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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벧엘교회(김포)

2021년 10월 3일 주일예배 풍성한자 빈곤한 자(계 3장 17절) - 서해범 목사님

작성자tjddms19|작성시간21.10.03|조회수88 목록 댓글 0

서해범 목사님 후원계좌 (농협  86112175546)

 

2021년 10월 3일 주일예배  풍성한자 빈곤한 자(계 3장 17절) - 서해범 목사님

 

『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영적인 일에서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기 쉽지만 빈곤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기 쉽지 않다. 빈곤한 사람은 조금 아는 것으로 이것저것 다 아는 것 같이 행동한다. 없는 사람은 없음을 시인하지만 빈곤한 사람은 자신의 빈곤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조금 있는 것으로 자만하게 하고 자고하게 만든다. 빈곤한 자는 과거 조금의 영적 체험을 자랑하며 그것으로 자신을 높인다. 

  십자가를 조금 체험하고는 다 처리된 양 자랑하는 자는 참으로 빈곤한 자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이 얼마나 빈약한지 모른다. 교만에 빠진 빈곤한 사람은 구원 받을 길이 없다. 가난하면 문제가 안 되지만 가난하며 교만하고 스스로 부하다 생각하면 문제가 심각하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자녀들도 제자리걸음만 하고 전진하지 못한다. 그 까닭은 스스로 있다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육을 말하나 육을 모르고 계시를 말하나 계시를 모른다. 십자가를 말하나 자아와 천연적인 것을 처리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빈곤한 사람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이 부요하다 말하나 하나님은 빈곤하다 말씀하신다. 빈곤한 사람은 눈먼 것과 관계된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부요하다 생각한다. 십자가를 보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에게 십자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 몸이 무언지 모르는 사람은 교회를 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눈을 뜨면 자신이 벌거벗은 자요 가난한 자임을 인정한다. 빈곤한 사람만이 자신이 부요하다 생각한다. 빈곤이란 양의 많고 적음 뿐 아니라 질적으로 귀천의 문제이다. 금, 은, 보석 과 나무, 풀, 짚과의 차이를 말한다. 이 차이는 어느 것이 빈곤한 것이고 어느 것이 풍성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우리 안에 어떠한 것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자신에게 어떠한 것이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빈곤한 사람이다. 빈곤은 얕고 어리고 성숙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풍성은 성숙한 것이다. 어린 아이는 자라지만 성년이 되면 자라지 않고 성숙해 간다. 성장의 생명만으로는 풍성이 아니다. 반드시 성숙해야 풍성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성숙하지 않음에도 안다고 생각하니 빈곤한 사람이다. 풍성은 가진 것이 많고 깊은 것을 말한다. 풍성은 하나님에게 이끌려 무엇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본 사람은 감히 스스로 옳다거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면 그 동안 내가 안다하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었음을 안다.
자라 갈수록 좀 더 깊고 높은 것을 경험하게 되고 이런 경험의 반복은 자신이 아는 것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보게 된다. 이런 체험이 많을수록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고백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큰 빛에 의해 작은 빛을 먹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무엇을 볼 때마다 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었다고 말하게 된다. 그가 참으로 전혀 보지 못함이 아니다. 전에 보았지만 더욱 큰 빛을 받을 때에는 전에 본 것을 느끼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임을 보게 되는 것이다.

  풍성은 빛으로부터 온다. 빛이 비췰 때 우리는 풍성하게 된다. 우리는 빛을 받을 때 진보함을 느끼지 않고 박탈감을 느낀다. 빛이 비췰 때 과거의 모든 것은 깨뜨려지고 본래의 모든 것이 다 허물어진다. 우리는 하나님의 빛 아래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증가된 것이 있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우리 쪽에서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의 상태와 우리의 느낌은 다른 것이다. 우리가 빛 가운데서 증가라고 느낀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지 못한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빛을 보면 갓 구원 받은 사람이요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것이다. 이는 구원 받았지만 느낌이 구원 받지 않은 사람 같고 공허하게 느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풍성한 사람은 빛 아래서 자신을 아무것도 없는 사람으로 느낀다. 우리 하나님은 풍성하시기에 자녀들이 풍성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풍성은 깊고 중후하다. 하나님의 풍성은 변역치 않는다. 그분의 은혜도 변역치 않는다. 풍성한 하나님은 계속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시며 우리로 풍성한 사람이 되게 하신다. 그분이 우리에게 풍성한 것을 주실 때마다 우리는 처음 얻은 것 같다. 이것은 기이하나 사실이다. 교만한 사람은 어리석고 빈곤한 사람이다. 우리가 풍성 안으로 들어가도록 우리를 비우게 하시기를 하나님께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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