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는 송나라 자기와 동시대의 것이지만 그 제조방법은 다르다. 북송자기는 800도로 구웠으나 고려자기는 천2백도의 고온을 처리했다.그러므로 고려자기의 일품에는 5천개나 만개중에서서 한 개 나올까 말까할 정도로 희귀한 것이다"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자서전 '호암자전'에 실린 고려청자에 대한 글이다.
이병철은 고미술에 대한 전문가적인 안목과 식견을 지닌 사업가다. 그가 미술에 관심을 가진것은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해 양조업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30대초반부터 였다. 찾아오는 묵객이 있으며 필묵으로 시문답을 하고 그것을 병풍으로 꾸미거나 문압에 붙였던 선친의 영향이 컸다.
이벙쳘은 처음엔 글씨에서 시작해 회화에 끌리고 신라토기, 이조백자, 고려청자를 거쳐 불상을 포함한 철물, 석물, 조각, 금동상에 심취해 2천여점을 모았다. 그 중엔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것이 50여점에 달했다.
특히 그는 청자진사연표형주자(청자진사연표형주자)에 매료됐다. 이병철은 "표형주자는 동자와 연꽃잎의 정교함, 진사 채유의 넘치는 기품, 뛰어난 기형의 조화미, 그것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풍겨내는 분위기는 뭐라고 형용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수집한 미술품은 그에게 '침묵의 스승'이었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위로와 용기를, 들떠 있을땐 자제를 던져주곤 했다고 한다.
이병철은 특히 수집한 미술품에 대해 두가지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 우선 민족문화 유산을 해외에 유출시켜서는 안된다는 것과 개인의 소장품일지라도 이것을 영구히 보존해 국민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전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1982년 4월 용인자연농원내에 우리나라 건축미의 정수를 결집한 미술관을 짓고 자신의 호인 '호암'을 붙였다. 호암미술관에는 이용우, 최우석, 김중현의 한국화 대표작, 오지호, 박수근, 이인성의 풍경화와 이달주, 도상봉의 인물화, 헨리무어, 로뎅, 부루델, 마이요르, 권진규의 귀중한 조각품이 전시돼 있다.
이병철의 예술적 안목에 대한 DNA는 아들 고 이건희 전삼성 회장에게 이어졌다. 이건희는 아버보다 100배이상의 열정을 갖고 미술품을 모았다. 이우환 화백(85)은 '현대문학' 3월호에 '거인이 있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건희 회장은 한국의 미술품이라 하더라도 작품의 존재감이나 완성도가 높은 것을 추구하며, 언제나 세계적인 시야로 작품을 선별했다"며 "특히 한국의 고(古)도자기 컬렉션을 향한 정열에는 상상을 초월한 에로스(사랑)가 느껴진다"고 썼다.
유족들이 국가기관에 기증한 미술품과 문화재는 질과 양(2만3000여 점) 모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기증 목록 첫 번째에 오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를 보고 감동한 사람이 많다. 비가 갠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왕산의 절경을 그린 이 그림은 겸재의 대표작으로, 조선 회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이다. 누군가 왜 그리 열심히 미술품을 모았느냐고 묻자 "우선은 내가 좋아서 홀려서 하는것"이라며 "부디 이 컬렉션이 잘 지켜져야 한다. '이것은 나라의 것'이라고 했다. 부전자전이다.
이병철은 스스로 호암미술관을 남겼다. 이건희 유족들은 소장품을 모두 기증했으니 나라가 미술관을 세워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족이 기증한 미술품을 별도로 전시할 공간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기증의 의미가 반감된다. 이건희 컬렉션은 처음부터 미술관 건립을 계획하고 미술사적 맥락에 맞춰 수집한 것이라고 한다. 별도의 공간에 '이건희 미술관'을 세운다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떠오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