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4:19)"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언제부터인가 성화론이 최고의 화두가 되었죠?
과연 구원받은 성도에게 성화란 과정이 잇기나 한 것인가?
성화라는 용어가 성경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성화는 없다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구원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인데 거기서부터 내가 이루어야 할 성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성화 부정론자들은 아니다 성화는 반드시 성도가 천국가지까지 이루어어야 할 성도의 견인인 것이다
구원 받은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이 이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구원을 왼성시키신다.
(빌립보서 1장6)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여러분은 어떤 신앙을 갖고 계십니까?
물론 여기서 다루는 성화란 이루신 구원에 나가 뭔가를 보태야 하는 의 이것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서
나를 도구로 이용하여 이루어 내는 어떤 작품을 이야기 하는 것임
오늘 말씀 가운데 사도바울은 이미 십자가에서 다이룬 것인데, 다시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고 했습니까?
구원을 위해 아직 못 일누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구원을 날마다 이루라는 말씀도 있듯이 말입니다.
(빌2:12~13)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의 구원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그 약속이 성취 되었고 묵시 가운데서 완선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인간이 거기에 무엇을
보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성화론에 '성'자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능을 일으키는 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그들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결국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성화, 즉 성도의 견인의 역사마저도
부정하게 되는 꼴이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됐다는 이야기는 십자가 복음을 깨닫고 있는 자들에게는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씀이지요.
누가 이 진리를 부인하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구원의 현재성을 강조하는 것을 체험했다면 완성돤 구원을 내 안에서 구현 돠도록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지금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할겁니다.
우리가 왼성된 구원을 살고 있음에도 바울은,
(고전15:31)'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 자백 했을까요. 십자가에서 죽으심의 그 현장에서 예수님의 자기부인의 은혜를 우리 모든 성도의
몸 안에서 체휼하게 하시기 위함이 아닐까요(!).
성경은 이런 과정들을 십자가의 흔적, 남은 고난 주님의 형상을 이루어 내는 작업을 개혁주의는 교리로 성화라고 한 줄 아는데,
이런 주장마저도 못 받이들일 이유는 없는 거 같은데, 아니면 언제까지 성화론 논쟁만 하고 있을 겁니까?
그 은혜의 효력을 우리 가운데 적용시키고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구원 하심의 능력이 각자에거 여러가지로 나타나게 하심이
천국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함을 성경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마저 부정하고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는데 왜 자꾸 성화를 주장하느냐?
그건 '알미니안'이다 이렇게 비판하는 것도 성경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오늘 말씀처럼 구원 받은 성도가 이루어야 할 과정이 있음을 여러 부분에서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3:13~14)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성도가 온전한 사람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엡 4: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표현을 하는데요.
그것은 주님을 아는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합니다.
(골3: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그렇다면 오늘 말씀 가운데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라 했는데 이 점을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μορφόω'
모르포오 morphoo- (형성하다, 모양이나 형태를 이루다)
a) 이 단어는 능동태로 '형성하다, 모양을 만들다'를 의미하며, 예를 들면 예술가들이 재료를 가지고 어떤 모양을 만드는 것을 나타낸다.
(b) 이 단어는 수동태로 '형태를 갖추다'(특별히 자궁 안에서)를 의미한다.
여기 '자궁 안에서' 런 표현에 유의해야 합니다.
자궁 안에 새 생명을 잉태한 자, 는 창조주의 섭리가운데 잉태한 것이나, 자궁 안에서 잘 자라게 하는데는 생명을 잉태한 여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동사 모르포오는 신약성경에서 (갈 4:19)에 한번 나온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이 구절에 담겨 있는
사상은 갈라디아인들의 그릇된 가르침과 다른 올바른 가르침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참조: R.Herrmann).
이것은 오히려 임신과 해산을 통하여 어린 아이가 태어나듯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 자신은 자기의 존재의 실재로서 그들 안에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을 바울은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해산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디노’는 단순히 임신해 있는 기간보다는 분만하는 고통에 역점을 두고 있다.
즉,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양육하는 것을 어머니가 아기를 출산하는 고통에 비유하고있다는 것인데요.
이것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다시 중생의 체험을 해야 한다는 의미라기보기는 중생한 자가 가야 할 성화의 과정으로써 바울이 그들을
계속하여 양육하는 수고가 크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벧후 1:4)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φύσις'
'퓌시스 phusis' 자연 nature, 조건, 상태 condition, 종류 kind.
명사 퓌시스(Homer 이래)는 퓌오(G5453: 낳다, 생기다, 산출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어근 퓌()는 '존재' being, '현존' presence을 의미한다.
(a) 퓌시스는 '근원, 시작, 기원, 혈통, 가계'(Hdt.), 성인이나 어린이의 ' 혈통'(Aristot.),
'원소들로부터 합성된 근본 물질'(Aristotle)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의 성화에 대하여 더 진지하게 성경이 말하는바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https://www.youtube.com/shorts/MMRdsXKbGwk?t=4&featur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