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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国妓) 설매(雪梅)♤

작성자정동진|작성시간26.06.09|조회수41 목록 댓글 0


1)국파산하재(国破山河在)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차츰차츰 주위의 사람들의 성하에 못 이겨 어찌할 수 없이 딴 뜻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본시 활을 잘 쏠 뿐만 아니라 말을 잘 탔다.

그가 원하는 목표에 활을 당기어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그는 일찍이 안변 부근 설봉산(雪峰山) 토굴 속에서 신승(神僧) 무학대사(無学大师)를 만나서 꿈 풀이를 들은 후부터 더욱 군왕이 되기에 힘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무학은 무엇이라 하였던가 "낡은 집에서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나온 것은 분명히 임금왕자(王字)였고, 천집에 닭이 한꺼번에 울었다 하오니 그것은 고귀위(高贵位)에 해당하오며, 꽃이 떨어졌다 하온니 불길한 듯 하오나 꽃이 떨어지면 열매가 맺는 법이 오이다.
또한 거울이 떨어져 깨어졌다 함도 파경지탄(破鏡之嘆)이 아니옵고 경파기무성(鏡破豈無聲)으로 큰 소리 한번 낸다는 뜻이오이다.
어찌 그것뿐이 오리까?
자세히 뵈오매, 얼굴에 군왕에 상호(相好)가 분명 하오니, 몸소 덕을 닦고 지혜를 쌓아서 스스로 노력하시오면 모름지기 삼천리 강토의 주인이 되실 것이 오이다."

그리하여 이성계는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는 대군을 이끌어 압록강 위화도까지 진출하였으나 당시에 조선의 힘으로는 무모한 짓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깨달은 그였는지라 최영(崔營)과 우왕(禍王)을 두려워하여 멈칫거리는 조민수(曹敏修)를 달래어, 위화도 회군(回軍)이란 군사 행동을 전개하여 송도에 들이 닥치면서 최영을 잡아 귀양을 보내고

우왕을 강화도로 유배시킨후 창왕(昌王)을 봉하였다가 모두 마침내 무참하게 죽이고 말았으며 아들 방원의 적극적인 협력에 의하여 그렇게도 겁을 집어 먹고 결행치 못하던 포온 정몽주의 타살을 결행하고는 드디어 송도 수창궁(寿昌宫)에서 군신 상하의 추대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스스로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이보다 앞서 송도의 궁중에서는 우왕이 또한 풍류를 좋아하여 기생들을 길러 나날이 기악을 잡으며 연회를 베풀고 질탕하게 놀았다.

그 자리에는 고려 일대의 명기(名妓)로는 연쌍비(燕雙飞) 봉가이(加伊) 등이 출중한 기생들과 함께 국기(国妓) 설매(雪梅)도 함께 있었다.

연쌍비는 고려조 500년 동안 비견할 수 없시 몹시 아름다운 인물로서 그를 둘러싼 슬픈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그들은 모두 우왕의 총애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다.
봉가이도 그렇고 설매도 또한 그러했다.
단 한 번 임금한테 몸을 허락한 후로는 다시는 다른 남성에게 함부로 정조를 제공하는 그들이 아니었다.

설매는 눈 설자와 매화 매자라 눈 속에 피는 매화 모양으로 날카로운 지조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밝은 밤이었다.
우왕은 일부러 후궁과 처첩을 모두 따돌리고 설매가 머무는 방으로 들어섰다.
설매도 반가이 우왕을 모시었다. 젊은 왕은 후궁 따위의 너무나 단정함과 황후에 너무도 품위와 규율있음에 싫증을 느낀 모양이었다.

설매는 마음대로 자유스러웠다.
주무르고 싶을 때 마음껏 주무를 수 있고 어루 만지고 싶을 때 마음껏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이 기생이요, 더욱 아름다운 삶이었다.

그날 밤 우왕은 설매와 하룻밤을 밝히면서 슬픈 낯을 변하지 않았다.
"상감마마 얼굴빛이 좋지 않사와요."
"이 나라의 운명도 나의 얼굴빛 처럼 오래지 않을 것 같구나."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그럼 어떡하니, 그 이시중(李時中)의 눈자위가 나는 매일 무서워 죽겠다."
"그러하오이다. 소첩들도 그러하옵니다."
"걱정이다. 나라의 앞날이..."
"너무 상심치 마시옵소서."
우왕은 그 후에도 자주 설매의 처소를 잊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우왕의 신색은 한층 더욱 좋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이성계는 점차로 도당을 모아 가지고 왕성의 모든 부문을 자기 수족의 사람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한편 실력을 기르는 모양이었다.

그 후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이성계는 도당의 추대로서 송도 수창궁에서 보위에 올랐다.
모든 신하들이 그를 떠받들어 임금을 삼은 것이다.
송도 왕씨의 500년 사직은 무너지고 이씨 왕조의 창업이 시작된 것이다.

많은 신하들이 왕씨에게 충성(忠诚)을 다하느라고 이씨 창업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또한 그 가운데는 많은 고려의 신하들이 새로운 정부에 아침하여 벼슬을 얻기에 눈이 어두운 자들이 우글우글 하였다.

설매는 비록 왕씨 멸망과 함께 죽지는 못하였으나, 꽃 피는 아침과
달 밝은 밤이면 생각나는 것은 왕씨조의 화려한 생활 들이었다.
비록 나라는 멸망하였다 하더라도 산하는 어제 그대로였다.

그 옛 그대로의 산하에서 인간들은 또한 새로운 역사들을 창조하노라고들 하지만 설매가 보기에는 모두 억지요 패륜이요 강제인 것 같았다.
더욱 때나 만난 듯이 어저께까지 왕씨 조정의 벼슬하던 자들이 이씨 조정에 아부 하며 교태를 부리는 꼴이란 눈 뜨고 볼 수 없는 것이 었다.
설매는 그러한 무리들을 언제든지 한 번은 골려주리라 생각하였다.

스스로 고려 왕씨의 천하를 돌이킬 수는 없으나 멸망한 왕조에 대한 연연한 정회와 우왕에 대한 연연한 사모는 설매로 하여금 스스로 굳은 정절을 지탱케 하였던 것이다.

이태조 원년 임신(任申) 칠월 십육일이었다.
이태조는 고려의 왕업을 찬탈하였지만 그것은 하늘이 그에게 큰 권리를 부과한 것이라 믿고, 군신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다.
등극(登极)을 축하하자는 것이었다.

개국공신(開国公臣)이 열을 지어 둘러앉았다.
모두 고려 왕씨조를 타도하는 데 있는 힘을 다 기울인 부하맹장(部下孟将)들이다.
정도전(郑道傳) 하륜(河崙) 남은 (南誾) 배극렴(裴克廉) 조영규(趙英珪) 등이 기타 여성처럼 모였고 그 다음 급의 공신 명색이 무수하였다.

만조 백관이 늘어 앉고 명기(名妓)와 사창(私娼)들이 구름처럼 모였고 풍류를 연주하기 위하여 모든 풍악이 마련되었다.
그날은 마침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이 부드러워 하늘도 이성계 일당을 축하하는 듯 하였다.
그렇듯 문무백관이 시립한 속에 곤룡포에 익선관으로 위엄을 갖추고 궁녀(宫女)들의 부축을 받은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1. 배정승(裴政承)을 조살(嘲刹)하는 설매(雪梅)

태조 이성계가 자리에 앉으니 개국공신들은 국궁하여 허리를 굽히고, 왕년에는 고려조에 같은 신하로서 똑 같은 지위에 있던 태조 앞에 머리를 조아리었다.

흰 수염이 이미 반백을 훨씬 넘긴 이성계는 자못 만족 스러운 듯, "짐이 부덕하여 아무런 위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등이 짐을 보필하여 새로운 국가를 창건하고, 짐으로 하여금 강산과 백성을 다스리게 하니, 비록 짐이 덕과 재주가 부족하더라도 경들은 짐을 버리지 말기를 바라오.
오늘은 피차의 지위의 고하나 군신의 차별 없이 한번 소탈하게 마음음 놓고 즐기도록 하시오.
그러면 자, 모두 축배를 들어 무궁한 앞날을 빌기로 합시다."
말이 끝나자 누가 입을 열었는지, "만수 무궁을 축원하나이다."
하여 일제히 축배를 올리었다.

연이어 아악(雅樂)이 울리면서 은은한 오음육률이 회장내를 흔들었다.

모든 것이 이씨 왕조의 창업을 축하하지 않은 바 없는 것 같았다.
하늘도 땅도 산천초목도 모두 새로운 임금과 그 강토와 백성을 축복하는 것 같았다.
무희가 춤을 추고 기생이 노래를 불렀다.
개국공신들은 어깨 바람이 절로 났다.

모두가 자신들이 고려 왕조를 때려눕힌 힘과 피의 공로에 의하여 이루어진 오늘의 향연이 아닌가, 미약한 자들을 물리치면서 억센 경륜과 강철 같은 의지력과 백절불굴의 투지와 이따금 꺾이는 마음들을 달래어 오늘의 부강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 아닌가?

부귀와 영화의 모든 환락이 이곳에 있고 영달과 공명과 입신 출세가 모두 이곳에 있지 아니한가?
개국공신들의 어깨 바람은 훈훈한 여름의 남풍 모양으로 더 한층 흥이 나 있었다.
어찌 흥그럽지 아니할 수가 있겠는가?

더욱 태조대왕은 무어라 하였는가?
"짐이 오늘의 영광을 얻은 것은 모두가 경들에 힘 입은 바인바 비록 짐이 부덕하나 짐을 도와 창업과 공을 세우기를 바라노라."
어찌 어깨바람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욱 저 수많은 미희(美姫)들의 춤과 노래와, 그 뒤에 따르는 마음대로의 향락!
오늘 밤은 실로 영광과 환락과 꿈과 향기의 향연이 아니고 무엇이다?

천하를 얻은 뒤에 모름 지기 미인을 얻는 기쁨!
그것은 장부(丈夫)의 한 평생을 그것 이상의 것으로 아름답게 할 수 없는 그러한 것이었다.
도도한 취흥이 군신 상하를 모두 불그레스레한 얼굴들이 되었다.
아름다운 풍악이 다시 연회를 들뜨게 하였다.

• 설매(雪梅)는 눈물이 핑하고 돌았다.
인간의 영고성쇠(榮枯盛衰)가 이러하기는 하겠지만 실지로 당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今日漢宫人
금일한궁인

明朝胡地妾
명조호지첩

오늘은 한나라 궁궐의 아름다운 여인이
내일은 오랑캐땅의 징그러운 첩의 신세로 구나.

왕소군이 오랑케국에 가서 신세를 한탄하면 지은

'소군원행곡(昭君怨行曲)'의
금밤한궁인(今宵寒宫人)
명조호지첩(名朝胡指妾)

오늘밤 오랑캐궁에 사는 사람이
아침에 부르는 이름은 나를 첩이라 부르네.

라는 왕소군의 신세를 비유하며 모진 목숨을 끊지 못해 살아 있는 설매의 신세였다.

지역의 도성을 함락시킨 무장병들 모양으로 제 각기 오늘 저녁은 어느 놈의 품이 떨어질지 모르는 서글픈 신세 고려 왕씨의 참혹한 최후도 보았거니!

실로 이성계는 잔인 무도하다고 할까?
왕씨란 왕씨는 모조리 죽이다가 어쩌다 살아 숨어 있는 왕씨들 마저 없애기 위하여, "큰 섬을 통채로 그대들에게 주어 살도록 할 터이니. 아무날 아무 시에 아무 바닷가에 모여라" 하여 놓고 모인 남녀 노소 모두를 배에 싣고 바다에 나아가 배 밑창을 뚧어 모든 왕씨는 수중 고혼이 되게 하지 않았는가?
설매는 그들의 잔인성을 안다.
잔인하다 못하여 포악해진 것도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제 갑자기 정치 죄인들의 대사령을 놓고 마음껏 술을 마시고 호호 탕탕해봐야 그 뱃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것이 었다.
엊그제 같이 고려 조정에서 모두 벼슬하든 벼슬 아치들이 오늘은 이씨 조정에서 또다시 환락에 잠기고 있는 그들!

수심에만 잠겨 있을 수도 없는 설매였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하늘 높이 흐르는 가락이 구름 속으로 스며드는 맑은 음성을 가졌고, 꿈을 잡는 눈매가 환상을 더듬는 춤이었다.

옆에서 설매의 이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오늘의 개국 공신의 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일개의 풍류남아(风流男兒) 정승(政承) 배경염(裴克廉)이었다.

배경염은 풍류를 좋아하고 더욱 여색을 즐기기 좋아했다.
설매의 나약한 모습이 가련하도록 어여쁜 데다가 그 춤과 노래가 그를 유혹하고 말았던 것이다.
설매는 벌써부터 배정승에 음탕한 눈짓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그가 이성계를 도와 무서우리만큼 지혜를 지어 짜서 고려 왕실을 멸망시키는 데 가담하여 오늘은 최고의 개국 공신으로 정승이 된 인물인 만큼 그저 알아도 모르는 체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배정승은 춤추는 설매를 옆으로 오라고 하였다.
배정승 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배정승이 음흉한 얼굴과 설매에 곧고 어진 모습과를 비교해 보는 것이었다.
살포시 모시 치마를 감싸고 배정승 옆에 앉은 설매의 자태는 문자 그대로 눈속에 매화임이 분명하였다.
배정승은 술을 따르라 하여 설매가 따라준 술을 몇 잔 꿀꺽꿀꺽 받아 마시었다. 술 맛도 단듯 하였던 모양으로 그는 설매의 아름다운 눈을 뚫어져라 하고 바라보았다.

아마 속으로, "너는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오늘 저녁은 내 수청을 들어야 할 것이다.
어찌 정승이 된 나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을까 보냐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배정승은 설매의 손을 꼭 잡았다. 설매는 뿌리치지는 아니하였으나 속으로는 이자를 한번 골려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자 배정승은 혼연희 입을 열어, "어떠냐 설매! 오늘 저녁은 나와 함께하는 것이 좋겠지?"

아무 대답도 없는 설매의 태도를 보자 배정승은 아마도 자기가 마음에 없어 저러려니 짐작하고 설매를 설복한답시고, "본시 기생이란 노류 장하이지..... 노류장화란 옛부터 오늘은 이가와 내일은 장가와 다음은 박 서방과..... 으하하하! 그렇지 않은가?
설매 오 나의 설매....."

설매의 눈이 살짝 일그러졌다.
입술마저 바르르 떨리는 듯 하였다.
그리고는 이내 배정승을 향하여 입을 열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설매의 입만 쳐다보았다.

"황송하오이다.
고려 왕씨를 섬기시다가 조선의 이씨를 섬기는 대감께서 장삼 이사를 낭군으로 하는 소첩을 사랑하시겠다 하오니 황공하오이다.
어이 받들어 모시지 못할 바이겠습니까?"
옆에 있던 모든이들은 벌벌 떨며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모두 송곳 방석에 앉을 듯 하였다. 장삼 이사와 왕씨와 이씨와 무엇이 다르다는 말이냐?

이윽고 무한을 당한 배정승은 속으로 "요년 어디 보자!" 하였지만 점잖은 처지에 바로 보복을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설매의 발언이 당연히 맞는 말인 바에야 무엇이라고 흠잡을 수도 없었다.
공연히 자신의 치부만이 더욱 더해질 뿐이었다.

이윽고 백극염은 얼굴빛이 주홍빛이 되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설매는 십년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것 같은 통쾌함을 느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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