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清州) 명기(名妓) 춘절(春節)
1)가상(假想)의 남편(男便)
중종(中宗)떼에 충청도 청주(清州) 땅에 춘절(春節)이라는 기생이 있었으니 그는 한평생을 정조도 제공치 않은 가상의 남편을 위하여 정절을 지킨 기생으로서 유명하였다.
춘절은 얼굴이 절묘하였으며 청주지방에서는 일등 가는 명기였다. 가무가 우수하고 시 한수 지을 줄 알았으며 가야금 거문고 또한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춘절이라고 하면 모든 탕아와 풍류객들의 연모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는 정조가 굳어 도저히 웬만한 사람은 거들떠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근에서는 더욱 그를 높게 평가하였다.
가희 옥처럼 깨끗한 기생이었으며 물들지 않은 기생이었다.
그런데 그때 청주 목사로 있던 이 충담(李忠膽)의 집에 한 사람의 과객이 와서 묵게 되었는데 그는 동주(东州)라는 아호를 가진 성제원(成悌元)이란 사람이다.
동주는 곧 이 목사의 다정한 친구였다.
동주는 친구 가운데서도 가장 친한 친구였으므로 이 목사는 그를 환대하여 적극 대접했다.
그는 목사집에 큰 손님이었다.
그러므로 이 목사는 늘 명기 춘절을 이동주에게 한번 소개하여 주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어느 날 이 목사는 한가한 틈을 타서 춘절을 불렀다
"오늘 내가 너를 부른 것은 너에게 훌륭한 서방님을 추천해 주기 위해서리다.
동주 서방님으로 말하면 사육신댁(死六臣宅)에 서방님이시다.
나라에서는 그를 유일로 대우하여 충청도 보은군수까지 시켰으나 그는 벼슬에 마음이 없어서 인생의 부귀영화를 초계와 같이 버리고 천하의 호걸이 되어 시를 읊으며 주유천하(周遊天下)을 하고 계시다.
당대의 문장이요 시인인 성제원 동주 선생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춘절의 뜻은 어떠한가?"
아름다운 이마를 다소곳이 수구리고 듣고 있던 춘절은, "실로 황송스러운 분부이십니다.
훌륭한 그런 양반님이 저 같은 것을 알아주시겠습니까?
저야 성주(城主)님이 분부면 무엇이라도 거행하겠습니다."
이 목사는 춘절이 동주에 벗됨을 승락하는걸 보고는 말했다.
" 그런데 어려운 청이 있다.
동주선생으로 말씀하면 지금은 우리 집에 유숙하고 계시지만 또 생각나면 팔도가 다 자기 집인 양 유람의 길을 떠나신다는 말이다.
떠다니는 구름과 흐르는 물같은 것이 그의 본성이니까?
이제 좀 계시면 또 떠나서 흐르는 구름 모양 될 것인데 네가 그를 모시고 다닐 수가 있겠느냐 말이다?
만일 내가 그를 거행하기만 하면 후한 인사를 하겠다만....."
이때 성 동주가 외출하였다가 마침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박학 다식 할 뿐 아니라 과거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시와 술을 벗삼아 반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이 목사는 동주가 들어서자 "여보게 자네한테 가인 한 사람을 소개하네" 하고는 이 춘절은 청주에서 유명한 절개 높은 기생 일세, 지금 자네를 전부 소개하여 두었거니와, 앞으로 자네를 영원토록 모시겠다고 하였으니 그리 알고 대우하게. 자네 한턱 단단히 내야 하네, 하하핫!"
이때 동주는 춘절을 보고 말했다.
"나는 돈도 부귀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 나를 쫓아다니면 고생이 막심할 텐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하였소?"
춘절이 다소곳이 고개를 들고 무거운 입술을 움직였다.
"소첩을 대우해 주시는 말씀 항감하옵니다.
앞으로 버리시지만 않으신다면 천리 만리라도 쫓아다니며 모시겠습니다.
아무쪼록 저를 어여삐 생각해 주시기 바라옵니다."
그 날로부터 동주는 춘절의 집으로 가서 머무르기로 하였다.
춘절은 그를 정성껏 받드는데 조금도 게을리하지 알았다.
그 후 얼마 있다가 춘절은 동주와 손에 손을 잡고 길을 떠났다.
"시와 노래와 술의 행각"을 떠났던 것이다.
흐르는 흰 구름 모양 그들은 산과 들과 시내와 정자를 찾아 흘렸다. 술과 노래 그리고 더욱 동주는 그림을 잘 그렸다.
그림에다 시를 지어 넣으면서 그는 행운유수였다.
청주 목사는 그들이 떠나는 날 한보따리의 돈 꾸러미를 춘절에게 주었다.
몇 가지 옷과 여비에 충당하라는 것이었다.
춘절은 이제 동주에게 없어서는 안될 그러한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한쌍의 원앙처럼 꿈을 즐기며, 이산에서 저물을 흘러가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 동주는 어스름 황혼에 안개 낀 강가를 응시하며 춘절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의 조상이신 성삼문 할아버지께서 최후의 시를 읊조리고 돌아가신 것도 이러한 황혼 무렵이었던 모양이야."
"그 시가 어떠하였습니까?"
"아직 모르는가?"
"부끄럽습니다만 아직 모르옵니다."
擊鼓催人命
黄泉無一店
今夜宿誰家
가을에는 짧아 이미 저물어 가는데
북소리는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는도다.
황천엔 드셀 데가 없다 하는데,
오늘 저녁은 뉘 집에서 쉬리라든고.
"참으로 비창하옵니다."
"암 비참하다 뿐인가?
눈물이 저절로 나게 되지.
황천에 무일점 하니 금야 숙소가 어디리요.
단장의 애곡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
"훌륭한 어른이었어요."
"암, 그렇고 말고!"
그 기개가 장하신 분이 어찌 그리 슬픈 시를 읊으셨을까?
"그거야 인간이 한 번 가는 마당에는 그렇게 되는 법이야.
그 어른이 것으로 웅장한 것도 있기야 하지."
"읊어보세요."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蓬莱山) 제일봉(第一峰)에 낙락장송(落落长松)되었다가
백설(白雪)이 만건곤(满乾坤) 할제 독야청청(獨也青青)하리라.
"참으로 거룩하신 어른이 올시다. 나리께서도 그 어른의 피를 받으신지라 부귀와 명예를 티끌처럼 아시는 것 아니오니까?"
"그렇지도 않지만 하여간 부귀란 것은 그다지 좋은 것은 못 되거든 '신숙주'나 '정인지'의 무리들이 아무리 부귀를 누리었다 하더라도 오늘날 누가 그들을 알아주어야지."
"그렇습니다.
옳은 말씀이 올시다."
"이렇게 한 평생을 시나 주로서 풍월이나 읊으며 담백 고고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나"
"그렇기에 나리를 쫓아 이렇게 나오지 않았겠어요."
"오 귀여운 나의 춘절이!"
"나으리두!"
어두워 오는 황혼의 백마강 고란사 위에서 그들은 달밤을 즐기며, 술과 달과 시와 인생과 유랑 속에 방황하였다.
춘절은 의리 있고 지조 있는 기생이었다.
다른 기생 같았으면 벌써 동주를 버리고 도망하였을 것이다.
고생이 심하면 심할수록 여인은 점점 동주의 진가를 아는 모양이었다.
더 위하고 더욱 우러러 받들고 더욱 알뜰히 모시었다.
ㅁㅁㅁㅁㅁㅁㅃ
그들 두 사람은 청주를 떠난지 몇 달이 되었는지 완전히 걸인 모양이 되도록 돌아 다니었다.
동주는 이르는 곳마다 화필을 잡아 훌륭한 그림에 시까지 곁들여서 한 폭 한폭 수십 폭이나 그렸다.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그들이 청주로 돌아온 것은 얼마 후에 일이었다.
동주는 청주 목사 이충담의 집에서 한동안 피곤을 풀다가 한양으로 올라가고 말았다.
춘절은 그대로 청주에 있지 않을 수 없었다.
동주는 떠나갔지만 춘절은 청주에서 동주를 그리워하며 홀로 지나게 되었다.
2)수절(守節)을 명세(盟誓)
춘절도 노독을 풀기 위하여 한동안 두 문 불출하고 집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심신이 아울러 피곤하였던 모양이다.
어느 날 청주 목사 이충담은 춘절을 불러서 위로하였다.
"이번에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하였겠다.
수고하였다."
춘절은 저윽이 수줍어 하면서,
"성주님의 덕택으로 훌륭한 어른을 모시게 되어서 황감할 뿐입니다.
그분은 참으로 훌륭하시기가 성인과 같으신 어른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함께 다녔사오나, 한 번도 동침해 본 일이라고는 없었던 것입니다.
실로 다정다감하신 분이었습니다
이상스럽게도 한 번도 몸을 요구 하신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쉰내는 그분이 혹시 불구가 아니신가 의심도 했었습니다마는 그렇지도 않으신 모양이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성인이 아니고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일을 하시었습니다."
"무엇이 어쩌고 어째?
동침한 일이 없다고.....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올시다.
실로 거짓말 같은 참말이옵니다. 제가 한 번도 그분과 동침한 일이 없습니다마는 모든 사람은 저를 그분의 사람으로 알 것입니다."
"원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동주가 그렇게 정열의 남아 였는데!"
"참으로 정열적이 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저녁이 되어 한 자리에 있게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저를 목석과 같이 상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늘 하시는 말씀이 네가 나와 이렇게 다니니까 모든 인간들이 너를 나의 사람으로 알 것이 아니냐?
내가 너에게 줄 물건은 하나도 없다만은 이 그림이나 다 그리면 그것을 주마 하시고는 그림 수십 폭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요즘 가끔 꺼내 보면서 저의 행복을 그곳에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동주는 참으로 별 인간이로구나!"
"별난 분이에요."
"그래 춘절은 그냥 한 평생을 그대로 늙는단 말이냐?"
"수절을 한다고 자랑 이야 되겠습니까만, 나으리께서는 저를 영원한 정신의 애인으로 알아주시고 아껴주시고 하셨습니다.
저를 참 벗으로 상대해 주셨습니다."
이리하여 춘절은 고고히 수절 할 것을 명심한 모양이었다.
한편 한양으로 간 동주는 워낙 단명하여 몇 해가 되지 않아 그냥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춘절은 부음을 듣고 머리 풀고 슬피 울었다.
그리하여 그 다음부터는 완전히 수절과부가 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 후 세월은 강물이 흘러가듯 오십여년이 가고 춘절은 호호 백발이 되었다.
동주의 형의 손주로서 감찰(監察) 이란 벼슬을 가지고 청주에 온 사람이 있었다.
그 당시 청주목사 김모는 동주 성제원의 종손인 성 감찰에게 청주의 명기 춘절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분이 동주 선생을 사모하는 나머지 무려 오십년 동안 수절을 고수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실절함이 없었다.
이 말을 들은 성 감철은 목사로 하여금 춘절을 부르게 하였다.
춘절은 이미 칠십이 넘은 호호 백발이었다.
춘절은 부름을 받고 목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성 감찰은 춘절을 보고 "저가 동주 선생의 종손입니다.
즉시 찾아뵈어야 할 터이온데 공무가 분주하여 예가 늦었습니다.
그동안 오십년 동안을 수절하고 계시다 하오니 참으로 갸륵 하시기 이럴 데 없습니다."
춘절은 감회가 깊은 듯이,
"감개무량합니다.
동주 선생을 살아서 뵙는 듯 하옵니다."
지금 김 목사님에게서 모두 들었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도 지하에서 응당 반가워하실 것입니다.
춘절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비록 기생의 몸이었지만, 그 어른이 높으신 고절을 따르려고 애도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워낙 용렬하여 어디 잘 됩니까?
그분이 나에게 주신 화폭 수십 폭은 지금도 내가 간수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으로 나는 유일한 위안을 삼으며 오십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이제 종손되시는 분이 오셨으니 그것을 돌려드릴 때가 왔나 봅니다. 내가 가지고 있었보았자 후사도 없고....."
춘절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성 감찰은 우연한 기회에 그의 증조부의 그림 수십 폭을 오십년 만에 찾게 되었던 것이다.
춘절의 의로운 절개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