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관의 '님 그린 상사몽' 이야기
< 원본 시조>
님 글인 상사몽(相思夢)이 실솔의 넉시 되야
추야장(秋夜長) 깁푼 밤에 님의 방에 드럿다가
날 닛고 깁히 든 잠을 깨와 볼까 하노라.
< 현대어 번역 시조 >
님 그린 상사몽이 실솔의 넋이 되어
추야장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
< 해 석 >
님 그리다가 꾸는 꿈 귀뚜라미 넋이 되어
기나긴 가을밤 그윽할 무렵 님의 방에 몰래 가서
날 잊은 채 곤히 잠든 님 깨워 보고 싶어라.
사랑하는 님을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지 노심초사하는 애정 시조이다. 이 시조는 감상하기 전에 우선 사용된 詩語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겠다. 상사몽(相思夢)은 이성을 몹시 그리워하여 꾸는 꿈, 실솔(蟋蟀)은 귀뚜라미, 그리고 추야장(秋夜長)은 기나긴 가을밤이다. 끌어온 詩語들이 이미 감정의 골짜기에 사랑의 물안개를 피우기에 충분하다.
사랑의 병이 들면 첫 번째 나타나는 증세가 만남의 욕구이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게는 애정의 대상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은 애착행동(attachment behavior)의 본능이 있음을 동물심리학자 로렌츠가 오리새끼 실험에서 보여주고 있지만, 그건 다 알고 있는 동물 행동의 특성을 학문적으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만남의 욕구가 모든 생명체 존재의 원천이다. 작자가 애타도록 그리운 님을 만나고 싶어 귀뚜라미 넋이 되고 싶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만남의 욕구는 사랑의 증세임을 역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신라 김유신은 밤이 되어 귀가할 즈음이면 사랑하는 여인 천관녀를 찾았다. 조선 시대에 와서 혜원 신윤복이 그린 '월하정인'(月下情人)그림 속에서 야밤에 청춘 남녀가 돌담 밑에서 매일 만나 사랑을 속삭이며 만남의 욕구를 충족하는가 하면, 당대에 와서 어느 가수는 한 남자가 연인이 사는 아파트를 밤이면 찾아가 만남의 욕구를 갈구하는데 그만 욕구가 배신으로 돌아온 사연을 노래하여 히트하였다. 김유신과 천관녀의 데이트에는 애마가, 신윤복의 '월하정인'에서는 등불이, 그리고 '아파트' 노래에서는 자동차가 만남의 매개체로 등장하는데 아무튼 김유신의 애마와 천관녀, 신윤복의 月下情人, 윤수일의 아파트 노래 등이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인기를 갖는 것은 만남의 욕구, 애착행동 심리가 남여노소 모든 인간의 심리 내면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즉, 그 이야기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이 시조에서 작자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한갖 미물에 지나지 않는 귀뚜라미 넋을 도입하여 만남의 욕구를 표현하였으니 이 시조는 현대 심리학의 이론의 실제를 타임 머신을 돌려 이미 이백년 전에 보여준 훌륭한 문학 작품이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인간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실험 대상으로 주로 동물들을 이용하였다. 소련의 파블로브는 개를, 미국의 스키너는 비둘기를, 독일의 퀼러는 침팬치를, 오스트리아의 로렌츠는 오리를 각각 실험 대상으로 하였는데 우리 조상은 그 이전에 귀뚜라미를 인간 심리 표현에 도입하였으니 대단한 아이디어가 아닌가.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다시 시조로 돌아 가보자. 이 시조를 읽다보면 심술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을밤 깊은 밤에 님의 방을 찾아가는 것도 그런데 곤히 잠든 님을 깨워볼까 하는 심술이 불쑥불쑥 드러난다. 그런데 이게 심술인가? 相思病에 걸려서 홍역을 치러보지 못한 사람은 이런 시조를 보면 심술이라고 욕한다. 그건 사랑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단편적 사고 탓이다. 사랑은 고통이고, 괴로움이고, 슬픔이고, 눈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작자는 이러한 괴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는 꿈을 꾸어 그 꿈이 귀뚜라미의 넋이 되기를 바란다. 귀뚜라미는 그야말로 가을의 대표적 가객(歌客)이다. 가을 하면 귀뚜라미이고 귀뚜라미 하면 곧 가을이다. 토끼 꼬리 같던 여름 밤이 더위와 함께 떠나가면 곧 바로 찾아오는 가을밤은 왜 그다지도 길기만 한가. 사실 밤의 길이로 치면 겨울 밤이 아직 기다리고 있지만 감정에 약한 인간에게는 귀뚜라미 울어대는 가을밤이 유난히도 길고 길게 느껴진다. 왜 그런가. 그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가을에 사람들은 유별나게 사랑의 치통을 많이 앓는다. 단풍잎이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눈물이 흐른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먼 길 나선 서방님, 그리운 님은 기러기 떼가 북으로 날아가는데도 돌아오지 않는다. 내 이야기거나 남의 사연이거나 간에 이런 이야기들로 가을 밤은 외롭고 고독한 추야장(秋夜長)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작자 역시 무슨 사연으로 그리운 님을 멀리 두고 오래 보지 못하였는가 보인다. 보고 싶어 몸살 날 지경이지만 현실은 허락해주지 않으니 기나긴 가을밤에 귀뚜라미 넋이 되어 님을 찾아가는 소망을 드러낸다. 이다지도 그리워 괴로워하고 있는데 멀리 있는 님은 날 잊은 체 곤히 잠들어 있을 터, 찾아가서 깨워보려고 한다. 심술같은 작자의 심보는 사랑의 그리움을 절제하고 승화시킨 보기 드문 문학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귀뚜라미가 등장하는 것은 참 흥미롭다. 모든 곤충들에게 가을은 짝짓기 계절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자신의 유전자를 지닌 후손을 남겨야 하는 책임을 다하는 계절인데, 풀숲의 곤충들은 이성을 유혹할 때 시각적 신호를 보내거나, 냄새로 프로포즈 하거나, 노래 소리로 짝을 부르는데 귀뚜라미는 모두 노래로 프로포즈한다. 다른 풀벌레와는 달리 귀뚜라미는 인간이 사는 공간과 가장 가까운 속에 생활한다. 시골집 처마 밑에, 안방에서 부엌으로 난 쪽문 아래, 뒷마당 풀숲에 살면서 가을이 되면 아름답기도 하고 때로는 처량해 보이기도 하는 울음 소리를 밤새도록 들려준다. 그러나 기실 가을이 되어 들리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울음이 아니라 짝짓기 할 연인을 찾는 노래이다. 연인에게 바치는 사랑의 세레나데인 것이다. 인간도 그러하듯이 귀뚜라미 암켯은 수컷의 세레나데가 가장 아름답고, 길고, 거칠지 않으면서 자기를 사랑해줄 수 있고, 그리고 좋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을 것 같은 남성 짝에게 마음을 열어준다. 작자는 바로 추야장 가을 밤에 짝을 찾아 노래하는 귀뚜라미처럼 자신도 귀뚜라미 혼이 되어 깊은 밤 잠들어 있을 사랑하는 님을 찾아 쌓아둔 애정의 실타래를 플어 보고 싶어 한다. 귀뚜라미와 작자의 감정과 애정 표현이 어찌 이리도 유사할 수 있을까.
이 시조를 지은이는 조선 철종, 고종 때의 가객(歌客) 박효관(朴孝寬, 1781-1880)이다. 자는 경화(景華), 호는 운애(雲崖)인데 이 호는 대원군이 지어줄 정도로 대원군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정확히 알려진 신분은 없으나 중인 출신으로 추정되는 분이다. 조선 시대 사대부라면 살아서는 시조 한 수를 죽어서는 문집 한권이라도 남겨야 옳은 사대부로 대접받을 정도로 시조 창작은 사대부 양반의 필수 과제인데 중인 신분인 박효관이 여러 시조를 남긴 점이 이채롭다. 그는 시조 창작에 머물지 않고 제자 안민영(安珉英)과 더불어 가집(歌集) '가곡원류(歌曲源流)'를 엮었는데 이는 김천택의 '청구영언'(靑丘永言), 김수장의 '해동가요'(海東歌謠)와 더불어 조선 시대 삼대 시조집으로 유명하다. 그의 가곡집에는 모두 800여수의 시조가 실려 있는데 자신은 약 15 수의 시조를 지었으며 그 가운데 사랑과 이별의 노래들이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그가 남긴 사랑과 이별의 다른 시조 한 수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공산(空山)에 우는 접동 너는 어이 우지는다
너도 나와 같이 무음 離別 하였느냐
아무리 피나게 운들 對答이나 하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