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지 : 7/11(서양 중세 문명) 제9장 망탈리테?감수성?태도(10~13세기)
국어교육과 20441363 권희경
1. 불안감 - 중세인들의 망탈리테와 감수성을 지배하고 태도의 본질을 결정한 것은 불안감이다. 교회는 이에 대한 처방으로 그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연대에 의지하고, 야망이나 실총으로 인한 연대로부터의 단절을 피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불안은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이다. 중세인들의 망탈리테?감수성?태도를 규정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안정의 필요이다.
2. 오래된 것에의 의존: 권위 - 그들은 무엇보다도 과거와 선조에게 의지했다. 과거에서 보증받은 가장 특권적인 권위는 신학에서 극치를 보였으며, 최고의 권위는 성경이었다. 이는 난해하고 모호했으므로, 주석에 의해 해설되었다. 과거에의 참조는 거의 의무처럼 되어 있었다. 교회는 새로운 것들을 금하였으며, 기술적 진보와 지적 진보가 바로 그 대상이었다. 고대적 권위의 무게는 생활의 모든 부문에서 그러했다. 중세 사회의 기본 구조, 즉 봉건적 계급 구조의 차원에서 완전한 힘을 발휘했다. 봉건법과 봉건적 관습의 실제적 토대를 이룬 것은 관습이다. 봉건 사회에서 진리의 증거는 ‘태고적부터’의 존재 여부이다.
3. 신적 개입에의 의존: 기적과 신명 재판 - 중세인들이 이의 없이 어떤 사물을 믿게 만든 것은 비상한 것, 초자연적인 것이거나, 어떤 경우든 범상을 넘는 것이었다. 과학도 이들을 서슴지 않고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기적에 의한 증명이 주로 성자와 같은 비상한 존재들을 규정한다. 기적의 특권적 수혜자는 영웅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조차도 기적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중범죄자들도 독실한 신자라면 기적의 혜택을 입을 수 있다. 기적을 통해 진실을 입증하는 각별한 방법은 신의 재판이다. 여기에서 정의에 대한 매우 형식적인 개념이 신명재판을 정당화했다.
4. 상징적 망탈리테와 상징적 감수성 - 중세의 상징적 사고는 언어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 그것은 이미 그 사물을 설명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말과 사물은 대립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은 다른 쪽의 상징이었다. 자연은 상징의 가장 큰 보고이다. 광물이며 식물이며 동물 등은 모두 상징적이다. 중세의 상징적 사고는 대단히 많은 교회 의례에 특히, 종교 건물의 해석에 매우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수의 상징이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중세인들의 손가락 셈은 수적 해석의 토대였다.
5. 추상과 구체의 의미: 색과 빛, 미와 힘 - 중세인들의 눈부신 색상에 대한 취향 뒤에는 어둠에 대한 공포와 빛의 추구(구원)가 깔려 있다. 고딕 양식 교회의 벽에는 창을 많이 내어 많은 빛들이 들어오게 하고 그림 유리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13세기말 안경의 발명은 시력이 약하거나 눈이 피로한 사람들에게 빛을 공급해 주었다. 아름다움은 빛이다. 빛은 사람을 안심시키며 고귀함의 표시이다. 아름다운 것은 또한 풍요로운 것이다. 중세인들은 작품보다는 재료의 질을 더 높이 쳤다. 육체적 힘에 대한 숭배는 주로 전사 귀족들, 전쟁을 열망하는 기사들한테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고딕식 예술은 무공을 추구했다.
6. 도피와 꿈 - 무상하고 기만적이며 배은망덕한 현실을 도피하려는 경향은 상층 사회건 하층 사회건 중세 사회가 끊임없이 시도했던 것이다. 중세인들은 망각을 제공해주거나 도피를 시켜줄 수 있는 것들에 항시 의존하였다. 환각을 일으키는 각성제들이 있었으며, 모두가 환영과 환상을 추구했다. 중세인들의 꿈 중 예고적, 계시적, 선동적인 것들은 정신 생활의 줄거리요 자극제였다.
<질문 및 토론>
◇ 중세 지식인들이 이교도?아랍적 철학자들을 권위로 받아들였던 이유와 당시 아랍철학이 유행했던 이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