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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벧엘교회(김포)

2022년 3월 13일 주일예배 이기는 생활의 태도(막 4장 35-41절) - 서해범 목사님

작성자tjddms19|작성시간22.03.13|조회수56 목록 댓글 0

 

서해범 목사님 후원계좌 (농협  86112175546)

 

2022년 3월 13일 주일예배  이기는 생활의 태도(막 4:35-41)

『 막 4:35-41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다(마 8:23-27; 눅 8:22-2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 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그리스도인이 이기는 생활을 하기 전에는 항복과 믿음이 필요하다. 이긴 후에는 자백과 헌신이 필요하다. 앞의 두 가지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고 뒤의 두 가지는 길을 가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자신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으로 하여금 당신을 지키고 보호하고 떠받치게 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도 찬미와 감사로 충만해야 한다. 주님이 나의 생명이며 거룩이며 의임을 찬미해야 한다. 언제든지 자신이 할 수 있다 생각하면 주님은 우리를 대신해 살지 않으신다. 그러면 우리는 즉시 넘어진다.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음의 위치에 서고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이렇게 이기는 생명을 살아도 여전히 시험이 있다. 이는 주님이 시험 당한 것과 같다. 시험은 두 종류인데 갑자기 오는 시험도 있고 완만히 오는 시험이 있다.

  갑자기 오는 시험은 대비할 시간이 없으니 미리 방비해야 한다. 미리 기도하여 갑자기 오는 시험으로부터 지켜달라고 주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갑자기 시험이 임하면 믿음의 방패를 사용해야 한다. 부패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만나는 일에 당황하거나 화를 낼 수 있다. 이 때 믿음의 방패를 사용하면 범죄를 피하게 된다. 믿음으로 주님과 하나 되면 자연스럽게 인내 사랑 겸손이 나온다. 주님과 하나 되면 부지불식간에 주님의 생명이 나타나게 되어 이기게 된다.

  또한 점진적이고 완만한 문제가 오면 주님께 기도할 것이 아니라 죄인의 위치에 서면된다. 나의 생각과 의도는 범죄 하려 하고 화를 내게 된다. 주님이 나를 위해 막아 달라 하라.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죽은 위치에 서야 한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주님으로 하시게 하면 사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금까지 나눈 것은 믿음의 관문을 통과 후 마땅히 해야 할 생활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이기는 생활을 하려면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는 두려워 말고 주님으로 모든 것을 하시게 해야 한다.

  오늘 말씀에 보면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바람과 풍랑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믿음이 없었고 주님께 구했다. 기도가 크고 절박하게 하는 기도는 믿음이 없음을 보여준다.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주님은 저편으로 가자 하셨다. 만약 믿음이 있다면 평안히 잠을 잘 수 있거나 풍랑에 반응하지 않고 안식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은 사단이 이길 수 없다. 이김은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믿는 것이다. 이기는 생활의 태도는 믿음으로 인하여 안식이 충만한 것이다.

  만약 이김의 관문을 통과하고도 범죄 했다면 즉시 죄를 자백하고 주님의 보혈이 정결케 하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는 즉시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하며 이기는 생명을 취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느낌의 생활이 아닌 믿음의 생활을 하길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을 의지해서 은혜 안에서 한 걸음씩 나가기를 원하신다. 승리는 한 관문을 통과하면 한 길이 더해진다. 주님은 변치 않으며 전진도 퇴보도 하지 않지만 우리는 자유 의지가 있고 이성이 있고 느낌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가 아는 죄는 이기나 모르는 죄는 이길 수 없다. 헌신도 아는 헌신은 하지만 모르는 헌신은 불가함과 같다.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마다 주님을 믿고 전진해 가는 것이 진보이다. 예를 들어 인내가 어렵던 내가 주님으로 인하여 인내가 되고 진보는 인내 위에 온유가 더해지는 것이다. 진보는 범위가 커지며 분량이 깊어지는 것이다. 온유와 인내 자체는 주님 것이기에 진보가 없으나 우리의 체험에서 범위와 분량이 확대되고 깊어지는 것이 생명의 진보이다. 우리가 죄를 모르다가 진리의 빛으로 죄를 발견하고 죄를 자백함으로 깨끗케 되어 진리에 거하는 것이 생명의 진보이다. 이것이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것이다(벧후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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