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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벧엘교회(김포)

2022년 10월 9일 주일예배 다른 사람의 유익을 돌보는 그리스도인(고후 4장 12절) - 서해범 목사님

작성자tjddms19|작성시간22.10.09|조회수50 목록 댓글 0

서해범 목사님 후원계좌 (농협  86112175546)

 

2022년 10월 9일 주일예배  다른 사람의 유익을 돌보는 그리스도인(고후 4:12)

『고후 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사복음서는 주 예수님의 완전한 생명을 나타낸다. 마태는 주님을 왕으로, 마가는 주님을 종으로, 누가는 주님을 사람으로, 요한은 주님을 하나님으로 나타낸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실패하는 것은 주님의 언행만 중시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그분의 언행은 우리의 마음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실패한다. 우리가 좀 더 깊이 묵상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만지고 그 다음에는 계시된 그리스도를 묵상한다. 주님에게서 아름다운 생명 안에 있는 그분의 지혜, 은혜, 인내, 자아, 아름다움, 온유, 섬세하심, 양순하심, 동정을 묵상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그분을 사모하는 불길이 타오르기까지 묵상해야 한다. 그분은 보배롭고 사랑스러우며 고상하시다. 우리는 마땅히 그분의 부드럽고 섬세하신 행위가 살아서 우리 눈앞에 그려져 깊이 우리를 매혹시키며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까지 조용히 생각해야 한다.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만약 그분을 완전히 얻을 수 없고 그분의 사랑을 맛볼 수 없다면 그것은 큰 손실이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생명에 그분의 인자와 은혜가 있기까지 그분의 행사를 묵상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권위의 문제에 대하여 화답하신 지혜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난제를 재판하신 기묘함을 알고 있다. 그분이 행하신 것은 사랑스러운 행동으로 충만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분을 묵상하는 사람은 결코 허무함에 이르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우리 구주에 대하여 풍성히 인식해야 한다.

  거칠음은 원래 경건한 생명 중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믿는 이들이 아직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지 않고, 그의 천연적 생명 안에서 일할 때 그는 강경하고 소홀한 부분들이 허다하다. 소홀하다는 것은 사람을 생각해 주지 않는 것이고, 사람의 어려움을 자상하게 돌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폐단이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인 성도들이 가장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번 신중하지 않게 되면 모든 일에서 빈틈없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병이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의 생각을 완전히 다스릴 수 없다. 소홀히 하는 것은 생각에 대해 완전한 통제가 없는 사람의 특징이다. 이러한 사람의 생각은 틀림없이 매우 산란하다. 생각이 복잡한 것은 자신에게 집중하고 통일하는 능력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숙고하는 것이 세밀하지 않기 때문에 소홀한 부분이 많은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사물을 접하거나 사람을 대할 때 모두 타당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자기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것도 소홀함의 큰 원인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편리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필요를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도록 목소리를 높여 말한 다든가 단체가 모일 때 자기의 일을 하느라 다른 사람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돌보려 함으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말을 거침없이 한다. 자기의 유익을 보전하려 함으로 다른 사람의 손실을 불러  일으킴을 피할 수 없다. 십자가의 영이 없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사람을 소홀히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생각함이 없다. 어떤 때는 성실한 마음도 나온다. 그러나 아직 다른 사람을 난처하게 하는 것을 면 할 수가 없다. 허다한 때 우리는 소홀한 것을 시원시원하고 간편한 것으로 생각하고 인사치례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거칠고 투박한 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다.

  매사에 빈틈없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매사에 사람들의 괴로움들을 자상하게 돌보아주며 자기 뜻대로 방종하지 않고 사람을 난처하게 하지 않는 것이 성도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바이다. 주님의 십자가와 성령은 다듬는 능력이 있으며 거칠고 투박한 사람을 부드럽고 세밀하게 변화시켜 준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 되려면 참으로 자아의 생명이 죽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의 권리를 돌아보지 않고 고난 받기를 원하며 모든 일에서 다른 사람의 이익을 구하게 된다.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여 우리의 생각을 다스리며 무의식중에 실수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소홀히 여기지 않아야 한다.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후 4:12).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친을 사도 요한에게 부탁한 것은(요 19:26-27) 참으로 우리의 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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