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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는]멕시코는 이런 나라.

작성자qiqi|작성시간06.02.21|조회수799 목록 댓글 2


<Mexico>

(스)Mexico. 공식 이름은 멕시코합중국(United Mexican States/Estados Unidos Mexicanos). Mejico라고도 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있으며 라틴아메리카에서 3번째로 큰 국가.

수도인 멕시코 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북아메리카 본토의 남서부에 있고 대체로 삼각형 모양이다. 북서쪽으로부터 남동쪽을 향해 3,000km 이상 뻗어 있다. 너비는 북부지역이 1,900km 이상이고 테우안테펙 지협(地峽)이 215km 미만으로 변화가 심하다. 북쪽으로는 미국과 경계를 이루고, 남동쪽으로는 벨리즈·과테말라와 경계를 이룬다. 동쪽으로는 멕시코 만, 카리브 해와 접하고 있으며 남쪽과 서쪽으로는 태평양과 접한다. 면적 1,964,375㎢, 인구 100,588,000(2003 추계).


<자연환경>

멕시코는 매우 다양한 지형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국토의 중심부는 동쪽·남쪽·서쪽이 산맥으로 둘러싸인 고원이다. 동쪽과 서쪽에는 해안평야가 있어서 바다와 산맥을 갈라놓는다. 2개의 주요반도가 있는데 유카탄 반도와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이다. 남동쪽에 있는 유카탄 반도는 너비가 320km이고, 북서쪽에 있는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는 40km에서 240km로 폭이 일정하지 않다.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에서 남쪽으로 480km 떨어진 곳에 레비야히헤도 제도가 있다. 태평양에 있는 이 제도는 화산섬들로 이루어져 있고, 만사니요 연안 항구 서쪽으로 725km 떨어져 있다.

멕시코 국토의 대부분은 중앙 멕시코 고원지대에 속한다. 이 고원은 동쪽의 마드레오리엔탈 산맥과 서쪽의 마드레옥시덴탈 산맥 등 2개의 높은 산계에 둘러싸여 있다. 또 남쪽으로는 테우안테펙 지협과 만나고, 북서쪽으로는 구릉지대로 이루어진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와 접한다. 멕시코 고원의 평균높이는 북부가 1,200m이고 국토의 중심부가 2,000∼2,700m이다. 중남부의 네오볼카니카 산계에는 5,700m 높이의 시틀랄테페틀('오리사바'라고도 부름) 봉(峰)과 5,452m의 포포카테페틀 봉을 비롯해 멕시코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이 있다. 더 남쪽에는 마드레델수르 산맥이 있다. 이 산맥은 태평양 연안 남부를 따라 테우안테펙 지협까지 뻗어 있고, 거기에서 소코누스코 산맥 및 치아파스 고원과 만난다.

텍사스 주 경계에서부터 유카탄 반도에 이르는 멕시코 만 연안에는 만연안(灣沿岸) 평야가 1,450km 정도 뻗어 있다. 평야 가장자리에 해변·사주(砂洲)·늪지대·초호(礁湖) 들이 이어져 있다. 좁고 불연속적인 태평양 연안평야는 길이가 약 1,300km이고 폭이 약 100∼160km이다. 이 평야를 따라 아카풀코 항이나 만사니요 항 같은 천연 양항(良港)들이 많다. 유카탄 반도의 연안 저지는 돌리네와 종유동굴이 있는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다. 멕시코에는 큰 강들이 거의 없다. 텍사스 주 경계와 파팔로아판 경계를 따라 흐르는 리오그란데 강(멕시코에서는 리오브라보델노르테 강이라고 부름)을 제외하면 멕시코의 강들은 짧고 흐름이 급하다. 리오그란데 강은 베라크루스 주 남쪽의 멕시코 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멕시코 남부지역에는 종종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이 발생한다. 1985년에는 멕시코 시가, 1995년에는 태평양 해안지대가 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바 있다. 1982년에는 멕시코 시에서 남쪽으로 650km 떨어진 엘치촌 화산이 폭발해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내고, 가축과 작물이 큰 손상을 입기도 했다.

멕시코는 지형이 다양하듯 기후도 다양하다. 높이 900m 미만의 저지와 구릉지대는 티에라클리엔테('뜨거운 땅'이라는 뜻)로 분류된다. 이 지대의 평균기온은 약 25℃이다. 높이 1,800m의 열대 고지는 티에라템플라다('온화한 땅'이라는 뜻)로 분류된다. 이 지대의 평균기온은 19℃이다. 2,100m 높이의 중앙 평원과 치아파스 고지는 티에라프리아('추운 땅'이라는 뜻)로 분류되며, 평균기온은 17℃이다. 높이 4,300m 이상 되는 높은 봉우리들은 티에라엘라다('얼어붙은 땅'이라는 뜻)로 분류되며, 10℃를 넘는 경우가 드물다. 멕시코의 절반이 매우 건조한 기후로 연강수량이 600㎜ 미만이다. 멕시코의 2/5가 반(半)건조 지대이고 습한 지역은 1/10이 채 안 된다. 평균강우량은 북북서쪽에 있는 건조지대가 250㎜ 미만이고 연안평야 쪽은 1,000∼2,900㎜이다. 치아파스 고지의 평균강우량은 5,000㎜를 넘는다.

기후와 지형에 따라 동물과 식물의 분포도 매우 다양하다. 건조지대의 북부·북서부·중앙에서는 선인장·용설란·카사바 같은 식물들이 많이 자란다. 남부지방과 동부지방, 유카탄 반도, 서부의 연안지대에는 다우림과 열대성 대초원이 많다. 중남부 산맥지역과 고도가 4,000m에 이르는 마드레스 산맥에는 침엽수림과 혼합림이 조성되어 있다. 남부 연안지역에는 거대한 홍수림 늪지대가 곳곳에 있다. 조류, 파충류, 곤충류, 다양한 종류의 포유류(원숭이류·재규어·맥·개미핥기 등이 남부 열대지역에 서식하고 아르마딜로·사슴·퓨마·이리 등이 북부 건조지역에 서식함)가 많다. 다양한 천연자원을 가진 나라로, 석유와 수력 전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이용 가능한 동력 또한 방대하다. 멕시코에 매장되어 있는 석탄은 콜롬비아의 석탄매장량과 함께 남아메리카에서는 유일하게 코크스로 직접 바꿀 수 있는 석탄이다. 멕시코에는 은·아연·납·금·수은·카드뮴·철광석·구리 등도 매장되어 있는데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국민>

멕시코 전체인구 가운데 최소한 3/5이 유럽인과 인디언 혈통이 섞인 혼혈(mestizo)이다. 그밖에 1/3은 아메리카 인디언이고, 나머지는 코카서스인이다. 1980년대 중엽에 들어서는 과테말라 난민들도 멕시코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인구의 9/10 이상이 로마 가톨릭교도들이고 그외는 대부분 신교도들이다. 공식 언어는 스페인어이다. 인디언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도 조금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인디언 언어는 50가지가 넘는다.

1940년 이래 멕시코 인구동태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연증가율이 빠른 속도로 높아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높은 인구증가율을 우려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인구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초에 정부가 가족계획을 홍보하는 계획을 시행했고 1980년대에는 자연증가율의 속도가 늦춰졌다. 그러나 출생률은 여전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높다. 인공유산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나 널리 행해지고 있다. 경제적 이유로 인한 이민이 늘고 있는데 그들의 대다수는 미국으로 가며, 많은 수가 불법 이민이다. 평균수명은 남자가 67세이고 여자가 73세로 개발도상국으로서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그러나 유아사망률은 여전히 높다. 인구의 약 1/3이 15세 미만이다. 전체적으로는 비교적 인구밀도가 높지만 지리적으로 볼 때 인구의 편재(偏在)가 심하다. 인구의 3/4 이상이 도시에 산다. 특히 멕시코·과달라하라·시우다드네사왈코요틀·몬테레이 시에 집중되어 있다.


<경제>

멕시코의 경제는 도매업·소매업·제조업·농업·광업을 중심으로 하는 혼합경제이다. 인구성장에 비해 국민총생산(GNP)의 성장속도는 낮은 편이나, 1인당 GNP는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가장 높은 편이다. 주요경제부문은 농업·임업·어업인데 국내총생산(GDP)의 약 10%를 차지하며 노동인구의 약 1/4이 이 부문에 종사한다. 작은 단위로 농업이 운영되기 때문에 생산량은 적다. 전체면적 가운데 약 1/8이 경작 가능한 땅이나 관개시설은 빈약하다. 정부는 농업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집단농장의 개발을 장려해왔다. 그러나 농산물을 자급자족하지 못해 1980년 이래 곡물이 계속 수입되고 있다. 상당수의 인구가 영양실조에 걸려 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어린이들이다.

주요농산물은 옥수수·밀·쌀·강낭콩이다. 사탕수수·수수류·바나나·토마토·오렌지·감자 등도 주요작물이다. 커피·면화·과일류·채소류 등은 수출되고 있다. 주요가축은 소와 돼지이며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천연벌꿀 생산국이기도 하다. 전국토의 1/4 이상이 숲으로 덮여 있고 주로 침엽수 통나무를 생산한다. 어업은 중요한 산업으로 냉동 참새우를 수출하고 있다. 멕시코는 다양한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석유매장량과 수력발전능력으로 볼 때 발전 잠재력 또한 크다. 원유매장량은 세계에서 7번째로 많으며 천연 가스도 상당히 많이 매장되어 있다. 정부 수입중 1/4을 원유 생산이 차지한다. 북동부의 코아우일라 주에 최상급의 질좋은 석탄이 매장되어 있다. 멕시코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3/4 가량이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들로부터 얻어지며, 수력 발전이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한다.

멕시코는 세계 최대의 은·비스무트·천청석 생산국이며, 비소·형석·안티몬·카드뮴·납·수은·아연·유황·석고 등의 주요 생산국으로도 꼽힌다. 또한 금·흑연·수은·철광석·구리 등이 매장되어 있다. 광업이 매우 발달했지만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정부는 20세기말 다수의 광업 관련 기업을 민영화했다.

제조업 생산액이 GDP의 거의 1/4을 차지하며, 노동인구의 약 1/7이 제조업에 종사한다. 석유제품이 늘면서 석유화학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가공식품·화학제품·차량·전기기계류·인쇄제품·종이제품·섬유·금속제품·철강제품 들이 주요생산품이다. 관광업이 주요산업이며 외화 소득원이다. 노동조합활동은 법적으로 보장된다.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은 1966년에 결성된 노동회의(Congreso del Trabajo/CT)에 가입해 있다. CT는 제1정당인 제도혁명당(Partido Revolucionario Institucional/PRI)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연방정부의 지출은 석유 수익으로 충당되고 있는데 1979년에는 전체지출의 1/3, 1980년에는 2/3로 석유 수익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초에 국제석유가격이 떨어지자 정부의 세입도 크게 줄었다. 따라서 정부의 수지는 큰 적자였고 지출도 대폭 삭감되었다. 1970∼80년에 멕시코의 국가외채는 10배 이상 늘었다. 임금 동결과 수입 격감, 소비자 보조금 철폐, 환율 하락 등으로 1980년대초부터 외채상환 형편은 나아졌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멕시코의 외채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편이었고,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침체된 경제의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는 1980, 1990년대 들어 외자유치를 위해 여러 법적제한을 완화했다.


<정치·사회>

멕시코는 연방공화국이다. 1917년 제정된 헌법에는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권력분립이 명시되어 있다. 행정부의 수반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6년 임기이며 단임제가 원칙이고 직접선거로 뽑는다. 대통령은 광범위한 임명권을 가지고 경우에 따라 경제와 재정 문제에 관한 입법권도 가진다. 입법권은 500명의 하원의원과 128명의 상원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 입법부에 있다. 하원은 3년 임기이고 상원은 6년 임기인데 2번 연임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1929년부터 제1정당인 PRI의 후보들이 의원선거 및 지방선거의 대부분을 승리로 이끌었고, 모든 대통령선거 및 장관선거에서도 승리해왔다. 사법권은 대법원이 최고 결정권을 갖는 연방법원과 주법원에 있다.

평균생활수준은 농촌 인구와 도시 빈민들의 생활수준에 가깝다. 시행되고 있는 사회복지제도는 의료공제사업, 노동자수당, 노인과 장애자에 대한 퇴직연금 등이다. 실업보험은 시행되지 않는다. 보건시설은 주로 대도시지역에 몰려 있어 지방의 경우 의료진과 의료장비 가 많이 부족하다. 보건제도가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질병들이 계속 남아 있는데, 그중 기생충이나 전염균 때문에 생기는 위장질환 계통의 질병이 가장 흔하다. 그밖에 결핵을 비롯한 호흡기질환·말라리아·성병·독감 등도 널리 퍼져 있다. 특히 도시지역은 주택난이 심각하며 그나마 기준에도 못 미치는 주택이 대부분이다. 공공주택의 건설은 소득이 중간 정도인 가구들을 수용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멕시코의 문자해득률은 약 85% 정도이다. 초등교육기간은 6년이며 의무교육이고 무료이다. 그러나 15세 이상의 국민 중 1/3 이상이 전혀, 혹은 거의 초등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중등교육을 이수한 층은 전체의 1/3밖에 안 된다. 대표적인 고등교육기관들로는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과달라하라대학교·국립과학기술전문학교 등이 있다. 신문들은 거의가 스페인어로 발행되고, 대부분이 민간 소유이지만 정부의 통제에 따라 운영된다. 유력한 일간지들은 〈엑셀시오르 Excelsior〉·〈노베다데스 Novedades〉·〈엘 우니베르살 El Universal〉 등이다. 이들은 모두 멕시코 시에서 발행된다. 언론의 자유는 상당히 보장되어 있는 편이고 인쇄매체를 통해 정부를 비판하는 일도 흔하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비판이 라디오 방송을 타는 일은 드물고 텔레비전에서 방송하는 일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라디오 방송은 도시권과 지방을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화>

멕시코의 민속공예품은 전국적으로 인기가 있다. 민속공예품은 주로 시골 사람들이 만들며, 실용적인 목적과 장식적인 목적에 두루 이용된다. 특히 유명한 것은 오악사카 계곡에서 만들어지는 점토 도기와 토말라 읍에서 만들어지는 새와 동물의 모형들이다. 화려하게 수놓인 면으로 만든 의상, 면이나 모로 만든 숄(rebozos)과 겉옷(serapes), 색색가지의 바구니와 깔개 등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멕시코의 역사를 통해 볼 때 가장 중요한 형태의 예술 가운데 하나는 민속음악이다. 축제나 특별한 행사 때에는 카우보이(charros)처럼 차려 입은 가수가 기타와 트럼펫 연주에 맞춰 공연을 한다.

20세기에 멕시코의 미술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디에고 리베라,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등이 유명한 화가들이다. 그들은 멕시코의 역사와 문화를 벽 크기의 대중벽화로 그렸는데 생동감 있는 형상과 꽉 짜인 구도가 특징이다. 20세기로 들어오면서 멕시코 문학은 그전까지 가장 많이 다루었던 멕시코 혁명을 더이상 주제로 삼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보다 보편적인 문학이 인정받게 되었다. 후안 호세 아레올라, 카를로스 푸엔테스,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가장 인정받는 작가들이며, 그들이 다루는 인물과 주제는 국제적인 독자층을 가질 정도로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밖에 비중이 높은 인물로 작곡가 카를로스 차베스와 극작가 로돌포 우시글리를 꼽을 수 있다. '국립 미술원'은 미술 연구와 미술 보급에 힘쓰고 있다. 멕시코 교향악단과 여러 발레단은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역사>

2만 년 전 멕시코에는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살았다. 촌락 단위로 농경을 시작한 것은 BC 1500∼900년으로 확인되었다. 보다 종합적인 문화는 BC 900∼300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문화들은 AD 100∼900년에 올멕·톨텍·마야·아스텍 문화로 꽃피었다.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했을 때는 1200년경에 급속도로 세력을 키운 아스텍 사람들이 대다수의 멕시코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다.

디에고 델 벨라스케스 데 쿠엘라르는 그전에 쿠바를 정복함으로써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밖에도 그는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를 보내 유카탄 해안을 탐험하도록 하는 한편, 멕시코를 탐험하도록 에르난 코르테스를 파견했다. 2년 동안 계속된 전투 끝에 코르테스는 1521년 아스텍족을 정복했고, 수도인 테노츠티틀란을 함락시켰다. 코르테스는 아스텍족의 수도가 있던 곳에 멕시코 시를 세웠다. 그후 1526년 프란시스코 데 몬테호가 마야 문명의 잔존자들을 정복했다.

스페인이 정복했을 때부터 1821년 독립이 선포될 때까지 멕시코는 뉴스페인 총독의 관할지역이었다. 1701∼13년에 일어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의 결과 부르봉 왕가가 스페인의 새로운 지배자로 떠오르면서 식민지인 멕시코의 상황도 달라졌다. 부르봉 왕가는 식민지로부터 얻는 경제적 이득을 늘리기 위해 프랑스식 체제를 근간으로 한 여러 가지 행정개혁을 실시했다. 독재적인 지배와 무거운 세금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전에는 스페인의 지배에 대한 저항이 거의 없었다. 1810∼11년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가 주도한 반란과 1814∼15년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 이 파본이 이끈 반란은 모두 좌절되었다. 그후 독립운동은 비센테 게레로의 지휘에 따라 게릴라전으로 전개되었다.

1821년 게레로와 크레올인 지주이자 전(前) 스페인 군대의 장교였던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협상을 통해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얻어냈고, 이어 의회를 구성했다. 1823년 군사반란이 일어나 이투르비데는 멕시코를 떠나게 되었고 의회는 멕시코를 공화국으로 선포했다. 1824년 미국 헌법에 기초해서 만든 연방헌법이 채택되었다. 과달루페 빅토리아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마누엘 펠릭스 페르난데스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자유주의자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1833년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가 집권하게 되었다. 그는 이후 계속해서 여러 번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845년 미국 정부는 텍사스를 병합할 것을 결의했다. 그결과 멕시코 전쟁이 일어났고, 산타 안나의 군대가 패했다. 미국은 멕시코 시를 점령했다. 1848년 2월 2일에 체결된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에 따라 미국은 현재 애리조나 주, 콜로라도 주 서부, 네바다·유타·텍사스·캘리포니아·뉴멕시코 주에 해당하는 지역을 할양받았다.

1857년 베니토 후아레스는 식민지 잔재를 없애기 위해 '라 레포르마'(La Reforma)라는 개혁을 시도했다. 개혁의 기초로서 그해에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다. 1857년 만들어진 새 헌법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과 후아레스가 이끄는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내란이 발생해 1858∼61년까지 계속되었다. 프랑스가 멕시코에 군주정부를 세우려고 시도했지만 내란은 자유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이어 후아레스는 멕시코의 대통령이 되었다.

1876년에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반란을 주도해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1911년에 이르러서야 대통령직에서 밀려났다. 그는 1880∼84년에는 관직에서 떠나 있기도 했지만, 독재정치를 통해 질서를 잡았고 실천력있는 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디아스의 집권기 후반에는 불평등한 분배구조 심화와 소규모 농장주 및 농업 노동자들의 처지 악화로 인해 힘이 약화되었다.

1911년에 역시 혁명가 출신인 프란시스코 I. 마데로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집권하기 시작할 때부터, 농민과 노동자들이 더 많은 개혁을 요구하며 계속 혁명을 일으켰다. 계속해서 반란과 쿠데타가 일어나다가, 1929년에 북부 멕시코 출신의 혁명론자들과 개혁주의자들로 구성된 민족혁명당(PNR)이 세워졌다. 이 정당은 20세기에 계속 멕시코를 지배했다. 1938년 PNR은 멕시코 혁명당(PRM)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46년에는 제도혁명당(PRI)으로 바꾸었다.

1920∼40년대에 이르기까지 PRI와 당의 정치적 지도자들은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개혁을 단행했다. 이 시기에 능력과 결단력을 갖춘 대통령들이 나와 그 지도력 아래 개혁이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1930년대말에 집권했던 라사로 카르데나스 대통령은 대대적인 토지개혁을 단행했고, 각 노동조합들로 구성된 '멕시코 노동연합'(Confederaci&oacute;n de Trabajadores de M&eacute;xico)을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는 경제성장에 주력했다. 호세 로페스 포르티요 대통령이 집권했던 1970년대 중반에 멕시코는 주요산유국의 대열에 들게 되었다. 그러나 포르티요의 임기가 끝날 때쯤엔 엄청난 외채가 쌓였다. 정부는 석유에서 얻는 수입을 믿고 경제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계속 외채를 끌어다 썼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에 계속해서 세계 유가가 떨어지면서 멕시코는 심각한 재정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어 집권한 대통령들은 정부가 처한 재정적 위기상황의 개선과 광범위한 경제부양을 위해 노력했다. 그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1980, 1990년대에 행해진 몇몇 국영기업에 대한 민영화를 포함한 시장 자유화 조치를 들 수 있다.


<한국과의 관계>

남북한 모두와 수교를 맺고 있으며, 한국과는 1962년 1월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한국은 1962년 7월 멕시코에 상주대사관을 설치했고, 멕시코는 1978년 3월 한국에 상주대사관을 개설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표명하나, 1980년 수교를 맺은 북한과는 형식적인 관계만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관계에 있어서는 경제발전 수준의 유사성, 거리, 언어장벽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실질적인 면이 미약했으나 1980년대 이후 교역량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한국은 멕시코에 대해 줄곧 적자를 기록했으며 1988년에는 수출 2억 7,971만 달러, 수입 2억 2,005만 달러를 기록했다. 멕시코의 주요수입품목은 섬유류·전자제품·철강제품 등이며 원유·황·철강 등을 수출하고 있다. 두 나라는 경제협력증진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1991년도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멕시코를 방문해 관계증진에 관해 논의했다.

멕시코의 한국인 거주민은 1997년 현재 교민 1,538명, 체류자 630명으로 1905년부터 시작된 이민 역사에 비해 교민수는 적은 편이다. 그러나 양국간의 관계는 꾸준히 발전되어왔고 최근 들어 한국은 무역수지에서 흑자를 기록중이다. 1997년 현재 멕시코의 대한 수출액은 4억 824만 달러, 수입액은 11억 9,100만 달러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제대국인 멕시코는 방대한 광물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도약을 꾀하고 있어 한국과의 경제협력 동반자로서의 의미는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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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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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Zapata | 작성시간 06.02.22 아주 유용한 정보가 많네요, 잘 앍고 갑니다.
  • 작성자♥ 찌니 ♥ | 작성시간 06.02.25 너무도 좋은 정보네요...수고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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