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机智)의 왕녀(王女) 소춘풍(笑春风)
1)호방(豪放)한 성종대왕(成宗大王)
역대 임금 가운데 성종이란 임금만큼 호방하고, 무애하고, 사통팔달한 임금은 없을 것이다.
그는 한 평생 연애도 많이 하였거니와 좋은 일 궂은 일을 여간 많이 한 임금이 아니었다.
실로 그는 국량과 식견이 넓은 임금이었다.
한 번은 역적모의 하다가 발각되어 키가 크고 험상 굽게 생긴 어떤 사나이가 일미도당과 함께 붙들려 들어왔다.
성종은 긴급한 보고를 듣고, "역적모의한 일을 조사하려면 공연히 애매한 사람들도 끌려 들어가는 법이어든, 또한 가혹한 형벌에 견딜 수 없어 거짓을 토설하는 일이 왕왕히 없지 않아 있는 노릇이니, 잘 알아서 처리하라.
그리고 임금 노릇 하려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인데 다른 사람들은 다 허욕에 들떠서 그렇게 된 것이니 모두 한떼의 과오니라.
다 석방하고 죄수 한 사람만 여기 나 있는 곳으로 불러오너라."
성종은 그 역적 죄수를 자기가 거처하는 궐내로 불렸다.
그리고는 내시 두 사람만 남기고 모두 나가라 하였다.
기골이 장대하고 용력이 절륜한 그였으나 임금의 지척에 오니 고개가 절로 수그려졌다.
성종은 그를 보고 웃으면서 타이르듯이 말했다.
"왕의 종자가 어디 따로 있겠느냐? 성즉 궁왕이요 폐즉 역적이다.
너의 저지른 일은 사내 대장부로서 함직한 일이다.
네가 차지하고 싶은 자리는 바로 이 자리다.
나는 다만 나 홀로만 이 자리를 지키겠다는 협량은 아니다.
네 자격이 능히 썩 잘해 이 자리를 지킬 만 하면 나는 서슴없이 네게 이 자리를 내어주겠다.
우리 함께 한동안 지나면서 네 천품을 알아보아야겠다.
역적이라 하여 절대로 죽이진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나와 같이 있어보자.
만일 네가 나보다 하늘의 자질이 영특하다면 내 이 자릴 서슴없이 내어주겠다.
그리곤 역적에게 곤룡포에 익선관을 똑같이 해주고 용상 하나를 더 마련하여 함께 사.오일을 같이 거처하게 하였다.
역적 괴수는 매 한 데 맞지 않았으나 임금 성종의 위풍에 눌려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그는 할 일이 없이 불안하기만 하여 한다는 소리가 그저 하루속히 죽여 주십시오 하였다.
성종은 "내가 너를 죽이지 않겠다고 한번 약속한 바에야 어찌 두 말을 하겠느냐?
무엇이 그렇게 두렵단 말이냐 내가 그동안 너의 자질을 살펴보니 임금의 상이 아닌데 그러한 일을 하니 될 일이겠느냐?
이제 무죄로 석방하니 나가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하여 보아라.
만일 그 때 정말 너의 세력이 커서 내 세력이 밀리게 되면 이 자리를 내어주마."
하니 대소 신려들의 맹렬한 반대를무릅쓰고 방면하였다.
그렇게 호방불기 하고 영매한 성종대왕은 매일같이 궁중에 큰 잔치를 베풀고는 군신이 화락하게 놀았다.
취홍이 도도해지면 성종은 곧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하였다.
기생들이 이 모양을 보고 무한히 좋아하였다.
소춘풍(笑春风)은 성종 당시에 영흥(永興)의 명기였다.
성종은 소춘풍이 하도 기지에 뛰어나고 잘생기고 활달하다고 하여 친히 불러보았다 꽃과 같았다.
함초롬이 수심 짓는 꽃과 같았다. 부끄러움을 담뿍 실은 꽃과 같았다.
가무도 서시도 통달치 못한 것이 없었다.
성종은 소춘풍을 좋아하였다.
소춘풍도 성종의 부르심만 있으면 언제고 혼연한 낯으로 모시곤 하였다.
2)주안(酒宴) 방감(方酣)
그날도 봄빛이 화창하게 무르녹는 춘당대(春塘臺)였다.
성종은 군신을 거느리고 봄꽃을 감상하며 큰 잔치를 베풀었다.
군신은 취흥이 도도하였다.
기악(妓樂)과 가무가 하늘을 날았다.
풍류의 군왕, 선정의 군왕, 호방의 군왕, 멋진 임금이었다.
구름처럼 모인 군신 상하가 태평성대를 축복하였다.
그 자리에 소춘풍도 불러왔음은 당연하였다.
취기가 바야흐로 도도하매 성종은 소춘풍을 측근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무한한 영광이었다.
기생을 부르는 것이니 불리움을 당한 기생이 영광이야 다시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소춘풍! 특히 나에게 술 한잔 부어라!"
"성은이 하해 같사옵니다."
소춘풍은 금잔에 술을 부어 하도 황공하여 임금의 옆 까지는 갈 수 없어, 그저 영상(领相)이 앉은 자리에까지 나어가서 영상에게 술을 올렸다.
그리곤 임금의 성덕을 노래하였다.
舞雖在而不敢斥言
君堯則
正我好逑也
술도 계시건마는
요아 내 님인가
하노라
라 노래 하였다.
임금이 태평성세를 이 위에 더 희구할 수 있으랴.
성종은 소춘풍의 노래를 듣고 어안에 희색이 만면하였다.
반공을 나는듯한 아름다운 음성과 아름다운 자태는 임금 뿐이 아니고 모였던 모든 신하들을 뇌살하고야 말았던 모양이었다.
모두 혼 나간 사람 같았다.
소춘풍은 이 모양을 보고 한 번 생긋 웃었다.
그 때 바로 영의정의 옆에 있던 무변 출신의 병조판서는 '소춘풍이 첫번째는 비록 영상에게 술잔을 보냈지만 이번에야말로 틀림없이 나에게 오겠지?' 하고 속으로 생각을 하면서 은근히 기다렸다.
그러나, 소춘풍은 병조판서에게는 한 눈도 거들떠 보지 않고, 바로 그 곁에 앉은 이조판서로서 대 문장가인 그에게 온 술잔 가득 술을부어 올리면서 노래를 했다.
당우(唐虞)를 어제 본듯 한당송(汉唐宋)을 오늘 본듯
통고금(通古今) 달리사(達理事)하는 명철사(明哲士)를 어떡하고
저설다 역역(歷歷)히 모르는 무부(武夫)를 어이 좇으리
그 병조판서는 그렇지 항상 문관에게 멸시를 당하던 앙금이 있는 지라, 어전인데도 불구하고 대노하면서 칼을 뽑아 소춘풍에게 일격을 가할 자세에 있었다.
공기가 살벌하여졌다.
소춘풍이 이를 모를 리 있겠는가. 모든 사람들은 지금 이 세 사람의 싸움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종 대왕은 처음엔 무슨 일인가 하다가 그 곡절을 알고는 짐짓 모른 체 하면서 소춘풍의 기지를 한번 시험해 보려고 하였다.
그러는 중 소춘풍의 가냘프고도 낭낭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전언(前言)은 희지이(戯之耳)라 내 말씀 허물 마소
문무일체(文武一體)인 줄 나도 잠간 아옵거니
두어라, 간간무부(赶赶武夫)를 아니 쫓고 어이리.
익선관도 벗어 놓고 곤룡포도 끌려 놓고 흥겨워하던 성종 대왕은 이 희한한 관경을 목도하였다.
실로 횡일하는 기지요 섬광하는 지혜였다.
붉으레 홍안으로 홍조된 성종은 "실로 기특한 일이라고! "
"소춘풍이야 말로 우리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호피 한 장과 비단 오십필을 상으로 내리노라"
소춘풍이 이것을 운반하지 못하자 성종은 서 있는 장사로 하여금 상품을 운반케 하였다.
성종은 다시 소춘풍에게 "그러한 노래를 한 수 더 지어 읊어 보아라" 하니, 성종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소춘풍은,
제(齊)도 대국(大国)이요 초(楚)도 대국(大国)이라
조그만 슬국(膝国)이 간우제초(間於齊楚)하였으니
두어라 하사비군(何事非君)이 사제사초(事齊事楚) 하리라
성종의 하시에 즉시 답을 하였다.
성종은 다시 한 번 소춘풍의 기발한 노래에 감탄을 마지 아니하였다.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