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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메타포라 13기

[13-3, 1차시] 손상들

작성자도지|작성시간26.06.17|조회수32 목록 댓글 0

첫 번째

 

내 어머니는 환갑이 넘어 뇌심부자극술이라는 뇌에 전극을 심는 수술을 받았다. 쇄골 아래에 심은 전류조절기에서 상시 전류를 흘려보내면서 육십 평생 오른손으로 부여 잡아 숨겨왔던 왼손을 올해부터 당당히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기 때 두상에 외부 충격을 받았는지, 소아마비를 앓았는지, 그 원인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손 떨림은 점차 강도가 높아졌다. 뇌수술 후 어머니는 게 등딱지도 혼자 까먹고 과일도 직접 깎기 시작했으며 아는 사람 마주치기 싫어 돌아가곤 했던 산책로에서도 먼저 다가가 인사도 한다며 전화로 소식을 전한다. 감격스런 내용에 비해 목소리는 늘 고단함에 잠겨 축축 늘어진다. 

 

두 번째 

 

20년 전 무더운 여름날, 아버지가 트렁크에서 내린 종이 박스를 생모의 집앞에 놓인 폐지 더미 위에 척척 내던지던 그 몸놀림과 한껏 인상 쓴 그 얼굴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중학생으로 그즈음 아버지의 생모의 존재를 알게 되어 적잖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녀는 전쟁통에 군인에게 ‘몹쓸 짓’을 당해 그 때문에 시가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어제도 아버지는 폐지를 싣은 스타렉스를 타고 20분을 이동해 생모의 집에 갔다. 전화 상으로 들은 그의 목소리는 또 속이 얹혔는지 불편한 기색이 가득이다. 생모가 폐지를 주워 용돈을 벌어 왔기 때문에 고향 동네의 폐지를 차 트렁크에 보관해두었다가, 생모가 생활 상의 요청을 하면 폐지와 함께 필요한 물건 등을 챙겨 가곤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본가로 돌아가면, 계모가 카톨릭평화방송 채널을 귀가 따갑게 틀어놓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보다 젊고 건강할 적에 망상증이 심각해 온 가족의 화통을 들쑤시곤 했다. 그녀의 주장은 집앞 하수도 공사 때 자신이 참견을 하여 대한민국에 곧 물난리가 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성정이 느긋하고 태연했던 아버지도 결국 예외가 아니게 되었다. 큰 소리를 내는 아버지가 충격이었는데 그것도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내가 도망치듯 서울로 떠날 적까지도 그녀는 그럴 만한 기운이 왕성했다. 이제야 그녀가 망상을 펼치지 못할 정도로 기운이 쇠하였지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작년부터 아버지는 우울증약을 복용하기도 하지만 말이 더욱 줄고 자신의 기분에 대해 모르겠다는 대답만 한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도 보지만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아버지에게 일어난 손상은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다. 

 

세 번째 

 

어머니는 지리산 부근에서 자랐다. 지리산 자락까지 차로 3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본가가 위치하지만 지리산에서의 추억은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릴 적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한 번은 자신의 아빠가 엄마를 때릴 때마다 옆 공터에 버려졌던 초가집으로 동생들과 몸을 숨기곤 했다며 아빠의 술주정에 대해 들려준 적이 있다. 그 공터엔 지금 예순이 다 되어가는 어머니의 남동생이 서울살이를 접고 귀향하여 십 여 년에 걸쳐 산과 계곡에서 옮겨온 돌들이 빽빽하다. 그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 돌을 모으는 이유를 물었지만 ‘예쁘니까’라고만 대답했다.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연결고리를 누리며 자연물과 연결되어 살아가기를 선택한 그는 손상되어 가는 것일까, 회복하는 것일까?

 

네 번째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 마음 속 공간에 시시때때로 강한 존재감으로 침투한다. 통화를 할 때면 어머니는 현재에 만족한다고 지친 목소리로 말하지만 내 마음속 그녀의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다같이 더 잘 사는 방법을 네 삶으로 구현하라고, 때로는 듣기 싫은 고음으로 화를 내고 때로는 서럽게 부르짖는다. 우리 집안을 구원하기 위해 내가 너를 낳았다고 그러니 더 똑똑해지고 강해지라고. 아버지의 환영은 목소리가 없다. 그를 겨우 찾은 자리에서 우울한 눈초리로 나를 지켜보고만 있다.

이들과 단절되면 나는 나날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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