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월야(月夜)의 지음(知音)
김상국이 평양으로 부임한지도 벌써 한달이 지나갔다.
김상국은 은안백마를 타고 거드렁거리며 온갖 풍류를 즐기며 그 위세와 호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호사스러웠다.
감사를 맞이하는 환영의 큰 잔치가 열리는 날 밤 감사 김상국은 일지매를 불러 수청 들기를 명령하였다.
일지매는 감사의 명령을 즉석에서 거부하였다.
감사는 추상 같은 호령을 하였다.
"발칙한 년 같으니라고, 나의 명령을 거역한단 말이냐?
네깟 년이 얼마나 도도하다고 나에게까지 항거란 말이냐?
그래 모진 매 앞에서 살점이 남지 않아도 나를 따르지 않을 테냐?"
하얀 일지매의 얼굴이 파르르 떨리면서 "백 번을 죽인다 하여도 소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사또에게 몸을 바칠 수 없소이다."
"이년아 네 마음을 어떻게 하면 사로 잡는단 말이냐?"
"그거 까지야 쉰 내가 어찌 아오리까?"
이리하여 신임 평안 감사 김상국은 그 부임 최초의 계획이었던 일지매를 손에 넣는데 성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할 수가 없었든지 감사는 일지매를 백방하고 일지매가 어떤 자와 좋아 지내는가 그것 만 사령을 시켜 감시하게 하였다.
그렇게 하여 자기의 실패담과 아울러 한양 임백호(林白湖)에게 이 전후 사실을 전달하고 곧 평양으로 내려오라고 하였다.
백호는 친구들과의 약속도 약속이려니와 장부일언중천금으로 한번 말 한 말을 거절할 수도 없었고 또한 일지매라는 앙큼스런 기생을 한 번 솜씨를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김상국의 서한을 접하고 홀 홀히 행장을 수습하여 평양을 향해 떠났다.
평양은 과연 아름다운 인물이 나올 만한 승지 강산이었으며 그러한 승지강산인 평양 같은 데는 일지매 같은 인물 잘난 기생이 나올 법도 하였다.
임백호는 평양에 도달하여 우선 작전 계획을 수립하였다.
정공법, 측공법, 우회격법 모두 있으나 어떻게 하면 이 난공불락의 일지매라는 성곽을 함락할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호언장담한 봐도 있는지라 임백호는 평양에 하룻밤을 일지매만 생각 하였다.
묘안이 생각나지 않는다.
진실로 일지매를 굴복시키는 데는 단 한 가지 묘방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일지매의 인간과 그 세계를 알아줌으로써 동등의 자격으로 그를 낚는 것이었다.
그는 하룻밤을 꼬박 세워 전술을 발견하는데 애를 썼다.
그 이튿날 백호는 한양서 입고 온 화려한 옷들을 벗어 팽개치고 너덜거리는 갓을 쓰고 평양 성 탐색에 나섰다.
실로 임백호와 같은 풍류남아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사람의 아름다운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이런 거창한 가장이 필요한가 하고 임백호는 제 자신이 고소를 금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자신만만한 임백호였다.
한번 뜻을 결정한 이상 기어코 결단을 내고야 말겠다는 궂은 결의는 백호로 하여금 그렇듯 걸인 모양으로 꾸며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평양 성중을 샅샅이 뒤졌다. 몇 날을 돌아다니면서 임백호가 조사한 것은 일지매의 집이었다.
그는 일지매의 집을 발견하자 그 안팎의 구조를 모조리 조사하여 자세히 알아놓았다.
그리고는 생선 장수로 변장하여 어물을 가지고 그 집 앞을 지나며 "민어들 사려, 광어들 사려"하고 외치고 다니기 시작했다.
여러날을 생선 장수를 하고 나니 이제는 진짜 생선 장수 같은 행색이 되었다.
이만하면 하고, 임백호는 그날 저녁 무렵이 다 되어 일지매 집 앞을 지나다가 문득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생선들 사려, 무엇이든지 다 있습니다" 하고 외쳤다.
안에서 곱다랗게 차린 계집아이가 밖으로 나왔다.
계집아이는 "무슨 생선이에요? 하고 물었다."
"무엇이든지 다 있죠, 민어 광어 방어 등 속 맛있는 것은 모두 있습니다."
"방어 한 마리에 얼마예요?"
"한 양씩만 내십시오."
"방어 한 마리에 한 양이에요?
무슨 고기값이 그렇게 비싸요?"
"생선 값이 굉장히 오른 것을 모릅니다 그죠."
"아무리 올랐기로니..... 안 사겠어요 가세요."
백호는 계집아이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아 아가씨 야단 났오이다.
지금 날은 저문데 생선은 안 팔리고, 어디 갈 데도 없고 하니 행랑에서라도 하룻밤 자고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내 큰 방어 두 어 마리 드릴 테니, 아가씨가 나를 동정해 주시오."
처음에는 계집아이도 시무룩하였으나 방어 두어 마리를 그냥 준다는 바람에 그냥 승낙하고야 말았다.
임백호는 거적대기를 한장 빌려 다가 행랑문 턱에 깔고 하룻밤을 드새고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다 심산이 있어서 하는 노릇이었다.
거적을 깔고 누워 큼직한 돌을 한 개 주워다가 베고 드러누우니 가위 어느 동양의 시인이 읊었다는 시가 생각났다.
'하늘은 이불, 땅은 요, 산은 베게로다.
달은 등불, 구름은 병풍인데, 바다는 술 독이렸다.
크게 취하여 내 거처에서 일어나 춤을 추니.
저 큰 곤륜산이 옷소매에 걸릴까 귀찮아라.'
도량도 이만해야겠고, 인생의 폭도 이만해야겠다고 임백호는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여인 한 사람을 홀리기 위하여 이렇듯 고독한 짓을 하더니 하고 생각하니 그는 또한 어색하였으나 다시 한 번 속으로, "사내 대장부의 큰 사업이렸다.
사랑이라는 것은....." 하고 다시 되뇌어 본다.
밤이 이숙해지니 달이 휘황하게 빛났다.
돌베게를 베고 누워 있으니 잠이 올리도 만무했다.
고생고생하고 있는 판인데, 일지매도 달이 밝으니 잠이 오지 아니하는 모양으로 쌍창을 사르르 열더니 밖으로 나왔다.
잠옷 바람으로 밖으로 나온 일지매는 과연 더욱 아름다웠다.
아름답다 든지 곱다 든지 하는 형용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자태였다.
그냥 그대로 흰 달덩이였다.
고요하고 차가웁고 매몰스러운 달덩이였다.
하얀 달빛 아래 그것은 인간이라기보다 인간 이상의 깊이와 넓이를 가진 그윽한 미의 표본이였다.
임백호는 속으로, "올커니!
저만하니까 감사하고 사또 다 안중(眼中)에도 없는 게지" 하고 감탄했다.
" 나는 오늘 저녁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도박이다, 한번 해 보는 수밖에....."
일지매는 고요히 후원을 소요하는 모양이었다.
사쁜 사쁜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향내가 물큰 물킄 진동하는 것 같았다.
그 아름다운 사람하고 자기하고는 거리가 천만리나 넘는 듯하였으나 또 어찌 생각해 보면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후원을 걷고 있던 일지매는 달을 쳐다 보더니 지극히 마음이 동한 듯 "거문고나 한곡조 타볼까"하고 중얼거리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만에 일지매는 거문고를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교교하고 휘황한 달빛이 마구 쏟아지는 아래를 일지매는 사뿐사뿐걸어서 마당 한가운데다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한참을 멍하니 달빛만 쳐다보던 일지매는 거문고 줄을 고르기 시작했다.
줄을 고르더니 거문고 소리는 울려오기 시작했다.
학을 부르는 듯 기러기를 꼬이는 듯 거문고 소리는 달빛 휘황한 정원을 가득 메웠다.
임백호는 거문고는 상당히 아는 터였으나 이쯤에 거문고는 더 한층 수가 위인 것 같았다.
백호는 거적자리에 들어누웠으나 일지매의 곁이 사뭇 그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잠시만 참자 하고 드러누워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의 황홀한 거문고 소리가 실로 학을 부르는 듯하였고 모든 신비는 혼자 간직한 듯 하였다.
거문고 소리가 저으기 가경으로 들어갈 때 임백호는 피리를 꺼내 들고 불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좀 가늘게 불어서 거문고 소리를 따라가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차츰 거문고 소리가 높아지며 피리 소리도 또한 쫓아서 높아졌다.
'둥당둥당 두둥당 둥당!'
소리와 발을 맞추는 듯 피리소리 또한 헛짚는 바가 없었다.
일지매는 가만히 거문고를 타다가 귀를 기울이는 듯하였다.
무슨 소리가 거문고를 쫓고 있음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계면조(界面调)의 높은 소리였지만 말할 수 없이 조화가 붙어서 거문고 소리와 피리 소리가 서로 무한한 조화를 이루었다.
백락천(白樂天)을 울리던 심양강(潯陽江)의 비파 소리가 그렇게 울려왔을지도 모른다.
거문고 소리와 피리소리가 한참을 어울리는 속에 갑자기 거문고 소리가 그치더니 일지매의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얘야, 밖에 좀 나가 보고 오너라! 참 이상한 소리가 다 나는 군....." 조금 있다가 계집아이의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손님'하고 불렀다.
임백호가 자는척하고 대답 대신 코를 더욱 크게 고니 계집아이는 거적 위에 누워 있는 임백호를 흔들었다.
백호는 자는 체하다가 하는 수가 없어서 놀라서 깨는 것처럼 응!
소리를 지르며 반몸을 일으켜 계집아이에게 "이 밤중에 왠 일이요" 하고 물었다.
"손님이 지금 피리를 부셨어요?"
"피리가 웬 피리오."
"여기서 누가 부는 것 듣지도 못하였어요."
"나는 여지껏 자느라고 듣지도 못하였어."
임백호가 생파리 같이 잡아떼니 계집아이는 "별 이상스러운 일도 다 많네.: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안으로 들어가서 일지매에게 무엇이라고 이르는 모양이었다.
한동안 조용히 지난 뒤에 거문고 소리가 다시금 나는데 이번에는 곡조도 평화 스러운 평조(平调)거니와 청이 먼저보다 훨씬 낮았다.
거문고 피리를 불게하여 들으려고 줄소리를 줄이는 것이 환하였다. 임백호는 이번에는 역시 청을 맞추었다.
거문고에 맞추어 피리를 불기는 불되 멀리서 부는 것 같이 들리도록 작게 하였다.
소리만 다 내지 않을 뿐 온갖 재주는 그대로 다 내었다.
빠른듯 거문고를 싸주기도 하면 서 느린 듯 거문고를 더듬어 주기도 하여 장단 한 점 빈 구석이 없었다.
거문고 소리는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고 곡절을 다 마치었다.
곡조가 끝난 뒤 임백호는 처음 누웠을 때와 같이 얼굴만 거적밖에 내어 놓고 드러누워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가 하고 마음으로 기다리며 귀를 기울였다.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