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나의 간증기~

12),예수는 아들로 아버지께 순종한 분인데 어떻게 예수와 아버지가 동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답하다)

작성자노요한|작성시간26.06.09|조회수10 목록 댓글 1

질문:

예수가 땅에 오신목적이 아담의죄에서 인류를 구하기위해 하느님같은 영의 형체로 계시다가 종의형체인 사람의 형체로 아담과 상응하는 완전한 육체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기뜻에의해 온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누가 갈까 하시자,

 예수께서 제가 여기있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하고 자원하셨고. 아버지께서 승인하시고 땅으로 보내셨다는 겁니다.

 예수가 다이루었다하시고 하신말씀도.아버지 제영을을 아버지께 부탁합니다고 아버지께 맡기셨고 아버지께서 살리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계신아버지와는 다르지요.

보내신분과 보냄을 받은자가 같지않으니.나는 아버지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이것을 알고 행하면 행복할것입니다.

 

아버지는 나보다 크십니다고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내말에 믿음을두면 아버지의 사랑이 여러분안에 계십니다.고도 하셨습니다.

저는 예수께서 증언하신 그대로 받아들이는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여깁니다.어떻게 여기시는지요.

 

~위 질의에 답변을 드립니다.

이 문제는 정말 난해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신의 존재의 본질과 그 양태에 대하여 쉽게 납득이 되리라는 생각 자체가 무모한 것입니다.

창조주의 존재 자체가 우리 피조물의 이성과 지성의 범주에서 완전 파악된다면 그분은 하나님일 수 없겠죠.

이런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그 전제 아래서 아버지 하나님과 성자 예수의 하나됨을 이해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이 부분은 내가 하나님과 예수의 하나됨이 믿어진 후에 그럼 이런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란 순수한 접근에서 부터 그 답을 얻게 되었음을 밝힘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접근이어야 하는데 내가 하나님과 예수는 절대로 동등한 분일 수 없는 그 근거로 이런 질의를 해 오시면 아무리 설명해도 그건 말이 안 된다. 억측이다라고 반응하신다면 더 이상 방법이 없겠지요.

이런 것을 감안 하시고 도저히 납득이 안 되더라도 하나님을 인간이 온전히 이해하려 드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렇게 생각해 주시면 납득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설명으로...

김선생님을 설득시킨다는 생각보다는 '나는 이렇게 그 부분이 믿어지더라' 고 하는

 나의 체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먼저 이런 예를 하나 들어 봅니다.

 한 5세 정도의 어린 아이가 어느날 지구는 둥굴고 매일 돈다고 하는데, 왜 사람은 밑에 있을 때 떨어 지지 않는거야? 이런 질문을 해 온다면 중력이 어떻고 만유인력이 어떻고,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겠죠.

 

'시편기자'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하신 일을 이렇게 표현했지요.

(개역한글 시편 139편14)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하나님의 하신 일도 인간이 보기에 신묘막측한데 하나님 본질을 묘사하는 '삼위일체 교리' 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납득되리라는 전제가 잘못 된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부분도 있으니까, 믿음이 있으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고 봅니다.

사람에게 아는 만큼 보이고 믿음만큼 이해되는 법이죠.

 

~그러면 부족하지만 설명해 보죠.

1) 예수와 세례 요한의 예에서 그 관계를 추측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려 할 때 요한은 뭐라고 했나요?

(마태복음 3장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이것이 세상의 당연한 이치요. 원리라는 겁니다

큰 자가 작은 자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이치인데 반대로 예수가 나에게 세례 받기를 간청하다니 처음엔 거부했죠.

그 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마3:15)"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누가 세례를 주고 누가 세례 받음에 중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퍼포먼스가 과연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가? 이것이 더 중요한 일이기에 외형상 좀 부조리하게 보여도 결국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행위잖아!

라고 생각하여  요한은 예수께 세례주는 의식을 허락합니다.

이처럼 아버지가 내게 맡긴 일이기 때문에 난 종처럼 순종하는 자로 보이는 거 종처럼 보이는 거 이거 신경 쓰시지 않으셨고 그래서 천상에서도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스스로 종의 형체를 입고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진해서 원했던, 보냄을 받으셨던 이것이 누가 더 크냐의 문제가 아나라

그 일을 아들. 예수는 순종하는 자로 그리고  종의 마음으로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완수하겠다는 사명감에서 순종하신 예수의 진심을 우리 인간은 누가 힘이 세냐? 누가 더 높냐? 로. 본다면 뭐 지극히 인간적인 발상이긴 하지요.

이것을 우리가 누가 더 크냐, 의 문제로 보면 예수님 당시 제자들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거에요.

 

~으뜸과 작음의 문제로 보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마태복음 20장26-27)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간의 으뜸과 낮음을 설명하시면서 종처럼 섬기는 자가 제일 큰 자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새겨 들어야 합니다.

이건 인간의 보편적인 상식을 깨는 주님의 발상이자, 너희는 세속적 힘의 논리로 세상을 보지 말고 이런 논리와 선입견을 뛰어 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를 갖기를 촉구 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예수가 보냄을 받았다 그리고 아버지 뜻에 순종했다 이런 것이 예수를 하나님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볼 근거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2), '부부는 하나다' 의 관계 정립으로 유추해 봄

(고린도전서 11장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여기서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정의 하는데 이것이 어떤 서열 정리가 아니라고 보는 겁니다. 마치 머리(두뇌)  즉 중요한 '컨트롤타워'로 신체의 모든 기관을 지배하고 조정한다고 해서 이건 중요성의 문제이지 크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질서를 유지하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 반드시 중요성의 문제는 될지언정

지위가 높은 것은 아닌 겁니다.

그것을 반드시 크고 작음 높고 낮음의 지위 권세로 보는 것은 모든 것을 힘의 논리로 보는 인간의 관점 때문이 아닐까요,

 

마치 우리의 자녀가 엄마가 아빠에게 마트에가서 과일 좀 사오세요. 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 아빠 중에 누가 더 힘이 세, 누가 더 높은 사람이야? 라고 묻는 바보같은 질문이 연상됩니다.

이것은 내가 성부와 성자의 차이로 보이는 부분을 다소 해소하고 동등한 하나님 전능한 하나님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종의 형체를 취하실 수 있는 순종하는 독생자 예수!

아버지와 숭고한 사랑의 관계로 그리고 끊을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일체의 관계로 보면 이해되는 측면이 있을 것으로 믿고 나의 경험담을 말씀 드립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릴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3),성육신 하셨기 때문에...

(이 부분은 다음에 말씀드리죠.)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노요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9 삼위일체 교리를 인간이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넌세스죠.
    그러나 제가 여기서부터 하난팀은 깨닫게 하셔서 이해가 되기를 할 겁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