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사가 매일 아침 자기 이름을 외쳐 부르며 하루를 시작했다.
“선사님, 거기 계십니까?”
그리고 그가 직접 대답도 했다.
“그렇습니다. 나는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정신을 챙기십시오.”
또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가 또 말했다.
“사람들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가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 하지요.”
명상, 자각, 마음챙김, 의식...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실타래 같이 엉킨 수많은 생각들 속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주시자’를 발견하는 것이 유일한 관건이다. ‘주시자’를 발견하면 그것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서서히 찰나의 일별들을 체험하기 시작할 것이다. 문득 창문이 열리고 그대는 다른 존재로 변형되기에 이른다. 어느 날 또 다른 문이 열리고 새로운 통찰이 그대에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그대 주변에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장애물을 없애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그대의 ‘마음’이다.
‘마음챙김’은 ‘명상’을 일컫는 붓다의 용어이다. 붓다가 말하는 ‘마음챙김’은 늘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하라는 뜻이다.
항상 현재에 머물러야 한다. 잠시나마 깊은 잠에 빠진 마음상태로는 어떤 일도 행해선 안 된다. 몽유병이 아니라 예리한 의식을 갖고 살아가라.
‘마음’이란 바로 ‘그대가 부재한 상태’이다. 그대가 현재에 존재하는 순간,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느 시대에나 붓다들이 강조해온 바는 이렇다. 깨어있는 의식을 갖고서 현존하라. 그러면 마음과 그 요소들-탐욕, 분노, 망상, 꿈, 환상, 야망-이 처할 공간은 사라질 것이다.
단 하나의 목적-진리-과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명상’이라고 부른다. ‘명상’은 주의깊음, 자각, 마음챙김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기계적으로 행하지 말고 깨어있는 의식으로 행하라.
오쇼의 <마음챙김이란 무엇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