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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서목사님

이웃사랑을 하려면 (3)

작성자하나님의사람|작성시간26.06.10|조회수0 목록 댓글 0

이웃사랑을 하려면 (3)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신자들의 예물은 기쁘게 받지도 않으며 예배

드리는 것도기도도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그런데도 이 말씀을

어기는 교회와 신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성도라면서 형제자매를 미워하고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는 그저 헛되고 헛된 가짜 예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직도 형제자매에 대해 속이 꼬인 마음으로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입술로만‘오 주여주님을 찬양합니다주님을 사랑 합니다주님만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주님이 그 고백을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오히려 가증스럽게 보지 않겠습니까우리 신자들은 이웃 형제 자매들을

긍휼이 여겨야 합니다그래야 우리도 하나님께 긍휼을 받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가짜 기도가짜 예배가짜 찬양을 멈춰야 합니다성경은 믿음,

소망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아무리 내가 옳고 바른 분별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당신의 삶에 용서가 없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당신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 한들

예수님이나 스데반 집사 보다 더 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도 부끄럽게 여길 교회 분쟁의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사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를 분열시켜 파괴하려고 시시 탐탐

노리고 있습니다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마지막 때가 되어 사탄

마귀의 역사로 당연지사 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 때에 어떻게 상황을 극복해

나가느냐가 성도들이 겪는 단련이며 신앙생활입니다어려울 때에 신앙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 만을 탓하지 말고오히려 하나님께 점수를

따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분쟁이 있는 교회들이 있습니까전 교인들이 합심하여 지난 날의 과오를

참회하고 형제자매를 진심으로 용서하는 화합의 장을 만드는 대 각성

기도회라도 가져야 합니다화해하고 타협하여 더 이상 미워하지 말고 사랑

해야 합니다. 교회 분쟁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 사역을 방해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무조건 중지해야 합니다. 교회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발생하는

손실은 얼마나 큰지 말도 못합니다단지 루시퍼만이 좋아서 웃을 일입니다.

(고후 3:10-11) 우리 성도들은 자기들만이 옳다는 자들이 던지는 돌에

스데반과 사도 바울처럼 맞아 죽을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이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롬 12:17)

“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여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1-32)

“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이로서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 (요1 3:15-19)

“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 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 (잠 24:29)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나의 옳음이 오히려 분열을 만든다면 그 옳음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해야 합니다용서가 없다면 천국도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용서 없이 예배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가짜 예배일뿐이고 어리석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예수 때문에 참는다”하면서도 어느 정도 보복의 감정을 가슴

한편 구석에 저장해 놓았다가 어느 날 분노를 발하며“ 내가 많이 참았다

이제는 안 되겠다! “ 하고는 지난 일까지 다 끄집어내어 비판정죄하면서

싸움이 되고 생지옥까지 가는 것은 처음부터 내가 이웃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벼르고 있었던 것뿐입니다보복의 정신을 버려야 합니다. 이웃과

싸우는 것보다 부당하게 고통 당하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네가 뭔가

태도를 바꾸어야만 용서하겠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비록 상대가 그런 겸손한

태도를 보이지 않더라도 진정으로 용서해야 합니다그리고 말과 행동으로

진정으로 용서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또“ 내가 참고 넘어가면 나를 바보로 알고 짓밟는단 말에요!”라고

말합니다만 그냥 짓밟히고 바보처럼 당하는 게 세상에 대해 죽은 자 같은

바른 신앙인 입니다내 자존심이 죽어야 합니다우리가 참으며 당하는

고통이 이웃사랑이며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입니다속담에도 사랑을 하는

사람은 바보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동양인들은 명분과 자존심을 매우 중시합니다그러면서 나의 명분과 나의

옳음을 내세워 절대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선한 싸움으로 승리한다는

의미는 져주고손해 보고짓밟히면서도 남의 유익을 구하는 싸움입니다.

세상 것을 구하면서 거듭난 영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영의 사람이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진 자, 곧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자를 말합니다.

영의 사람은 세상적 욕심이 없기 때문에 교만과 혈기와 분을 내지 않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곧 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또“나는 착하게 살려는데 저 인간이 나를 자꾸 악한 사람으로 만든다!“

네가 그러니 나도 그런다!“ 라고 말하지만 위 성경 말씀처럼 똑같이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마태복음 8:28-35을 보면 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종이

자기에게 100 데나라온 빚진 자를 만나 멱살을 쥐며 빚 독촉을 하다

안 되니까 감옥에 집어 넣은 이야기가 나옵니다우리가 만 달란트보다 더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는다면 용서치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35절에

“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만 달란트 용서받은(구원받은종이 결국은

용서가 취소되고 감옥에 감으로 구원을 잃고 말았습니다.  용서 곧 죄사함

받은 자는 이웃들을 이해하고용서하고사랑해야 합니다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이웃 사랑과 용서가 없다면

죄사함곧 용서 받은 것이 아님으로(눅 7:47-48) 천성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습니다어린 요셉이 형들을 고자질하던 자에서 나중에는

형들을 용서하는 자로 변화된 것처럼 우리도 변화 되어야 합니다.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

 

위 말씀은 '받는 자 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과 함께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웃 사랑을 잘 표현한 강한 메시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며 부족하고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나를

친절히 사랑으로 대해주기를 바랍니다그런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은 그만큼

먼저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옳습니다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이웃사랑을 하면 그 사랑이 나에게 돌아옵니다.

 

우리의 무형 재산은 첫째는 예수님이시고 두 번째는 이웃들입니다.

절대로 손해나는 일이 아니니 마음 푹 놓고 우리 모두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고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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