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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의 기생(妓生)♤

작성자정동진|작성시간26.06.07|조회수36 목록 댓글 0


*3)고려(高麗)의 기생(妓生)

고려사 속에는 많은 기생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임금과 기생, 신하와 기생 ,기생의 출세담 기생으로 말미암아 화를 입은 이야기 등등 고려에는 정식으로 기생이란 계급이 있었으나 이씨 조선 모양으로 그렇게 천대받지는 않았었다.

왕건(王建) 태조가 신라를 정벌하여 고려를 건국하자 강산과 인민이 모두 그에 순종 하였으나 오직 백제의 유민인 수척족이라는 무리들 만이 이에 응하지 아니 하였다.

왕건 태조는 크게 진노하여 그자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관노(官奴) 관비(官婢)로 삼았다.
그리고는 그 중에서 어여쁜 계집을 골라서 기생(妓生)을 삼아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고운 화장을 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이 베푸는 큰 잔치에 노리개처럼 따르게 하였다.

이러한 기록들은 고려 사회 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기생이 고려 시대에 어떤 처우를 받았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기생의 원류는 월왕(越王) 구천(句践)이 선비들을 마음을 사기 위하여 행실이 좋지 못한 과부와 음탕한 여인 들을 모조리 붙잡아다가 산속에 가두어 두었다.

그리하여 벼슬 아치와 선비들이 왕의 정책에 불만을 가지면 그들의 마음을 돌려보고자 산으로 보내어 그곳에 가두어둔 여자들과 함께 마음껏 인생을 즐기게 하였다.
이리하여 그 여자들이 기생들과 같은 존재로 변화해 갔던 것이다.

고려조의 유명한 기생으로 쌍연비(雙燕飞)와 자운선(紫云仙)등이 있었다.
그들은 슬픈 이야기들을 후세에 남기므로써 유명하다.
더욱 임금으로 기생에게 탐홀한 충렬왕 충숙왕등이 고려사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충렬왕 때는 임금뿐 아니라 그 신하들도 기생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남겨 놓았다.

*정통(郑通)이란 사람은 나주(羅州)고을에 현령으로 부임하여 그곳의 소매향(小梅香)이란 기생과의 열렬한 정분의 이야기를 쌓게 되었다.

그후에 임기를 마치고 개성으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작별은 해야겠고 정분은 연연하고 어찌할 수가 없어서 그냥 상경하고 말았다.

그러니 그의 뼈를 깍는 아품과 살을 에이는 그리움은 무엇으로도 표현 할수 없었다.
그는 낮에는 생각으로 밤에는 꿈속에서 소매향을 그리워 하였으나 도저히 나주 천리길을 다시 가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몇달 몇날을 얼빠진 인간 모양으로 대인 접객에 실성한 사람 같았다.

어느날 그는 술에 만취상태로 나그네들이 머무는 객사를 들렸는데, 마침 거기에는 천리마를 타고와 머무는 자가 있었다.
정통은 술이 거나하여 그말을 타고 나주로 달리는 생각에 젖어 있었다.

소매향? 그녀는 여원히 잊을수 없는 나의 애인이 아닌가, 한시라도 그녀를 떠나서 내가 존재 할 수 있는가?
정통은 그날밤 몰래 객사에 가서 천리마 준총을 훔쳐 타고 나주를 향해 달려갔다.
달리는 말에 채찍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잘 달리는 준총(骏聪)은 하루밤 하루 낮만에 펀리길을 달려 나주에 도착하였다.
그는 바로 소매향의 집으로 발길을 옮겨갔다.
"변하기 쉬운 여자의 마음, 나 없는 동안에 혹시 다른 남자랑 통정은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였다."
발자욱 소리를 죽여가며 소매향의 집에 다가가 방문에 귀를 대고 방안의 상항을 엿들었다.

그때 소매향의 긴 한숨소리와 중얼거리는 아름다운 음성이 들려왔다.
"우리 님은 나를 잊고 지금쯤 어디계실까?"
그 말을 들은 '정통'은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바로 내가 여기 있소."
그는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갔다.
'소매향'은 깜짝 놀라며 눈물어린 눈으로 '정통'을 바라보았다.
그날밤 두 사람은 물을 얻은 용이였고 산을 의지한 범이었다.
두사람의 오랫만에 맛보는 운우의 즐거움은 집이 무너질들이 폭풍이 몰아쳤다.
하루밤 몇 날이 꿈같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그대로 세월만을 허송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통은 그의 소생을 업고 소매향과 함께 말에 올라 탔다.
떨어져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기때문이었다.
그들은 거의 개성 부근에 당도하였다.

한편 하루밤 사이에 남편을 잃어버린 부인은 수소문을 하여 보았더니
객사에서 말을 훔쳐타고 남쪽으로 갔다는 것을 알아 내고는 종를 데리고 남쪽으로 남편을 찾아 나섰다.

몇일 후 길가에서 종이 소리쳤다.
"마님! 저것 보세요?
아무래도 서방님 같습니다."
"미친 놈, 눈이 빼었느냐?
미친소리 하지 말아라."
그런데 점점 가까와 오는 말을 탄 사람을 보니 왠 여자를 앞에 태우고 어린아이를 업은 것이 틀림 없는 남편이었다.

"이게 어찌된일이요?"
하고 놀라 물었더니, 남편은 뱃심 좋게 부드럽게 말하였다.
"아무것도 아니요, 세상은 다 장난이라오."
장난 치고는 좀 지나친 것 같았다.


*고려 고종때의 이 안장(李安莊)이라는 사람은 전주(全州)사람으로 기골이 장대하고 기운이 장사였다.
그는 부중에 있는 설화라는 기생을 몹시 사랑하여 두 사람이 정을 두고 지나게 되었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한 관찰사가 기생들을 살피다가 그중에 설화(雪花)가 제일 아름다운 것을 보고는 수청 기생으로 정해버렸다.

그날 밤 이안장은 한잠도 자지 못하고 있다가 속에서 치매는 애정의 불길을 막을 수 없어 선화당(宣花堂) 뒷담을 월담하여 들어가서 고함을 질렀다.

"선화를 빨리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한 칼에 죽이리라", 선화당 안에서는 이미 감사가 설화를 품에 품었으나 벌벌 떠는 설화를 보고 감사도 또한 크게 성이 나서 사령을 시켜 이안장을 잡으라고 명하였다.

이에 이안장은 하는 수 없이 칼을 뽑아 들고 감사의 방으로 쳐어 들어가서 한 칼에 감사를 죽이고 기생 설화와 더불어 그 밤으로 수백여리를 달려 북으로 도망하였다.

이 안장은 바로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고조뻘이 된다.
그들은 덕원 영흥 땅으로 도망하였던 것이다.


*명종때 공부상서의 벼슬로 있던 조원정은 그의 모친과 그의 조모가 모두 기생이었다고 한다.
기생으로 남의 아내 되기는 힘들었지만 기생의 아들이라고 해서 천 대 구박하지 아니한 모양이다.

같은 명종 때 남주의 한 기생이 있었는데 용모와 자색이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그 고을 태수로 있는 자가 그를 총애하였을 것은 다시 말할 여지도 없다.
죽자 살자 하는 정도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다가 태수가 업무가 완료되어 이웃 고을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어느 날 태수는 크게 취하여 기생을 보고, "내가 이웃 고을로 가고 나면 너는 금시 다른 놈의 품 안으로 기어 들터이지?" 하고 시기 섞인 말을 하다가, 이글이글 불타는 질투를 어찌할 수가 없었던지 촛불을 잡아 그 기생의 얼굴을 지져 놓았다.
기생이 뺨에 상처가 나고 얼굴이 헌상궂게 되면 다시는 아무도 그를 탐내지 않으리려니 하여서였다.

그 후 정습명이란 시인이 그 고을을 지나다가 그 기생의 이야기를 듣고 시 한수를 지어 기생에게 주면서, 태수로 오는 사람들에게 이 시를 보이라고 하며 그 기생은 더욱 유명해졌다 한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증기(贈妓)>
-모든기생들에게 드리는 시

百花从裡淡半容
백화총리담반용

忽被狅风減却红
홀피광풍감극홍

獭髓未能医玉頰
달수미능의옥협

五陵公子限無穷
오릉공자한무궁

백 가지 꽃 속에 뛰어난 한 송이꽃 미친바람 불어와서 고운빛 없어졌네.
천하의 이름 난 의원도 내 뺨을 못 고치니, 장안의 귀공자들 한이 또한 끝이 없어라.

고려의 유명한 문장가(文章家) 이규보(李奎報)의 상국집(相国集) 속에는 기생을 노래한 시가 여러 편 있는데 그 속에서 한 수를 초역하면 다음과 같다.

十五女兒颜稍妍
십오여아안초연

呼之使前苦不衰
호지사전고부쇠

白首衰翁何所为
백수세옹하소위

不须多作嬌羞态
부수다작교수태.

열 다섯살 계집애 얼굴이 예뻐라 옆으로 불러도 억지로 못 본척
백발 늙은이가 무근일 있으랴
부끄러워할 일은 조금도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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