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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原型Archetype

CA01 동이마음 화하그림 Dongi Mind Hwaha Painting

작성자미관彌款|작성시간21.10.22|조회수239 목록 댓글 0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2ynnIuHW-vk

 

이심화화夷心華畵-

#중국고대청동문화 #中國古代靑銅文化

#국립중앙박물관 2921.09.16-2021.11.14

 

 

김영재 미술사상가 철학박사

구글 내레이션

20211021

시간...걸리는 시간...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인가...있다와 없다를 가릴 일인가 아닌가...

이夷의 마음 화華의 그림이다. 동양화라 부르는 중국 중심의 그림과 화론을 궁구하여 그 모자란, 혹은 한심한 精과 神의 뿌리를 더듬어 오르면 거기에 이夷가 있다. 동이東夷가 있다. 문화사적으로 연원이 자명하나 지정학적인 구획에 막힌 동양의 정신이 있다.

 

한국의 동양화라는 의미에서 한국화라는 말을 쓴다. 한국화라는 말은 한국의 작가들이 만든 말이다. 일본이 만든 동양화라는 굴욕적인 이름을 쓸 수 없다는 의도에서였다.

 

일본은 조선 미술전람회를 만들면서 동양화라는 말을 썼다.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 공통으로 쓸 수 있는 명칭이었다. 조선화 대만화를 인정할 수 없기도 했을 것이다. 그 말 대신 한국화를 쓴다는 것이 일제 잔재를 몰아내는 일이라 했다. 부질없는 일이다.

 

오늘날 서구인의 시각에서 보아 한국화와 동양화는 구별되기 힘든다. 서구의 미술 사가들은 중국과 일본의 미술을 구분한다. 그러나 한국의 미술은 도대체 구분할 수 없다고 힘들여 고백한다. 그럴 때 양식과 명칭은 의미가 없다. 정체성Identity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을 구분하지 못하는 미술 사가들은 중국의 화원 제도와 화풍을 받아들인 중국풍의 한국 미술을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지정학적인 불가피함에서 온다. 한국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전채서典彩署, 고려사에 보이는 한림도화원, 화국畵局 등을 거쳐 도화서가 되면서 중국의 제도 뿐 아니라 중국인들의 기질에서 부득이 만들어진 원체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한국 미술의 세계화, 그 가능성은 작가와 작가 군의 의식이 세계화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그 의식은 자신의 확고한 작품 세계, 투철한 제작 의지에 바탕을 둔다. 그리고 작품과 제작의 의지는 자신의 확고한 정체성 위에서 성숙한다. 문제는 어떠한 아이덴티티냐 하는 것이다.

 

세계무대에 나서기에 우리의 세대는 충분히 성숙했는가. 우리의 문화권은 독자적이면서도 주도적인 정신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가.

 

작가들은 고민한다. 걸려 넘어진다. 세계에 내어 보일 수 있는 우리의 것은 어떤 것인가 하는 걸림돌이다. 작가들을 좌절케 하는 이 화두는 의외로 난공불락의 철옹성처럼 보인다. 젊은 혈기는 한국의 피 끓는 작가들을 세계로 몰아세운다.

 

뉴욕에서 파리에서 그들은 좌절을 거듭한다. 불행의 시작이다. 크게는 한국을 멀리하고 작게는 전공을 포기한다.

 

이 비극이 누구의 탓이란 말인가. 심약한 화가들의 탓인가. 교육의 탓인가. 아니면 서발 장대 휘둘러 거치적거릴 것 없었던 가난한 우리의 국력의 탓인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아이덴티티의 부재에서 온다. 우리의 문화적 잠재력과 원형에 대한 신념의 부재, 우리의 문화권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심어 왔던 지정학적인 요인 등이 이러한 아이덴티티의 부재를 불러온다.

 

작가로서의 성취, 하나의 이즘을 위한 의지,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제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여야 한다. 그것은 동양 정신의 원류가 우리의 정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데서 시작된다. 그 바탕에서 중국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확실히 인식하는 것이다.

 

일본은 나름대로의 변별력을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미술은 중국 미술사의 말미에 한국 그림 두어 개를 끼어 넣고서 동양화로 분류된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중국은 없다- 허상과 그림자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는 우리의 질문은 공허하다 못해 허무하기까지 하다. 그 대답은 때로 우리보다 102배가 큰 국토라는 지리적 크기와 동양문화의 원류라는 씁쓰레한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상대적으로 중국은 대국이었다. 우리 문화의 원형이었다. 그러한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어 왔기 때문에 반론은 저돌적인 용맹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심스레 중국이라는 허상과 그림자를 헤칠 때가 되었다. 허상이라는 것은 실제의 모습이 없다는 말이다. 그림자라는 것은 실체가 따로 있다는 말이다.

 

허상은 중국의 국체에 관한 것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없다. 그것은 중국이 국가의 개념이 아니라 무대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에버하르트는 말했다. ‘중국은 거대한 무대이다. 어느 민족이든 그 무대를 차지하면 주역이 된다.’

 

실제 중국을 지탱하고 있는 한족, 혹은 화하족華夏族에 의한 중국은 전 중국의 역사의 모든 것은 아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에서 보듯 우둔하리만큼 둔중한 엉덩이의 무게이다. 우공이 자손 대대로 산을 파헤쳐 길을 만들자니 두려워진 지신地神이 산을 옮겼다는 이야기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의 중화, 그 나머지는 주변의 종족들에 의해 유도되었던 것이 중국의 역사였다. 주변의 종족들이란 선비 저 갈 강이나 거란 여진 몽고 등이다. 근대에는 일본 제국이 만주족이라 불렀던 민족이 포용되었다.

 

이들 민족들은 신 시베리아 문화권, 혹은 알타이 문화권에 속한다. 인종학적으로 몽고족이다.

 

알타이 세계-중국의 자양

기원전 2만 5천년에서 1만년 경 몽골 인종이 형성된다. 중앙아시아의 튜란 고원에서 북동 아시아와 시베리아를 거쳐 파급된 문화가 알타이 문화, 혹은 신 시베리아 문화라는 주장이 있다.

 

알타이 문화는 유럽의 터키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아랍 인도 중국 시베리아는 물론이고 베링 해를 건너 북남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파급되었다. 그 문화가 중국을 살찌게 한다.

 

비유컨데 중국이란 하나의 호수이다. 화하족은 근본적으로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며 합리적인 민족이다. 장태염은 ‘중국 국민의 습성은 일용적인 일을 살피고 농공상에 힘쓴다. 그 뜻은 삶에서 다하고 말은 실증할 수 없으면 하지 않는다’ 라 했다.

 

그래서 이 말을 인용한 하신何新은 ‘중국인은 철학상 추상적인 사변을 아주 좋아하지 않는 민족이다. 신화는 민족의식의 창조물이어서 당연히 민족문화와 사유 유형의 기본적인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신화는 누가 만들었더란 말인가.

 

그 민족의 풍토에서 종교철학이나 문화 예술이 싹튼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그들은 현세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동양문화의 요람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호수와 같은 포용력에 동인이 있다. 호수에는 언제나 새로운 물을 제공하는 수원이 있고 연못의 죽은 물을 넘치게 하는 큰물이 있다.

 

그 큰물이란 중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민족의 찬탈이다. 몽고족에 의한 원나라, 만주족에 의한 청나라 등은 그 대표적인 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바닥에 깔려 있는 진흙까지는 걷어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썩은 물은 교체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호수가 썩지 않게 해주는 것은 호수의 생성 이전부터 줄곧 호수에 유입되어 온 상수원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도 이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한 예로. 1995년 9월 서울서 열린 아시아 포럼 2005 에서 왕몽王蒙 중국 작가 협회 부주석 겸 전 중국 문화부장관은 한족의 주체적 문화는 국내외 소수 민족들과 아시아 여러 국가들에 대한 거대한 친화력과 흡인력의 결과라 말하고 있다.

 

동이라는 상수원- 왜곡과 불신

그 영향원으로써 중국이라는 호수의 상수원에는 동이족이 있다. 동이족이란 중원에서 보아 산동성일대를 장악했던 우리의 선조를 말한다. 그 흐름은 중국의 형성 이전에 거대한 문화를 이끌어 왔다. 그 신선함이 오늘날 중국이라는 큰 연못의 시발이 되고 있다.

 

동이족에 의한 문화의 원류라는 관점은 오늘날 한국의 뜻 있는 학자들에 의해 천착되고 있기는 하되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경원시되고 있다. 왜냐하면 5천년 한국의 역사는 바로 불신과 왜곡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동이족에 의한 중국 역사의 원형은 중국학자들의 견해에서 찾아내야만 하게 되었다. 중국의 학자들은 한국 학자들에게 우호적이다. 동이 관계 논문과 자료를 건넨다. 그 자료는 십중팔구 사장死藏된다. 왜곡과 불신의 역사의 악순환이다. 악순환의 역사는 이러하다.

 

최초로 화하족이 동이족의 역사를 왜곡했다. 사마천은 고대에서 기원전 2세기에 이르는 130권의 사기를 쓰면서 동이족의 신화와 역사를 불태워 버렸다. 사기는 제왕의 사적을 편년체로 기술한 책이다. 기전체라는 중국인의 실리적이고 실제적인 기술 양식으로 동이족의 신화를 다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았다 했다. 현실 속의 인간이 중심이 되는 유교의 교리에서 신화와 전설은 괴이한 것이었고 태양신이나 천상계는 어지러운 신들의 세계였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공자가 동이족이라 한다. 이유는 그가 뜻을 펴지 못하자 ‘구이九夷에 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동이족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노나라에 동이족의 신화와 역사가 만연했다는 증거는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다,

 

실제 공자가 편찬했다고 하는 삼경, 즉 시경 서경 주역은 동이족의 역사와 철학과 제의이다. 시경은 동이족의 민요와 시가이며 서경은 동이족인 역사이며 주역은 동이족의 치수 신화에서 비롯한다. 하도 낙서가 그 원전이다. 홍범구주와 팔괘의 중심 사상이 된다. 신화와 전설 시대가 동이족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반도의 사대주의자들에 의해 역사는 축소되었다. 삼국사기의 김부식은 물론이거니와 삼국유사의 일연조차 중국의 역사를 기초로 해서 삼국의 역사를 기술했다. 이미 중국에서 기득권을 기정사실화하였던 영토와 역사와 원형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6세기 위서에까지 수록되었던 우리의 역사지만 그나마 단군신화 주몽신화 등의 신화라도 건질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 관행은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철저히 추수되었다. 대국 중국이라는 절대 지상의 과제에서 한국은 재해석되었다.

 

세 번째로 일본에 의해 한국의 역사는 왜곡 은폐 축소되었다. 삼국의 고구려 백제 신라의 반도에서 건너간 이른바 도래인渡來人들은 그들의 신천지에서 대부분 반도의 치욕스런 기억을 지우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일본서기에는 반도의 영향이나 반도와의 연관은 철저히 배제된 사실이나 신화가 수록된다. 때로 그것은 일본의 자생적인 문화 문물로 왜곡되거나 한국의 중심적인 역할은 축소되었다. 그것을 좋은 말로 ‘조용한 아침의 나라’ 라 했을 것이다.

 

반식민사관이라는 이름의 식민사관

 

일제 36년은 결코 36년으로 끝나는 단발성 지배가 아니었다. 상고 시대 도래인의 역사에서부터 은폐와 왜곡과 축소로 일관해 온 그리고 호시탐탐 반도 침탈을 일삼아 온 그들의 반도에 대한 모든 사상은 식민사관이란 말로 요약되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뿌리 없고 줏대 없고 자립의 능력이 없는 한민족을 일본의 지배에 두어야 한다는 대의명분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것의 합리화를 위해 그들은 한국의 역사를 단군신화에서 시작하고 있다.

 

단군신화는 허구의 역사였다. 하늘에 사는 신이 아들을 내려 보내 곰과 교접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후손이라니 그것이 인간이겠는가. 식민사관은 그렇게 시작된다.

 

단군조선은 기자箕子 조선으로 연결된다. 기자는 중국인이다. 그래서 반도는 애당초 중국의 속국으로 운명 지워졌다 했다. 이어 한사군을 펼친다. 최초의 식민 정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본이 식민지로 만든들 그것이 무슨 치욕이겠는가 하는 것이 역시 식민사관이었다.

 

비교적 자상하게 고구려의 역사가 기술된다. 그러나 그것은 의도적으로 왜곡한 광개토왕비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방편이었다. 반도를 일본이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의 조작이다. 신라의 역사는 그나마 신라 천년에 이어 고려 조선을 이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상도의 세력이 유지되어 오는 바람에 보존되었다.

 

그러나 백제의 역사는 삼국 중 가장 형편없는 나라로 묘사되었다. 중국 대륙이 백제의 무대였다거나 백제의 문화가 일본 문화의 뿌리라는 사실은 중국이나 일본에게 굳이 들어내고 싶지 않은 치부였을 것이다.

 

그 백제의 비극은 ‘의자왕의 오류’ 로 집약된다. 의자왕은 해동 증자라 불릴 만큼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 신라의 미후성 당항성 등 요지를 공략한 용맹한 왕이고 고구려와 화친을 도모하는 등 지모가 뛰어난 왕이기도 했다. 말년에 성충 등의 충간을 듣지 않더니 이윽고 패망했다.

 

의자왕의 오류는 기본적으로 패망한 마지막 왕에 대한 비난이 극도로 과장되어 있다. 그 과장은 한마디로 ‘삼천 궁녀’ 로 집약된다. 삼천 궁녀라, 삼천 명의 여자를 말한다. 의자왕이 하루에 한 여자를 데리고 잔다고 칠 때 첫날밤의 여자는 10년 후에 다시 왕과 동침하게 된다.

 

의자왕의 삼천 궁녀는 의자왕이 황음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아 멸망했다는 이야기를 우화로 만든 것이다. 그것이 역사이다. 후세의 집권자들은 이전의 집권자들의 실정과 하늘의 뜻을 저버린 패덕을 빌미삼아 하늘의 대의명분을 찾아낸다. 그것이 식민사관에서 찾아낸 역사 왜곡의 단순 논리였다.

 

그래서 고려는 불교에 의해 망했고 조선은 당쟁에 의해 망했다고 식민사관은 가르치고 있다. 나아가 조선의 ‘짚신’ 들은 종교로도 구제할 수 없고 학문이나 정치로도 가르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민족으로 낙인찍었다.

 

그리하여 임나일본부를 통해 이미 식민의 경력이 있는 일본이, 중국에 이미 종주국의 예를 바치고 있는 반도를 병합하는 것이 어찌 죄가 될 것이며 어찌 그들에게 수치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식민사관이었다.

 

그 식민사관이 오늘날 우리 역사관의 뿌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반도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허망한 존재인 단군에서 시작되어 중국의 통치를 받으면서 중국에 사대의 예를 바치다가 일본의 지배에 들었다는 사관이 그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인의 체념적 역사관이기도 하다.

 

피가 끓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7천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도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범해 본 일이 없는 평화로운 국민이 반도라는 이유만으로 대륙과 해양 사이의 노리개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울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울분이 역사를 차분히 광정할 수 있는 민족이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단일민족의 단일 문화를 오천년 이상 간직한 민족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그 역사와 신화와 원형으로 돌아가서 우리 민족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짐작되려니와 한국의 문화사는 이족夷族-동이족東夷族의 역사에서 비롯한다. 그것은 중국 역사의 기원이고 원형이며 동양 정신의 본체이다.

 

동이 삼신이 지배하다.

먼저 단군신화 이야기이다. 단군은 식민사관이 지적하듯 실체가 없다. 즉 단군이라는 고유명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군檀君은 천군天君이다.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사장이다. 단군의 단자는 박달나무 단으로 읽는다. 박달은 밝달이다. =밝알이다. 밝은 알이다. 즉 태양이다. 태양의 임금이라는 말이다. 이하: 아래아 ‘ ᆞ’는 =현대한국어로 대체함

 

그래서 하늘의 임금이라 한자로 번역될 수 있었다. 몽고어에서 金을 알타Alta 또는 알탄Altan, 양陽을 아르야Arya라 발음하는 것은 태양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단군은 그러므로 대명사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베리아 문화권에서 하늘에 제사지내는 신관을 일컫는 공통적인 이름이었다. 단군 당그리 리=대가리 텡그리Tengri 천구天狗 팅그리Tingri 탕그리Tangri 탕가라Tangara...등이 모두 하느님, 신성, 일광의 뜻으로 쓰인다. 그러므로 이 용어들은 신 시베리아 문화권에서 멀리 터키에까지 단군이라는 이름의 제사장이 존재했음을 알려준다.

 

단군조선을 창건한 것은 왕검이다. 그래서 단군 왕검이다. 왕+=감이다. 왕은 하늘과 인간과 땅을 관통한다. 한자의 왕王은 가로 누은 세 획三을 세로획ㅣ이 관통한다. 천지인을 꿰뚫는다는 뜻이다. 검은 =감이다. 태초의 절대자 개념이다.

 

환검이라 할 때는 환인 환웅 환검을 일컫는다. 삼신이다. 삼신 사상은 동이 정신이다. 실체가 있는 민족의 정체는 왕검 조선, 혹은 환검 조선이 된다.

 

환인이 보매 그의 아들 환웅이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었다. 삼위 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상을 이룩할 만하였다. 천부인 세 개를 주어 세상으로 내려 보냈다. 웅은 무리 삼천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었다. 웅녀를 취해 단군을 낳았다 했다. 단군신화이다.

 

환인桓因은 글자로 풀이하면 ‘밝음의 근원’ 이다. 인도의 인드라Indra신의 단순 의역이다. 환인이 인드라를 있게 했을지언정 인드라가 환인이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격은 같다. 태양신이다. 그 아들이 환웅이다. 정말 태양신이 그의 아들을 지상에 내려 보냈을까. 신화는 유연한 사고를 요구한다.

 

태양신은 태양이다. 태양의 아들이 무엇인가. 햇빛이다. 환인이 환웅을 세상에 내려 보냈다는 구절을 상식적으로 바꾸어 보자. 태양이 햇빛을 지상에 비친다 가 된다. 고대인에게 햇빛은 가장 높은 산에 먼저 닿았다. 그것이 바로 천하제일 산이었다.

 

천하제일 산은 곤륜산이고 태산이라 알려졌다. 물론 중국식의 발상이다. 사실 곤륜은 태산이고 백산 이었다.

 

태산은 고대에 태산太山으로 썼다. 고대에 태太=대大=천天이었다. 태산泰山=태산太山=대산大山=천산天山이 된다. 곤륜崑崙은 고대에 천天의 호칭이었다. 곤륜=천산天山이다. 그러므로 태산=곤륜산이다.

 

또 태산은 옥산玉山, 곤륜산은 군옥산君玉山이었다. 고대에 옥玉=왕王이었다. 그러므로 왕산=군왕산이다. 다시 곤륜은 태산이 된다. 그런데 곤륜과 태산에 없는 것이 있다. 칼데라 호라 부르는 호수는 곤륜과 태산에 없다.

 

곤륜에는 상제의 오중궁궐이 있다. 열두 개의 누각 오른쪽에는 새의 깃털도 가라앉는다는 약수弱水, 왼쪽에는 서왕모가 주 목왕을 불러 잔치를 벌였다는 요지瑤池가 있다. 그런데 산정에 호수가 있는 산은 백두산이 셋 중 유일하다.

 

환웅이 내린 곳은 태백산이었다. 큰 백산이다. 백산白山은 산=밝산이다. 태양산이란 뜻이다. 신산神山 성산聖山이라 한다. 태양의 아들이 내려 큰 밝산이라 했다. 백두산을 위시하여 한국의 산에 유독 백산이 많은 것은 이 태양사상의 반영이다.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었다 했다. 신단수神檀樹는 신의 박달나무이다. 박달은 태양 나무이다. 그 아래서 신의 도시를 열었다. 다시 곤륜=태산=옥산=왕산=태양산=백산이 된다.

 

한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은 중국 문화란 이름 아래 묻힌 동양문화의 원전이다. 단군신화는 세계 정신문화의 단초가 되는 구절도 발견된다. 호랑이 신화와 하느님의 존재 이야기이다.

 

호랑이와 곰이 사람이 되고자 했다. 마늘 20개와 쑥 한줌을 주었다. 백일 간 기도를 하라 했다. 호랑이는 튀어 나갔다. 곰은 여자가 되었다. 웅이 거짓 화하여 웅녀와 결합, 왕검을 낳았다. 삼국 유사의 이야기이다.

 

유사만 하더라도 이미 중국의 춘추필법이나 기전체紀傳體 사초史草의 영향을 받고 있다. 설령 곰이 여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태양의 아들과 어찌 동침하여 인간을 낳을 수 있는가. 그래서 일연은 환웅이 거짓 화하여 웅녀와 동침하였다라고 얼버무리고 있다.

 

역사에서는 선진 배달국의 환웅이 곰을 토템으로 모시는 곰 부족의 웅녀와 혼인했다고 적고 있다.

 

쑥 한줌은 인간이 줄 수 있는 세계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마늘 20개는 인간이 셀 수 있는 기본적인 숫자이다. 인간의 세계를 상징한다. 곰은 =감이다. 검劍과 통한다. 도검숭배사상과 연관이 있다. 왕검의 검과 통한다. 다시 도검숭배사상은 천신 혹은 태양숭배 사상과 연결된다.

 

옛날 제사는 하늘과 땅에 올리는 제사였다. 하늘에는 태양을 땅에는 지신을 제사지냈다. 제사에 희생을 죽이는 것, 그것이 검이었다. 희생은 모두 죄인이었다. 제사와 형벌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검은 생사여탈권을 가진 임금, 혹은 제사장의 권위를 상징한다. 도검숭배사상은 시베리아 문화권의 공통 습속이었다.

 

환인과 태양신

태양신 숭배는 알타이 문화권의 공통소였다. 신강新疆의 나포뇨이羅布淖爾 신석기 묘지에서 발견된 태양신 상징의 말뚝, 사천四川 공현珙縣의 암각화에서는 십자형 태양과 다른 양식의 태양이 그려진 것이 그러한 예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태양신 제사, 마야 아즈텍 잉카 문명의 태양신 숭배도 그 예가 된다.

 

언어적인 접근에서도 이 태양숭배 사상은 드러난다. 수메르어로 팔 pal 발bal 은 빛난다, 비친다는 뜻이다. 유구말 피루는 태양이다. 일본어의 히루ヒル역시 태양을 의미한다. 또 수메르 어로 팔, 바라는 신궁 왕성의 뜻이다.

 

은나라 서울 박亳은 부락 동산의 뜻이다. 우리말에서 밝은 두 가지 뜻을 가진다. 박朴 혁爀 벌伐. 원原 국國이다. 태양과 밝음과 넓은 들이라는 뜻이다.

 

태양숭배 사상을 제의로 연결한 것이 동이족이었다. 동이족의 나라인 상나라에서 발견된 은허의 복사에는 태양신에 점치고 제사지내며 희생을 바친 기록이 있다. 그 전통은 오늘에도 이어져 온다.

 

지금의 대종교는 부여에서 대천교侍天敎, 고구려에서 경천교敬天敎, 삼한에서 천신교天神敎, 신라에서 숭천교崇天敎, 발해에서는 진종교眞倧敎, 고려에서 왕검교王儉敎라 하였다. 뿐만 아니라 만주족은 주신교主神敎, 요금遼金에서는 배천교拜天敎라고 했다. 모두 알타이 족이었다.

 

중국 고대 문화 유적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암각화에 동이족의 제단화라 중국인이 추측하는 태양의 도상이 나타나는 것이 우연일까.

 

=감은 =닭이요 =밝이다

구석기시대의 =감 사상은 곧 신석기 시대에  사랑으로 이어 토기 및 동기 시대에는 =밝 사상으로 연결된다. 철기시대에는 하느님으로 불렀다. 검이 칼이고 곰이라면 =닭은 닭이고 새이다. 조류 숭배 사상은 태양숭배 사상이다. 아침에 닭이 울면 태양이 뜬다.

 

그래서 닭은 석계 옥계 금계 등으로 표상 되었다. 태양을 일깨우는 새인 것이다. 그리고 고대인에게 태양은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존재였다. 새 중에서 가장 큰 새는 우주새이다. 그 우주새는 태양새이기도 했다.

 

우주새는 우주알을 낳았고 그것은 역시 태양이었다. 그러므로 고대인에게 태양과 우주는 새와 알로 쉽게 연상되었을 것이다.

 

태양은 삼족오라 했다. 세발까마귀이다. 산해경에 실린 이야기이다. 산해경은 신선 시대 초기 곤륜산을 중심으로 하는 산악설의 대표 경전이다. 발이 셋 달린 새는 남자의 권위를 상징한다. 세 번째 다리를 가진 것이 남자이다. 당시 모계사회에서 부계 사회, 가부장적 사회로 진입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까마귀는 까만 새이다. 동이족의 나라 은殷의 시조는 설契이다. 그 어머니 간적簡狄이 제비의 알을 입에 머금고 설을 낳았다. 그때 제비는 현조玄鳥였다. 현조는 까만 새이다. 까마귀일 수도 있었던 새다.

 

그 까만 새는 다시 희생을 삶는 솥으로 일체화된다. 솥鼎은 발이 셋이다. 그 밑에서 불을 때면 솥은 까매진다. 그러므로 까망+세발이 결합된다. 다시 태양과 새가 결합된다. 태양은 생사여탈권을 가진다. 왕이나 제사장도 그러하다. 생사여탈의 권위를 가진 남자 제사장이 희생을 정하여 검으로 죽이고 삶아 태양에 제사를 지내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그 새 중의 새는 우주새이다. 봉황이다. 동이족의 신조이다. 산해경에는 봉새와 난새가 있어 태평성대에 나타난다고 했다. 봉황은 원래 황이었다. 후세에 암컷은 봉, 수컷은 황으로 고착되었다. 황黃=광光=황滉=황皇=황凰으로 연결된다. 태양太陽=황제黃帝=태호太昊라는 지고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태양이 나타나지 않으면 세상에 재앙과 흉년이 든다. 태양이 있는 세상이 태평성대이다. 또 봉황이 나르면 뭇 새가 따라 나른다 했다. 아침에 태양이 솟으면 모든 새들이 이슬 내린 나뭇가지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래서 봉황은 태양이라 한다.

 

그렇다면 달은 무엇인가. 그것은 호랑이이다. 뛰쳐나간 호랑이는 모계사회에서 부계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반항을 했던 영웅적인 여성상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호랑이는 서왕모西王母, 하후개夏候開, 신도神筡로 연결되는 호랑이신, 나아가서는 달의 신과 연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다.

 

서왕모는 산해경의 주인공이다. 상나라의 갑골문에는 서모西母라 표기된다. 진晉의 원가袁珂는 산해경에 동이족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고 표현한다. 산해경은 동이족의 경전이라 중국의 학자 손작운孫作雲은 단정한다.

 

그 산해경에서 서왕모는 ‘머리꽂이-옥승玉勝을 하고 호랑이 이빨에 표범의 꼬리를 하고 가끔 으르렁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삼청조가 시중을 드는데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를 물어다 주면 으르렁거리며 뜯어먹는다 했다. 호랑이다. 중국인은 서왕모를 동물신으로 규정한다.

 

호랑이는 신화시대 중국에서 벽사의 동물이었다. 귀신을 씹어 먹는 호랑이, 옥황상제가 살고 있는 하늘 궁전을 지키는 하후개 혹은 하후도는 호랑이었다. 그리고 서왕모가 살고 있는 곤륜산 요지의 반도를 지키는 것도 호랑이 신이었다.

 

반도蟠桃는 굽이굽이 삼천리를 뻗는데 삼천 년마다 복숭아가 열린다. 하나를 먹으면 삼천 년을 산다 했다. 그 반도의 아래서 신도神茶와 郁壘욱루라는 신이 있어 나쁜 귀신을 왼 새끼로 꼬아 죽인다 했다. 신도의 도가 바로 호랑이를 의미한다.

 

서왕모는 달의 신이다. 장생불사의 천도복숭아, 즉 반도를 관리하고 있다. 불사약 이야기는 그래서 나온다. 서왕모가 동이족의 장군 예에게 불사약을 준다. 천상의 선녀였던 예의 아내 상아 혹은 항아가 두 사람 분의 불사약을 혼자 마시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천제의 노여움이 두려워 잠시 달에 들렀다가 두꺼비가 된다. 그래서 달의 신이 되었다. 달의 신은 서왕모이다. 그래서 서왕모는 상아요, 항아의 이미지와 결합된다.

 

신화란 그런 것이다. 불사약을 준 서왕모와 불사약을 마신 항아가 함께 달의 신이 되는 것이다. 달 토끼는 오해의 산물이다. 원래 菟토였다. 호랑이를 의미한다. 그것이 토끼의 토兎로 읽혀져 오늘날 불사약을 찧고 있는 토끼의 모습이 결합되었다.

 

서왕모가 호랑이면서 달의 신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남녀를 짝 지운다는 월하노인도 달의 신이다. 서왕모인 것이다.

 

알님과 하느님

약간은 우회하는 감이 있지만 구약의 창세기에 카인의 오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가 여기 호랑이에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진흙으로 빚어 아담을 만들었다. 최초의 인간이 탄생한 것이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를 만들었다. 두 번째 인간의 탄생이다.

 

그 둘의 사이에서 카인과 아벨이 태어났다. 세상에 네 사람이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카인이 아벨을 죽였다. 세상에는 세 사람만 살아남았다. 하나+님이 카인을 에덴의 동쪽으로 내치자 카인은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형제를 죽였다 하여 나를 돌로 쳐 죽이면 어떡하오리까. 하나+님은 카인의 표적을 주시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세상 사람이라니. 이 카인의 오류를 경전 내에서 찾을 수 없다. 그래서 경외서를 뒤진다. 하나+님이 최초로 만든 여자는 이브가 아니라 릴리오칼라니이다. 하도 드세어서 이혼을 시키고 이브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란 말이 설명이 될 수 있다. 그 드센 여자가 동굴 속에서 뛰쳐나간 호랑이처럼 생각되지 않는가?

 

이 가설은 단군신화가 구약의 성립 이전의 것이라는 단순 전제에 따른 것이다. 사실 삼신 사상이 도교의 삼청사상이 되듯 기독교 삼위일체의 영향원이라는 견해도 있다. 구약이 주변문화의 집대성이라는 주장은 많다.

 

노아의 전설은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길가메슈 또는 우트나피시팀의 영웅담을 따왔다. 창세신화 역시 많은 민족의 공통 인자를 가진다.

 

구약의 하느님은 단군신화, 규원사화 등에 나오는 하느님과 성격이 같다. 천지창조에서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이미 인격적으로 심미적으로 완성된 존재였다. 인간을 만들 수 있었고 만들어진 세상이 보시기에 좋았다.

 

그 세상이 규원사화의 세계이다. 하느님이 바로 환인이다. 태고에 홍몽鴻濛한 암흑천지의 상계에 문득 하나의 큰 신이 있었으니 그가 세상을 다스리는 무량한 지혜와 능력을 가진 환인이 있었다 했다. 어쩐지 기독교의 하나+님과 비슷하지 아니한가. 환인은 구약의 유일신 하나+님 이전에 존재했다.

 

양주동에 의하면 하=하날天의 원어는 한=한발大光明. 大國原이다. ㅂ-ㅇ형 음전에 의해 한=한발-한=한밝-한=한알로 전음轉音된다. 한은 하大의 연체형이다. =발 =밝은 광명 국토의 뜻이다.

 

고사에 발發 벌伐 불弗 불沸 불不 부여夫余 부리夫里 화火 원原 평枰 평評 평平 혁赫 소昭 명明 내지는 백百 백伯 백白 맥貊 박泊 박朴 호瓠 등으로 국명 지명 인명 등에 차자借字되었다 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하늘 님이다. 가장 높은 분이면서 태양이다.

 

그리고 그 태양신의 숭배는 동이족에서 비롯하였다. 위서魏書를 비롯한 삼국유사의 시조신들은 이 사상에서 성립한다. 해부루는 해+불, 박혁거세는 밝은 태양, 온조는 해의 정기日精으로 해석된다. 모두 태양신이나 태양신의 후손을 의미한다.

 

태양신 숭배는 산악숭배로 연결되어 신선 사상을 낳는다. 그 신선 1호는 단군이다. 단군은 구월산에서 산신이 되었다. 신선이다. 사람이 산에 들어가야 신선이 된다. 그것이 신선 선仙자의 의미이다. 신선은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을 귀천歸天이라 했다. 풀이를 하자면 사람의 죽음이다. 한국인에게 죽음은 하늘로 돌아감이다.

 

태양 아래 신선이 깃들인 땅

옛 사람들은 백두산에 오른다 하지 않고 든다 했다. 천지에 내린다 했다. 그것이 신선 사상, 그리고 태양신 사상과 연관이 되어 있는 신선사상이다. 마치 태양이 백두산으로 들어가고 하늘에서 천지에 내린다는 뜻으로 읽히지 않는가.

 

한반도가 신선의 땅이라는 방증은 많다. 산해경의 열고야列姑射는 장자 속의 막고야산藐姑也山과 같다. 신선의 땅이다. 그것이 조선의 남쪽 바다의 북쪽에 있는 섬이라 했다. 지금의 제주도쯤 위치이다. 또한 삼신산, 즉 봉래 방장 영주 산 역시 반도에 있다고 해석될 만한 전거는 많다.

 

신선 사상은 연제해빈에서 만들어졌다. 그것이 산악설이다. 곤륜산이 중심이다. 전국의 초나라에서 융성했고 진시황 시대에 극성을 이루었다. 후세에 주의 위왕, 선왕 이하 한 무제 때부터 시작되는 해상설, 후한 말에서 위진시대 즉 도교 시대의 천선설과 지선설은 산악설의 후편이다.

 

그런데 연제해빈은 산동성을 중심으로 하는 해변이다. 동이족의 무대이다. 전국戰國 초楚나라는 상족商族으로 이루어졌다. 상족은 대부분 동이족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초나라는 태양신과 조상신을 제사지냈다.

 

사람에 따라서는 진시황이 동이족이라 했다. 진시황이 동이족이라면 중국 영화 「서초패왕」에서 진시황의 군대가 불렀던 노래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항우가 파묻은 진시황의 20만 군대는 죽음의 앞에서 항우의 군대에게 노래했다. ‘우리는 동족’ 이라고...

 

진나라는 B.C.221년에 중국을 통일했다. 춘추전국시대에서 B.C.771-221 춘추시대는 주왕조B.C. 1120-771의 동천 이후 360년간, 전국시대는 B.C.403년 진晋이 한韓· 위魏· 조趙로 분열했을 때부터 진秦의 통일까지의 150년간이다. 동이족은 춘추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대륙의 절대적인 영향원이었다.

 

그렇다. 상고 시대에 동이족은 중국을 지배했다. 상나라가 동이족의 집단이라는 것은 하나라 역시 동이족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라와 상나라보다 먼저 존재했던 요 순은 동이족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상고 시대는 동이족이라 나중에 불렀던 종족의 독무대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구석기시대 홍적세 초기 황하 하류 유역에 살았던 북경 인류나 신석기시대의 인간들에게는 종족의 개념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당시 동이족이라 불렸던 종족 역시 자신들이 동이족이라 불릴 것이라는 것을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신화 전설의 현장- 문자와 문화

전설 시대라 하는 하夏나라와 그 후의 은殷왕조 B.C.1500-1100 이전의 신석기 시대 즉 B.C.2000년경 화북의 황토 층에서 일어난 농경문화는 최소한 동이족과 연결되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산동으로부터 발해만 연안에 분포했던 앙소仰昭문화 B.C.3000-2500년경 산동성 역성현 성자애유적에서 재구성한 용산龍山문화 B.C.2000-B.C.1500 등이 동이족이 동참한 문화라는 추측도 그다지 억설은 아닐 것이다.

 

왕신王迅은 󰡔동이문화여회이문화연구東夷文化與淮夷文化硏究󰡕에서 악석문화岳石文化를 설정한다. 시기는 하남河南 산동山東의 용산龍山문화 이후, 성격은 하대夏代 상대商代 이인夷人의 문화이다. 독자적인 지역적 특성을 바탕으로 산동山東 용산龍山문화의 전통과 선상先商문화의 영향 아래 형성된 조기早期 청동 문화이다.

 

두계태斗鷄台문화는 안휘 강희지구의 문화 요인을 주로 하여 악석岳石문화 요인을 많이 받았다. 중원 지구 하대의 회이淮夷 문화인 이리두二里頭문화의 조기早期청동기 문화를 흡수하였다. 두계태 문화는 또한 강남江南지구 신석기시대 만기晩期 ·청동기시대 문화와 교류가 있었다

 

여기서 동이와 회의는 일종의 연합 관계에 있던 종족이었다. 회이淮夷는 동이족인 소호 족에서 분파한 고요족이 남하하여 강회江淮지역과 회북淮北일부 지역의 원주민과 융화함으로써 형성되었다. 하상夏商시기 동방東方지구의 고고학 연구의 핵심이다.

 

중국 문화사는 산동을 빼고 논의될 수 없다. 문화사에서는 알타이족, 혹은 신 시베리아 족이라 불렀다. 그 알타이 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아 중원을 지배했던 신화시대의 종족이 동이족이었다. 문자는 이 신화시대에 동이족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남성 안양 시의 소둔촌 은허에서는 일만 팔천조각에 가까운 갑골문이 발굴되었다. 갑골문은 왕의 신관인 정인貞人들이 거북 껍질이나 짐승의 뼈로 점을 친 후 판단된 길흉을 그 표면에 기록한 문자이다.

 

은나라가 동이족의 나라라는 전제에서 본다면 갑골문은 동이족이 만든 것이다. 다시 환단실기에 나오는 신지 녹도문자와 겨루어 비교될 만하다.

 

녹도표의문자鹿圖表意文字란 거발환居發桓 환웅桓雄이 세운 배달국倍達國에서 사용했다는 문자이다. 환국 사관은 서기전 72년기에 천산 산맥 중심으로 안파견安巴堅 환인桓因이 환국桓國 집단을 세웠다고 주장한다.

 

이어 서기전 39세기에 협서성 태백산太白山에서 거발환居發桓 환웅桓雄이 배달국倍達國을 세웠고 세계에서 최초로 녹도표의문자鹿圖表意文字를 고안해 세계 문화의 원천이 되었으며 서기전 27세기 중국 황제 시대의 창힐이 만든 상형 문자와 서기전 28세기 수메르의 설형문자의 기원이 된다 했다.

 

이 사관에 의하면 우리가 개천주로 알고 있는 단군 왕검은 배달국의 후손이다. 배달은 =박달明土박달-단檀으로 통한다. 배달국에 이어 서기전 24세기에는 길림성 불함산不咸山에서 환검桓儉이 조선국을 세우고 전자篆字를 사용했다는 것이 소위 환국사관의 주장이다.

 

신화시대는 동이 시대이다. 태호 복희씨는 팔괘를 만들었다. 팔괘는 우임금이 치수할 때 낙수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적힌 49개의 점에서 왔다. 진호족泰昊族과 소호족小昊族과 그 일파인 고요족皐陶族은 동이족이다. 태양과 봉황을 토템으로 삼았다.

 

소호족은 대문구 문화를 주도했다. 염제 신농씨는 동이 신화에서 고시례高矢禮 혹은 고시내高矢乃로 오늘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황제 헌원씨는 환국 사관에 의하면 배달국인이다. 황제란 누런 임금이다. 태양신이다. 그래서 환인과 동격이다. 삼황이 동이족이거나 동이의 신화에서 숨쉬고 있다.

 

천도天道를 주장하는 중국의 임청하林淸河는 도통道通이 헌원軒轅 황제黃帝에서 요제堯帝 순제舜帝 우제禹帝로 넘어간다고 했다. 이어 탕왕湯王 문왕文王 주공周公 노자老子 공자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중국 문명의 도통이 동이족에서 비롯했다는 주장처럼 들린다.

 

오제는 소호小昊 전욱顓頊 제곡帝嚳 제요帝堯 제순帝舜이다. 소호 금천씨는 동이족이다. 전욱은 황제의 손자이다. 황제는 환인과 동격이라 했다. 요임금은 제곡의 아들이다. 순임금은 요임금의 왕위를 물려받는다. 역시 동이족이다.

 

순임금은 제준帝俊이라고도 한다. 태양신을 말한다. 일방 요임금은 치수를 하면서 곤의 도움을 받는다. 요는 치수 실패를 추궁하여 3년간 우산에 금고 후 죽였다. 그 배 안에서 우禹가 생겼다.

 

요순에서 하 상 주를 거치면서 동이는 차츰 서이나 회의 등으로 갈라진다. 주나라의 교동문화에 이르기까지 동이 문화는 주도적인 것이었다. 물론 동이 서이 등의 이름은 동이족이라 불렀던 민족이 스스로 붙인 이름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을 고신족 소호족 고요족 등으로 불렀다. 주나라의 멸망은 동이족의 이산으로 운명 지워졌다. 동주시기 동이족은 회이족과 함께 제齊 노魯 초楚 등에 정복당했다. 그 문화의 병존 충돌 융합 과정에서 제 노 초 문화의 내용을 풍부케 했다.

 

대륙 내에서 전국의 초나라 노나라, 그리고 송나라에서 동이는 결정적인 영향원이었다. 상족인 초나라는 동이와 회의의 영향을 고루 받은 축융족의 문화를 흡수했다. 제나라는 교동지역의 동이족을 정벌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동이족은 제나라에 동화했다. 제 문화는 그래서 풍요로워졌다.

 

노 문화 역시 동이 문화의 연속선상에서 발전한다. 동이 문화 요소가 이렇게 오랫동안 노 문화에 영향을 끼친 이유는 노나라 내부에 동이 토착 주민이 다량으로 거주했기 때문이다. 공자가 동이족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한다.

 

또 노국 주변에 거莒 주邾 설薛 등 동이가 건립한 국가가 존재했다. 그러므로 직·간접적으로 동이 문화 요소가 노국에 전해졌다는 점이다. 유교에 미친 또 다른 영향의 단면이다.

 

동이족의 기자는 동이의 나라 단군조선에 이어 기자조선을 세운다. 대륙의 동이족은 중화에 동화되었다. 그러나 반도의 동이족은 그 옛날의 영화를 그대로 간직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집요한 외골수로 지켜온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그 속의 단일민족이 오늘날 한국인의 현주소이다.

 

동이문화 -동양문화의 원형

상고 시대, 그 멀고 먼 시대에 불분명한 우리의 조상이 어떠했건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러나 우리가 부정하건 말건 우리의 유전적 형질로서 핏속에 흐르는 것이 있다. 동이의 정신이다. 적게는 오천년, 길게는 일만 년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해왔다.

 

사실 우리가 우리를 알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유전인자일 것이다. 그것이 바깥으로 내어 보이는 형질일 것이다.

 

대판 의과대학의 마쓰모도松本秀雄교수는 유전자 조사 방법으로 몽골 인종의 기원과 이동 경로를 조사했다. 몽골 인종은 혈청 중에 Gmab2st 유전자가 있다. 그 분포를 25표집인종에서 추출한다.

 

바이칼 호 북쪽에 있는 뷰리아트Buryat 몽골족계가 몽골 인종 집단 중에서 100명중 52명이다. 일본 본토인 45명 아이누족 44명, 에스키모인 44명이다. 한국인은 41명, 화북 중국인이 26명, 화남 중국인이 9명으로 급격히 감소하였다.

 

필리핀 인 인도네시아 인은 한 명도 없었다. 몽골족의 유전자 감식의 결과는 최소한 중국인과 한국인이 다른 종족임을 보여준다.

 

다시 1995년에 서울서 열린 포럼 2005 이야기이다. 일본 측 조사에 의하면 일본인은 동양 문명의 실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동양 문명이 세계 문명이 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이 없다.

 

한국인은 동양 문명이 21세기의 르네상스로 연결될 것이라 전망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일본인과 한국인은 문화 의식에서 다른 문화권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중국은 아예 70퍼센트 이상이 불가하다고 답변하고 있다.

 

결국 동양 삼국에서 중국은 몽골 족에서 떨어져 나가고 일본은 문화권에서 이반한다. 한국은 동이의 전통과 의식을 그대로 지켜 오늘에 내려오고 있다.

 

1995년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잇따른 사태는 우리 의식의 원형과 유전적 형질을 잘 보여준다. 사고 공화국에서 대통령의 인기가 곤두박질쳤다. 그것은 대통령, 나아가 옛날의 왕은 천명을 받드는 사람이라는 의식에서 비롯한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살아남아 한국의 기적을 만들어 낸 신세대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그들은 하늘이 내린 좁은 국토에서 살아 좁은 폐쇄 공간에 유전 형질적으로 익숙한 한국인이었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

 

생존자의 부모가 앉았던 자리에 사람들이 한 번씩이라도 앉아 보려고 줄을 섰다 했다. 삶과 죽음, 사주팔자는 하늘이 정해 준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어찌 우리의 원형이 옛날에 머물렀다 할 것인가.

 

동이 정신에 깃들인 노장사상

동양의 정신은 그렇게 우리에게 전해져 오고 있다. 미술 문화 역시 우리에게 피의 약속으로 전해져 온다. 동양화라 부르는 그림의 원형은 우리의 것이다. 먹이나 붓 벼루 등의 문방제구, 물이나 수성 안료라는 재료, 종이라는 재질, 그리고 그 위에 그려지는 수묵, 채묵이 그러하다.

 

나아가 동양화라는 이름으로 그려지는 소재들 문인화 사군자 산수화 인물화 등의 장르가 모두 동이 정신의 구현이거나 동이 정신에서 비롯한다.

 

그 동이 정신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것은 노자의 사상이다. 그것을 담는 것이 도덕경이다. 노자는 초나라 사람이다. 초나라에는 굴원과 노자가 있다. 굴원은 초사를 썼다. 동이족의 경전이라는 산해경의 집대성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초나라는 상나라와 동족이고 같은 제사를 모셨다.

 

동이와 회의의 사이에서 고루 영향을 받은 축융 문화를 수용한다. 태양신은 동이에서 축융을 거쳐 초나라에서 모셔졌다. 그 나라에서 주나라의 관리였던 노자가 도덕경을 썼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는 도덕경의 사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힘든 추론의 과정을 거쳐 노자 도덕경과 동이와의 관계를 밝히는 이유는 동양 정신과 미술 정신의 원류에 한국의 정신이 자리함을 보이기 위함이다.

 

노자의 도덕경은 철저히 동이족의 정신을 문자화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도덕경은 단순한 사실이나 정신 현상의 기록으로 비쳐진다. 중국인이 도덕경을 신비화하여 도교를 만들었던 것은 그들의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너무나 당연히 생활 속의 지혜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서술적 문장이 그들에게는 신비적인 주문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도덕경의 사상은 무용지용無用之用, 무위자연無爲自然,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사상을 담고 있다. 무용지용은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쓸모가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무위자연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무궁무진한 조화가 있다는 말이다.

 

유능제강은 부드러운 것이 뻣뻣한 것을 이긴다는 말이다. 이들 사상은 우리의 문화 예술의 골격이자 정신이 되고 있다.

 

무용지용은 노자 사상의 정수이다. 수레바퀴는 바큇살 사이의 공간이 있기 때문에 힘을 받는다. 그릇은 그 안에 빈 공간을 가지기 때문에 쓰인다. 벽은 사이에 빈 공간을 만들기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있다. 있음은 이로운 것이고 없음은 쓰임이다.

 

삼십폭공일곡三十輻共一轂이나 당기무當其無하여 유거지용有車之用하며, 연식이위기埏埴以爲器나 당기무當其無하여 유기지용有器之用하며, 천호유이위실鑿戶牖以爲室이나 당기무當其無하여 유실지용有室之用이니라. 고故로 유지이위리有之以爲利는 무지이위용無之以爲用이니라

 

비유컨대 동양화의 기본인 먹을 가는 작업은 그 자체가 무용지용의 사상을 보여준다. 벼루에서 먹이 갈리는 부분은 벼루도 아니고 먹도 아닌 그 중간의 세계이다. 이를테면 수레바퀴와 같고 그릇 안의 빈 공간이기도 하고 벽으로 둘러 쌓인 방이기도 하다. 무용지용이라 할 수 있다.

 

마치 도와 같아서 텅 비어도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으니 깊고 그윽함이 만물의 근원이다. 도충道沖이나 이용지而用之에 혹불영或不盈하니, 연혜淵兮하여 사만물지용似萬物之宗이로다 라는 노자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동양화의 여백은 이러한 무용지용의 절대적인 반영이다. 편재해 있는 기의 표상으로서 기는 산수의 기상을 표현하기 위해 비워 두었다. 그것이 10세기였다.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마하파의 변각경, 화조 인물 등은 여백 사상의 극대화라 할 수 있다.

 

무위자연은 풀무의 비유가 제격이다.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커다란 풀무 같구나. 비었으나 다하지 않고, 움직일수록 더욱 나온다. 천지지간天地之間은 기유탁약호其猶橐籥乎인저, 허이불굴虛而不屈하고 동이유출動而愈出이니라는 것이다.

 

미술에서 무위자연은 현 사상에서 볼 수 있다. 문방구에서 먹은 검은 것이다. 검은 것은 현玄이다. 만물의 시작이다. 현빈은 검은 암컷이다. 자궁을 말한다. 생명이 나오는 문이라 천지의 문이라 했다. 그것이 곡신, 즉 골짜기의 신이다.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는데 만물이 골짜기에서 생겨나 자라되 마르지 않는다. 무위자연이다. 곡신불사谷神不死하니 시위현빈是謂玄牝이니라. 현빈지문玄牝之門이여 시위천지근是謂天地根이니라. 면면약존綿綿若存하여 용지불근用之不勤이니라.

 

또 현지우현이라 했다. 이 말은 도덕경이 첫머리에 나온다. 도와 명은 한 갈래에서 나왔으나 이름을 달리한다. 현묘하고 현묘하니 온갖 묘함이 나오는 문이다 동출이이명同出而異名하니, 동위지현同謂之玄이니라. 현지우현玄之又玄하니, 중묘지문衆妙之門이니라라는 것이다.

 

여기서 도는 이름이 없는 것, 이름이 있는 것은 만물의 어미로 본다. 그것이 하나로 일관된 경지, 바로 먹의 사상일 것이다.

 

그 먹을 가는 바탕이 벼루이다. 벼루는 돌이다. 먹이 일이면 물이 둘이다. 벼루가 셋이어서 만물이 여기서 나온다. 그래서 벼루는 도가 된다. 물을 부어 먹으로 갈아 먹물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작업이다.

 

충기를 조화롭게 하는 일이다. 바로 도의 세계이다.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의 세계이다. 도생일道生一하고, 일생이一生二하고, 이생삼二生三하고, 삼생만물三生萬物이라. 만물萬物은 부음이포양負陰而抱陽하고, 충기이위화沖氣以爲和니라.

 

종이는 자연이다. 소이위현혜素以爲絢兮란 공자의 이야기이다. 바탕이 있어야 그림을 그린다는 말이다. 그 바탕이 예라 했다. 심성을 말한다. 심성은 자연적으로 타고난 성품이다. 그 종이를 만드는 것은 무위이다. 자연은 무위를 근본으로 한다.

 

유능제강의 대표적인 개념은 물이다. 동양화와 서예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물이다. 물로 녹이고 갈고 씻는다. 물은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경에는 최상의 선이라 한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아니하고, 뭇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상선上善은 약수若水니라. 수선리만물이불쟁水善利萬物而不爭하고 허중인지소오處衆人之所惡니라. 고故로 기어도幾於道니라.

 

동양화의 붓은 부드러움의 극치이다. 그렇게 부드럽기 때문에 힘이 나온다. 현판을 쓰는 사람을 시기해 사다리를 치웠다. 그러나 사람이 붓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더라 했다. 정신이 가는 곳에 힘이 있는 법이다.

 

붓은 부드러운 것이다. 그러기에 뻣뻣한 것을 이긴다. 유능제강이 그것이다. 천하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은 천하의 가장 단단한 것을 마음대로 부리고 형체가 없는 데까지 들어간다. 무위의 상태이기 때문에 이로운 것이다. 천하지지유天下之至柔는, 치빙천하지견馳騁天下之至堅하고, 무위無有는 입무간入無間하니, 오시이吾是以로 지무위지유익知無爲之有益이니라

 

붓을 뻣뻣하게 하는 것은 물이다. 가장 약한 것과 약한 것이 모여 강한 것이 되는 것이다. 붓은 언제나 부드럽게 유지가 된다. 그래서 물로 붓을 빤다. 필요한 때 먹을 머금어 가장 강한 글씨나 그림을 만들어 낸다.

 

천하天下에 막유약어수莫柔弱於水로되, 이공견강자而功堅强者는 막지능승莫之能勝이니 이기무이억지以其無以易之니라. 매가 나무에 앉아 졸다가 쏜살같이 먹이를 채듯 잔잔한 물위로 잉어가 뛰어오르듯鳶飛魚躍 정중동靜中動의 여유는 그렇게 생겨난다.

 

노자의 사상에서 몇 구절만 들어보아도 동양화라면 수묵화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배경을 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동양화는 물의 미학이다. 물로 그리고 물로 녹이고 물로 씻는다. 따지고 보면 동양의 화가들이 근본적으로 아크릴 칼라 등의 화공 안료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동양의 정신을 몸으로 체현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연이고 한국의 정신일 것이다.

 

수묵이 그러하고 채묵 역시 동이의 정신을 담고 있다. 산수화 문인화 사군자 인물화 등도 그 기원을 더듬어 보면 역시 동이 정신과 철학에서 비롯한다. 수묵은 노장사상에서 채묵은 오채사상에서 쉽게 설명이 된다. 산수화 인물화는 신선 사상에서 문인화 사군자는 삼경 사상에서 연유를 찾을 수 있다.

 

채묵의 오채사상은 오방사상과 결합된다. 오채는 청백적흑황이다. 오방사상은 동서남북 중이다. 오악사상에 비롯한다. 이것이 결합하여 동청 서백 남주 북현 중황이 된다. 사신도는 오방사상을 그린다. 동의 청룡靑龍-창룡蒼龍, 서의 백호白虎, 남의 주작朱雀-봉황鳳凰, 북의 현무玄武가 그것이다.

 

또 황제는 부임하는 관리에게 임지를 상징하는 땅을 급여했다. 황제는 태양신과 동격이다. 오악에의 순행은 순임금이 처음 행했다. 오악五岳은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恒山 숭산嵩山 이다. 거기에서 오채가 나왔다면 기본 사상은 당연히 동이족의 사상이 된다.

 

산수화는 이름 그대로 산과 물의 그림이다. 산이 먼저고 물이 따른다. 북방에서 쓰는 산천이라는 말 대신 산수가 통용된다. 산과 시내가 아니라 산과 산의 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 산은 신선이 사는 산이다. 산수화의 초기 형태는 신선 산수였다.

 

진 한 시대에는 신선이나 영수가 살고 있는 곳을 그렸다. 육조에서부터 운무 빗긴 산이나 고원 산수가 독립하여 그려진다. 역시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 깃들인다. 이후의 화북 산수는 보통 속인이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으로 그려진다. 산은 신선이 있는 곳이고, 하늘 민족이 하늘로 향하는 사다리이기 때문이다.

 

임천고치林泉高致를 쓴 북송의 곽희郭熙는 「산수훈山水訓」에서 산수화의 진정한 뜻은 임천의 뜻을 살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초월적 경지를 펼쳐 마음을 상쾌하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초월적 경지란 무엇일까. 산수가 주는 것이 자연이라면 임천의 초월적 경지는 인간을 넘어선 경개일 것이다.

 

청록산수는 인간의 산수가 아니었다. 나아가 금니의 준을 곁들인 금벽산수金碧山水는 인간 세상이 아니었다. 청록과 금니는 신성한 것을 그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신선도의 하나인 영산도는 대개 청록산수로 그려진다.

 

육조시대의 육조시대의 종병宗炳도 숭산嵩山 화산華山 등의 신선이 머무는 영산의 묘법을 그의 저서인 「화산수서」에 정리했으며, 후대의 미불米芾 황공망黃公望 석도石濤 등은 도교적 산수화를 그린 화가들이다.

 

영주신선도瀛州神仙圖 봉래산도蓬萊山圖 등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여산도廬山圖 촉산도蜀山圖 화산도華山圖 등의 경관은 사실 인간의 풍경이 아니다. 산수 속의 누각을 그린 황학루도黃鶴樓圖 등 누각산수樓閣山水는 다분히 신선산수나 신화적 분위기를 담고 있다.

 

도교적인 삶과 은둔 사상을 담고 있는 화제는 역시 노장사상과 신선 사상에 기인한다. 목우牧牛 기우도騎牛 채지도採芝圖 과석도窠石圖 즉 괴석도怪石圖 태호석도太湖石圖 노동전다도盧仝煎茶圖 육유팽다도陸羽烹茶圖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 노홍초당도盧鴻草堂圖 두자미기려도杜子美騎驢圖 조원도朝元圖 천태석교도天台石橋圖 탐매도探梅圖 연단도煉丹圖 유정수멱뎌幽亭秀木圖 조은도招隱圖 등은 직접 간접적으로 동이 사상에 연결된다.

 

문인화는 자연에 모든 것을 매끼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대상에 미혹되지 않고 주관적 해석에 의해 그림을 그리는 사의화寫意畵가 문인화의 의미이다. 이에 반대되는 것이 공필화工筆畵이다. 인간의 기교에 의한 그림이라는 말이다.

 

어쩐지 사의화가 동이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문인화의 취향이 삼경서 비롯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삼경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이다. 동이족의 시가 행적 사상을 담고 있다.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이 사군자이다.

 

사군자四君子는 문인화의 대표 개념이다. 군자의 기상을 말하는 것으로는 이아二雅 삼우三友 사군자四君子 오청五淸이 있다. 이아는 매죽, 삼우는 송죽매, 사군자는 매난국죽, 오청은 송죽매에 국화와 수석을 더한다.

 

이들은 중국적인 식물이 아니다. 모란 파초 불수감 등이 중국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런데 군자식물은 담담하다.

 

매화는 이른 봄 눈 속에서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해서, 난초는 여름의 깊은 산중에서 멀리까지 난향을 자랑한다 하여, 국화는 가을 서리 속에서 그윽한 꽃향기를 뽐낸다 해서, 대나무는 겨울 추위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다 해서 군자의 기상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민족정서상 중국인의 그것과 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가.

 

나아가 매화는 백이 숙제의 고사를 연상케 한다. 동이족의 고죽국 왕자인 이제의 정절이 매화에 비유된다. 송백은 시경에 논의가 되었다. 시경은 동이족의 시가를 모은 책이다. 난초는 공자 시대에 이미 향과 고귀함이 찬양의 대상이었다.

 

공자의 이상향이 동이 세계였음을 생각한다면 역시 우리의 정서와 연결되었다 봄직하다. 국화가 포박자 등에서 신선의 꽃으로 생각되었던 근저에는 역시 신선사상이 자리한다. 신선사상의 원전은 산해경이고 사상으로 승화한 것은 도덕경이다.

 

대나무는 벽사의 상징이다. 깨끗함을 뜻한다. 대나무가 군자로 묘사된 최초의 기록은 시경의 위풍이다. 송대에 흥기한 문인화는 원대에 크게 발전했다. 문인 화가들이 항상 대나무를 그들 자신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간은 「죽보竹譜」에서 문동文同과 소식蘇軾을 계승하여 의재필선意在筆先을 소중하게 이론화했다. 그것은 자신이 대나무가 되어야 붓끝에 대나무가 그려진다는 사상일 터이다.

 

망국의 슬픔을 담고 있다고는 하지만 시적 정취가 담긴 그림의 시정의취詩情畵意에 의해 그려지는 문인의 이상에 은일한 식물들이 등장할까. 그것은 분명 중국인의 취향은 아니다. 문동이 대나무 그리는 일을 ‘도는 배웠으되 아직 이르지 못한’ 것으로 여겼다‘는 사실은 중국인에게 은일 정서는 흥풀이 정도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사실 중국인의 정서에 대나무는 폭죽과 더 친하다. 이전이 산귀를 무서워 아침마다 대나무를 불에 넣었다. 뻥뻥 소리에 귀신이 도망갔다. 폭죽의 기원이다.

 

인물화는 신성함의 표상이다. 고대의 인물화에 태양신, 황제 등의 그림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인물화의 동기가 신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화제는 인물화의 신성 동기를 합리화한다.

 

신농도神農圖 등 삼황 그림, 태호 복희씨의 딸 복비를 그린 낙신부도洛神賦圖 하늘 땅 물의 세 신을 그린 삼관도三官圖, 굴원과 그의 제자 송옥 등이 지었던 초사의 화제를 그린 초사도楚辭圖. 신선의 단약을 만드는 연단도煉丹圖, 산수 속의 신화나 역사 인물을 그린 고사산수故事山水 등이 인물화의 화제들이었다.

 

북경의 대명사인 천안문에 세계가 볼 수 있도록 모택동 초상화를 걸어 두었다. 인간을 그리는 것이 이토록 신격화된 것은 국가적 사업의 일부였다. 중국인은 제왕이나 공신의 기념비적 현창상顯彰像을 그려 전각에 모시기 위해 화공을 육성했던 것이다.

 

역대 군왕을 그린 제왕도帝王圖나 안록산의 난을 피하여 촉으로 피신하는 현종을 그린 명황행촉도明皇幸蜀圖처럼 군왕의 행차를 그린 출행도出行圖 등이 왜 그토록 진지하게 그려졌을까. 고대의 태양신이나 신화 인물들의 위광암시를 원했던 제왕과 그것을 요구했던 중국인의 국민성이 신성 인물화를 그려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중국인에 의한 화제를 구분하게 된다. 구로회도九老會圖 금곡원도金谷園圖 도리원도桃李園圖 십팔학사도十八學士圖 문희귀환도文姬歸漢圖 출새도出塞圖 복생수경도伏生授經圖 태진승마도太眞承馬圖를 비롯한 사녀도仕女圖 여사잠도女史箴圖 한궁춘효도漢宮春曉圖 청명상하도淸明上下圖 등의 객관적 묘사가 오늘날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연결되었다고 생각지 않는가.

 

화론과 화공-중국 기질의 실체

화론의 시제는 과거완료형이다. 미학과 비슷하다. 원체 하품이 나올 만큼 진부한 이론이 화론이다. 중국인의 화론이기에 더욱 지루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 생동하는 광채는 동이 정신에서 나온다. 화론의 시초는 동이문화에서 비롯한다.

 

이를테면 「좌전左傳」의 “사민지신간使民知神姦-백성으로 하여금 신령스러움과 사악함을 알게 한다” 라는 말은 상주 시대 청동기에 새긴 도철 문양 등에 대한 이야기이다. 도철은 사람을 잡아먹는다. 사람의 독으로 자신도 죽는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농경시대 대가족제도에서 과식을 경계하였다 한다.

 

“회사후소繪事後素-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칠한 뒤에 한다”는 것과 “명경찰형明鏡察形-맑은 거울은 모습을 살피게 해준다”는 공자의 이론은 상고 시대를 바탕으로 신화시대를 비친 예를 의미한다. 화론은 상고 신화시대에서 도출된다. 기운생동 신사 임자연 의고의 정신이 그것이다.

 

고개지顧愷之의 전신론을 이어받아 사혁謝赫은 6법을 제시했다. 이를 분석해 보면 기운생동氣韻生動과 골법용필骨法用筆이 중국화의 예술 형식미의 큰 줄기라면 응물상형應物象形 수류부채隨類賦彩 경영위치經營位置 전이모사傳移模寫의 나머지 이론들은 부수적인 응용이라 할 수 있다.

 

기운과 골법이 큰 줄기라는 이야기는 중국인에게 그것들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대를 물려 그것이 강조되는 것은 중국인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강조점으로 들릴 수 있다. 응용은 중국인이 하되 그 원론은 누구의 것인가.

 

원론과 응용이 교차되는 것은 형호荊浩의 기운사경필묵氣韻思景筆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와 운은 그림의 정신을 의미한다. 사경은 대상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필묵은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이렇게 정신과 대상과 방법이 동격으로 미술 이론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중국인의 현실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송의 유도순劉道醇이 「성조명화평聖朝名畵評」 에서 그림을 이해하는 요결은 먼저 육요六要를 아는 것이라 했다. 그것은 기운겸력氣韻兼力 격제구로格制俱老 변이합리變異合理 채회유택彩繪有澤 거래자연去來自然 사학사단師學舍短이다. 역시 기운이 먼저 내세워지고 있다.

 

황휴복黃休復이 당대의 비평 기준인 신神 묘妙 능能 일逸에서 일을 신묘능의 앞에 놓은 것은 바로 이러한 기운생동의 세계일 것이다. 자유로운 예술 표현이 통상적 의취를 벗어난다는 것은 아무래도 원체화의 법도를 따르자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이개선李開先이 6요六要에서 맨 먼저 내세운 것은 신묘한 필법이었다. 그 다음으로 맑은 필법 노숙한 필법, 굳센 필법, 살아 있는 필법, 윤택한 필법이 따르게 된다. 이들은 한결같이 숙련에 의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황공망黃公望은 “바위 구멍 하나, 돌 하나를 그리더라도 마땅히 일묵逸墨으로 시원하게 쳐서 선비다운 풍격이 있어야 한다” 라 했다.

 

서위徐渭가 자연물의 특징을 빌어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 화법과 상관없이 기운을 중시하는 것, 용묵用墨에서 먹을 많이 쓰느냐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생동한가 아니한가를 따르는 것 역시 기본적인 것은 기운이라 할 것이다.

 

전선의 사기론은 조맹부의 서화동필동묵론書畵同筆同法論과 같은 맥락에서 서법의 용필로 세속을 벗어난 청한淸閑함을 표현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추일계鄒一桂의 활탈론活脫論은 사생에 있어서의 생동과 화격의 초월적 완성을 동시에 주장하고 있다. 활이란 뜻과 붓과 색이 하나같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고 탈이란 화면 위의 질서를 통어하는 정신의 자율적 흐름에서 그림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살아 있는 붓과 뜻과 색이 어떤 것인가를 6기에서 살필 수 있다. 그것은 「소산화보小山畵譜」에서 제기된 대로 1. 시골 여자의 화장 같은 속기俗氣. 교묘한 손끝 장난인 장기匠氣 3. 붓끝 장난인 화기火氣 4. 조잡하고 야한 초기草氣 5. 휘청거리는 선으로 그린 규각기閨閣氣 6. 격식 없이 함부로 창작하는 축흑기蹴黑氣라 일컫는다.

 

일러 기운 타령이다. 기운생동이라는 것은 화가의 기운이 대상을 생기 있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다. 예술 충동과 자유정신을 말한다. 그런데도 추일계의 활탈론이나 곽약허의 삼병에서 용필을 상론하고 잡기를 그토록 경계하는 이유는 중국인의 기질을 경계한 것이다.

 

추일계의 병적인 6기는 곽약허郭若虛의 「도화견문圖畵見聞」에 보이는 삼병三病, 즉 판版 각刻 결結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중국인이 경계해야 할 병으로 지적되었을 것이다. 판이란 운필이 약하고 억양이 없어 그림을 그려도 납작하게 보이는 것, 각은 운필이 조화를 잃어 과장하거나 모나는 것, 결은 붓이 뻣뻣하게 자국을 남기는 것이다.

 

예술충동과 자유정신은 타고나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다는 말이다. 태생이요. 천생이다. 인간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천재라는 말이 생겨났다.

 

기운은 초월적 정신이다. 하늘 사상이다. 하늘에 뜻을 두고 몸이 이 땅에 있으니 그 기운이 하늘에 미친다는 사상이 기운생동이다. 중국인이 그토록 기운타령을 한 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 기운이 없는 민족이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염불은 성취하고자 하는 자가 하는 것이고 타령은 얻고자 하는 것이 있는 자가 하는 것이다.

 

하느님 사상을 천제로 바꾼 것은 중국인이다. 하늘에 있는 제왕이라는 정도의 뜻이다. 초월적 존재를 통한 기운과 골법에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기운이 미칠 바가 아니다. 그것은 신사와 마찬가지로 노자의 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신사神似- 정신의 닮음

신사 역시 중국적인 개념인 형사와 대립된다. 기운생동을 해석하여 기운이 생동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기운을 얻을 수는 없다. 기운은 기운이 아니라고 내팽개쳐 둔 곳에 있다. 생동은 시들고 병적인 곳에 있다. 이를테면 무용의 용에 그 묘가 있는 것이다.

 

힘찬 발묵과 파묵이 힘이 있음은 그 힘의 소용돌이 바깥에 의도하지 않은 갈필渴筆과 비백飛白이 받쳐 주기 때문이다. 무위자연에 묘가 있다. 침전되고 축적된 체질적 원형적인 기운이 의도하지 않는 가운데 세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유능제강에 묘가 있다. 정신이 기교를 이끄는 것은 형상이 없는 것이 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사란 정신의 닮음이다. 형사의 반대 개념이다. 형사는 형태를 닮게 그리는 것이다. 한비자의 형사에 대해 소식은 신사를 논했다. 소식의 신사는 형사를 포함한다. 전한 시대의 「회남자淮南子」에는 그림에 으뜸이 되는 주체 즉 ‘군형君形’ 을 상정한다.

 

근모실모謹毛失貌터럭에 힘쓰다 모습을 잃는다 라는 말은 군형을 중요시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신사神寫 즉 정신의 닮음을 강조한다. 형상에 비해 심미 능력이 강조된다. 신사는 정신의 닮음이다. 그것이 어떻게 기교를 배워 따라 그린다고 되겠는가.

 

종병宗炳은 산수화에서 정신의 펼침暢神을 찾았다. 또한 “그림의 정이 산수에 강림한 것이 신명神明이라 했다. 신명은 태양이라 뜻풀이된다. 태양신이고 하느님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천지신명이시어 일월성신이시어 라고 우리네 어머니는 비손을 하면서 주문처럼 신명을 찾았다.

 

신사는 신명 사상에서 신명 사상은 태양 사상에서 비롯한다. 기운생동이 신사와 함께 논의될 수 있는 소이이다.

 

그러한 신사의 그림을 그리는 실질적인 지침은 오도자吳道子에서 발견된다. 즉 “뜻이 그림에 있지 않아 그림을 얻었다” 는 것이다. 어떻게 뜻이 그림에 있지 않는가. 그것은 무용의 용을 연상케 한다.

 

춘추시대의 형사론은 동진의 고개지顧愷之에서 전신론傳神論으로 나아가 신사론神似論이 중요시된다. 전신이란 전신사조傳神寫照를 말한다. 대상의 정신과 의태를 그림으로 전한다는 것이다.

 

고개지가 사람의 얼굴을 그리면서 가끔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정신이 눈동자에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현실적이고 타산적인 중국인이 정신의 가능성에 대해 눈뜨게 된다는 의미처럼 들리지 않는가.

 

곽약허郭若虛는 기운비사氣韻非師라 했다. “기운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반어적으로 마음으로 깨달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것, 즉 자연률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일 것이다.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를 눈감고도 베낄 만큼 그릴 수 있으되 기운을 배울 수 없는 민족이라는 체념은 아닐까.

 

아이들 입씨름 같은 신사의 논의는 계속된다. 북송의 소식蘇軾은 “형사로써 그림을 논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견해와 같다” 고 했다. 북송의 黃休復은 육법을 논하면서, “오직 형사와 기운이 두 가지를 먼저 내세워야 한다.

 

기운은 있는데 형사가 없으면 바탕質이 무늬文를 앞서게 되고, 형사는 있는데 기운이 없으면 화려하지만 내용은 사라져 버린다” 고도 했다.

 

신사에 깃든 신명의 정신, 그것이 체질화될 수 없는 중국인이기에 정신을 전하여 모습을 그리는 것 즉 전신 사조가 그토록 진지하게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임자연任自然

원시시대 예술은 생산과 수렵을 위한 공리적 수단이었다. 동양에서 자연경관이 나타나는 것은 상주商周시대에서 한대漢代로 본다. 인간과 귀신과 신화가 섞여 있는 자연이 무대였다. 동이족의 정신이 만연한 노나라에서 공자는 물의 쉬지 않음과 송백의 절개 등을 논했다.

 

상족의 초나라에서 굴원은 초사를 지었다. 신화 인물 신선산수 누각 등의 계화의 사상적 바탕을 제공한다.

 

노자의 사상을 이어 장자는 자연을 따를 것任自然을 주장했다. 창작에 있어 세속적인 사고와 회화 법칙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해의반박解衣般礴을 주장했다. 옷을 늦추고 다리를 뻗은 채 앉는다 말이다.

 

동진과 남조에서 자연미는 신화적인 것에서 벗어나 신선사상과 은일 사상의 무대로 인식되었다. 나아가 종병과 왕미王微는 산수화론에서 자연이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고양할 수 있는가를 밝히고 있다. 정신이 그림의 정수가 된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는다.

 

산수에서의 공간을 파악한다는 접근 방식은 형상을 담는데 그림보다 좋은 것은 없다는 사상으로 연결된다.

 

명대의 왕리王履는 「화산도서華山圖序」에서 고인과 자연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인과 자연... 많이 듣던 이야기가 아닌가? 물론 그 고인은 고대인은 아니다. 자연은 신선의 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다분히 고형태와 원형을 추구하라는 이야기로 들리게 마련이다.

 

의고擬古-어떤 옛것인가

옛것을 오늘에 되살려 발전의 기틀로 삼는다는 태도는 장언원의 역대명화기에서 그 태도를 볼 수있다. 사혁의 고화품록에서도 그 여섯 번째 규범은 전이 모사이다. 바로 옛 그림의 모사를 말한다. 전대의, 선배의 그림이라는 말이다. 그 원형은 무엇인가.

 

곽약허는 고대와 근대에 그 우열이 있는 분야가 있다 했다. 도석道釋 인물人物 여사仕女 우마牛馬는 고대가 우수했다. 그러나 산수山水 임석林石 화죽畵竹 금어禽魚는 근대가 낫다는 것이다. 이 비유 자체는 기교와 정신의 우열이겠지만 우리는 그 배경에 원형적인 것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다.

 

즉 도석은 신선, 인물은 신화와 전설상의 영웅이나 신神 사녀는 신화 상의 여신이나 여신선을 그리기 위하여 애당초 그려졌을 것이다. 우마는 은일 사상과 팔준마로 연결될 수 있는 소재들이다. 노자는 소를 타고 함곡관을 지났다. 기우도는 중국화의 만고불변의 전통이었다.

 

서왕모의 요지연에 참석했던 주 목왕의 수레를 끌었던 것이 팔준마였다. 따지고 꿰매고 보면 모두 동이족과 연관이 있다.

 

조맹부는 복고풍으로가 아니라 고전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바 있다. 옛 사람들이 기법과 풍격이 고전이라 했다. 명대 초기에 대진戴進과 오吳偉위 등은 원대의 전통을 버린다. 그리고 남송의 마하파, 즉 마원馬遠 하규夏珪의 풍격을 배운다.

 

가까운 시대를 버리고 먼 시대를 배우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중국 미술은 고삐와 같다. 말뚝을 중심으로 반경 이내에서 노닌다는 말이다. 언제나 말뚝으로 회귀함도 같은 뜻이다.

 

청조에 들어 왕원기王原祁 등에 의해 선양된 의고사상은 명말의 의고 사상의 발전적 형태이다. 그것은 자연에서 배울 수 없는 그들의 체질적 절망을 반영한다. 사실 고인의 필묵을 그대로 모방한다는 것은 스스로 구속을 자처하는 일이다. 생동감을 죽이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중국 미술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에 절망한다. 결국 우리가 중국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중국인의 중국에서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 미술과 화론은 좁게 말하자면 화원과 화공의 각축이라 할 수 있다. 화원은 궁정의 원화를 그리는 화가이지만 때로는 화공에 비해 신적인 우월성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했다.

 

당대에 화원 제도는 당나라 오대를 거처 남당에서 제도화된다. 북송 초기에 이르러 내시성하에 화원을 설치하였고 휘종에 의해 원체가 확립되었다.

 

화공은 그림을 직업으로 하는 직공이다. 중국 민족 회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공의 그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배계급의 천대를 받았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과도 흡사하지만 한국의 이름 없는 화공이 신기를 발휘하였다면 중국의 이름 있는 화공은 멸시 속에서 장식 도안 등 공예적 그림을 그려 왔다. 그것이 아마 민족성의 차이일 것이다.

 

중국 미술에서는 극구 부인하겠지만 원체화는 다분히 화공의 기예가 중심이 되는 그림이다. 그것은 초월적 정신이 전제가 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기예를 닦을 수 있다는 중국적인 사상이 원체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문인화와는 그러므로 다를 수밖에 없는 범주의 정신을 가진다.

 

따지고 보면 중국 화론의 각축이란 문인화와 원체화의 투쟁이며 중국적 현실주의와 비중국적 초월주의의 다툼이라 할 만하다.

 

문인화와 원체화의 투쟁은 오파와 절파에서도 재연된다. 절파浙派는 명대 초기에 대진과 오위를 중심으로 하는 원체화 취향이다. 원대의 전통을 버리고 남송의 마하파, 즉 마원과 하규를 배웠다.

 

마하파의 화풍은 변각경邊角景이다. 잔산잉수殘山剩水를 화면의 아래쪽에 붙이고서 중앙이나 윗부분에 만든 여백을 통해 시적 정서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반하여 심주沈周, 문징명文徵明의 오파吳派는 원대의 전통을 이어 문인화를 재건한다. 동기창董其昌에 의하면 문인화는 왕유王維-동원董源 거연巨然 이성李成 범관范寬으로 이어져 원 사대가인 황공망黃公望 왕몽王蒙 예찬倪瓚 오진吳鎭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이사훈파에서 비롯하는 마원馬遠 하규夏奎 이당李唐 유송년劉松年 등을 배우지 말라 했다.

 

진계유가 평했듯 이사훈李思訓 파는 새긴 듯이 자세하여 사기가 없고 왕유 파는 맑고 온화하며 조용하고 한가롭다고 했다. 문인화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의 체질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자연물의 모사에 익숙한 중국인에게 자연물의 미를 통해 작가의 ‘정’을 표현한다는 운격惲格=수평壽平의 주장은 곽약허가 사기모似氣貌 즉 귀하고 천한 모습을 그대로 묘사해야 한다 했던 주장과 같다. 자연과 인간을 통해 정신을 표현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결국 논의는 오도자의 신사神似에 대한 이야기에서 실마리가 풀릴 듯하다. 재론하면 “뜻이 그림에 있지 않아 그림을 얻었다” 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토록 형사를 통해서만 정신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화론의 요체에서, 그 중국 미술의 절망으로 우리는 귀결한다. 그래서 다시 우리의 것으로 돌아간다. 파랑새처럼 그것은 바로 우리의 곁에 있었다.

 

한국 회화의 가능성- 내용과 정신

한국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그 형식과 기교에서였다. 고려청자는 그렇다 치고 조선 백자의 예를 들더라도 중국의 영향은 확연하다. 그러나 이 나라에 들어온 도자기법에서 우리는 내용과 정신을 살렸다.

 

그래서 야나기 무네요시는 중국의 무늬가 한국으로 들어와서 단순화하고 이윽고는 원형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변형된 과정에 경탄하고 있다. 야나기는 무뚝뚝한 형식선에서 바늘처럼 가늘고 날카롭게 맑다고 표현했다.

 

조선의 정신이 바로 한국 미술의 정신일 수 있었던 것은 삶속에서 민중의 소박한 정신 속에서 빚어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유섭은 조선의 미술은 민예적인 것이매 신앙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조선의 미술은 순전히 감상만을 위한 근대적인 미술이 아니다. 그것은 미술이자 곧 종교요, 생활이다. 말하자면 상품화된 미술이 아니므로 정치한 맛, 정돈된 맛에서는 항상 부족하다. 그러나 그 대신 소박한 맛과 둔후한 맛과 순진한 맛에 있어 우승하다’ 고 하였다

 

조선의 목공예 문방구 가구 등은 유교적 중용의 절제된 아름다움이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은 이름 없는 목수였다. 야나기는 조선의 목기를 보고서 인간이 하는 작업의 틀 속에 좀처럼 넣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인간 이외의 자연이 너무나 많은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목공예에 관한 야나기의 묘사는 다분히 노자 도덕경의 무위자연을 연상케 한다. 조선의 목공은 풍부하지 못한 목재 사정 때문에 쉽사리 손에 닿는 것을 사용한다. 비교적 깎기 좋은 생나무를 쓴다. 칼은 날을 세우지 않는다. 날을 세우면 쉬 무디어진다.

 

돈이 없으니 서너 개 손에 닿는 도구를 쓴다. 그러고서도 거기에는 인공을 초월한 인간의 정신이 깃들인다. 여기서 야나기의 표현을 보자.

 

고패는 덜컥덜컥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패란 그런 것이려니 하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 덜컥덜컥 거리고 만다. 반듯하게 나무가 켜지지 않아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나뭇결도 마침 맞는 것이 있으면 사용하나, 없다면 또 없는 그대로 좋다. 별로 마음을 썩일 일이 아니다.

 

바닥은 평평하면 한 대로 뒤틀리면 뒤틀리는 대로 때를 좇아 만든다. 담담한 여유가 있고 좋고 나쁨을 떠나 작품이 만들어진다. 만든다기 보다는 만들어진다. 그래서 다시 야나기는 말한다. 무엇인가 위대한 것이 불가사의를 연출한다고...거기 비해 중국이나 일본의 것은 가공이 지나쳐 맛을 죽인다 했다.

 

일본에서 조선의 목기를 재현하는 목수가 있다. 실측으로 완벽하게 만들어 낸다. 그런데도 결코 이름 없는 한국의 가구를 살리지 못한다. 그야 그럴 것이다.

 

동대문이 왜 기우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영의정 깜냥이 되어야 한다는 한국 도목수의 세계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동대문은 계절에 따라 틀어졌다 다시 원상 복귀하도록 만들어졌다. 동대문의 설계도 역시 도목수의 머릿속에 만 있을 터이다.

 

야나기는 도자기가 그토록 발달한 조선에서 그토록 침울한 오채만이 쓰였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불가사의라는 표현을 쓴다. 왜 조선인은 보라 초록 노랑 주홍 빛 등을 그토록 기피했을까 그것은 바로 노자가 말했던 오색영인목맹이라는 가르침을 체질적으로 이어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색五色은 영인목맹令人目盲하고, 오음五音은 영인이롱令人耳聾하고, 오미五味는 영인구상令人口爽하고, 치빙전렵馳騁畋獵은 영인심발광令人心發狂하고, 난득지화難得之貨는 영인행방令人行妨이니라. 시이是以로 성인聖人은 위복爲腹하고 불위목不爲目하니, 고故로 거피취차去彼取此니라.

 

흰옷은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인이 기쁜 날만 빼고 언제나 소복을 입는 것은 태양신의 하양을 숭배한다는 견해가 있다.

 

그렇다면 기쁜 날에 하얀 옷을 입어야 할 것이 아닌가. 소복素服은 하늘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바탕으로 자신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 심성으로 한국인이 오채를 보았기에 오색에 눈멀지 않은 소탈한 심성이 외국인에게 침울한 오채로 보였을 것이다.

 

일본에는 사인을 안 하는 도예가가 있다. 물으면 웃는다. 조선의 이름 없는 도공도 나보다 더 잘 빚는데 어찌 내가 사인을 할 수 있으랴 는 것이다. 조선에 분청을 배우러 왔던 일본의 중견 도예가는 결코 분청을 배울 수 없다는 절망에서 자살했다.

 

이 모두 배울 수 없는 조선의 마음에 대한 절망이었다. 그것을 배우고 체질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 바로 한국인, 이夷-동이東夷의 전통을 5천년 이어온 오늘의 한국인 아니던가.

 

한국 문화의 적응- 미술선진화

그런 각도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주장은 설득적이다. 그는 후기 산업 사회에서 가장 뛰어난 적응력을 보일 수 있는 민족이 한국인이라 갈파한다. 열대에서 극지에 데려 놓아 바로 일할 수 있는 민족은 세계에서 한국인밖에 없다 했다. 그 유연성은 미술에서도 적용될 것이다.

 

그것을 대변하는 말이 적당이다. 적당은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적당하다. 적당주의란 말이 있다. 건성건성 대강대강 얼버무리는 태도를 말한다. 그것이 어떻게 주의가 되는가. 만약 건성으로 대강 해치우는 버릇을 말한다면 그건 대충주의나 건성주의라는 말이 적당하다.

 

이르나니, 적당주의는 한국인의 정신이다. 이어령의 예를 빌어 문틈을 적당히 메우는 문풍지, 아무 신체 조건에나 적당히 입을 수 있는 바지나 신을 수 있는 버선, 적당히 되는 되질 말질 등 계량형은 모두 이 적당주의의 산물이다. 또 공간을 접었다 펼 수 있는 병풍, 접을 수 있는 부채, 가변적인 보자기, 밥상과 방석의 공간 등이 바로 그 유연함의 상징이다.

 

한 문화의 유연함과 가능성이란 그 정신의 유연함에 있다. 그것을 이어령은 풀이 문화에서 찾는다. 살풀이 화풀이 원풀이 등에서 고통과 질곡을 풀어 버릴 수 있는 민족이기에 고통의 독이 영혼을 범할 수 없었던 민족, 그것이 한민족이었다는 것이다.

 

풀이 문화의 원동력은 신바람이다. 근원적인 생명의 율동에서 솟아 나오는 힘이다. 그것이 억압되어 나타난 것이 한이다. 풀 수 있는 한이기에 21세기에 우리는 그 한을 풀고 세계무대를 이끄는 당당한 세력으로 등장할 것이라 이어령은 내다봤다.

 

그것이 아마도 아시아 포럼 2005에서 세 개의 변수를 가진 삼체운동방정식으로 해석하여야 할 필요를 역설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어령은 중화 이데올로기의 도형 속에서 설명되어 왔던 질서의 재구축을 주장한다.

 

대륙으로서의 아시아와 근대 이후 황국 식민 이데올로기의 도형 속에 구축된 바다로서의 아시아에 이은 새로운 질서이다. 그것은 ‘자연을 퍼지하고 카오스적인 것으로 바라보았던 아시아 문화가 선형적 사고와 요소 환원주의로 이룩한 서구의 근대 문명과 접촉하여 생성할 새로운 문화’ 라 했다.

 

그 첫 무대는 동북 아시아가 될 것이다. 한국의 한백연구재단, 일본의 덴쓰종합연구소 중국 미래연구소가 최근 3국의 30-45세 지식인 3백명을 대상으로 한 「델파이 공동연구」 결과, 21세기를 이끌어 갈 한국 1백 5명, 일본 1백 14명, 중국 94명의 동양 관련 학자와 문화 예술인이 참여한 공동 연구의 결과는 한국이 동아시아 문화의 주역이어야 할 결정적인 의식의 단서를 제공한다.

 

동양 문명이 탈근대세계의 보편 사상이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한국은 긍정 90% 부정 10%이었다. 중국은 부정 78% 가능 16% 모름 6% 이었고 일본은 긍정 37.5% 부정 37.5% 모름 25% 였다.

 

일본 측 조사 보고자는 응답자들의 다양성의 표출이라 애써 변명한다. 중국 측은 동방 문명이 서방 문명을 대신할 수 없다고 단정한다. 한국 측은 서구 문명을 대체할 수 있는 문명에 대하여 동양 문명의 르네상스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했다.

 

한국의 높은 자신감 그것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외세에 의해 형성된 국가관 민족관 인간관이라는 명태껍질을 벗고 볼 때 이 땅의 사람과 자연과 인문환경은 아름답다. 인간에 의해 덧씌워진 오류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싶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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