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질문지 - <서양중세사강의> 제12장. 백년전쟁
13장. 교황권의 쇠퇴와 군주권의 확대
-역사교육과 20343173 김민정
Ⅰ. 백년전쟁의 원인
백년전쟁의 근본 원인은 영국 왕이 프랑스에 소유하고 있던 영토 문제였다. 그는 한 국가의 왕인 동시에 자신의 영토가 있는 다른 국가의 왕의 가신이기도 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영국 왕이 프랑스 내에 영토를 소유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두 번째 원인은 플랑드르에 대한 두 나라의 이해관계였고, 세 번째 원인은 전쟁 발발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프랑스에서의 왕위 계승 문제였다.
Ⅱ. 백년전쟁의 전개
제 1국면 : 영국이 잇달아 승리하고 브레티뉴이 조약을 맺은 시기
제 2국면 : 프랑스가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였고, 양국의 내부적 혼란으로 전쟁이 중지 되었던 시기. 한편 영국에서도 흑태자의 10세 된 아들이 삼촌들을 제치고 즉위하였으나 실제 통치권은 숙부가 지배하였다.
제 3국면 : 전쟁이 재개되고 프랑스가 파국의 위기에 처했으나 최종적으로 승리한 시기. 프랑스 입장에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프랑스를 구한 것은 잔 다르크의 출현.
Ⅲ. 백년전쟁 이후의 프랑스와 영국 : 중앙집권적 국민국가의 성립
백년전쟁은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는 시련이었지만 동시에 왕정에게는 오히려 기회이기도 했다. 이제 국민들은 쉽사리 다른 군주에게 충성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역사가들은 백년전쟁을 두 국가의 중앙집권적 국민국가 발전에 있어서 한 이정표로 간주한다.
1. 전통질서의 재편 --- 흑사병, 백년전쟁은 중세 말 그리스도교 세계에 엄청난 피해, 충격을 가져온 사건들이었다. 이러한 14,15세기는 또한 전통적 질서가 범 유럽적으로 재편되는 격동의 시기였다.
2. 교황권의 쇠퇴 --- 교황지상주의에 대한 이론적 도전과, '카놋사의 굴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미중유의 사건은 곧 '바비론 유수'로 이어졌다. 또한 대분열이 일어나게 되고 그 해결책으로 나타난 공의회주의의 대두로써 교황을 중심으로 한 교회정부의 대내적 질서마저도 흔들리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
3. 군주권의 확대 --- 교황권이 서서히 쇠퇴하고 있던 14,15세기는 또한 세속의 정치질서가 중대한 변화를 경험하던 시기였다. 이는 군주권의 확대와 강력한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국민국가의 등장이었다. 통치권 강화를 위해 교회와 경합을 벌여야 했고, 교속의 대립은 군주들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봉건귀족의 제압 또한 군주권을 위한 관건이었다. 많은 양보와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힘든 사투를 벌였다. 그러한 정치체제는 중앙집권화되었고 독일, 이탈리아를 제외한 서유럽의 보편적 질서로 안착하게 된다.
<질문>
1. 백년전쟁의 발발 원인으로 왕위 계승문제를 두는데, 실제로는 당시 모직물 공업의 중심지인 플랑드르 지방과 포도주 생산지로 유명한 귀옌 지방의 쟁탈이라는 양국 간의 경제적 이해에 따른 마찰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현재 프랑스 국민들은 ‘잔 다르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요? 우리나라의 영웅과 비교하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