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2)
요즈음 많은 젊은이들이“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신나게 부르는 것을 볼 때면“아주 고난 받기로 작정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며 연민과 함께, 그들이 진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연단을 받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찡해집니다.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지만 하나님 아버지
께서는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를 연단 시키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로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히 12:6)
주님께 사랑을 받는다고 징계와 고난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징계를 통해 돌이키고 회개시켜 구원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요즘 동서양을 막론하고 번영신학(기복신학)의 목회자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모든 시험을 면케 해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
해주시고 모든 질환이나 환난을 면케 해주신다고 가르치는 것에 미혹되어 그런
교회에 몰려들지만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오히려 더 힘들고 고단한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사랑 받기를 좋아하는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만을 크게 부각시키며 거짓
구원론을 만들어 거짓 평안과 기쁨을 주며 우리는 사랑 받는 자녀임으로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은 잃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랑 받고 기름부음 받은 사울
왕이 어떻게 됐습니까? 말세지 말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고 성경에서 이미 알려 주고 있습니다.(딤전 4:1)
성도들은 '근신하고 깨어' 쉽고 편안한 길을 가게 하는 이론들을 경계해야 하며,
바른 믿음을 굳게 잡고 사랑만을 강조하는 '사탕교리'에 절대로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벧전 5:8) 우리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예수에 의해 또 예수를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골 1:16)
하나님께서 인간을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라고 만드셨다면, 세상에 가난한 자,
병든 자, 절망하고 애통하는 자들을 없게 하셨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인간의
행복한 삶만을 원하셨다면 선악과도 필요 없고, 에덴동산에서 쫓아낼 필요도
없고 그저 다 용서하시던지 아니면 인간을 다 멸하고 다시 새롭게 만드시면 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어려움과 고통의 삶을 허락하신 이유가 분명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고난에 대해서는 뒤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기복주의의 교회에서는 주님 한 분만으로 족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족하다는 거듭난 삶은 세상이나 세상적인 것을 다 버리는
삶입니다.(요1 2:15) 더불어 내 세상적 자아를 버려갈 때 어찌 고통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신자들이 세상적인 복이나 능력을 구하는 성경구절들을
무슨 부적인양,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벽에 걸어 놓은 것을 보면 쓴 웃음이
나옵니다. 그 중에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가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하지만 그 실제 의미는 무슨 어려움이나
더러운 꼴을 당해도 내게 힘주시는 자 안에서 다 참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또“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 하리라”(욥 8:7)라는 구절을 후일에
큰 복을 받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 구절은 단지 '나중의 창대
함에 비하면 너의 처음 부는 미약해 보일 것이다'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세 친구의 말이 옳지 않다고 말씀하신, 그들 중 하나인 수아 사람
빌닷이 욥에게 말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요한) 간구하노라”라는 소위 3박자 축복이란 것도 장로 요한이 사랑하는
'가이오'를 위해 간구한 것일 뿐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사람들의 말들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요즘 세상 학문인 상담학에선 '자기를 사랑하라' 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자기애를 버리고 부인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주님만을 믿고 따라가는 것인데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자기
자아를 죽이는데 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땅에 것을 버려야 위에 것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골 3:2). 자기를 사랑하게 되면 자기 죄도 관대히 넘어갈 수
있게 됩니다. 죄를 미워한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요 12:25)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우상화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성경말씀에도 어긋나게 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1 3:16) 라는 말씀을
보면 우리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사랑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리는, 즉 자기 십자가를 지는 희생정신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성도입니다.
자신의 연약함, 부족함, 추함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이웃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상대방이 나를 좀 더
이해해 주고 내 아픔을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내가 그렇게 바라는 만큼 나도
이웃을 이해해 주고, 알아주고,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처럼 우리가 먼저 이웃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대개 근심, 불안, 스트레스, 우울증, 불면증 그리고 원망 불평 오해
등이 생기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데서 비롯되는 게 대부분입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 5:28)라고 했듯이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바로 자기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에 하나님도 우리를 자녀로 받아
주시고 보호 인도하시는 것입니다(레위기 10:3, 대하 15:2, 약 4:8).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은 우리의 옛 품성이 변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풍성을
닮아간다는 의미 입니다.(엡 5:1)
제가 위와 같은 성경 말씀들을 모를 때에는 무조건 하나님을 믿고 새벽기도
또는 금식기도로 울며불며 매달리면 하나님은 내 소원을 다 들어주시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응답이 안 되는 것은 단지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기도가 하나님을 얼마나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아주
정상인 줄 알았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미혹이고 오히려 사탄이 원하는 소망들
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은“하나님 아버지 나의 세상적
욕망을 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 내용이 바뀌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다면 없어질 천지만물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존재요.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고귀한 자녀라 할지라도 더욱 낮아지고,
겸손하게 주님을 따라가면 주님께서 더욱 더 우리를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에서 항상 찌들고 가난하고 고단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성실히 일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해 주시는 성공과 부로 주 안에서 행복한 생애를 살아가는
복을 누릴 자격도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주님의 사랑 받는 자녀일지라도
어려운 고난을 겪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