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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양녕대군(讓寕大君)과 정향(丁香)

작성자정동진|작성시간26.06.16|조회수34 목록 댓글 0


(2)양녕대군(讓寕大君)과 정향(丁香)

그 이튼날은 감사의 안내로 평양을 둘러 보았다.
고도 평양의 온갖 풍물은 상춘객의 눈을 끌기에 충분했다.
양녕은 술도 계집도 없는 평양이었지만, 밤만되면 새로운 기쁨이 그를 유혹하였다.
정향의 보드라운 육체였다.

"나날이 정은 깊어만 가고.....평양성의 봄도 깊어만 가고....."
밤이 깊도록 기다리다가 홀연히 나타나곤하는 양녕을 정면으로 바라 보지도 못하고 다소곳이 수그린 아미 아래, 수줍은 교태가 아직도 처녀 같은 이 아름다운 여인 앞에 귀공자인 양녕은 그만 홀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룻밤이 가면 하룻밤이 더해 가며 깊어지는 정분 양녕은 이별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질 뿐이 었다.
"나으리가 돌아가시는 날엔 소녀는 한양 구경을 하겠읍지요?"
양녕에게는 가슴을 여미는 정향의 발언이었다.
그러나 양녕은 , "정향아! 이제 내가 너를 범한 것은 우연히 한 것이었지만, 이번 유람에 주상이 주색을 삼가하라 하시었으므로, 너를 체면상 한양으로 데려갈 수 없는 몸이다.
함께 지낼 수도 없는 처지에 한양에 같이가면 뭣하겠느냐?"
실로 마음 아픈 말이었다.

가만히 듣고있던 정향이 고운 입을 열었다.
"나으리, 소녀는 어떡해요?
절개나 훼손하지 않았다면 지하에 가서 선부(先夫)나마 만난다고 하겠으나 이렇게 지조까지 지키지 못하였으니 그리 할 수도 없고, 나으리 한테서까지 버림을 받으면 살아서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나으리 , 왜 소녀를 훼절(毁節)케 해 놓으셨습니까?"
양녕은 할 말이 없었다.
"나도 처음엔 일시적으로 관계를 맺었지만 지금은 네게 깊은 정이 다 들어서 떨어 질 수 없는 몸.....
기막힌 운명이다."
이제는 일시적인 객지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든 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뗄여야 뗄 수가 없었다.
양녕은 한숨만 쉬고 정향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하루 이틀 세월은 빨라서 평양서 더 묵으려야 이제 핑계도 없어진 어느 날 밤 최후로 남은 하룻밤을 양녕은 정향을 찾았다.
정향도 이제는 울기만 하는 그러한 어린 소녀는 아니었다.
"이번 가시면 영원한 이별이올시다 그려?"

"성천 갔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리마."
만약 관가에서 무너진 담을 쌓으면 어찌 합니까?"
"관가에서 그렇게 그런 일에 성의가 있다더냐?"
"장담이야 할 수 있아옵니까?"
"요행히 담이나 쌓지 않으면 다시 한번 뵈 올 날이 있겠지요마는, 그렇지 못하오면 이 길이 마지막 길이오니, 무슨 신표라도 하나 주셔야 기념이 되겠습니다."
"객지라 무슨 값진 물건도 없고....."
"소녀를 무슨 창부나 기생으로 아시나요?
나으리의 마음을 표시하신 시 한 편이라도 써 주신다면 소녀의 원이 풀리겠나이다."
"지필묵을 가져오너라."
"종이는 찢어지는 법이 오니 제 치마 폭에 써 주시오면 두고두고 나으리를 뵈온 듯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양녕은 그 말에 눈물이 앞을 가리었다."
정향도 울고 있는 것이었다.
정향이 먹을 가는 동안 양녕은 시를 생각했다.
그리하여 붓에 진한 먹을 듬뿍 찍어 정향의 치마폭에 한 편의 시를 쓰기 시작했다.

一别音容两莫逅
楚臺何處覓隹期
粧成斗屋人誰見
眉斂深愁鏡獨知
夜月不须窥綉枕
曉风何事卷羅帷
庭前幸有丁香樹
盍把春情强折枝

그대 한 번 작별하니 만날 길 아득하구나
초대 어느 곳에 아름다운 기약 찾으리
옛 단장 잊지 않고 차리건만 누가 이를 보리요.
눈썹이 깊은 근심 앞에 거울 홀로 알리로다.
달빛은 수놓은 베개를 엿볼 것인가
새벽 바람 부질없이 휘장을 흔드는데
담안에 오직 정향나무 한 그루 심었거늘
새 정을 맺어 한 가지를 꺾지 않으리.

시를 다 쓰고 붓을 놓으려던 양녕은 넘치는 연심을 다시 쏟아 놓는다.

别路春云散
離亭片月鈞
可憐轉輾夜
誰復慰香愁

이별 길 서럽다 구름만 아득하고 여이는 정자 위에 조각달만 어리었다.
한 밤 내 잠 못드는 괴로운 몸.
뉘 있어 이 수심을 위로해 주리.

실로 이별의 밤이었다.
그러한 밤엔 남녀가 모두 잠이 오지 않는 법이니, 더욱 정많은 양녕이 어찌 잠이 올려 있겠는가?
정향은 이 밤이 마지막 밤이라고는 생각지 않으나, 그러나 잠은 오지 않는 밤이 분명하였다.
젊은 남녀가 상사에 들뜬 밤을 그대로 세워 밝히는 것은 욕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뜬 눈으로 새벽이 오기까지 꼬박 밤을 밝혔다.

양녕은 새벽이면 담을 넘어가는 습성도 오늘이면 마지막이려니 생각하니 다만 기운이 없어지고 앞이 캄캄하였다.

성천에 온천탕에서 여러 날을 묵으면서 푹 쉬는 동안에도 양녕은 평양 생각으로 해서 앞이 캄캄하였다.
옥으라들듯 온 몸을 엄습하는 것은 정향의 향기 어린 모든 것이 었다.
그 모든 것은 향 아님이 없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모두가 향기 그윽한 것 뿐이었다.
아스름한 눈, 뾰족한 코, 어글어글한 얼굴에 전체, 모두가 향기 아님이 없거니와 더욱이 양녕으로 하여금 뼈가 어스러지게 아프게 한 것은 밤 잠자리였다.

그는 새로운 것을 정향에게서 무진장으로 발견하였지만 잠자리에서 더욱 향기 높은 것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부왕의 미움을 일부러 사기 위하여 가진 음탕 한 재주를 다 부려보았지만 정향과 같은 여자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별은 떠날 때가 아름답다고 하거니와, 떠날 때보다는 떠나고 난 후가 더욱 괴롭고 아픈 것이다.
성천 강선루(降仙樓) 구경을 다 하였으나,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구경이었다.
양녕은 곧 성천에서 평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객사에 묵던 날 밤 밤중이 되자 그는 이웃집으로 통하는 담을 넘으려고 하였지만 담은 누구의 손에 의해서인가 벌써 보수되어 있는 것이었다.
"격강(隔江)이 천리라더니 참으로 강이 가는길을 막으니 천리로구나."
그는 길이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열병 환자처럼 밤새도록 정향을 불렀지만 정향은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그 이튿날 양녕을 한송하는 잔치가 베풀어졌다.
그러나 그러한 것보다 양녕에게는 "오늘 밤에는 기여코 담을 넘어 정향의 집으로가 보리라" 생각하였다.
그날 밤, 밤이 이슥해지자 양녕은 용기를 내어 마치 도적 모양으로 담을 뛰어넘었다.
그러한 기운이 이 귀공자에게서 어떻게 솟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한숨에 치솟은 담을 뛰어넘었다.
"?"
이것이 어찌 된 영문인고?
정향의 집은 일개 폐옥이 되어 버리고 말지 않았는가?

방으로 들어가 보니 아무것도 없고 정향과 온갖 애정을 희롱하던 방 안에는 먼지만이 더께 더께 앉아 있었다.
그것은 도깨비에게 홀린 것을 방물케 하였다.

"아아! 성천으로 떠나던 날 밤이 영원한 밤이었구나!"
그는 꺼지는 한숨을 거듭하면서 도로 담을 넘어 객사로 돌아왔다.
감사의 전송을 받으면서 쓸쓸히 평양을 뒤로 하고서 한양길을 재촉하는 양녕이 심회는 천갈래 만갈래 흩어져 산란했다.

양녕은 한양길을 재촉하면서도 한숨과 슬픔으로 그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진실로 너무나 짧은 인연이면서 너무도 깊은 인연이었다.
사지 오체가 녹으라지듯 아쉬운 인연이었다.

3)초대하처(楚臺何處) 멱가기(覓佳期)

세종대왕은 형님인 양녕이 한양 으로 온 것을 환영하기 위하여 종로까지 거동을 하였다.
길가에서 동생인 왕이 오는 것을 바라본 양녕은 황급히 수레에서 내려 왕 앞에 이르렀다.

왕도 수레에서 내려서 형님의 손을 잡았다.
"오랫동안 전하 무양하셨는지요?" "형님 오랜 객고에 별일 없었사옵니까?"
왕은 형을 환영하기 위하여 경회루에 큰 잔치를 베풀었다.
왕은 측근의 신하 몇몇만을 불렀다.
오랜 여로에서 피곤한 형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왕은 몸소 형인 양녕에게 술을 권하였다.
오래간만에 궁에서 먹는 술은 그대로 신선이 마시는 꿀맛이었다.
한참 있다가 은은하게 아악이 울려 나왔다.
기녀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 소리가 이상하였다.
양녕은 희미한 술 기운이었지만 어디서인가 무슨 기억이 소생됨을 느끼었다.

粧成斗屋人誰見
眉斂深愁鏡獨知
夜月不须窥綉枕
曉风何事卷羅帷

양녕은 귀가 번쩍이면서 술이 확 깨었다.
그날 밤 성천으로 떠나는 날 마지막날 밤에 정향에게 써주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그는 귀를 의심하였다.
이것이 웬일이냐?
참으로 야릇한 일이었다.
조금 있다가 또다시 들러오는 은은한 음악 소리 노래 소리!

庭前幸有丁香樹
盍把春情强折枝

한 귀 한 절도 틀림없는 자기의 시였다
양녕은 이상하였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금 노랫소리를 경청하였다.

别路春云散
離亭片月鈞
可憐轉輾夜
誰復慰香愁

한 자 한 귀도 틀리지 않고 자기의 시와 맞는 법이 천하에 있을까?
우현한 일이라 해도 이렇게 들어맞는 법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정향에게 써준 자기의 글을 정향과 자기밖에 모르는 글이었다.
양녕은 이상하게 생각은 하면서도 더한층 정향을 연모하여 어두운 얼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녀들의 춤과 노래가 또 시작되었다.
우울해하는 형을 보자 세종은 "형님 한잔 드시지요" 하고 술을 권하였다.
"항송 하옵니다."
양녕은 다시 술잔을 들고 기녀들을 바라보았다.
왕이 옆에만 있지 않았더라면 고함을 지를 뻔하였다.
분명 그녀는 정향이었다.

그 치맛자락에 그 글이 아직도 선연한 그의 시였다.
정향은 힐끗 한 번 양녕을 보고는 미소마저 띄우지 않은가.
그리고는 한 옆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녕은 웃을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전부 탄로가 난 모양이다.'
양녕은 왕 앞에 국궁 부복하였다. "신이 전하를 기만하옵고 평양에서 미색을 보았습니다."
말이 떨리어 나온다.

세종이 말했다.
"형님이 죄는 아니올시다.
제가 사죄해야 될 일이 올시다.
형님을 보내고 가만히 생각하니 서경 산수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여도 형님의 객회를 도울 자가 없으면 무엇 하리까?
그리하여 평안 감사에게 밀지를 내려 형님을 속였습니다.

군자의 도리로서 이런 일이 잘못된 줄 아오나, 형님의 여정에 만 분지 일이라도 도와드렸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세종은 양녕을 서경으로 보낸 뒤에 평안 감사에게 부탁하여 한 미색으로 형님의 여정을 도읍되 비밀리하라 하여 감사는 관내 기생에게 일을 부탁하였더니 정향이 자청하고 나섰다.
정향은 앞의 말한 수단 방법으로 양녕을 포로로 하였던 것이다.

양녕은 자기 혼자만 아는 비밀이거니 하였지만 정향의 입을 통하여 감사에게 감사를 통하여 왕에게 그리하여 왕은 손바닥 위에 놓고 보듯이 형님의 일거수일투족을 환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양녕이 시를 써주고 긴 치마폭을 감사의 손을 거쳐 왕께 보내줬고 양녕이 성천에서 정향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 정향은 감사의 편지를 가지고 한양으로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세종은 정향을 시험하여 보니 어여쁘고 총명하여 형님에게 주어도 손색이 없음을 확인한 다음 양녕의 이별시를 악부에 내려서 작곡하게 하였던 것이다.

양녕은 그러나 얼굴이 뜨거워 왔다.
왕은 양녕을 위로하였지만 양녕은 겉으로 그럴 수 만은 없었다.
양녕은 전하의 엄명을 거역하였습니다.
전하를 속인 죄는 무엇으로 변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세종은 형을 위로하여 다시 "허물은 절반씩입니다.
아직 젊으신 형님에게 주색을 삼가라 한 것부터가 나의 실수입니다. 형님은 내 말씀을 잘 지키어.
가시는 곳마다 술을 잡숫치 않으신 것도 천만 고마운 일이 온대 어찌 천리마저 역행하기를 바랄 수 있습니까?
오늘 잔치는 형님을 위한 잔치입니다.
그동안 몰래 보시던 정향을 이제는 펼쳐놓고 보시도록 하는 잔치입니다.
걱정마시고 마음 편히 놓으십시오 정향을 자리에 불러 술을 따르게 하니 양녕의 가슴은 터질 듯이 기뻤다.

세종은 이날 잔치가 파한 후에 특별히 양녕에게 사저 하나를 하사 하시었다.
어두워 오는 황혼 대궐의 잔치도 끝이 나고 양녕은 정향을 데리고 하사한 새 집으로 나왔다.
정향은 이날 따라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나으리 용서하십시오."
양녕은 노한체 "용서할 수 없다.
시골뜨기 아내자로 왕 형을 함부로 속이는 법이 있을까?"
나리야말로 군왕을 속이셨는데 용서받지 않으셨습니까?
"상감마마가 후덕하신 까닭이지만 나는 그렇게 후덕 할 수가 없구나." 양녕의 가슴은 천하를 얻은 것보다도 더 터질 듯이 기뻤다.

그날 밤은 이별이 밤이 아닌 합환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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