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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李朝)의 기생(妓生)♤

작성자정동진|작성시간26.06.08|조회수46 목록 댓글 0


*4)이조(李朝)의 기생(妓生)

신라와 고려를 거쳐 다소 천인(贱人)계급으로 떨어지기는 하였지만 이조(李朝)에 들어서면서 기생(妓生)은 널리 국가적으로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그것은 기악(妓樂)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이다.
기악은 이미 이때 와서는 궁중 상하가 모두 모든 의식에 이것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더욱 궁에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기악을 편성하게 했었다.

고관 대작의 연예에서도 기악은 벌써 없어서는 아니 될 것이 되어 있었다.
이조 초기부터 이 폐단이 심한 것을 보고 간관들이 항상 폐지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임금 자신이 누구보다 더 기악과 안무를 즐기었다.

군왕뿐 아니라 종친들과 고관들도 기생을 가까이 하여 수많은 얘기를 남겨 놓았거니와 임금 자신도 후궁보다는 기생에게 더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성종(成宗)대왕이라면 여색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킨 분이거니와 풍류(风流)를 즐기는 임금으로도 이름이 높은 분이다.
그가 매일과 같이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 그때 그 자리에는 구름과 같이 아름다운 기생들이 모여서 춤추고 노래하고 하였다.

성종은 그 아름다운 많은 기생들의 가무를 완상하면서 연회를 즐기었다.
이때 선전관(宣傳官)에 이모(李某)라는 젊은자가 있었는데 그 용모가 어떻게나 아름다운지 거리에 나타나 다닐 수가 없게끔 되었다.
한편 그가 거리에 나서면 숱한 기생들이 그를 보기 위하여 모여들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듯 아름다운 남성이었다.

어느 날 성종은 궁중에 크게 잔치를 베풀고 기악을 연주하며 군신들이 질탕히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여러 기생들이 모두 한 곳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춤을 추는 기생이나 노래를 하는 기생이나 술을 따르는 기생이나 기생이란 기생 후궁이란 후궁들은 모두 눈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성종은 술을 마시다가 이 광경을 보고 으아하여 측근 신하에게 물었다.
"계집들이 모두 한눈을 팔고 있으니 어이 일인고?"
옆에 있던 한 신하가 다름이 아니라 "선전관 이모가 평소에 얼굴이 미남인지라 계집들이 그곳을 바라보느라 그러는 줄 아뢰요." 하였다. 성종은 자못 유쾌치는 않았으나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그 얼마간 며칠이 지난 후 성종은 또다시 궁중에 잔치를 베풀었다. 기생과 후궁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그 속에서 성종은 한개의 아름다운 부채를 꺼내어, 그 부채에다 비단 넉 자를 이어 가지고 신하들에게 "이 물건을 누구에게 주었으면 좋겠소?" 하고 넌저시 물었다.
그러한 즐거운 연회에서는 임금은 늘 신하들에게 좋은 물건을 하사하는 일이 있었던 까닭이다.

중신들은 옆에서 모두 "아무 에게 하사하오시면 좋겠습니다."
"아무개가 지당한 줄 아요." 하였으나 성종은 한참 있다가 선전관 이모를 불러서 "옛다, 내가 가져라 하였다."
중신들은 모두 놀라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일개의 미관 말직인 선전관에게 하사품이 전해졌다는 것은 파격의 영광이었기 때문이다.
성종은 그 얼굴 잘 생긴 선전관에게 질투를 하기는 하였으나 역시 높은 도량을 보이기 위함이었는지 모른다.

■ 연산군(燕山君)이 황음무도(荒婬無道) 하였음은 고금이 다 아는 바이다.
그는 두 기생을 좋아해서 원각사(圆覺寺)의 중들을 모두 추방하고는 그곳에 기방(妓房)을 설치하고 기생들을 모집하여 노래와 춤을 배우게 하였던 것이다.
연산은 아름다운 기생이면 앞뒤를 분별지 않고 덤벼들어 미친 수캐 모양으로 일을 저지르곤 하였다. 그때 성세정(成世貞)이란 사람이 있어 영남에서 벼슬하고 있을때 상산의 기생과 친하였는데 돌아올 때 그는 정분을 잊지 못하고 데리고 왔다.

연산군은 어느 모임에서 그 기생을 보고는 그냥 빼앗아 버렸다.
그리하여 매일 같이 그 기생을 데리고 놀았다.
어느 날 밤 연산군은 역시 그 기생을 희롱하다가 문득 질투가 났던지, "너 이 년, 성세정이 보고 싶지 않느냐?" 하니 기생이 간드러지게 웃으면서 "상감마마 눈꼽만큼도 그런 생각이 있을 리가 있사오니까. 세정이 소첩을 사랑하기는 하였사오나 본부인이 질투가 심하여 소첩은 세정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녀석을 죽여버릴까?"
"그럴 것까지는 없사옵고 볼기 몇 대 쳐서 귀양 보냈으면 합당할 듯 하옵니다."
그리하여 성세정은 사랑하는 기생 도 빼앗끼고 벼슬도 떼이고 볼기를 맞고 유배 당하였다.

■ 풍류객으로는 양녕대군(镶寕大君)만한 분이 없을 것이다.
그가 왕세자로 있을 때에는 가끔 업무만 파하면 몰래 도망가서 기생방에서 이틀 사흘 씩 밤을 세우고 돌아오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가 후일 거짓 미친체하여 광주(廣州)에 쫓겨가서 있을 때에도 밤에 월장하여 기생방에 뛰어든 일이 있었다고 한다.

후일 세조(世祖)가 된 수양대군(首陽大君)도 힘이 센 분이라 기생을 좋아하였다.
그는 한번 어느 기생집에서 자다가 기생의 정부가 밤중에 문을 열고 들이 닥치는 바람에 할 다급한 나머지 뒷문으로 쫓기어 맨발로 도주 하기 시작하였다.
캄캄한 밤중이라 천방 쥐축으로 엎치락뒤치락 달렸다.
그런데 뒤에서는 기생의 정부가 칼을 들고 따라오고 있는 것이 었다.
그는 하도 급하여 어둠을 타고 길가에 있는 넓은 버드나무에 기어 올라갔다.

뒤쫓던 자는 종적을 잃은 채 혼자중얼거리며 돌아가고 말았다.
이리하여 겨우 화를 면하였으나 숨은 하늘처럼 가빳다.
그런데 한 노인이 밖으로 나오더니 소변을 보다가 문득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자미성(紫微星)이 유성(拗星)을 걸치의 있으니 필연코 군왕이 버드 나뭇가지에 의지하고 있는 형상이라 이상스럽기도 하다 하였다."
나무 위에서 수양대군은 그게 누구인지 귀신 같은 사람이라고 속으로 감탄하였다.

나중에 그를 수소문해 보니 관상감(觀象監)에서 천문을 맡아보는 영감이었다.
수양대군은 후일 임금이 된 후 그 영감을 찾았으나 벌써 그 사람은 죽은 뒤였으므로 그의 자손을 중용하고 후히 상을 주었다.


군왕이 기생과 즐기게 되니 신하인들 어찌 그냥 있을 수 있을까?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젊은 벼슬 아치들은 부임하기만 하면 곧잘 어여쁜 기생들과 정분을 나누는 것이 다반사였다.

다음 이야기는 그러한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자기가 가장 도학자(道学者)인 체하고 기생을 멀리 하려다가 봉변을 당하고 기생과 친하게 된 이야기다.
최세영(菜世英)이란 자는 서울 한림원(翰林院)에 있다가 책을 말리는 실록(實錄) 포쇄관(曝晒官)으로 진주에 부임케 되었다.

그는 미리 떠나기 전에 각 고을에 통첩하여 "내가 지나는 곳에는 여색을 멀리할 테니 그리 알아라" 하는 격문을 보냈다.
그가 지나는 고을에서는 과연 젊은 포쇄관 이지만 장한 일이라고 모두 칭송이 자자하였다.

진주에 부임을 하였다.
여러 달 동안 묵어야 하는 것이다. 여름에 책이 곰팡이가 날까 저어하여 책을 말리는 책임을 맡은 까닭이다.
포쇄관은 무료하게 객사에 머물며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여름이라 장마철로 접어 들어 더욱 심심하게 되었다.

진주 부윤은 슬기 있는 사람이어서 어느 날 그의 부하 부장을 불러 "한양서 온 손이 장마에 무료할 텐데 그 여색을 멀리 한다지만, 주인된 인사에 그럴 수가 있느냐.
어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소인이 생각해서 처리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심심치 않도록 하여 드리게."
"알았사옵니다."

그 후 어느날 포쇄관이 머물러 있는 객사 앞에서 소복한 젊은 여인이 절구로 방아를 찧고 있었다.
젊은 포쇄관은 문을 열고 엿보다가 문득 그가 절세 미인인데 놀랐다.
다시 보고 또 보다가 이윽고 통인을 불러 물었다.
"대체 저 여자가 왠 여자이냐?"
통인이 아뢰었다.
"한양 김참판 댁 종년이 온대 부친상을 당하여 마침 집에 와서 있는 중입니다."
"허! 그래....."
"백일이 내일 모래입니다.
친가에서는 백일이 지나면 탈상을 한다고 합니다."
"응, 그래! 한번 불러 줄 수 없을까?"
"남들이 알게 되면 어찌 하여야 할 까요?"
"너하고 나하고만 알자꾸나."

이리하여 그 아름다운 기생은 밤중에는 와서 자고 새벽이면 물러가고 하기를 여러 날이 지났다.
그 속내를 알고 있는 진주 부윤이 하루는 크게 잔치를 베풀게하여 한양의 실록 포쇄관도 잔치에 나아가서 부윤과 함께 술을 마시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 밤마다 와서 수청드는 종이라든 여자는 종이 아니고 기생이었다.
화려하게 치장한 기생은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다.
부윤은 파한 대소하였고 한양 손도 또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부터는 드러내 놓고 수청을 드리게 되었으며 여인은 애교와 아양이 더욱 심하여졌다.

두 사람은 정분이 날 때로 났다.
그러나 여름 한철이 지난 후 포쇄관은 한양으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실록 포쇄관은 기생가의 정분이 그렇게 깊은 줄을 몰랐다.
더욱 영남의 기생은 인정이 두터웠다.

그는 진주를 떠나던 날 눈물의 바다를 이루고 처음 오던 때와는 달리 진주를 잊을 수 없어 깊은 슬픔에 잠기는 것이었다.

■ 유운(柳云)이란 사람은 본시 성격이 호협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암행어사의 어명을 받아 공주에 행차한 일이 있었다.
본시 어사란 임금의 명령을 직접 받은 몸인지라 지방관들은 어사만 만나면 벌벌 떨었다.

위풍도 위풍 이려니와 자신들의 죄책이 탄로 날까 걱정이 되어서였던 것이다.
유운은 기력이 절륜한지라 공주 객사에 머무는데 수청 기생의 생각이 간절하였지만 공주 군수는 그런 것을 짐작하기는커녕 전전 긍긍할 뿐이었다.

하룻밤을 무료히 지낸 유 어사는 자던 방 벽이다 글 한 수를 지어 써 붙였다.

公州太守却威棱
공주태수각위릉
御史风情識未曾
어사풍정식미증
客舘無人消永夜
객관무인소영야
南来行色淡如僧
남래행색담여승

공주 고을 태수는 겁쟁이가 분명하다.
어사의 풍류를 알아주지 못하도다.
텅빈 방 긴긴밤에 외론 손 홀로 새니.
남쪽 길 떠난 행색 중보다도 맑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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