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이 있다. 인연이라고 말해도 좋다. 연꽃과 인연을 맺은 바람은 어딘가로 떠나고, 바람과 인연을 맺은 연꽃은 그 자리에 있다. 바람은 떠나고 연꽃은 남았다. 바람은 행복하고 연꽃은 불행한 것일까? 떠나야 할 때가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죽고 못 사는 연인이라고 해도 죽으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 죽어서 하는 영원한 사랑은 그 다음 문제이다. 바람이 연꽃에 집착하면 어떻게 될까? 바람은 때가 되면 가야 할 길이 있다. 연꽃이라고 다를까? 연꽃은 연꽃으로서 가야할 길이 있다. 시인은 “좀 섭섭한 듯만 하게”라는 시구로 이별을 이야기하고 있다. 상대가 섭섭한 마음이 들면 이별해도 이별한 것 같지 않은 마음이 든다. “아주 섭섭지는 말고”에 드러나는 대로, 시인은 이별을 할 때도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 이별을 하는데 왜 배려가 필요한 것일까?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에 그 해답이 나와 있다.
내생에서 다시 만나는 삶을 우리는 어떤 말로 표현하면 좋을까? 이별을 해도 이별이 아닌 삶을 자연은 항상 반복한다. 올해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내년이면 꽃이 다시 피어오른다. 이생에서 맺은 인연이 내생에서 어떻게 풀릴지 알겠는가? 한 번 만나 끝날 인연이라고 해도 그런데, 수없이 만나고 또 만나야 하는 인연이다. 씨앗이라는 말로 표현하면 어떨까? 우리가 이생에 뿌린 씨앗이 내생에서 꽃을 피운다. 생명은 또 다른 생명들로 이어져 있지 않은가? 찰나에 스치는 인연도 셀 수 없이 누적된 시간의 결과라고 부처는 말한다. 지금 우리가 보내는 시간이 내일 우리가 보내야 할 시간을 결정한다. ‘결정’이라는 말을 썼지만, 이 상황을 ‘결정론’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오늘을 보내며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한다. 운명처럼 보이는 일에는 언제나 우리가 외면한 선택의 순간이 숨어 있다. 오늘 내가 선택한 일이 내일 내가 살아갈 운명을 빚는다.
시인은 연꽃을 만나러 가는 바람과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을 구분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사람은 기대감에 들떠 있다. 만나서 할 이야기와 행동들이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그려진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향한 즐거움이라고 할까? 이에 견준다면,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은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이번 만남이 다음 만남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르고 그 사람과 헤어진다. 만나러 가는 길에 다음 만남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만나러 가는 길은 현재를 중심에 놓고, 만나고 가는 길은 미래를 중심에 놓는다. 다음을 기약하는 만남이 되려면 지금 만난 그 사람의 마음을 끌어야 한다. 내 마음에만 빠져 시시각각 변하는 상대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못하면 만남은 거기서 그만 끝나버린다. 시 제목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라고 붙은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마지막 4연에서 시인은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을 맞세우고 있다. 초점은 “엊그제”가 아니라 “한두 철 전”에 맞추어져 있다. 엊그제는 현재에 가깝다. 한두 철 전에 비한다면 엊그제는 마음속 이미지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두 철 전은 어떨까? 기억은 이미 희미해졌다. 기억이 희미해지면 이미지도 희미해진다. 이때부터 사랑은 습관이 된다. 기억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기에 ‘습관처럼’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생에서 못 만나도 내생에서 만나면 기억할 수 있는 사랑. 서정주는 바로 이런 사랑을 꿈꾼다. 영원성에 탐닉한 그의 시를 읽다보면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마음을 새삼 느낀다. 이별이되 이별이 아닌 역설로 시인은 사랑하는 마음에 드리워진 모순을 이야기한다.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현재보다는 미래에 사랑을 두는 그의 시법(詩法)은 그래서 한없이 독특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