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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중세사

제9장 망탈리테, 감수성, 태도(10~13세기) 7월 11일

작성자-쑤미-|작성시간05.07.11|조회수105 목록 댓글 0
 

제9장 망탈리테, 감수성, 태도(10~13세기)

1.불안감

 중세인들의 망탈리테와 감수성을 지배하고 태도의 본질을 결정한 것은 불안감으로, 이 것은 물질적인 동시에 도덕적이다. 근본적인 불안은 공적과 선행을 통해서도 보장 받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중세인드의 망탈리테와 감수성, 그리고 태도를 규정했던 것은 안정에 대한 필요이다.

2.오래된 것에의 의존:권위

 그들은 과거와 선조를 통해 보증을 하고 정당화 시켰다. 그 중에서도 권위는 최고의 보증으로 이것은 신학에서 가장 이용되었다. 이 권위는 난해했기 때문에 주석에 의해서 해설이 되었고, 주석집의 권위는 모음이었다. 이렇듯 개혁은 죄악이다고 말 할 정도로 새로운 것들을 금하였다. 기술적 진보다 지적 진보가 가장 대표적으로 발명도 비도덕적이라고 하였다.고대적 권위의 무게는 생활의 모든 부문을 누르며, 도덕적 생활도 권위의 지배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과거의 무게는 중세사회의 기본구조인 봉건적 계급 구조의 차원에서 힘을 발휘했다. 봉건법과 봉건적 관습의 실제적 토대를 이룬 것은 관습이었다. 귀족 신분은 먼 옛날에 시작되었음을 명예로운 가문으로 보증했는데 이것은 고위 성직자들의 사회적 추원뿐만 아니라 성자들 중에 상당수가 귀족임을 말해주었다.

3.신적 개입에의 의존: 기적과 신명 재판

 권위 외에 기적에 대한 입증도 있다. 그것은 비상하고, 초자연적으로 모든 것들을 연구대상으로 잡았다·. 중세 예술과 과학은 기괴한 것들 속에서 기이한 우회로를 통해 인간에 접근 한 것이다. 실제로 기적에 대한 증명으로 성자가 있는데 교황은 시성 후보자들이 수행해야할 의무로 기적을 첨가했다. 이 기적을 통해 진실을 입증하는 각별한 방법은 신의 재판에서도 사용되었다.

4. 상징적 망탈리테와 상징적 감수성

 중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징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상징은 계약의 기호로 상실된 통일성에대한 언급이다. 상징적 표상은 보편적 속성을 가지며, 상징적 사고는 민중적 망탈리테를 감싸고 있는 마술적 사고를 지적인 차원으로 정제한 형태이다. 물론 부적, 미약등의 주술적 방법이 가장 흔하였지만 성유물과 성사, 기도등은 대중에게 공인된 등가물로 있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였다.

 중세의 상징적 사고는 언어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어원학은 중세에 기초과학으로 융성했으며 중세 육의 기초는 말과 언어의 연구로 실제로 문법, 수사학, 변증술등이 교양 과목으로 있었고, 12세기 말까지 모든 교육의 기초는 문법이었다.

 자연은 상징의 보고로 보았다. 광물과 식물, 동물등을 모두 상징적으로 보았다. 그 예로 동물계는 주로 악의 세계를 상징했다.

 중세의 상징적 사고는 많은 교회의례 중에서도 종교 건물의 해석에 적용되었다. 원형교회가 순환적 완벽을 상징, 십자가형 교회는 우주를 축약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중세의 기본적인 상징으로 수의 상징도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렇게 중세인들은 추상화, 즉 추상적 관계에 의존하는 세계관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Q) 권위는 난해했기에 주석에 의해 해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석집은 출처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어 있었다고 하고 책에서 나오는데 이것이 종교에게 준 영향은 없는지..예로들어 주석집의 왜곡으로 성경이 잘못 전해져 종교에 대한 권위가 떨어졌다는 등등..

Q) 심미적 전통을 통해 오히려 더 원시적7이었음을 중세초의 예술은 보여준다고 합니다. 상징들로 왜 더 원시적인 중세초의 예술을 보여주게 된건지 설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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