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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미얀마 여행기 39-잉와

작성자연오랑|작성시간06.01.24|조회수121 목록 댓글 0
 2006년 1월 5일(목) 오후


  씨저는 저가잉 시내로 가서 점심을 먹자고 한다. 오후 세 시 가까이 선착장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다. 볶음밥, 국수(noodle soup), 튀긴 국수(fried noodle)와 맥주 두 병을 시켰는데 안주로 콩을 주는데 고소하니 맛있다.


후식으로 바나나를 비롯하여 몇 가지 과일이 나온다. 미얀마 말로 메론은 ‘떠콰흐무띠’, 바나나는 ‘응아요띠’, 대추처럼 생긴 ‘지띠’라고 한다. 메뉴에 가격이 붙어있지 않고 계산서도 주지 않고 8,000 짯 나왔다. 내가 노트북을 꺼내서 적으니 컴퓨터 가격을 물어본다. 이백 만 원정도 한다고 하니 기사는 자기 차가 삼백 오십 만원 하는데, 정말 비싸다고 한다. 씨저는 자기가 십오 년 일해야 컴퓨터를 살 수 있다고 한다. 괜히 가격을 알려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과 상실감이 얼마나 클 것인가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졌다. 어제도 저녁 식사를 하면서 우리 보고 자동차를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하느냐고 물었는데, 앞으로 수입과 돈 얘기는 신중하게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나라와 사회주의 국가인 미얀마 생활 수준을 단순히 가격으로 비교하는 건 옳지 않다. 또한 행복이나 만족도는 내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있지 않다.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기업 공장에 근무하는 여공들이 월 20불 정도를 받는데, 그들에겐 아주 높은 수입이고 복지 시설이 잘된 한국 기업이 좋은 직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의 경제 제재나 여러 이유로 감원을 하게 되면 해고된 노동자들이 예전처럼 소박한 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잘못된 길로 쉽게 빠져 사회적 문제가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슴 아프게 다가오던 그 무엇과 비슷한 감정이 밀려왔다.


  다시 배를 타고(일인당 500 짯) Myitnge 라는 작은 강을 건너 잉와로 건너간다. 잉와(Innwa)는 오랜 세월 수도였다. 1364년 따도민뱌(Thadawminbya) 왕에 의해 이곳에서 잉와 왕조가 열린다. 이 시기 고려 공민왕 때로 몽골이 세운 원 나라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다. 미얀마 최초 왕조라고 할 수 있는 버간 왕조(1044-1287)는 몽고의 공격을 받고 망한 상태였다.


강 너머에서는 많은 마차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씨저가 고른 말을 타고 잉와 투어(4,000 짯)를 한다. 찬이는 마부와 씨저 사이에 앉아서 가는데, 마부가 말을 부리는 법도 알려주어 정말 신나게 즐긴다. 뒷자리에 앉으면 그리 편하지는 않지만 따각 따각 하는 말발굽 소리가 경쾌하여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를 끄는 말은 힘이 좋아 다른 마차를 몇 대나 추월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바가야(Bagaya) 사원이다. 티크 나무로 지은 사원인데, 안에 들어가면 아주 컴컴하다. 마루에 쇠못을 박아 놓아 맨발로 걸을 때 조심해야 한다. 안에 교실로 사용하는 공간인지 칠판과 책상이 놓여 있다. 학생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1834년 바지도 왕 시기에 지은 건물로 고대 건축과 조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화재와 지진, 전화(戰禍)를 견디어낸 보존이 필요한 건물로 외벽의 조각도 눈여겨볼 만하다. 바지도 왕은 왕실을 아마라뿌라에서 잉와로 옮겼다.  


 ♣ 이 여행기는 2005년 12월 30일부터 2006년 1월 16일까지 17박 18일 동안 아내 세오녀, 아들 찬이와 함께 가족여행 기록입니다.

환율 1$=1,019.56 원(2005년 12월 30일),1$=1,100-1,150 짯(2006년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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