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문에서 시작하는 불암산 초입 능선(해발 고도 210m)은 평탄한 길이다.
깔딱 고개 턱밑까지 맨발 걷기로 건강을 다지는 분들이 많다.
젊은 몸은 마음 가는 대로 따를 수 있었다. 힘자랑하는 또래들을 지금은 부러워하지 않는다.
내 몸 관리는 내 책임이다. 세월은 그런 깨달음을 심어주고 간다.
조신하라는 섭리를 알아차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능선 길 가까이 벙커가 여럿 있다.
늘 다니면 눈에 익어서 무심결에 지나친다. 거기 나의 땀이 스며있다.
전방을 주시하는 감시-창은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말이 없다.
공허한 반가움에 애환이 겹친다.
공병 부대 전담팀이 터를 파고 벙커를 구축한다.
콘크리트가 굳는 동안 필요한 수분 공급이 우리 몫이었다.
산비탈에 길을 내며 하계동과 중계동 마을까지 내려가야 물을 구할 수 있었다.
군용 양동이로 나르던 땀이 벙커에 담겨있다.
능선 따라 이어진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벙커를 구축한 계기는 1968년 청와대를 기습한 1·21 사태다.
대통령을 암살할 목적으로 북한 공작원 31명이 청와대 300미터 앞까지 침투했다.
울진·삼척에는 북한의 무장 공비 120명이 세 차례 침투하였다.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한국전쟁 휴전 이후 최대 규모의 도발이었다.
우리 토벌대의 소탕 작전은
12월 28일까지 약 두 달 동안 7명을 생포하고 113명을 사살했다.
그 과정에서 민간인을 포함한 40여 명이 사망하고 30명 넘게 다쳤다.
그해 4월 1일에는 예비군이 창설되었고,
군 교육 훈련 과정에 공수가 추가되었다.
전에 없던 특공 훈련이 생긴 것도 그 무렵이다.
초급 간부로 다소 여유롭던 틈의 날벼락이었다.
무장 공비 토벌 훈련은 이전 훈련과는 차원이 달랐다.
적과 마주쳤을 때 그를 먼저 진압해야 내가 산다.
인간적 품위는 논외의 고강도 훈련이었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생각만으로 치가 떨린다.
불암산은 스님이 모자를 쓴 듯 보여 붙여졌다고 한다.
불암사와 석천암의 주지 스님과 관련된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의 은거지가 지금도 남아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돌파하고 수도 서울까지 남하했다.
이때 임관을 20여 일 앞둔 육사생도 1기와
입교한 지 불과 20여 일밖에 되지 않은 생도 2기가 동원되었다.
530여 명의 생도는 퇴계원 지역 방어전에 참전했다.
6월 27일 22시경에 육사 부근에도 적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다음 날 새벽 방어 진지에 있던 생도들에게 적의 공격이 가해졌다.
대부분의 생도는 무리를 지어 철수했다.
후퇴 명령을 거부하고 잔류한 이들이 ‘불암산 유격대’다.
그 과정에서 내촌-태릉 전투 중 낙오한 육사 생도와
포천 전투에서 살아남은 9 연대 부사관과 병사 등 10여 명이 유격대로 활동했다.
당시 생도 단체 달리기 반환점이 불암사였다.
불암사 주지 윤용문 스님과 석천암 주지 김함구 스님은
전쟁 발발 후에도 생도복 차림인 그들을
승복으로 환복하게 하고 머리도 깎아 신분을 위장시켰다.
식량을 공급하고 불자(佛子) 5명을 정보원으로 지원했다.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는 열세를 뒤집을 만한 전과(戰果)는 없었지만,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유격대 활동으로 본분을 다한 참 군인이었다.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그대로 후배 생도들에게 군인정신의 표상이다.
이들이 은폐해 있던 세 개의 굴이 지금은 육사 신입생도 기초군사훈련 견학 코스다.
불암사 입구에는
육사, 남양주시, 불암사가 함께 세운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안내판이 있고,
육사 교정에는 이들의 활약상이 적힌 불멸탑이 있다.
“이곳에서 피어나다 이곳에 쓰러져 전쟁은 머물고
아득한 시간 지금은 벗들의 뜨거운 가슴에 누워 있다.”
육사에서 28년을 근무하는 동안 혼자 감당해야 할 힘든 순간이 많았다.
심경이 혼란할 때는 불암산을 찾았다.
산은 오르기부터 마칠 때까지 물리적으로 어떤 변화도 없다.
명상 수련도 하지 않지만, 하산할 즈음에는 매번 마음이 말끔하게 정리된다.
언제 그리 심란했냐는 듯….
그래서 더 자주 찾게 되었을 것이다.
400번까지 기억하지만, 그 뒤로도 108번을 넘겼을 것이다.
두 시간이면 정상을 다녀오는 한참 때가 있었다.
퇴역 후 이어가는 요즘은 두 시간으론 턱도 없다.
불암산은 남성성이 강하다고 한다.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뿌린 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자신의 안위에 우선했다면 피할 수도 있었다.
조국을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은 그분들이 새삼 존경스럽다.
젊디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려 산하 한 기운이
소멸하지 않고 여전히 싹이 트고 자라기를 반복할 것이다.
지리산 피아골 단풍이 검붉게 아름다운 것은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거기에서 죽어간 수없이 많은 사람의 원혼이
단풍의 빛으로 피어나는 것이라 한다.
불암산을 오르내리는 길옆에 그들의 은거지를 그냥 지나쳐 다녔다.
숲의 머리를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은 나의 상념을 잠재웠다.
이제라도 맑은 물 한 잔을 올려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야겠다.
자신의 안위에 우선하며 군인으로서 본분을 저버리는
빛바랜 별들의 초라함을 느끼는 때다.
바람은 여전히 말이 없다.
불암산 산행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감사와 위로의 시간여행이다.(2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