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그려 연평 부대에 기증한 그림
원양 어선 근무시절
1990년 봄 즈음 6개월의 첫항차 조업을 무사히 마치고 남태평양 참치 선망선 조업 기지인
괌 섬 아가나 항구의 카사멀 부두에 입항했다.
선장직을 처음으로 맡은 28세의 여수 수대 출신의 어린 선장의 조업실적 치곤 꽤
많은 4,500 톤의 참치를 잡아들여 선내 분위기는 최고였다.
첫 선장님의 경험 부족인지 선원들의 손발이 맞지 않아 투망하는 그물 마다 빈그물만
걷어 올리길 조업 처음 한달여동안은 선장님을 비롯한 전선원들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매일 들려오는 타선박의 투망 성공 소식에 선원들은 의기 소침해졌고 그많큼 사기가
떨어졌다.
그러다 차츰 성공하는 투망 횟수가 늘어나면서 어느새 6개월간 4500 여톤의 참치를
잡아들였다.
이당시 한국의 참치선망선 조업 방법은 미국식과 일본식을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
주간에는 수면에부상하는 참치어군을 찾아내어 스피드보트와 헬리콥터까진 동원한
참치와의 한판 승부를 벌이는 스쿨피쉬에 의존하고 새벽5시 즈음엔 전날 만들어논
유목 - 바다에 떠다니는 오래된 통나무에 해초나 갑각류등이 붙어있고 그 주위에 작은
고기떼가 서식하며 그 고기를 먹이로 하는 스키프잭(가쓰오)이 유목아래 수십톤 또는
수백톤이 모여 있다. - 유목을 찾아 새벽녘에 투망한다.
.
본선에 탑재된 헬기 발진 동영상
일본이나 대만의 참치선망선은 거즘다 이런 어획 방법으로 조업했지만 한국의 천망선은
주야로 스쿨피쉬와 유목투망을 했다.
이런 조업으로 넓디 넓은 남태평양 바다를 누비며 6개월간 기지 입항 없이 운반선의
해상 보급만으로 주야로 조업에 임했다.
고생한 보람은 4,00 여톤의 실적을 안겨주며 괌 기지에 입항했다.
이런 저런 보급품을 싫코 어망수리및 선내 각기기 수리를 하며 15일간 괌기지에서 지내던중
신임 헬리콥터 조종사와 정비 기사가 다음 조업 항차를 위해 승선했다.
이당시 동원산업에선 참치 선망선의 헬기 기장과 정비기사는 모두 외국인(주로 미국인)
을 승선 시켰다.
헬리콥터는 괌 현지에 있는 헬리콥터임대 회사에서 6 개월 간격으로 임대 했다
첫항차 기장은 40 중반의 미국인이었는데 이번 승선하게된 기장은 얼핏봐도 70 중반이나 될
백발에 주름살 많은 허리까지 꾸부정한 노인네였다.
정비사는 몸무게가 100 키로를 넘어선 거구의 흑인이었고.
그런데 아무리 봐도 헬리콥터 기장은 딱봐도 아닌거 같았다.
과연 저 노인네가 힘들고 위험한 헬기를 조종하며 거친 파도위를 타고 다니며
투망 작업을 할수있을지 의심 스러웠다.
그러나 이 걱정은 어장에 나가 조업하면서 바뀌어 버렸다.
이분은 정말 나이에 맞지않게 대담한 헬기 조종실력을 갖고 있었다.
투망중에 그물 밖으로 빠져 나가는 참치떼를 되돌리는 방법으로 수면 약 15미터
위에서 헬기 호버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분은 거침없이 그 호버링을
하면서 더구나 헬기를 좌우로 흔들면서 수면위 10 미터 쯤에서 춤을추는 묘기 까지
부렸다.
선망선에 사용하는 헬기는 주로 벨 47 이나 휴즈 500 MD 헬기를 사용한다.
내가 근무했던 선망선은 벨 47을 2항차 까지 사용했다.
벨 47 은 휴즈 헬기보다 기동력이 훨씬 떨어지고 사고도 자주 생기는 헬기였다.
그런데 70세 나이의 늙은 기장은 그런겄엔 아랑곳 하지도 않고 선장의 지시에 잘
따라 줬다.
본선 브릿지위에 헬기 착륙 데크가 있는데 참치 어군을 쫓으며 급할땐 본선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중에도 헬기는 여지없이 그 좁은 헬기 데크에서 아슬아슬하게
이륙하고 착륙하고를 수차례 왕복했다.
이분의 이름은 고든 이었다.
고든은 6개월간의 2항차 기간동안 아무 사고 없이 임대 기간을 마치고 다른 선박으로
재계약하고 승선했다.
꽤 많은 보수를 받는 직업이지만 나이 70이 넘은 꾸부정한 노인네가 할만한 직업은
아닌데도 고든은 다시 타선박으로 헬기를 타러갔다.
고든이 이처럼 많은 나이임에도 혈기 왕성하게 일을 할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고든은 젊은 시절 해병대 1사단 출신으로 한국전쟁에서 그 혹독한 장전호 전투까지
치뤄낸 노병이었고 월남전땐 자원 하여 다시 미 해병 1사단에 입대하고 전투 헬기
기장으로 2년간 복무하다 헬기가 RPG 에 맞아 척추 부상을 당하고 가까스로
살아났다고 했다.
진정한 전쟁 영웅 이었다.
직접 그려 6.25 참전 여성 해병 전우회에 기증한 그림
나의 선실 바로 앞이 고든의 침실이어서 나는 가끔 고든의 방에 놀러 갔었는데
고든은 갈때마다 항상 돋보기 안경을 쓰고 전쟁소설을 읽고 있었다.
고든의 침실 책상 위엔 군시절 찍었던 사진이 몇개 있었고 벽면에 참전중 받은
훈장이 줄비하게 걸려 있었다.
선내에 해병출신은 나밖에 없었서연지 고든은 유독 한국 해병대 출신인 나를
좋아했다.
고든은 그 당시도 한국말을 잘했다.
그래서 선원들도 무척 좋아했었다.
선장이 한국어로 지시한 말은 모두 알아듣고 그대로 수행 했다.
그리고 된장국을 제일 좋아 했던지 매일 두그릇을 비운다.
선망선 조리장이 가장 골치 아픈건 외국인인 기장과 정비사의 음식이었다.
그러나 2항차땐 그저 선원들이 먹는 메뉴도 모두 좋아했다 그러다 조리장이
가끔 미국식 스파게티나 다른 음식을 만들어주면 그의 입에선 원더풀이
식사가 끝날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스키프 렛고!!!!!!!!!!!!!!!!!!!!!!!!!!!!!!!!!!!!!!!.................."
투망 작업 동영상
본선 선미에 탑재된 스키프 보트를 내리고 본선이 그물을 끌고 참치 어군을 에워싼다.
고든이 허리가 꾸부정한 이유는 월남전때의 입은 부상의 후유증 이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연금 받으며 노후를 편하게 살법도 했지만 고든은
그렇치 않은겄같았다.
근무외시간엔 선원들과 곧잘 어울리고 고스톱까지 치면서 소주는 거의
세병까지 마시는걸 봤었다.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었고 진정한 프로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2항차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괌으로 돌아온후 3 일 뒤엔가 고든이
술을 산다며 나보고 저녘에 같이 가잔다.
저녘에 고든과 같이 갔던곳은 괌 주둔 미군들이 출입하는 스트립 바였다.
무대위엔 전라의 쭉쭉 빵빵 백발 미녀들이 스트립 쇼를 하고 테이블 마다엔
미군들이 왁자지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걱정되는게 한가지 있었다.
이 스트립 바는 동양인은 절대 출입금지인 불문율이 남아있는 곳이라
나는 주위에서 날라오는 눈초리를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고든에게 내가 올곳이 아니라서 다른데로 가야겠다고 했는데도 고든은 한사코
그냥 스트립 쇼나 보며 앉아 있으란다.
덕대 좋은 미군들이 즐비한곳에 있다는게 불안한 심정인지 눈앞에 펼쳐지는
스트립쇼도 눈에 안들어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깜둥이 미군 둘이서 네게로 오더니 쏼라쏼라 댄다.
아마도 나보고 나가라고 하는 말인가 싶어 고든에게 눈치를 줬다.
그 말은 들은 고든이 머라고 했는지 옆에 있던 다른 군인들이 우리 주위에
모여 우리를 쫒아낼 판이었다.
그렇게 옥신 각신 대화가 오가다 분위기가 험악해질려고 하는중에 헌병 군복을
입은 군이 둘이 왔다.
그리고 고든이 몇마디 하며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를 헌병에게 보여주는 순간
헌병 둘은 곧바로 기립 차렸자세를 취하고 고든에 경례를 붙였다.
그 뒤로 주위 미군들도 모두 기립자세에 경례를 고든에게 했다.
무슨 훈장인진 몰라도 아마 대단한 겄임은 그 미군들 고든에게 대하는 태도가
말해주는겄 같았다.
그렇게 미군들에게 린치를 당할뻔한 순간은 고든덕에 넘길수 있었다.
그렇다 고든은 비록 70 세 노병이지만 피비린 내 나는 전쟁을 두번이나 치룬
전쟁영웅이었다.
그의 가슴에 자랑스럽게 걸린 훈장이 아직도 20년이 지난 나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항상 긍정적 자세와 생활로 6개월간 나의 친구던 고든은 남은 여생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마도로스 스토리와 함께 하는 짐홀의 연필화 : http://blog.naver.com/alpalav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