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수, 이렇게 이겼다" - 성공 사례기
- 취약 과목의 보완
- 수학 4등급에서 1등급으로,
(이태훈·광주 종로학원 졸, 2007년 고려대학교 철학과 합격)
고3 당시 나는 수시 모집에 승부를 걸고 있었다. 목표로 삼은 대학에 지원하기엔 성적이 턱없이 부족해 점수에 맞춰 지원했지만 이마저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그 길로 재수를 결심했다. 등한시하던 정시에 미련을 가져봐야 결과는 불 보듯 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절제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주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용한 환경과 규칙적인 생활이 절실했다.그래서 기숙학원을 택했다.
나의 취약과목은 수학이었다. 수업 중 이해하지 못한 문제는 이해가 될 때까지 선생님에게 묻고 또 물었다. 처음에는 기특하다고 말씀하시던 선생님들이 나중에는 귀찮아하실 정도로 끈질기게 매달렸다.
늦은 저녁시간에도 기숙학원에 대기하고 있는 선생님들 덕분에 나는 마치 개별과외라도 하듯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리노트를 만들었다. 혼동했던 개념, 반복하는 실수, 외워야 하는 공식을 매일 밤 자기 전에 노트에 꾸준히 적었다. 노트는 항시 소지했다. 밥 먹으러 줄을 설 때, 화장실 갈 때, 쉬는 시간은 물론이고 점호 시간에도 틈틈이 봤다. 노트는 오답을 줄이는데 확실히 효과가 있었고 어느새 수학 4등급은 1등급으로 바뀌어 있었다.
재수 생활은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조금씩 채워나가야 한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한 뒤 인내심과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나는 매일 아침을 하루 일과를 짜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날의 공부 분량을 정하고 나면 이를 지키기 위해 바쁘게 하루를 보냈다. 참고로 일과표의 강도는 빡빡하지 않게 짜는 편이 낫다. 지키지 못해 실망하거나 좌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일과표를 완벽히 지키기는 힘들기 때문에 일과표에는 지키지 못한 것을 채울 시간을 따로 만들어 두었다.
재수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이자 끈기이며 노력임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case 2
- 성적 향상
- 중위권에서 상위권으로
(김승환·용인 종로학원 졸, 2008년도 입학 준비 중)
2007학년도 수능을 준비하면서 재수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다. 당시 성적은 신통치 않았지만 ‘나는 실전에 강하니까’ 라는 식으로 합리화하며 대박을 꿈꾸었던 것이다. 하지만 헛된 꿈이었다. 11월 16일 수능 보는 날, 모든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다. 사상 최악의 점수. 수험표 뒤에 적어온 답을 채점하면서 이미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후 3일간은 만감이 교차했다. ‘정말 다시 하기 싫은데, 대학 가고 싶은데…’, ‘부모님께 죄송해서 어쩌지…’, ‘친구들은 뭐라고 할까?’ 등등. 내 무너진 자존심과 자신감을 회복해야겠다고 마음을 추스렸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1월 20일, 낯선 곳에 나 혼자 떨어졌다. 처음에는 또래들도 낯설고 건물 구조도 잘 알지 못해 생활하기 어려웠지만 점차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곳에 온 것을 행운으로 여기자’라는 마음을 갖게 됐다. 공부 말고는 할 것이 없는 곳. 절제력이 약한 내가 성적을 올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집중력이 향상되고 선행반이 끝날 무렵 고3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나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1학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더욱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학교·학원·독서실을 오가는 시간낭비가 없어 공부시간이 늘어났고 내신 대비를 하지 않아도 돼 수능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5월 경에는 너무 지쳐서 그런지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배드민턴·달리기·농구·턱걸이 등 운동으로 침체된 분위기를 다잡았다. 다행히 초심으로 돌아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수능이 다가와도 나는 불안하지 않았다.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07학년도 수능에서 2,5,3등급(언어·수리·외국어 영역) 1,1,1,3등급(과학탐구 영역)이던 성적이 2008학년도 가채점 결과 1,1,2등급(언어·수리·외국어 영역) 1,1,1,1등급(과학탐구 영역)으로 향상됐다.
:::case 3
- 공부 방법의 변화
- 문제풀이에서 분석 위주로
(이준섭·광주 강남청솔학원 졸, 2007년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합격)
고등학교 때 공부를 곧잘 했다고 생각한 나에게 수능 성적표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간 본 모의고사의 최저점수보다 더 낮게 나왔기 때문이다. 혹시 하는 심정으로 수시 전형에 지원도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학습습관에 문제를 느낀 나는 기숙학원에서의 재수를 선택했다.
문제풀이 방식을 고수해온 나에게 이곳 공부 방식은 너무나 어색했다. 선생님들은 기본기를 강조했다. 문제를 많이 풀기보다 똑같은 지문이나 문제를 많이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이를 따랐다.
예를 들어 언어영역의 경우 수능 기출문제를 풀면서 지문에 나온 단락별 주제라든지 글의 구조를 살펴보고, 틀리면 왜 틀리게 되었는지 분석했다.
시 분야는 시적 상황, 화자의 정서, 화자의 태도, 표현상의 특징을 살펴보고 소설은 장면별로 분석해보았다. 외국어영역 역시 기초를 쌓는 데 중점을 두었다. 사회탐구는 교과서를 정독했다. 문제를 안 풀고 계속 읽는 건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지만 작년의 아픔을 생각하며 끝까지 읽었다. 어느샌가 개념이 잡히고 서서히 점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재수 기간은 고통의 과정이다. 1년 동안 모의고사를 보면서 뚜렷하게 점수가 오른 적이 없었다. 공부 방식에 대해 의심도 하고 좌절도 했다. 더구나 기숙학원은 외부와 차단돼 있어 힘들어도 가족 얼굴을 볼 수 없다.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새겨듣고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재수 결정은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굳은 신념이 있다면 도전해도 좋지만 대학에 더 잘 갈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라면 더 큰 아픔이 기다릴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번 선택한 학원에서 끝까지 공부하라고 덧붙인다. 학원을 옮기게 되면 다시 그 학원 체제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case 3
- 학원 선택의 변화
- 입시학원에서 기숙학원으로
(이승현·광주 대성학원 졸, 2006년 을지의과대 합격)
목표로 한 대학에 실패하고 나서 미련 없이 재수를 택했다. 처음에는 강남 모 학원에 등록했다. 그러나 남이 가르쳐주는 걸 받아먹기만 하던 나의 공부 습관과 자율적인 학원 분위기는 재수생활을 더욱 힘들게 했다. 노력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뒤처지고, 뒤처진 학생에 대한 관리는 소홀했다. 워낙에 수재들이 많다보니 성적 비교로 인한 스트레스도 심했다. 성적이 곧잘 나오다가 잠시 공부에 소홀해지면 여지없이 추락했다. 이렇게 보낸 재수 생활은 시험장에서의 어이없는 마킹 실수로 참담하게 막을 내렸다.
다시는 같은 학원을 다니고 싶지 않았다. 학원 몇곳을 방황하다가 기숙학원에 등록했다. 이해하기보다는 외우는걸 더 좋아하는 성격을 감안해 자연계열에서 과감하게 인문계열로 옮겼다.
기숙학원 생활은 쉽지 않았다. 정기휴가 전까지는 감금이나 다름없는 듯해 너무 답답했다. 게다가 초기에는 성적도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았다. 학원에 들어간 이틀 후 모의고사를 치렀다. 태어나서 본 시험 중 최악의 성적이 나왔다. 적잖은 충격을 받았음에도 꾸준히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건 학원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성적표만으로 학생을 평가하기보다 잠재력을 더 높게 평가했다. 이런 선생님들 덕분에 모의고사 하나하나에 연연하는 버릇도 없어졌다. 중요한 입시 정보도 밖에서 공부할 때보다 오히려 빠르게 접할 수 있었다.
1학기가 지나자 성적은 눈에 띄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모의고사가 끝나면 항상 상담을 받고 부족한 부분은 늦게까지 선생님께 질문해 보충했다. 사회탐구영역은 94점(200점 만점)에서 160~170점을 넘나드는 고득점자로 변해있었다. 의존하던 공부법에서 벗어나 스스로 계획표를 만들고 세부시간 관리까지 하게 됐다. 수능 전날, 오답노트를 정리한 후에 잠자리에 들었다.
세 번의 수능 중 가장 편안하게 치렀고, 1년 동안 치른 모의고사 최고 점수보다 더 높은 점수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