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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서목사님

예수는 나의 좋은 친구?

작성자하나님의사람|작성시간26.06.10|조회수1 목록 댓글 0

예수는 나의 좋은 친구?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삼기 위해 우리를 부르고 계시며 우리와

가장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 하십니다부족하고 허물 많은 우리를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구라 불러 주심은 너무도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는 나의 좋은 친구'라고 좋아하며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라고 칭하신 성경말씀을 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 (요 15:12-15)

 

  위 말씀을 보면 너희가 나의 계명인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는 명령을

행하면,  그때 나의 친구가 된다고 가르쳐 줍니다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친구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우리는

진정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처럼 우리도 우리의 못난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고 이웃들에게 사랑을 행하고 있습니까?  예수는 나의 좋은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진정 이웃사랑을 실행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예수를 천구연인남편주인아버지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예수님과 우리와의 영적 관계를 의미합니다그럼에도 많은

신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마치 나의 행복과 성공만을

기뻐해 주는 세상 친구 사이로 오해하며 예수님을 막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주님을 막 대하는 사람들 일까요?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임으로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착각했듯이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신하며 자신의 세상적

욕구를 간청하는 신자들이 바로 주님을 막 대하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옛사람을 버리지 않은 채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여느 사람들

하고는 달리 하나님을 선택했으며예수를 믿어 줬고헌금도교회 봉사도

많이 했으니 하나님께서 다른 여느 사람들 보다는 다르게 대해 주셔야 하지

않겠느냐”또는“내가 이만큼 했으니 나를 귀히 여기시고 복 주실 거야!”

라는 이기적 신앙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것이 막 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 통치에 순복 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내

문제를 해결해 주는 무슨 척척박사로 압니다.

내 몸이 아프면 내 주치의가 되어야 하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변호사나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세상에서도 행복성공출세 등 복

받아 부와 명예를 누리게 해달라고 졸라댑니다.

물론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아뢰고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는

것은 자녀의 특권입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해결해 달라고곧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한 금식기도,

철야기도 등은 어린 자녀들처럼 떼를 쓰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기도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묻는 것이고 그 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도는 좋은 목자이신 예수님만을 신뢰하고 따르는 어린 양들입니다.(계 14:4)

 

  또 어떤 사람은 천국에 가는 것은 두 번째이고일단은 이 세상에서 풍족하게

살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세상적 복을 추구하려고 전심전력하는 것은 그만큼

사탄의 통치가 좋다는 뜻으로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

입니다또한 ‘거듭남’과 정 반대의 길을 가겠다는 입장이 됩니다.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약 4:4)

 

  예수님은 이 땅에서 자녀들이 주 안에서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지만 세속적으로 잘 놀고,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서는 천국에

간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 옛날 세계 최대강국이었던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에게

행한 범죄에 대해“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판 일에 대해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나를 앞서 보내셨나이다“ 라고 말했을

때 형들이 “그래자네 말을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 그려우리가 자네를 판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룬 것으로 참 잘했던 일이야!“ 라고 대답했다면 그

형들이 온전했을까요죽지 않으면 다 감옥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요셉이 그 형들을 용서하기 전에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진실로 회개 하고

있는지아버지의 말씀을 잘 지키는지,  또 형제간에 우애가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연출하면서 결국 그들이 자신들의 범죄를 회개

하고  아버지 명령을 잘 따르고(거듭남)  형제들간에 사랑한다는(이웃사랑)

것을 확인한 후에 그 형들을 용서한 것입니다형들은 용서를 받고서도 동생

요셉을 두려워했습니다(창세기 50;15-21).“그 형들이 친히 와서 요셉의 발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창 50:18) 라고 말하며 요셉을

동생으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예수님은 요셉하고는 견줄 수도 없는 왕 중에 왕이시요.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이시지만 또한 ‘영존하시는 아버지’ 이시기도 합니다.

(사 9:6). 우리 머리로 측량이 안 되는 온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어마어마한

왕이신 하나님을 버러지 같은(사 41:14) 인간에게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감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이름인 동시에.'아버지'는 자녀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신 분이라는 확실한 보증을 주는 이름입니다.

세상에 어느 신화에 또 어느 종교의 가르침에 자기 신을 '아버지'라 부르라는

말이 있습니까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나의 창조자섭리자,

심판자그리고 자녀를 사랑하고 신령한 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아울러 예수님은 영적 관계에서 우리와 친구이시지만 존귀와 영광을

받아야 마땀하신 분이라는 점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것일까요?

창조주 하나님은 신이고 우리는 피조물인 인간이라는 것을 바로 인식할 때,

곧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릴 때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먼지 같은 티끌로 만들어졌고 사실 벌레 같은 존재요(시 22:5-6)

이리의 형제요 (욥 30:29)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전 3:18)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성도는 낮아지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친구로 대하신다는 말씀은 서로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는

의미로 이제 서로 떨어질 수 없고 무슨 말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는 친밀한

친구 같은 사이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뜻이요 계명인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예수님이 바라시는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요 5:23) 말씀과 함께 자녀로서 또 친구로서의 자격을 갖추도록 우리들도

힘쓰자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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