며 행함 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물리치겠다는 정신으로 예수님만을 바라볼 때 그때 주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라' 라는 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만 쳐다보면 다
구원 받는다' 라는 그런 주장을 하는 목사나 신학자 등 거짓 사도들을 바라보지
말고 또 그들과 비슷한 이단 가르침이나 교리를 바라보지 말라는 말입니다.
오직 우리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그 분의 말씀만을 따르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인도하실 때(갈 5:16) 나도 의지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면 성령님도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기능과
능력을 통해 역사 하십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을 깨우치는 방법이 없는 것
처럼 죄와 싸우지 않고 죄를 이기는 방법은 없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은 예수님을 쳐다보기만 하면 이긴다는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명이 내게 있어...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아니 하고”(계 3:5) 에서 보듯이 싸워 이기는 자만이 흰
옷을 입게 되고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요일 5:4)에서 보듯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 곧 거듭난 자만이 세상(죄)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5)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라“
(약 4:4)
자신이 아직도 소중히 여기는 세상적 우상들, 곧 물질, 명예, 권력, 사업
인기, 평판 등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은 채, 그리스도와 연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변화되지 못합니다.
거듭남으로써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육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의 삶이고 이때가
진짜 고난이 동반되는 신앙생활 입니다. 십자가 처형은 고통을 계속 주면서,
서서히 피를 흘리며 죽어가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가 죄를 죽이기 위해 우리의
세상적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롬 6:6) 내 세상적 자아가 죽어가는 동안
계속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무엇보다 먼저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만 세상 욕심과 정욕이 점점 사라지게 되어(갈 5:24)
죄를 짓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기
자아를 부정하는 것이고 자기 십자가는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