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in Hebrew are represented by
corresponding letters of the alphabet, such as Numbers 1–10 above. 히브리어의 숫자는 알파벳의 글자와 일치한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숫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세속적이지만, 유다이즘에서 그것들은 인격과 형이상학적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토라와 예언서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의 우주적인 진리들을 드러내는데 도움을 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숫자들이 자주 나타나는데, 그것들의 등장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서를 읽을 때마다 주목하게 된다.
숫자들이 성서 안에서 암시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들은 마술적이지 않다.
성서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성서적 수비학의 문자적이며 상징적인 이해를 요구하게 된다. 여전히 이러한 이해는 건전한 해석의 과정들과 결합될 필요가 있지만, 마술이나 점성술로써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여기에
1에서 7까지는 간단한 보기가 있다. 그리고 어떻게 그것들이 유다이즘에서, 오늘날 일부 성서 학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초기 유대인 신자들에게 의해서 관찰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An Orthodox Jewish man prays at the
Western
(Wailing) Wall in Jerusalem using a siddur
(prayer book).
에하드, 하나, 첫 번째: Echad (אֶחָד(에하드)or א(알렢) / One, First)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엡 4:4)
숫자로써, 1은 그 자체로 곱 하거나 나누어도 그 자체가 변하지 않는 유일한 숫자라는 사실은 독특하다: 예를 들면, 1을 1로 나눌 때, 해답은 1이다.
1 x 1 = 1
1 / 1 = 1
유대적인 이해로부터, 숫자 1처럼, 하나님은 한 개인이다.
숫자 1의 독특한 특성들은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일치나 하나를 반영한다.
이러한 독특한 하나 그리고 단수는 유대인의 신앙의 영원한 선언, 쉐마를 통하여 보수적인 유대인들에 의해서 적어도 하루에 두 번 선포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Echad [One] 여호와이시니”(신6:4)
The first words of the handwritten parchment are "Hear, oh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Echad." 신명기 6:4)
하나님의 하나 또는 에하드는 종합적인 일치이다. 예를 들면, 말씀은 하나님과 하나이다(요 1:1)
그 다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했다(요 1:14). 그리고 육신으로 말씀이 되신 예수아는 선포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 10:30) 에하드는 유다이즘에서 특별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숫자 1은 유대인의 삶을 강조하는 특성을 가진다; 다른 나라들은 많은 예식들, 많은 성직자, 많은 예배의 처소를 가진다. 유대인 백성인 우리는 단지 1(한) 하나님, 1언약궤, 1 제단, 1 대제사장 만 있다. 그것은 모든 토라는 1 목자(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졌고, 1지도자(모세)에 의해서 가르쳐졌다는 이유이다.” Osher Chaim Levene의 말이다. (Jewish Wisdom in the Numbers)
비록 에하드 단지 하나 또는 단수를 의미하지만, 그것은 또한 첫 번째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는 성경의 많은 구절에서 보여 진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yom echad / Sunday]이니라”(창 1:15)
Day breaks on the Sea of Galilee
첫 번째의 생각은 제사장(코헨)에게 주어진 첫 열매들(비쿠림)의 거룩함과 첫 태생의 동물과 사람의 거룩함에서 보이듯이, 성서에서 특별한 중요성을 가진다.
“ 네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 중 (가장 좋은 것) 가져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며” (출 34:26)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출 13:2)
출애굽기 4:22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로서 언급된다.
첫 번째의 개념은 또한 신약에서도 강조된다, 거기에서 예수아는 죽은 자의 장자로 잠자는 자의 첫 열매로 불려진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계 1:5 행 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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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시작과 연관되어 있으며, 성경의 첫 단어가, 베레쉬트(처음에) 이다. 이 단어의 뿌리는 로쉬이며, 머리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시작이고 거룩한 것처럼, 첫 번째는 거룩 과 관련되어있다. 첫 번째로 오는 것은 뒤에 오는 것을 위한 무대나 형태를 세운다.
골로새서 1:18절에 보면, 이러한 모든 개념들은 메시아 예수 안에서 함께 연결되어 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첫 번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쉬나임, 둘, 2 :Shnayim (שְׁנַיִם or ב / Two)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열하 2:9)
히브리 숫자 2, 쉬나임은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 글자 베트(베이트)는 베레쉬트(태초에)에 첫 번째 글자로 토라와 창조 이야기의 첫 번째 글자이다.
“베트”는 히브리 알파벳의 글자 이상으로, 그것은 또한 숫자 2이다(히브리 글자는 또한 숫자이다)
2는 “연합, 분리, 그리고 증거”를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두 배’와 “두 몫”과 연관되어 있다.
성서에서, 쉬나님은 두 개의 언약판, 6일째 되는 날은 두 몫, 그리고 쌍방 과 짝의 생각, 예를 들면, 하나님의 남자와 여자의 창조 또는 둘씩 제자들을 내어 보냄(눅 10:1)
신명기 19:15절에서, 숫자 2는 법률적인 문제들에서 두 증인의 요구처럼, 증인과 연관되어있다.
둘은 또한 창조 그 자체 이후에 축복과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은 땅에 축복의 상을 부어주었다. 또한 창조는 하나님이 인간을 그와 그리고 서로에게 관계성안에 있도록 하기 위하여 창조 했기 때문에 관계성의 가능성을 가져왔다.
우리는 둘이 하나의 몸이 되는 혼인의 언약 속에서 연합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창 2:24)
분리의
생각은 또한 둘 째날(욤 쉐니, 월요일) 때문에 둘 과 연관되어 있다. 이날에 하나님은 물들을 위에는 하늘과 아래에는 바다를 형성하기 위하여 분리 시켰다.
실제로, 둘은 갈등과 죄 때문에 분리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숫자 2에 속해있는 연합과 분리의 이중성이 다음 사실에 의해서 가장 잘 반영되었다, ‘비록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성안에 있도록 창조 되었지만, 사람들은 거룩함을 통하여 하나님과 연합 되거나, 아니면 죄를 통하여 그와 분리 될 수 있다’.
관계성이 진실 되기 위해서, 관계성안에 있을 것인가를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만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창조주와 관계성 안에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에 대항하여 반역할 것인가를 선택 할 수 있다.
물론, 죄는 우리 모두를 하나님과 분리 시키고, 예수아는 우리의 하늘의 아버지와 화해하도록 했다(엡 2:16)
더욱이, 그는 모든 곳에 있는 신자들이 그와 연합하도록 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 17:22-23)
When two parties form a covenant, they are fused to
become one entity.The two tablets of the law are likened to a marriage covenant between the Israelites and God. They contained the essential contractual terms.
쉴로샤, 셋, 3: Shlosha (שְׁלוֹשָׁה or ג / Three)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셋(3)은 균형성 또는 안정감, 지속성과 영속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성과 완벽함의 숫자로 생각된다.
이 숫자는 성서와 유대인의 삶에서 자주 등장한다.
땅은 삼 일째(욤 쉘리쉬/ 화요일)에 물로부터 분리된다(창 1:9-13)
출애굽기 34:6절에서, 하나님은 하눈(은혜로운), 라쿰(동정적인/자비로운), 그리고 헤세드(사랑하는) 의 세 가지 속성으로 설명된다.
세라핌(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천사의 존재)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외치며, 하나님의 완전함과 거룩함을 강조하는 세 번의 예배의 기원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한다(사 6:3; 계 4:8)
제사장의 축복에서(민 6:24-26), 하나님의 언약적인 이름(야훼)이 세 번 등장한다, 아마 이것은 완벽함과 완전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또한 쉐마 에서 세 번 언급되고 있다(신 6:4-9)
Abraham and the Three Angels, by James Tissot
안정감 또는 완전한 기초의 표적으로써, 이스라엘은 세 명의 기초를 세우는 아버지들(아보스)들이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성경은 세 번의 순례의 축제(쉘로쉬 레갈림)들을 특별히 가진다. 일년에 세 번 의 축제에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의무적으로 참석 해야 한다: 페싸흐(유월절), 세브옽(오순절, 칠칠절) 그리고 숙콭(장막절).
이들 세 번의 축제들은 역사적인 교훈들 이상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먼저 유대인들과 그 다음 메시아를 통한 영적인 조명을 제시한다.
유월절(페싸흐)은 어린양의 희생과 함께 애굽으로부터의 구원과 예수아의 희생을 통한 영원한 죽음으로 부터의 구원을 기념한다.
오순절(칠칠절, 쉐브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한지 50일 후 시내산에서 토라를 준 것과 예수아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한지 50일 후 성령을 준 것을 기념한다.
초막절(숙콭)은 ,하나님이 그의 영광의 구름을 통하여 그들과 함께 거주했던 것처럼, 그는 여전히 오늘날 우리 안에 거주하는 성령을 통하여 제공하는 보호 그리고 다가 올 메시아의 통치 동안 제공할 보호처럼, 그들의 광야 초막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제공한 보호를 기념한다.
Exodus 19 describes a terrifying scene on the third day of the third month when the Lord descended on Mount Sinai and the Israelites heard Him talking to Moses. This passage describes the sound of the shofar growing louder as they spoke.
셋 은 또한 구원과 연결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약속의 아들을 희생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으로 3일간의 여정을 떠났다(창 22:1-4). 사렙다의 과부의 아들을 일어나게 하기 위하여(열상 17:21), 엘리야는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렸다. 요나는 3일 밤낮을 고래 뱃속에서 보냈다(욘 1:17)
에스더는 확실한 전멸의 위기로부터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3일 밤낮을 금식했다.
그리고 예수아는 셋째 날에 죽음으로부터 일어났다.
An empty tomb cut out of the rock in Israel.
아르바 넷, 4 : Arba’a (אַרְבָּעָה or ד / Four)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계 7:1)
숫자 4는 그것의 기본적인 수학적인 특성들을 통하여 숫자 2와 연관되어있다: 2+2=4 and 2x2=4. 따라서 숫자 4는 창조, 물리적인 영역, 땅, 그리고 사계절과 연관되어 있다.
성경에서 우리는 넷과 땅을 언급하는 첫 번째 계명인, 네 번째 계명을 통한 땅 사이의 연관성을 본다. 또한 주님의 기도의 네 번째 절은 땅을 언급한 첫 번째이다.
An Israeli father studies the globe with his
children.
이 숫자는 장소와 공간의 생각들과 연관된다. 예를 들면 다니엘 7:3절에서, 네 개의 땅의 왕국들을 언급한다. 그리고 이사야 11:12절은 땅의 네 모퉁이 들로부터 이스라엘의 흩어진 백성들을 모을 것을 약속한다.
이스라엘의 땅은 선택 받은 백성들의 디자인된 장소이며 공간이다.
구원은 누군가가 올바른 장소로 돌아오는 것과 연관되어 있고, 그리고 선택 받은 사람들의 돌아옴은 구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그리고 하나의 국가로써 그들의 운명의 성취이다.
Israeli children plant trees in the Holy Land.
넷은 또한 성서에서 에덴의 네 개의 강으로써 나타난다; 광야에서 성막(미쉬칸 하코데쉬)주위로 세 개의 각각의 부족들이 네 개로 분리되었다(민 2:1-31) 네 개의 체루빔; 보좌 주위로 네 개의 살아있는 물체들(계 4:6, 7:11); 그리고 옷 또는 탈리트(기도 숄)의 코너에 네 개의 장식술
또한
유대인들은 네 명의 어머니들(임마호스)이 있다: 사라, 리브가, 레아 그리고 라헬
Rebecca Meets Isaac by the Way, by
James Tissot
하미샤, 다섯, 5 : Hamisha (חֲמִשָׁה or ה / Five)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태어난 자가 레위인보다 이백칠십삼 명이 더 많은즉 속전으로 한 사람에 다섯 세겔씩 받되 성소의 세겔로 받으라”(민 3:46-47)
숫자 5는 구원, 하나님의 은총, 그리고 하나님의 선의의 숫자이다.
성서의 숫자에서, E. W. Bullinger 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만약 4가 세상의 숫자라면, 그 다음 그것은 인간의 약함, 그리고 무기력함, 그리고 무상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4에 1이 더해지면 약함에 추가되어, 약함 속에서 완전해지는 하나님의 힘의 중요성; 땅의 무기력함과 결합된 전능함; 영향력을 받지 않는, 정복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중요성이다”
.
하나님은 창조를 통하여 스스로를 계시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말씀을 통하여 스스로를 계시했다.
따라서, 성서에서 5는 이스라엘과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드러낸 모세의 다섯 권의 책과 연관되어 있다. 또한 십계명은 두 개의 돌 판에 각각 다섯 개의 개명을 기록했다.
숫자 5는 거룩한 건축(열상 7:39, 49)과 5,000명의 기적적인 공급(마 14:17)그리고 은혜와 연관되어 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 받은 것을 사용하여, 열심히 믿음을 통하여 그것을 확장하도록 힘을 부여받았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 25:20-21)
Fishing in the Sea of Galilee
쉬샤 여섯, 6: Shisha (שִׁשָּׁה or ו / Six)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신 5:13)
숫자 6은 자연적인 세상, 인간 그리고 물리적인 영역의 여섯 방향(앞, 뒤, 위, 아래, 오른쪽, 왼쪽)을 상징한다. (Jewish Wisdom in the Numbers)
성서는 하나님이 6일동안 자연 세계를 창조했고, 그 다음 7일째 쉬셨다고 언급한다. 그래서 이 숫자는 물질적 완성을 반영한다.
하나님이 6일동안 창조의 일을 완성했던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은 세상에 그들의 흔적으로 남기기 위하여 6일간 활동하고 그리고 우주의 창조주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일곱 번째 날에는 쉬어야 한다.
여섯은 인간의 숫자이다. 왜냐하면 아담과 이브는 여섯 번째 날에 창조되었고, 여섯 번째 계명은 살인을 금하고 있다.
숫자 6은 숫자 7안에서 나타나는 거룩함에 길로써 생각된다. 만약 인간 활동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거룩해지지 않고, 다가올 세상의 마지막 목적지를 향하고 있지 않다면, 그 다음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Jewish Wisdom, p.106)
A Jewish woman blesses God over the
Shabbat candles before the sun sets on
Friday evening.
쉐바 일곱, 7: Sheva (שִׁבְעַה or ז / Seven)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 12:6)
숫자 7은 성서에서 너무나 중요하기에 심지어 성서의 수비학에 무게를 두지 않는 학자들 조차도 그것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7은 하나님의 완전, 충만, 그리고 영적인 완벽, 거룩함과 성결을 특징 짓는 숫자이다.
7은 유다이즘에서 가장 사랑 받는 숫자이다. 사실, 미드라쉬는, “모든 7은 사랑받는 다”고 언급한다. (Vayikra Rabbah 29:9)
쉐바(7)는 맹세(쉐부아)와 함께 뿌리(Shin-Bet-Ayin)를 공유하고 있고, 따라서 공약과 연관되어 있다.
이 같은 뿌리에서 충만함 또는 완전함의 단어가 왔고, 관련된 단어가 만족하다 이다.
Israeli secular school children celebrate the Jewish holiday of Shavuo(Feast of
Weeks), which commemorates the harvest, the Day of the Firstfruits, and the day
the Torah was traditionally revealed by God to the Israelites.
7은 샤밭(일곱 번째 날)과 다른 완전한 시간의 주기를 통하여 완전 그리고 쉼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
일곱 번째 안식년 또는 쉐미타(땅이 쉼)는 여전히 이스라엘서 실천되고 있다.
샤밭과 쉐미타는 시간의 1의 거룩한 단위에 의해서 수반된 시간의 6의 세속적인 단위들을 강조한다. 일곱 번째 날과 일곱 번째 해는 특별한 거룩함으로 주어진다.
또한, 레위기 23:1-44는 주님의 일 곱 개의 연중 거룩한 절기들을 개요하고 있다:
페사흐(유월절), 하그 하모찌(무교절), 욤 하비쿠림(첫 열매절, 초실절), 쉐브옽(오순절), 욤 테루하(나팔절), 욤 키푸르(속죄일), 그리고 숙콭(장막절)
Passover's Four Cups of wine and the matzot of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성막의 거룩함과 완전은 일곱 개의 가구들 안에서 반영된다: 놋 번제단, 놋 물두멍, 금 촛대, 금 진설병 상, 금 분향단, 언약궤 그리고 자비의 자리/속죄의 자리.
성전 메노라(금 촛대) 그 자체는 루하흐 하코데쉬(성령)과 연결성을 가진 일곱 개의 가지들을 가진다. 이사야 11:12절의 메시아 예언에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아 하메시아흐(예수아 메시아)는 성령의 일 곱 가지 은총을 가지는 것으로써 설명되고 있다: “주님의 영이 그에게 내려오신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님을 경외하게 하는 영이 그에게 내려오시니” (사 11:12)
The Menorah for the Third Temple has already been
completed, even though the Temple Mount where the
Muslim Dome of the Rock stands is still in dispute.
랍비의 유다이즘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일곱 개의 노아의 법률들에 묶여있다:
간음, 살인, 도둑질, 성적인 부도덕성, 불 경건, 여전히 살아있는 동물로 취해진 고기를 먹는 것을 금지, 그리고 법률적인 의뢰를 제공할 법정 유지의 필요성.
레위기 26:18-27절에서, 7은 죄의 처벌과 연관되어 있다:
“너희가 이 지경이 되어도 나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이번에는 너희가 지은 죄를 일곱 배로 벌하여, …. 너희가 나를 거역하여 나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나도 너희에게 너희가 지은 죄보다 일곱 배나 벌을 더 내리겠다.”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도, 너희가 나에게로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여전히 나를 거역하면, 나도 너희를 거역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너희가 지은 죄를 일곱 배로 보복하겠다”
“이렇게까지 하여도, 너희가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나를 거역하면, 나는 더욱 노하여 너희를 거역할 것이며, 너희는 너희가 지은 죄보다 일곱 배나 더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죄 때문에, 유대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 민으로서 70년을 보냈다(렘 29:10)
Zedekiah is chained and brought before
Nebuchadnezzar in Petrus Comestor's
"Bible Historiale."
드러난 예수아: 믿을 수 없는 일흔 이레: Yeshua Unveiled: The Incredible 70 Sevens.
“나 주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바빌로니아에서 칠십 년을 다 채우고 나면, 내가 너희를 돌아보아, 너희를 이 곳으로 다시 데리고 오기로 한 나의 은혜로운 약속을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너희가 나를 부르고, 나에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호소를 들어주겠다”(렘 29:10-12)
바벨론의 포로로 있는 동안, 다니엘은 천사 가브리엘로 부터 믿을 수 없는 수학적인 메시지를 받았다, 그것은 분명히 우리가 거룩함, 완성, 완전, 그리고 시간의 주기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던 숫자들-70주에 관한 예언을 통하여 메시아의 오심의 시기와 동일시 되었다.
그 구절에서, 다니엘은 예루살렘이 70년동안 파괴의 상태로 있을 것이라는 예레미아의 예측을 심사숙고 하고 있었다, 그 다음 가브리엘이 그에게 나타난다.
가브리엘은 예레미아의 예언에서 포로의 종식을 위한 시간을 확인시키지만,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본질적으로 종식은 죄로 인한 포로가 될 것이라고 다니엘 에게 말한다:
“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단 9:24)
An Orthodox Jewish man walks along the ancient walls of Jerusalem.
이 예언은 정확하게 예수아의 사역이 시작되었던 해 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를 가져오는, 전 세계의 죄를 위한 희생적인 죽음을 정확하게 예측 한다.
예수아의 죽음은 단지 70주 중 69주만을 나타낸다. 마지막 주(7년)는 3년 반 동안 지속적으로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반- 메시아의 등장과 함께 아직 드러나지 는 아니했다.
남은 3년반은 메시아의 돌아옴으로 절정에 달하는 갈등의 시간이 될 것이다(단 9:27, 11:31: 마 24:15)
일흔 이레의 예언은 하나님의 손이 역사 위에 있으며, 우리는 희망과 미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한 희망은 다니엘 안에서 발견된 메시아의 예언 뿐만 아니라, 다른 메시아의 예언들을 읽도록 도전 받고 있는 많은 유대인들에게 남아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노동자를 위한 하나의 성경책은 다니엘의 70주의 비전이 그를 예수아의 믿음으로 인도하는데 수단이 되었다:
그에 말에 의하면, “내가 신자가 되기 전에 나중에 나의 목사가 된 한 좋은 친구는 나에게 어떻게 예수아가 메시아가 되어야 했는가를 나에게 설명했다 왜냐하면 그는 다니엘 9장에서 다니엘에 의해서 주어진 설명에 일치하여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